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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옥저

초기 북방국가들의 성장 - 고구려, 부여, 동예, 옥저 초기 북방 국가들의 성장 1. 부여의 등장 부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등장한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고 합니다. 즉,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국가로서 중국에 알려졌을 것입니다. 부여왕이 후한 광무제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으로보아 국제적인 독립국가였을 것입니다. 부여는 송하강 유역의 평야지대에서 5곡의 수학이 풍성하고 금택지이며, 동물자원이 많다고 나옵니다. 반농반목의 농경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측 기록에도 고구려는 나쁘게 써 놓은 것에 비해, 부여는 사람이 후덕하고 예의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여는 보통 예맥족이 일으킨 예족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 예족에서 갈라져 나온 예족 계통의 맥족 국가라고 합니다. 2. 고구려의 등장 고구려의 건국은 삼국사.. 더보기
옥저의 민며느리제도 옥저 - 민며느리제도 그 나라 혼인 풍속은 여자 나이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한다. 신랑집에서는 여자를 맞이하여 다 클 때까지 길러 아내로 삼는다. 여자가 어른이 되면 친정으로 되돌려 보낸다. 친정에서는 돈을 요구하는데 신랑집에서 돈을 지불한 뒤 다시 신랑집으로 돌아온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 - 사료해석 : 민며느리제도는 고구려의 서옥제와 비교해서 생활상을 파악하시면 재미있습니다. 더보기
북옥저인의 생활상 북옥저의 생활 북옥저는 치구루라고도 하는데 남옥저와는 8백여리 떨어져 있다. 풍속은 남북이 서로 같이며 읍루와 맞닿아있다. 읍루는 배를 타고 다니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하므로 북옥저는 읍루를 두려워하여 여름철에는 언제나 깊은 산골짜기 바위 굴에서 살면서 수비하고 겨울철에 얼음이 뱃길을 통하지 않아야 산에서 내려와 촌락에서 산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 - 사료해석 : 동옥저인의 생활에 대한 글입니다. 더보기
동옥저인의 생활상 동옥저의 생활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 동쪽에 있는데, 개마대산은 큰 바닷가에 맞닿아 산다. 지형이 동북은 좁고 서남은 길어서 천리 정도나 된다. 북쪽은 움루, 부여와 남쪽은 예맥과 맞닿아 있다. 호수는 5천호인데, 대군왕은 없으며 읍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장수)가 있다. 말은 고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여러 옥저 읍락 거수들은 스스로 삼노라 일컬으니 삼노는 예전에 한나라 현이었을 때 제도다. 나라가 작아서 큰 나라 틈바구니에서 핍박받다가 결국 고구려에 신하가 되었다. 고구려는 그 중에서 대인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대가로 하여금 조세를 한꺼번에 거둬들이게 하여 맥, 포, 어, 소금, 해초류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 나르게 하였다. 또 동옥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