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 유교를 국교화하여 체계를 정립하다

이번 장에서는 한나라 시기의 가장 큰 업적인 한무제의 유교 국교화를 중심으로 한나라 시기 유교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1. 한나라 초기의 유교 사상

한의 초기, 건국자인 유방은 유교에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건국집단인 유협집단도 수준낮은 의리, 충성 등의 기초적인 이념만으로 뭉친 협객집단이었습니다. 따라서 건국초의 유방은 저명한 학자인 <육가>에게 학문적 교양을 배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육가>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유방에게 유교이념을 받아들일 것을 권합니다.

<말 위에서 천하를 달리며 천하를 얻을 수는 있어도, 말 위에서 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육가의 말을 듣고 공자묘를 만든 유방도 아직 유교이념에는 무지했습니다. 그리고, 유방이 죽은 뒤 세력을 잡은 유방의 부인 여씨 일족은 유교를 왜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초기의 한에서는 유가보다는 오히려 도가가 유행하였습니다. 특히 도가에 있는 신비주의 사상이 유행하여, 신선이라던가, 불로장생 등의 미신적인 부분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흔히 이러한 신비주의적 도가사상을 황로사상이라고 합니다. 또, 왕조 개창의 이념이었던 음양오행설 사상(음양오행의 순환으로 새로운 왕조가 개창되었다는 믿음)이 민간에 유행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운명과 자연에 맡기는 경향도 많았습니다.

실제, 한 초기 문제, 경제의 태평천하도 이 음양의 순환 원리에 잘 따랐기 때문이라고 믿기도 하였습니다. 한 문제 시절의 <가의>는 예악으로 풍속을 교화해야지 미신으로 풍속을 교화할 수 없다며 황제에게 유교이념을 수용할 것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가의의 노력으로 일단, 유교가 한나라 사회에 침투할 수 잇는 여건은 마련되었지만, 아직도 한에서의 유교 수준은 미흡했습니다.

2. 한무제 : 강력한 유교주의를 통해 황제권을 강화하다

이러한 미신적인 풍조를 일시에 정리하고, 유교주의에 입각하여 황제지배권을 강화한 사람이 바로 한무제입니다.

한무제는 군주권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동중서의 <천인상응설>을 받아들이고, 법가적 유교정치를 완성합니다. 또, 유교를 관학화 하여 오경박사, 효렴과, 태학 등을 정비하여 유교질서에 입각한 현실적인 관료군을 육성합니다.

그리고 효제 도덕을 중시함으로서 지방 권력자들에게 일정한 제약을 줌과 동시에, 촌락을 유교 윤리 공동체로 이념화 하여 국가 권력에 대한 충성을 강조합니다.

이 한무제의 유교 관학화 정치는 국가가 유교를 보호하여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윤리는 동아시아 문화의 성격을 유교주의로 만들어 버리는 대 사건이었으며,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가정윤리가 동아시아 사회에 정착되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3. 유교주의의 시작 : 동중서

동중서의 천인상응설은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이제 지겨울 때가 되었네요. 여기선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천인상응설은 하늘(천)을 중심으로 하여, 지상의 황제(인)을 끌어들인 정치도덕론입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황제는 천의에 따라 정치를 행하므로, 황제가 도가 있다면 하늘이 감응하여 황제의 권위를 신성화 시켜줄 것이고, 황제가 도가 없다면 하늘이 알아서 심판할 것이라는 <천과 인간의 상응>입니다.

이것은 음양의 순환에 따라 왕조와 천자가 바뀐다는 음양오행설을 황제권에 대입한 유교원리로 한무제의 <천자 권위 확립>에 큰 역할을 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음양오행설이 맹자의 <혁명론>을 인정하여 왕조교체를 긍정적으로 보았다면, 동중서의 이론에서는 <황제권을 심판하는 자는 하늘>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서 혁명이나 비정상적인 왕조교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하와 백성은 유교이념상 아버지인 황제를 벌할 수 없습니다. 황제의 부도덕함은 하늘이 심판할 뿐입니다.

