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헌창의난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에 대한 구체적인 포스팅을 하기 전에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개관을 해보겠습니다. 1. 전제왕권이 성립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운영 체제와 영토의 팽창입니다. 삼국통일은 곧 영역의 확대 뿐 아니라 인구,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또 통일로 인하여 유민 세력에 대한 처우 개선, 군사력의 확보, 정치적 안정의 추구, 반신라세력에 대한 탄압 등 국가적 과제가 많았습니다. 즉, 국가적으로 팽창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정치적 역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의 왕권은 이러한 새 시대의 과업을 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충신의 왕으로서 새 시대를 위한 체제 개선을 .. 더보기
헌덕왕 대의 국가 위기 - 김헌창, 김범문의 난 헌덕왕 대의 위기 - 김헌창, 김범문의 난 40대 애장왕(哀莊王) 10년 7월 왕의 숙부(叔父) 언승(彦昇)이 그 아우 이찬(伊瑗) 제옹(悌邕)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궁안에 들어와 난을 일으켜서 왕을 시해하였다. 왕의 아우 체명(體明)도 왕을 시위(侍衛)하다가 함께 해를 입었다. (《三國史記》 10, 新羅本紀 10, 哀莊王) - 삼국사기 10, 신라본기 10, 애장왕 - [헌덕왕(憲德王)] 14년 3월, 웅천주(熊川州) 도독(都督) 헌창(憲昌)은 그 아비 주원(周元)이 앞서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국호(國號)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건원(建元)하여 경운 원년(慶雲元年)이라 하며 무진(武珍)·완산(完山)·청주(菁州)·사벌주(沙伐州) 등 4주의 도독(都督)과 국원경(國原京)·서원경(..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