고대 사회의 지배층 - 가, 호민, 하호, 간

1. 가란 무엇인가?

고대 사회에서 지배층을 논할 때 우선 알아야 할 단어는 <가>입니다. 가란, 북방 유목민 사회에서 전파되어 온 개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고대 유목민 사회에서는 지배자(족장)를 가한이라고 불렀습니다. 가한이란 큰 추장이란 뜻이라고 하네요. 흉노에서는 지배자를 <선우>라고 부르는데, 이 선우도 그 원 뜻은 <가한>이라고 한답니다. 중국에서 유목왕조와의 투쟁에서 승리한 당나라도 이 <가한>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이민족을 지배하는 지배자라고 자처하기도 했답니다.

이 <가>라는 말은 남방에 내려와서 삼한 사회에서 <간, 한>이라는 용어와 같이 쓰였습니다.

우선 가가 들어간 말들은 고추가, 대가, 소가, 제가 등 북방계통의 국가가 많이 사용했습니다. 고구려, 부여에서 많이 나오는 용오들이죠. 신라에서는 마립간, 이사금, 거서간 등의 파생어가 있는데, 여기서의 간 역시 <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즉, 이들 용어는 공통적으로 추장, 족장, 군장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국의 군장을 뜻하는 용어로서의 <가>이기 때문에 이 용어가 사용된 시기는 연맹왕국 단계의 초기 철기 시대가 주류를 이루는 듯 싶습니다. 제가 역시 이 <가>라는 용어에서 파생된 작은 영역의 지배자로 해석하면 무난할 듯 싶네요.

그러나 초기 철기시대를 넘어 삼국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가> 계급은 중앙세력에 편입되어 관등제도 속으로 포함됩니다. 예로, 고구려의 초기 나(노)집단은 주변 씨족 사회를 통합하여 연노, 절노, 순노, 관노 등의 <가> 사회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계루부 중심의 부로 통합되었고, 씨족적 부는 고국천왕대에 행정적 부로 재편됩니다. 그리고, 가들은 중앙관위 속에 편제되어 고추가 - 대가 - 소가라는 3중적인 서열로 재편됩니다. 즉, 가들은 읍락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고, 왕권에 신속한 신하가 되는 것이지요. 이들은 왕권 밑에서 읍락과 하호를 통제하는 행정관 성격으로 바뀌게 됩니다. 즉, 부체제적인 <중층적인 이중 구조>의 사회가 중앙집권적인 <일원적 구조>로 바뀜을 말합니다.

2. 호민이란 무엇인가?

호민은 원래 가에 속한 가층의 지배자를 뜻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가 분화되고, 정복사업이 많아졌으며, 철기시대가 진전되면서 이 호민층은 가층에서 갈라져 나온 중간 계급의 성격을 갖습니다. 원래 호민은 소국의 지배층이었습니다. 예로 옥저, 동예, 삼한 등에서는 뚜렷한 지배자가 없이 다수의 읍군, 삼로, 장수, 후 등이 존재했는데, 이들이 더 큰 대국에 점령당하면서 대국에 편입된 호민층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호민은 초기부터 자신의 지배영역을 가지고 있던 소국 족장으로서, 대국에 통합된 이후에도 읍락의 점유권 등을 바탕으로 일정한 세력을 유지하던 지방 지배층이라고 보시면 무난할 듯 싶습니다. 역사에서 흔히 말하는 <호족>세력과도 비교가 되네요.

3. 경, 대부는 무엇일까?

경과 대부는 중국 서주시대사에서 아주 상세히 다루었습니다.(필요하신 분들은 검색해보세요. 서주시대로..) 대부은 원래 제후 밑에서 봉토를 부여받고 군사와 공납을 담당하던 <국>의 지배층이었습니다. 경은 제후 옆에서 직접 업무를 담당하는 실권자인 대부를 말합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기자조선 시대에 경, 대부가 나타납니다. 여기서의 경은 한 지역의 국사를 맡던 관직으로 <조선상 역계경> 등에서 보여지듯이 독자성을 가진 이름입니다. 대부란, 일정 가문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층 귀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이들 경, 대부들은 각각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고, 상위 지배집단이 동요할 때에는 스스로 <가, 간>을 칭하면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고는 했습니다. 삼한 70여개국이 정확한 명칭을 알 수도 없고, 그 영역도 잡거 형태이며, 생몰을 파악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것에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경, 대부에게 일정한 관직을 주고, 영역를 인정하여 지역을 통치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왕에 신속하면서 중앙정치에 참여한다던가 지역통치에도 관여했을 것입니다. <조선상 역계경>을 예로 보면, <상>은 국가에 신속한 관리를, <경>은 독자적인 지방 세력임을 의미하는 단어로 이 두가지가 동시에 명칭으로 사용됨을 볼 수 있네요. 이러한 경, 대부라는 직책은 위만 조선에서 보입니다.