또, 이러한 유교사상의 이념 속에서 동중서는 태학(중앙), 군국학(지방) 등을 정비하고, 스스로 교수가 되어 5경 중심의 유교학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학문기관의 발달과 함께 인재 등용의 방법도 바꾸기 시작합니다. 원래 한 초기에는 낭관이라고 하여 궁정에서 일하는 관인 후보들을 관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는 부호가 재산을 납부하면 관료로 채용하는 자선제도도 있었습니다. 황제는 수시로 특명을 내려 현량한 자를 1인씩 추천하라 하여 관료로 쓰기도 했습니다.

동중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하나의 기준으로 통일합니다. 즉, 천거와 선발에 가장 효율적이고, 능력중심적인 방안으로 <효렴과>를 제시했습니다. 효렴과는 지방관이 효렴한 자를 지방에서 1인씩 추천하는 제도입니다. 이것을 동중서가 다시 재편하여 향거리선제라는 제도로 정착했습니다. 이 제도는 추천과 시험을 병용하는 제도로서 지방관이 관료를 선발하고, 현량, 효람한 향촌 자제를중앙에 천거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시험을 봐야 하므로 유교적 소양이 필요하나, 실제는 추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여, 지방관은 유력 집안의 호족들을 천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것은 훗날 9품중정제로 이어져 호족이 호족을 추천하는 관례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4. 금문학파와 고문학파가 등장하다.

초기에 한대 유학을 연구할 때 학자들은 전국시대 이래로 구전되어오던 경전들을 한나라에서 사용하는 예서체로 필사하여 작성한 후 연구하였습니다. 이것은 한나라의 관학으로서 한무제 이래 후한말까지 한나라 유학의 주요 흐름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고대 문헌을 한대 글자로 필사한 문헌을 <금문경>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왕망의 신에서는 공자의 옛 터에서 발견된 경전 등 춘추시대 이래 당시 고문체로 쓰인 고본을 직접 연구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이렇한 고문을 <고문경>이라고 합니다. 이 고문경 연구는 후한 시대 <금문경>의 관학과는 달리 <민간>에서 연구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대 학파의 두 파를 정리하여 완성한 사람이 곧 <정현>입니다. 고대학파(훈고학)은 정현에 의해 사상적 통일이 되었고, 이것이 당나라 시기에는 공영달의 <오경정의>로 완성됩니다. 오경정의란, 고대에 중요한 5경을 정리하였다는 것으로 최소한 당대 이전에는 4서보다는 5경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훈구학의 연구는 <고문경>이든 <금문경>이든 책의 자구 해석에 주력하는 경향이 강하여, 철학이나 사상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어문학에 가까웠습니다. 이것은 그 해석된 문구를 그대로 믿어 버리는 폐단을 낳아서 유학이 획일화되고, 합리적이지 못한 결과를 낳습니다. 특히, 국가가 관학화 한 금문경은 고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서 동중서의 천인상응설, 왕망의 찬탈이론, 참위설과 음양오행설의 유교화 등의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딱 좋았습니다.

이러한 유학의 미신화, 정치화에 반대하여 유학도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학자가 <왕충>입니다. 그는 논형이라는 저서에서, 동중서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즉, 천인상응설이라는 개념에서의 천은 하늘과 인간이 상응하는 주체라고 동중서가 주장했는데, 왕충은 그것이 바보같은 소리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하늘은 우주라는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이 인간의 선악에 관여할 수 없고, 자연은 그냥 자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황제권이 하늘에서 왔다던가, 신이 존재한다던가하는 말들은 모두 인간이 유교를 이용하여 지어낸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육체가 죽으면 정신도 사라질 뿐 내세도, 지옥도, 천국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그는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공자, 맹자마저 평범한 인간임을 주장합니다. 공자를 성인화하여 그의 말을 모두 <신성화>한다면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신이 탄생할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학문이라는 것은 과학적, 합리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의 사상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타락한 유학을 비판했던 청담사상 등의 체제비판 사상과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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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40 - 황건적의 난과 후한의 멸망

이번 장에서는 후한말기 황건적의 난을 간략하게 다루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짧은 글이 되겠네요.

