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와 관련있는 히스토리아의 글 목록3건

  1. 2008.11.16 수능 세계사 정리 1 : 역사인식과 선사시대
  2. 2007.01.27 구석기 시대 인류 한번에 대조해 보기
  3. 2007.01.26 서양 인류의 기원설과 중국의 인류기원 다지역설 (2)


0. 마찬가지로 여기서는 고등학교 과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처음에는 역사의 분야가 아니라 고고학적 분야라 학계의 유행에 맞춰나가지 못하는 면도 없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여러 자료들을 통해 만들고 있음으로 교과서에 큰 개편이 가하지지 않는 이상 특별이 틀린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근현대사 정리에서 언급한 것처럼, 만약 제가 서술한 것과 다른 필자분들이 서술한 것이 서로 다르다면, 다른 필자분의 서술을 우선순위로 쳐주시기 바랍니다. 시험볼 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대학 이상에서 '제대로된 공부'로 말하자면, 상식 수준에 머무르는 것들이거나 혹은 전혀 판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 역사 인식

역사는 그 사실을 인식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또 하나는 ‘기록으로서의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말 그대로 역사 자체를 객관적인 사실로 인식한다. 즉, 역사 서술에 있어, 그것을 기록하는 역사학자는 자의적인 해석 등을 함부로 곁들여선 안되며, 역사는 현재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근대 사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랑케에 의해 제창되었다. 여담이지만, ‘근대’라는 것은 ‘과학적, 객관적, 이성적’인 사고와 또 그러한 행동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였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오랫동안 내려온 역사 해석의 방식으로, 현재까지 있었던 사실 중에 역사적 가치 있고, 후세에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일에 대해, 역사가가 선별하여 기록하고,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교육과정에서의 역사도 이러한 견해를 차용하고 있다. 이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대표되는 견해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장점이 있는 관점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느 정도 역사왜곡을 용인한다는데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Tip.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 역사의 예

나는 오늘 밥을 먹었다. -> 사실로서의 역사

나는 오늘 맛있는 밥을 먹었다 -> 기록으로서의 역사


정보와 통신의 발달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사실                         기록


2) 인류의 출현과 구석기 시대

원인(猿人) 화석의 발견은 진화론의 근거로써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우선 최초의 인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남방의 원숭이’라는 이름에서처럼,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 최남단 쪽에서 발견되었다. 약 300만 ~ 150만 년 전에 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최초로 직립 보행을 하였다. 자갈돌 석기를 사용하였다곤 하지만, 그다지 크게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직립한 인간’이라는 호모 에렉투스는 하이델베르크, 자바, 난티엔, 베이징에서 각각 발견되어 그 지명이 붙여졌다(하이델베르크인, 자바인, 난티엔 인, 베이징 인). 이를 통해 그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활동범위를 넓혔으며, 과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구가 발달하여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특혜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들부터이다. 이때부터 한반도의 구석기 문화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즉 한반도의 구석기 지도는 일본이나 중국과 연결되어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으로, ‘네안데르탈 인’이라고 불린다. 그런 만큼,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굳혀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들은 양날면 석기와 같은 정교한 도구를 만들 수 있었으며, 종교 관념이 생겨나고, 그로 인해 사람이 죽으면 매장하였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 ‘산둥인’도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4 ~ 3만년 전에 등장하였으며, 발달된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도구가 다양해졌다. 사냥을 위해 잔석기와, 이음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이 그린 동굴 벽화(쇼베,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 벽화)와, 풍만한 여인상(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조각하여 사냥감의 번성과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나타냐고 있다.


3) 중석기 시대

당연히 세계사 교과서에선 다룬 바가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국사 교과서에선 우리나라의 중석기 시대에 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그 이유를 증명할 고고학적 사료가 빈약하기 때문인데, EBS 수능 특강 같은 경우, 국사에서도 중석기 시대를 다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이 정리하도록 하자.(마침 내용도 많이 없다.)

중석기는 구석기와 신석기 사이의 기간을 뜻한다. 약 1만 년 전 빙하기에서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날씨가 따뜻해짐에 따라, 큰 동물이 사라지고 몸집이 작은 동물이나 어류가 많아지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석기를 만들 게 되는데 그것이 잔석기와 잔석기를 활용하기 위한 이음도구이다. 돌창, 돌화살, 슴베찌르게 등이 이에 속한다. 국사 교과서에선 주먹도끼와 슴베찌르게가 같은 크기인 양 사진에 제시하고 있지만, 사실 둘의 크기는 상이하며, 주먹도끼가 훨씬 크다. 슴베찌르게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때 이후로는 한반도와 중국, 일본이 바다로 인해 분리 된다


4) 신석기 시대

 기원전 8000년 경에 일어난 변화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 것이다. 농경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였고, 이를 ‘신석기 혁명’ 혹은 ‘농업 혁명’이라고 하며, A. 토플러는 이를 ‘제 1 물결(The First Wave)'라고 하였다. 농경의 시작으로 인해, 인류의 생활양상도 많이 변화하였다. 구석기 시대의 이동, 채집 사회였던 것에서 정착, 농경 사회로 바뀐 것이다. 이들은 간석기를 이용하여 농작물을 수확하였으며, 수확한 농작물들은 토기에 보관하였다. 또한, 농경이 가능하기 위해 강변 등지와 바다에 살면서 이음도구를 통해 사냥과 어로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가락바퀴나 뼈바늘을 통해 의복이나 그물을 제작하였으며, 움집에 살았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씨족으로 된 부족 사회로, 족외혼을 하였으나, 아직은 평등한 사회 계층을 유지(* 주의)하였다. 애니미즘, 영혼, 거석, 조상 숭배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의 종교의식도 이 때 생겨난 것이다.