4. 제가란 무엇일까?

제가란 용어는 부여에서 나옵니다. 제가란, 한자로 보아 <가>들을 두루 다스리는 큰 가란 뜻일 겁니다. 제가는 왕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큰 족장 세력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읍락에서 수백, 수천가를 다스리며, 좌식자(앉아서 먹고 노는 계급)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호를 착취하여 막대한 조세를 걷었죠.

부여는 <제가평의>를 통해 행정에 참여하였는데, 이미 1책 12법 등이 존재한 것으로 보아 제가평의는 법의 제한을 어느 정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들은 그들의 특권이 존재하는 만큼 어느 정도 법의 제한에서는 벗어나 자신들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제가는 하호를 지배하는 실제적인 영역의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마음대로 관료를 임명하고, 임명한 관료의 명단만을 왕에게 통보하는 형식으로 영역을 다스렸습니다. 예로, 고구려의 대가들은 사자, 조의, 선인 등을 스스로 임명할 수 있었습니다. 또, 부여의 제가들은 흉년이 들었을 때, 왕을 죽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가들은 독자적인 군사력도 막강하여 왕위계승분쟁이 있을 경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전쟁시에는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할만큼의 자제적 군사력과 전술을 갖추었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볼 때, 부여나 초기 고구려 등의 5부족 연맹왕국은 2중적인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국왕이 제가를 통솔하나, 제가 역시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관료조직을 가지고 읍락을 지배한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부체제에서 말하는 <중층적 구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5. 하호는 무엇을 하였나?

하호에 관련된 유명한 사료는 <제가에게 고기, 소금>을 날라다 준다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은 마치 가혹한 수취로 하호들을 다루었으며, 하호가 노예적 성격을 가진 것이라는 것을 증명해줍니다. 부여의 순장, 인두세 등은 노예제 사회임을 강력하게 증명해줍니다. 그러나, 실제 하호가 노예인가, 농노인가, 씨족사회 일원인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학자들간에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6. 지배체제에 대해 정리해보자.

결국 초기 철기시대의 지배계급은 가, 한, 간 등의 족장 세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본래 독자적인 소국의 왕을 칭하던 가, 한, 간 등은 소국이 대국에 굴복함으로서 대국에 귀속된 계층으로 전환됩니다. 고구려의 가(고추가, 대가, 소가), 백제의 한(가한), 신라의 간(거서간, 마립간 등)의 질서를 볼까요?

고구려는 보통 형제적인 질서를 보입니다. 태대형, 대형 등 <형>의 계열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보아, 초기 고구려 지배층은 소국과의 관계가 같은 예맥족에서 출발함을 암시하는 듯 싶습니다. 대형은 큰 세력, 소형은 작은 세력을 말하는 듯 합니다.

신라는 지방 간층의 지배세력을 신지, 험측, 범예, 살해, 읍차라 부르며 등급화하였습니다. 이것은 중앙지배세력으로 포섭된 이후에도 이간, 파진간 등 <간>의 칭호를 달리하여 세력을 등급화하였습니다. 초기에는 12등급, 법흥왕 이후에는 17등급으로 정비하면서 이것이 곧 골품제와 연결되는 <간군관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관등이란 것은 원래 국가 업무에 참여하는 자들을 <등>이라고 하여 주었던 것인데, 후대에는 지배층의 높낮이를 구별하는 용어로 쓰입니다. 국왕 밑에 신속한 관리는 <대등>, 그들의 우두머리는 <상대등>, 간층 귀족들이 차지하는 관등은 <간군관등> 등으로 쓰이죠.

7. 이 지배체제는 <부체제>로 정리될 수 있다.