1. 황건적의 난의 사상

황건적이 일어난 이유는 후한시대 중앙과 지방에서 전면적으로 백성들을 압박하는 지배층 위주의 정치가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에서는 어린 황제가 계속 등극하면서 국가적 차원의 실제 정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세금을 걷는 횟수만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환관들은 외척과의 싸움에 몰두하여 민생은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호족들은 대토지를 사유화하여 백성들을 괴롭했습니다. 거기에 왕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천제지변과 기아, 홍수 등의 악조건들이 농민들을 토지에서 유리시키고, 농민들을 초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일단 음양오행사상에 기반을 둔 사회변혁사상에서 이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창천은 가고 황천은 온다>에서 알수 있듯이 화목토수금으로 순행하는 오행의 법칙 상 <푸른 왕조>의 시대는 가고 <황색 왕조>의 시대가 와야 한다는 민란 전통의 오행 사상이 가미된 것입니다. 중국의 민란에는 적미의 난, 황건적, 홍건적 등 앙조의 <색>을 상징하는 명칭의 민란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우주 오행의 사상을 각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색>으로 대입하여 철학체계를 정리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또 당시 서역에서 들어온 일종의 <밀교>도 난에 큰 역할을 한 사상입니다. 이 밀교의 영향으로 각종 주술과 미신, 점성술이 음앵오행사상과 결합하여 독특한 사상체계로 발전합니다. 정각의 태평도를 보면 부적을 태운다던가, 전쟁에 이기기 위한 주문을 외운다던가, 불노장생을 위한 약을 마신다던가하는 부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장각 스스로가 그러한 사상을 누군가에게서 전수받았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중국 전통의 신앙에다가 서역 어디선가 유입된 밀종 사상이 합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2. 황건적의 난의 특징

황건적의 난의 특징은 일반 민란처럼 중앙정부에 대한 반기를 들고 이루어진 우발적인 난이 아니라, 정각 등에 의하여 비교적 체계를 잡고, 당시 집권층이었던 모든 제 세력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 하면서 등장한 난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황건적의 난을 보면 농민이 중심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회 체제 속에서 중앙에 편입되지 못한 중소 호족과 중앙정치에 반기를 든 청류파 지식인들이 난의 <지도부>로 활약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도부는 장각을 중심으로 하는 <태평도>라는 종교를 창시하여 조직적으로 국가에 반항합니다. 이 태평도는 음양오행에, 서역 불교 사상을 가미하고, 맹자의 혁명론에, 도가의 저항권 사상까지 가미한 철학적 이념을 가진 혁명적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우발적이고 지역적인 농민 봉기를 조직적인 반란군으로 전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웁니다.

당시 한나라의 군현 제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촌락집단인 <향>은 이미 호족에 의해 그 근거지의 공동체성을 상실하였습니다. 또 황건군이 크게 일어난 곳은 어김없이 호족, 환관, 외척이 대토지를 소유한 지역적 기반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난은 붕괴된 촌락질서를 태평도가 흡수하여 가장 적극적인 국가체제 전복 운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난은 장각이 원소, 조조 등 호족연합군에게 패하면서 사그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오두미교 등이 하북에서 20년간 전쟁을 지속하면서 농민군을 유지했지만, 호족 세력에 의해 격퇴되었고 결국 이 황건적의 난을 통해서 사회의 주도권을 잡은 자들은 혼란기의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대규모 호족 세력들이었습니다.