Posted by 비회원

구석기 시대 인류 한눈에 보기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류

 

자바인. 베이징인. 하이델베르크인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그리말디인. 상동인

뇌용량

약 400~700CC

약 800~1400CC

약 1300~1600CC

약 1400~1800CC

시기

약 300만년전

약 50만년전

약 20만년전

약 4만년~3만년전

도구

찍개(역석기). 간단한 연모

주먹도끼. 돌망치

자르개(정교한 석기)

뗀석기. 골각기

창. 활. 낚시

특징

직립보행. 무리사회

(유인원과 유사)

불과 언어 사용

(동물과 구분)

시체 매장

(종교적 감정)

라스코 동굴벽화.비너스상

 → 종교와 미에 대한

    의식 표현

의의

최초의 화석 인류

완전한 직립인

현생 인류와 유사한
과도기 인간

현생 인류의 조상

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

인류의 기원과 유럽의 선사시대

1. 인류는 언제 등장하였는가?

우리가 보통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나눌 때 그 기준점을 문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로 잡습니다. 즉, 문자 기록이 있었던 시대는 역사시대, 문자 기록이 없어서 유물이나 유적으로 그 시대상을 파악해야 하는 시기는 선사시대로 잡는 것이죠. 따라서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라도 해도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면 선사시대로 간주하게 됩니다. 중근대 유럽인들은 전설속의 발달된 기독교 왕국인 아틸란티스나 뮤를 상상하기도 했지만, 설사 그런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만약 역사적 기록을 발견할 수 없다면 선사시대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도 글자 기록이 없으면 선사시대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구석기, 신석기 문명은 따라서 선사시대죠. 보통 문명과 문자의 구체적 발생기가 청동기이기 때문에 역사시대는 보통 청동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유럽기준으로 볼 때는 최초의 인류는 약 400만년전에 살았다고 하는 전설속의 인류가 있긴 합니다만,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최초의 인류는 약 350만년전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남방의 원숭이라는 뜻)입니다. 이 인류도 우리의 조상인 아니고, 원숭이에 가깝습니다. 단, 직립보행을 했다거나 역석기를 사용했다는 점, 또 두뇌가 다른 동물보다 발달했다는 점에서 인간에 가까운 영장류로 추측합니다.

이후 호모 에렉투스(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는 불과 언어를 사용한 선사시대 구석기인으로 파악됩니다. 자바, 베이징, 하이델베르크 등지에서 보이는 이들의 유적은 주먹도끼 등 다양한 석기류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럽인들은 초기의 인류가 아프리카 근처에서 출현한 것으로 미루어, 인류는 아프리카 쪽에서 아시아 방면으로 이동, 전파된 것으로 파악합니다. 이유는 아프리카 연대가 앞서고, 호모 에렉투스 이전의 인류 화석이 아프리카에서만 존재한다는 이유죠. 최근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중국은 이 논리에 반박하기 위하여 서방과는 다른 독자적 아시아 인류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좀더 진화한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는 시체매장과 사후관념을 가진 좀더 진화한 인종으로 분류하는 데, 네안데르탈인이 대표적인 인종입니다.

보통 유럽에서는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슬기슬기인이라는 뜻)를 지목합니다. 하지만 논란은 많죠. 크로마뇽인으로 대표되는 이 인류는 뗀석기, 골각기, 동굴벽화를 그린 것 등이 특징입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유럽의 대표적인 구석기인이 바로 이 인종이죠.

2. 아프리카 기원설에 반박하는 중국의 동북공정

위에 제시한 인류의 기원은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 배우는 학설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논리에 아시아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나라는 아시아의 맹주라 자청하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동북공정 및 중화연합사상의 기본 논리 속에서 인류의 기원은 유럽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이라는 논리를 적극 주장합니다.

보통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 기원설이 서방세계의 정설입니다. 화석 유골을 분석해본 결과 아프리카와 중동(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및 그 주변의 남북 아프리카, 서아시아)이 인류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이미 오래된 주장입니다. 중국에서는 이 주장에 반박합니다. 서방의 인종과 동아시아 인종은 그 생김새와 역사 자체가 다르며, 인류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래되어 온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과정을 거쳐 각각 진화해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중국의 논리는 가설 수준이여서 그 주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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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기업부설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