결국 초기 철기시대의 국가들의 특징은 각 소국의 지배자(가, 간, 한)들에게 영역을 인정해주고, 백성 지배를 인정해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소국의 지배자인 족장, 군장들은 각각 자국의 지배층들과 국가 중대사를 의논하여 결정하였는데, 이것을 <귀족 회의>라고 합니다. 국가 중대사는 거의 이 회의체가 결정하였습니다. 국왕도 이 회의의 결정을 때를 수밖에 없었으므로, 왕권이 전제화되지는 못한 듯 합니다. 고구려의 제가회의, 백제의 정사암회의, 신라의 화백회의 등은 이런 역할을 수행한 면이 있습니다.

삼국시대 초기의 지배층은 왕의 도읍에 거주지를 마련한 후 정치집단을 형성하였습니다. 고구려의 5부, 백제의 5부, 신라의 6부 등은 이런 정치집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들 지배층 중에 가장 강력한 집단이 왕이 되었고, 그 다음은 왕비족이 되었습니다. 고구려의 계루부 정권에서 절노부가 왕비족으로 군림한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집단도 일정 세력을 가진 자치권이 있었습니다. 예로, 고구려 소노부는 계루부에게 정권을 넘겨준 부였지만, 자체 종묘사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왕 밑에서 각 부들이 자치권을 가지고 있는 형태의 구조를 <부체제>라고 합니다. 부체제에서의 부들은 상호 후원자적 성격으로서 각 부는 자신의 이익을 지킴과 동시에 외적에 대해서는 공동방어를 추구했습니다.

모든 부는 왕 이하 평등관 관계로 이루어졌습니다. 실제 신라 진흥왕기 이전의 삼국을 보면, 왕이 하교를 내릴 때, 왕도 왕의 명칭 앞에 소속부를 붙었으며, 그 하교가 왕과 여러 부의 공동하교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왕은 군사권, 인사권, 재정권, 세습권을 가지고 있지만, 각 부는 자치권, 제사권, 방아권을 가지고 있음으로서 상호 평등한 관계를 유지함을 알 수 있네요.

그리고 각 부에서는 귀족 대표를 스스로 뽑습니다. 고구려는 삼세일역이라고 하여, 삼년에 한번 신하들 가운데 실력자를 대대로로 선임하였으며, 백제는 서너명의 재상 후보들이 다투면 왕이 마지막에 선택하였고, 신라의 상대등은 6부 귀족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하여 선발했다고 합니다. 부체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따로 <부체제>라는 파트를 만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무지 길거든요.

8. 부체제는 중앙집권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부체제는 국왕권이 강화되면서 점차 각 부의 독자적 영역과 세력이 약해집니다. 부는 행정구역으로 변하게 되고, 각 부의 <간>층은 관등에 속한 관료계급으로 전환됩니다. 이 때, 부가 국가의 행정구역으로 변하면서 <간>층은 유력한 혈연 귀족으로 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혈연을 뜻하는 단어인 <골>입니다. 특히, 내물왕 이후 골들은 자신들의 유대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 진정한 골(진골)이라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왕위 후계자가 될 진골들은 하늘에서 부여받은 혈통이락 하여 성스런 골(성골)로 규정하기도 하죠. 이 부분은 다음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영일냉수리비와 울진봉평비를 보면, 신라 초기에는 공동하교를 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냉수리비에서 지증왕(지도로갈문왕)은 아직까지도 여러 부의 왕들과 함께 교를 내리고 있습니다. 울진봉평비에서 법흥왕은 노인법이라는 것을 말함으로서 <간>층이 임의로 지배했던 피지배층(노인)을 국가체제로 흡수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들 왕은 아직도 <부>를 장악하지 못하였고, 각 지방에서는 <부>를 다스리는 <간>들이 존재하였습니다. 이러한 부를 확실하게 누르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중앙집권화와 영토확장을 과감하게 실시한 왕이 바로 <진흥왕>입니다. 진흥왕의 단양적성비에는 모든 부를 제외하고 왕 혼자서 명령을 내리는 <단독하교>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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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시대로 이행 - 간단히 핵심 요약

1. 철기사용과 그 시대적 특징 - 간단히 다루기...

철기시대의 특징은 철기는 청동기와는 다르게 구하기 쉬웠고, 두루 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철기를 이용하여 농업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논농사가 전국적으로 실시됩니다. 또, 철제무기를 통한 전쟁이 증가하고, 이것은 사회 분화를 촉진시켰다는 점도 중요하죠.