즉, 이를 통해 볼 때 후한이라는 나라는 호족들이 연합해서 세운 정권으로서, 호족들이 지방 주도세력으로 쭈욱 군림해 오다가, 호족들에 대한 반항으로 민란이 일어나고, 호족들에 의한 민란이 진압되었으며, 호족들이 다음 세대의 주도권을 잡고 새시대를 열어가는 주체가 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호족>을 키워드로 공부하면 쉽게 이해가 되는 나라입니다.

이 호족들이 서로 군공을 세우고, 때론 대립하면서 삼국지에 나오는 위, 촉, 오 삼국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후한 대 황건적의 난에 대하여 제 포스트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하북 호족 원소가 중앙의 환관 세력을 주살하고 정권을 잡았지만, 서북 호족 동탁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됩니다. 이후 하북지방 호족들이 연합하여 동탁을 토벌하였고, 이후 하북 호족 세력인 원소와 조조가 서로 대립합니다. 이후 호족 세력들은 각기 자신의 영역을 수성하는 군웅할거 시대를 맞이하다가 조조의 아들 조비 대에 호족세력을 통일하여 <위>나라를 건국합니다.

조조가 통일할 수 있었던 기반은, <중화>사상에만 의존하지 않는 개방적 정책과 함께, 오환, 흉노 등 북방계 유목민도 포섭할 수 있는 정략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주병으로 대표되는 둔전민을 육성하여, 유민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황무지 개간을 통한 군사비용을 충당하고, 화북의 재건을 단기간에 이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조를 한의 정통으로 보고 있지만, 소설인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의 이야기와 <유비의 정통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이문열 삼국지랑 장정일 삼국지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데, 이문열 삼국지는 생생하게 그 상황을 묘사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반면, 장정일의 삼국지는 딱딱하게 흘러가지만 실제 역사적 상황을 그려가면서 자세히 묘사한게 특징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최근에는 삼국지라는 책을 굳이 읽을 필요성이 없다는 점이죠. 중국 역사에서 재미있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는 우리 역사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삼국지보다 우리 고대 역사를 다룬 <삼한지>를 읽으세요. 더 큰 도움이 될 듯 싶네요.

별로 쓸말도 없는 황건적의 난을 포스팅 주제로 잡으니 잡담만 하다가 포스팅이 끝나게 되네요. 다음부터는 이런 중요하지 않은 파트는 사전식으로만 정리해 버리고 끝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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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의 사상 1 - 유가사상

1. 유가 사상의 특징

유가 사상은 춘추시대의 공자로부터 출발하여 그 제자들인 맹자, 순자로 계승된 사상입니다. 이 사상의 가장 핵심은 인간을 정치, 사회, 역사의 주체로 놓고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삶의 원리를 발견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사상은 인간이 살면서 지켜야 할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윤리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 사상은 자연속에서 진리를 찾는 도가적인 관찰자 역할을 무책임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법가적인 강압주의는 인간의 윤리를 근본적으로 깨닫는 이치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유가사상가들은 자연과 강압의 가운데에서 <중용>을 통해 윤리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후세계보다는 현실 속에서 인간이 살아야 할 방향을 탐구하였으며, 그것은 곧 정치 윤리로 연결되어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치국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갑니다. 따라서 유가주의자들의 논의는 상당히 지배계급의 이상적 당위성과 치국의 방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또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내적인 윤리와 도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예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서주시대의 봉건적 질서와 예작제도를 중시하였으며, 그 원리에 따라 예법을 만들고 제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들은 군주는 덕치를 바탕으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윤리라고 말하면서도, 그러기 위해서 군주가 지켜야할 행동가짐은 예치로 규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군주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는 중용의 논리와도 일통합니다. 즉, 예치, 덕치, 중용에 입각한 덕치주의, 예약정치, 왕도주의는 군주의 필수 항목으로서 이러한 항목을 군주가 지켜가야 혼란한 시기를 구원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유가주의는 당시 공자 이래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면서 중삼-자사-맹자 계열, 자하-순자 계열의 사상이 달라집니다. 이들은 인간이 예법을 지키고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유가의 핵심 원리는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인간은 스스로 사회를 개척할 수 있는가, 패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등의 구체적인 부분에서 계열이 갈리게 됩니다.

