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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를 총론 형식으로 총정리해 보겠습니다. 통일신라의 불교 사상 이번 장에서는 통일신라에 대한 불교사상을 호국불교의 이념과 대중불교의 이념으로 나누어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중간에 다룬 원광, 자장 대안, 혜숙, 원효와 의상은 이야기는 각 인물 각론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고, 통일 신라 불교의 개념만 다뤄 보도록 합니다. 1. 초기의 불교 : 호국 불교의 이념 신라의 불교는 호국 불교의 성격이 상당히 강합니다. 법흥왕 때 불교를 공인하면서 불교식 왕명을 사용한 신라에서는, 진흥왕 대에 불교 교단을 정비하면서, 불교 교단을 국가 행정 구역과 일원화 시켰습니다. 마치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교구를 로마 행정 구역과 일원화 하여 크리스트교를 공인하고 세계종교로 전파한 것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종교와 행정구역 일원화는 서구와 같이 와 교.. 더보기
황룡사 9층목탑 이야기 황룡사 9층목탑 신라 제24대 진흥왕 즉위 14년 계유(癸酉; 553) 2월에 궁궐을 용궁 남쪽에 지으려 하는데 황룡이 그곳에 나타나므로 이에 고쳐서 절로 삼고 황룡사(黃龍寺)라 했다. 기축년(己丑年; 569)에 담을 쌓고 17년만에 겨우 완성했다. 얼마 안가서 바다 암쪽에 큰 배 한 척이 떠와서 하곡현(河谷縣) 사포(沙浦)에 닿았다. 이 배를 검사해 보니 공문(公文)이 있었다. 공문에 의하면, 서축(西竺)의 아육왕(阿育王)이 황철 57,000근과 황금 30,000푼을 모아서 장차 석가삼존불(釋迦三尊佛)을 주조하려다가 이루지 못하고 그것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인연있는 국토에 가서 장육존상(丈六尊像)을 이루어 지이다"하고 축원했다는 것이다. 불상 하나와 보살상 2개도 모형으로 만들어 함께 실어 보.. 더보기
아비지와 황룡사 9층 목탑 설화 아비지와 황룡사 9층목탑 백제 의자왕 5년에 자장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당나라로부터 불법을 연구하고 돌아와 대국통이란 직함을 띠고 불교를 융성시켰다. 그가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올 적에 부처님의 사리(舍利)를 얻어온 것이 있어 그것을 모시기 위하여 황룡사에 9층의 큰 탑을 세우려는 표방과 또 신라에서는 그러한 미술공사를 맡을 적임이 없기 때문에 백제의 기술자를 구하였는데 그가 바로 아비지였다. 아비지는 신라의 초청을 받아 신라에 가서 몇날 동안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비로소 공사가 시작되어 황룡사 법당 앞에 구층탑의 탑주를 세운 첫날밤 백제 본국의 도성이 온통 불바다로 변하고 그 속에서 사랑하는 처자들과 또 모든 백성들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 나오므로 아비지는 깜짝 놀라 깨어보니 그것은 서글프고도 이상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