철기시대에는 해상활동세력, 대장장이(철기제조 기술을 가진 자), 상업세력 등이 각자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지역별로 이루어진 국가들이 철기 시대 초기에는 아주 많았죠. 삼한 70여국이라는 말에서만 보아도 이 당시 국가 숫자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국가들은 서로 정복전쟁을 통하여 집단간 계급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쟁에 진 자들은 노예가 되어 사회 내부적인 계급이 상당히 분화됩니다. 즉, 제가, 호민, 하호 등 계급이 나뉘고, 정치와 제사를 지내는 군장 및 종교 세력등이 성장하는 등 중층적 질서가 보다 견고해지는 것이지요.

한반도에서 철기가 도입된 것은 위만조선시대라고 보통 말합니다. 위만은 본래 조선을 다스리던 준왕을 한반도로 몰아내고, 새로운 기술인 철기제조술을 이용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성립하려고 하였습니다. 원래 고조선에는 <경>이라 불리는 관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독자적 봉건세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위만은 봉건세력들을 통합하기 위해 새로 <상>이라는 칭호를 내려줍니다. 상은 지방 봉건세력을 중앙 관료로 흡수한다는 뜻의 관직명입니다. 그러나 봉건세력들은 <경>이라는 칭호 앞에 <상>이라는 칭호를 붙여 씀으로서 그들이 관료이지만 독자세력임을 과시합니다. <조선상 역계경>이라는 사료의 호칭은 가장 유명하죠. 조선상 역계경이 왕과의 마찰로 자신의 세력 2000호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버린 사실은 유명한 사료입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철기 국가들은 구심점을 잃고, <간>, <가> 등을 칭하면 독자적인 국가를 세웁니다. <간>, <가> 등은 왕을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후에 이 명칭은 더 큰 나라에 복속된 소국의 군장세력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바뀌게 되죠. 북방의 이러한 독자적인 작은 소국들은 개마국, 구다국, 비류국, 옥저국, 동예국 등 수가 엄청 많았는데, 대부분 고구려에게 흡수됩니다. 훗날,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은 이러한 소국들의 간, 가 들을 자국의 세력으로 끌어들어 강대한 국가연합을 이루면서 대립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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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의 생활

2월, 명령을 내려 "급하지않은 일은 뒤로 미루라"고 명하고, 사자를 군, 읍에 보내어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후한 요동 태수 최식이 말하기를 "지금 요동에서는 쟁기로 농사를 짓는데 끌채의 길이가 4척이어서 서로 도는 데 방해가 된다.  두 마리 소를 사용하는 데 두 사람이 끌고 한 사람이 쟁기를 잡고 간다. 그 뒤에 한 사람이 씨를 뿌리고 한 사람이 덮는다. 대개 소 두 마리와 여섯 사람이 함께 일한다."하였다.

-제민요술, 경전제일-

그들의 풍습에는 음식은 아껴서 먹으나 궁실은 잘지어 치장한다. 살고 있는 좌우에 큰 집을 세우고 귀신에게 제사 지낸다. 또 영성과 사직에도 제사를 지낸다. 그 나라 사람들은 성질은 포악하고 급하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백성은 모두 토착민으로 산골짜기를 따라 거주하고, 삼베와 비단 그리고 짐승 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다. 토질이 척박하여 양잠과 농업으로는 자급하기에 부족한 까닭에 사람들은 음식을 절약한다.  

- 위서 열전, 고구려 -

나라 안의 대가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앉아서 먹는 자인데 만여 명이나 된다. 하호는 먼 곳에서 양식, 고기, 소금을 운반하여 그들에게 공급한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자료 참조 : 교과서의 내용 근거가 되는 고구려인의 생활 모습입니다. 하호는 먼 곳에서 양식을 운반한다라는 부분에서 하호의 성격이 자유민, 농노, 노예 중 어느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또한 위서 동이전은 민족지학적 관점에서 여러 고구려의 생활상을 표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가 중국인의 시각에서 접하다 보니 <성질이 포악하고 노략질을 좋아한다>라는 표현으로 고구려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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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대가

모든 대가들 또한 자체적으로 사자·조의·선인을 두는데, 그 명단은 왕에게 보고한다. 이들은 마치 중국의 경(卿)이나 대부(大夫)의 가신(家臣)과 같은 존재로서 회합할 때의 좌석 차례에서는 왕가(王家)의 사자·조의·선인과 같은 열에 앉을 수가 없다. 그 나라 안의 대가(大家)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므로, 앉아서 먹는 인구가 만여 명이나 되는데, 하호들이 먼 곳에서 양식·고기·소금을 운반해다가 그들에게 공급한다. … 대가(大加)와 주부(主簿)는 머리에 책(瓔) 같은 것을 쓰는데, [중국의] 책(瓔)과 흡사하지만 뒤로 늘어뜨리는 부분이 없다. 소가(小加)는 절풍(折風)을 쓰는데 그 모양이 고깔[弁]과 같다. … 감옥이 없고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諸加)들이 모여서 평의(評議)하여 사형에 처하고 처자는 몰수하여 노비로 삼는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대가(大家)들은 농사를 짓지 않으며 하호가 부세(賦稅)를 대는데 마치 노객(奴客)과 같다.