2. 공자의 사상

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인> 사상입니다. 어질게 사람이 사는 것이 곧 인간의 도리이자 윤리라고 주장하면서, 이 어진 삶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효, 제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 - 효 - 제라는 핵심 도리를 말함으로서 이 도리가 가족윤리적임을 밝힌 것입니다. 즉, 가부장권을 옹하하면서 그 가족제도가 인간 삶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효도와 우애를 국가적으로 확장하면 국왕에 대한 충성으로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상이었습니다. 국가에서도 국왕은 아버지가 사랑으로 가족을 감싸듯이, 덕으로서 백성들을 위무해야 합니다.

또 공자는 이렇게 인 - 효 - 제를 지켜가면서 윤리적으로 사는 이상적인 사람을 <군자>라고 지칭했습니다. 군자란 우애와 효도를 통해 <수신제가>를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평안하게 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치국평천하>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공자가 말한 이상적 군자의 모범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입니다.

그는 군자란 윤리적인 측면이 강한 인물로서, 교양을 갖추되, 그 교양의 바탕에는 올곧은 지식을 근간으로 합니다. 따라서 정치의 목표는 소인배들을 군자로 끌어올라는 것이 곧 목표입니다. 공자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4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이것을 4등론이라고 합니다. 즉, 인간은 성인 - 현인 - 군자 - 소인이 있으며, 보통의 사람들은 소인이 되지 않고 군자가 되는 것이 곧 삶의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인은 군자의 단계를 넘어선 지식과 정신을 겸비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성인은 선천적으로 성인의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극한의 경지라고 말합니다.

공자의 이 4등론은 한나라 시대 한고가 인간유형을 9등으로 다시 세분하였고, 훗날 위진남북조 시기에 구품관인법을 실시해서 관인을 선발할 때의 기준으로 쓰입니다.

공자는 내적인 윤리(덕)와 외적인 예(예절)이 균형잡힌 사람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지식과 정신의 겸비를 다시 강조한 말이죠. 그리고 이러한 지와 정을 고루 갖추어 한곳에 치우침이 없는 것을 중용이라고 합니다. 중용은 관용과 타협정신을 가진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어 중국문화의 사상적 기반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용을 실시함에 있어 격식에 맞게 행하는 것은 서주의 예에 맞는 것으로, 예악정치도 강조합니다.

3, 맹자의 사상

맹자는 공자의 제자로서 공자 사상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는 일단 인간 윤리에 대한 전제로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은 그 처음의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나가야 할 것으로 파악하고, 본성을 지키는 것이 곧 유교 윤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부여된 4가지 본성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사단이라고 합니다. 4단은 측은지심(인), 수오지심(의), 사양지심(예), 시비지심(지)입니다. 그리고 이 4단이 발하는 것은 인간의 욕정 때문인데, 이것을 희, 노, 애, 락, 애, 오, 욕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4단에 맞추어 인간은 다섯 가지 도리를 지키며 살아야 선한 본성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것은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이라는 5륜입니다.

맹자는 부국강병을 위한 정치이론으로는 <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주장하였습니다. 왕도주의란, 국왕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한점 부끄럼도 없이 정의에 의해 다스려야 함을 말하는데, 이것은 4단 중에서 <수오지심>과 관련된 것입니다. 즉, 의 = 정의를 뜻하는 것이지요.

