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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신라 이사금과 김수로 이사금 시대의 발전 음즙벌국이 실직곡구과 더불어 땅을 다투다가 왕(신라 파사이사금)에게 와서 결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왕이 이를 난처히 여겨, 금관국의 수로왕이 연세도 많고 식견도 깊이니 불러 물어보자고 하였다. 수로가 논의하여 그 땅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이에 왕이 6부에 명하여 수로왕에게 향연을 베풀게 하였는데, 다섯 부에서는 모두 이찬을 주로 삼았으나 한기부만이 지위가 낮은 자를 주로 삼았다. 수로왕은 노하였다. 노비인 탐하리에게 시켜 한기부주 보제를 죽이고 돌아갔다. 노비는 도망하여 음즙벌주 타추간의 집에 숨었다. 이사금이 사람을 시켜 노를 찾아오라 하였는데, 타추가 이를 보내주자 않자 군사를 일으켰다. 파사이사금 23년(102) 8월, 왕이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음즙벌국을 치니 그 왕.. 더보기
후기 연맹체 가야 - 대가야 설화 후기 연맹체 대가야의 설화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지에게 감응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과 금관국왕 뇌질청예 두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29, 고령현조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후기 가야연맹체인 미오야마국(대가야)의 설화입니다. 후기 가야 연맹의 맹주국을 내세운 대가야는 자기 시조가 산신과 천신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통하여 전가 가야의 전성기 때 금관국과 미오야마국이 형제의 국가임을 알리고 새로운 맹주의 전통성을 강조하려고 내세운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후기 가야 연맹체를 복원하면서, 가야는 장수왕의 남하를 막고자 하는 신라, 백제와 모두 연합하여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하려고 하였습니다. 더보기
가락국기 - 김수로왕 설화(삼국유사 기이편) 김수로왕 설화 천지가 개벽한 뒤로 이 지방에는 아직 나라 이름도 없고, 또한 왕과 신하 이름도 없었다. 이 때 아도간, 여도간, 파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 9간이 있었다. 이들 수장들은 백성을 통솔했는데 대개 100호 75000명이었다. 그 때 사람들은 거의 스스로 산과 들에 모여 살면서 우물을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서 먹었다. 후한의 광무제 건무 18년(서기 42년) 임인 3월 상사일(음력 3월 첫 번째 뱀날)에 그들이 사는 북쪽 구지에서 수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을 사람들 2-3백명이 거기에 모이니, 사람 소리 같기는 한데 모습은 숨기고 소리만 들렸다. 9간들은 그 말을 따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얼마 뒤 하늘을 우러러보니 자.. 더보기
신라 건국 설화 - 석탈해 설화 석탈해 설화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용성국, 정명국, 완하국, 화하국이라고도 함, 위치는 모름)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천리되는 곳에 있다. 앞서 다파나국이 여국왕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기를 고 하였다.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맡겨 두었다. 처음에 금관국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가락국기에는 탈해가 수로왕과 싸워 쫒겨났다고 전해짐) 다시 진한 아진포 어귀에 다다랐다. 이 때는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지 39년이 되는 해다. 그 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줄을 끌어당겨서 해안에 매어놓고 궤짝을 열어보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