- 태평어감 동이, 고구려 -


자료 참조 : 고구려는 대가들 자체가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두었다는점에서 중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왕이 있으나, 초기 각 부족장들의 정통적인 촌락 구조가 유지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7차 교과서적인 설명으로는 중앙에는 왕이 있어 국방, 외교 등을 담당하지만 촌락내부에는 스스로 관리를 두고 제사와 풍습을 유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초기 연망왕국의 구조를 <부체제>로 설명하곤 하는데, 이것은 중앙집권국가가 되기 전 연맹왕국 단계에서의 국가 모습을 말합니다.

좌식자가 만여호이며, 하호가 식량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이 당시를 고대 사회로 보는 관점이 최근 대두하였습니다. 제천행사라는 고도의 종교양식과 당시의 잉여생산력, 또 범죄자에 대한 처벌 및 법의 존재 등이 고대 사회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교과서는 삼국시대부터 고대로 규정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연맹왕국단계까지 고대로 보려는 시도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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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예인의 생활과 풍속

예는 남쪽으로는 진한과 북쪽으로는 고구려, 옥저와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는 큰 바다에 닿았으니, 오늘날 조선 동쪽이 모두 그 지역이다. 호수는 2만이다 대군장이 없고 한 시대 이래로 후, 읍군, 삼로라는 관직이 있어 하호를 다스렸다. 그 나라 노인들은 예로부터 스스로 일컫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하였다.

언어와 예절과 풍속은 대체로 고구려와 같지만 옷차림은 다르다. 풍속은 산과 내를 중요시하여, 산과 내에 각기 부분을 만들어 놓고,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동성끼리는 결혼하지 않는다.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 마시며 노래를 부리고 춤추니 이를 무천이라고 한다. 또 호랑이를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낸다.

부락을 함부로 침범하면 벌로 노비와 소, 말을 부과하는데 이를 책화라고 하였다. 사람을 죽인 사람은 죽음으로서 갚게 한다. 도둑질하는 사람이 적다. 길이가 3장이나 되는 창을 만들어 때로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잡고서 쓰기도 하며, 보전에 능숙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 -

사료해석 : 교과서에 나오는 무천, 족외혼, 책화 등의 내용의 증거가 되는 사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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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인의 생활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다.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접해있고, 서쪽으로는 선비족과 접해 있다. 북쪽은 약수가 있으며, 그 영토는 2천리에 이른다. 가옥은 8만이고, 그 백성은 토지를 가지고 있다. 궁실, 창고, 뇌옥이 있으며, 넓은 평야와 구릉이 많아 동이의 영토 중에서는 최고로 비옥하다. 토지는 오곡이 많이 나나 오과는 나지 않는다. 그 백성은 몸이 크고, 성품이 강인하고 용맹하고 근면하며 후덕하고, 노략질은 하지 않는다. 국가에는 군왕이 있으며, 모두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을 지어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 등이 있다. 읍락에는 호민이 있으며, 이른바 하호들은 모두 노복이다. 제가는 별도로 사출도가 있는데, 큰 것의 주인은 수천호와 작은 것의 주인은 수백호에 이른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사료해석 : 부여는 송화강 일대에서 반농반목으로 생활하던 국가입니다. 1세기 초 왕의 칭호를 사용하면서 중국과 외교를 통해 발전하였습니다. 3세기에 선비족(모용외)의 침략으로 국가가 흔들리면서 4세게에 고구려에 편입되는 연맹왕국 단계의 국가입니다.

부여의 특징은 <가>라는 5부족 연맹장들이 사출도를 통해 지역을 다스리는데, 이들의 세력이 커서 <왕을 추대하고, 수해나 한해시 왕에게 책임도 묻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료의 궁궐, 감옥, 창고, 순장 등의 내용 등에서는 일정정도 왕의 세력도 강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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