제왕이 수오지심에 의거하여 정의로 백성을 다스리면, 천명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것으로서 하늘이 스스로 제왕을 돕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천명은 곧 하늘의 정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덕이 없는 군주가 정치를 한다면 이것은 하늘의 정의를 버리는 일이고 백성들은 새로운 하늘의 정의를 세울 수 있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맹자의 사상 속에는 <혁명론>의 근거가 숨어있습니다. 이러한 혁명론적 사상이 내포되어 있기에, 맹자는 살아생전에 크게 존경받으면서도 군주들이 꺼려하는 유가사상가였습니다. 또, 이러한 천명의 변화라는 개념은 후대 <선양>이라는 선례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법가사상가들은 맹자의 사상은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4. 순자의 사상

순자의 사상은 유가주의이면서도 기존의 학설과 많이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규정하는 성악설을 배경으로 하는 철학입니다. 따라서 공자, 맹자가 인간의 본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가족윤리를 주장할 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므로 예절을 통해서 억눌러야 된다며 맹자를 적극 비판합니다.

인간에게는 4단이라는 윤리가 내제한 것이 아니라, 절대 악이 내제되어 있습니다. 이 절대악을 누르기 위해서 예악정치, 인간윤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순자의 사상은 유교적 도덕관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실현 방법에 있어서는 약간 패도적인 법가주의를 받아들입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3번 하면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면, 순자는 아마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잘못된 길로 갈때 마다 체벌과 정신교육, 토론을 계속 할 것입니다.

또 순자는 공자가 주장하는 인효제라는 가족윤리는 허망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순자는 가족 윤리는 작은 것이며, 이 작은 것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윤리가 있는데, 이것은 곧 <의>를 따라 정의롭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의>를 따라 산다는 것은 소속한 사회, 또는 국가를 위한 헌신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러한 순자의 견해를 <충의론>이라고 합니다.

5. 유가를 비판하기 시작하다.

그럼 여기서 순자 외에 공자 사상을 비판한 수많은 제가 백가들의 비판 내용을 한번 볼까요?

도가에서는 공자의 유교사상을 도덕관념에 너무 얽매여서 인위적으로 구성된 모순덩어리의 사상이라고 말합니다. 또 유교사상이 인간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국왕권과 밀착된 현생문제에만 몰두하여 인간이 가진 내면의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도가에서는 전제군주제를 비판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 <소국과민>을 추구하라라고 말합니다. 도가는 국가의 단위는 최소한 작은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유가는 절대군주권을 옹호하면서 지배층의 이념만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법가는 유가사상을 허무한 형이상학적 이념이라고 비판합니다. 유가 사상은 도덕과 윤리로 사회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너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여서 과연 그것이 정치이념이 되었을 때, 실제 전쟁으로 굶고 있는 백성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를 이야기 합니다. 실제, 유가 사상은 부국강병책과는 거리가 멉니다.

묵가사상가들은 가장 신랄하게 유가를 비판합니다. 유가가 왕권이 강한 중원지역의 학맥을 가지고 있다면, 묵가는 가장 남방의 초나라 권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유가가 중원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원리를 정당화하는 학문이라는 것에 묵가는 크게 반발합니다. 묵가는 유가의 인-효-제의 가족윤리는 자신들만 챙기는 이기적인 윤리이고, 그것을 확대한 가부장적인 군주관은 절대군주권을 옹호하는 지배층만의 사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묵가는 가족애는 <차별애>이므로, 만민이 모두 평등할 수 있는 <겸애>를 실현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 유가에서 말하는 <예절과 예악>은 허례허식일 뿐이며, 그런 절차가 과연 무슨 생산력 발전에 도움을 주느냐고 비판합니다.

묵가 사상가들이 유가에 대하여 비판한 부분은 너무 많습니다. 왕위를 세습하는 것은 차별적인 관습이다, 3년상은 허례허식이다, 예악정치는 낭비이다, 가족윤리는 차별애이다, 또 현세적인 유교적 치국주의는 노동력을 중시하는 생활상과 맞지 않는다 등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도가, 법가, 묵가의 사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장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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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