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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투전쟁

1885년 조선의 중립화론을 주장하다. 1885년 조선의 중립화론을 주장하다. 1. 갑신정변 이후 정세 갑신정변 이후, 우리나라는 또 다시 청에게 정치적으로 종속되고 맙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이 모두 청의 개입으로 실패하면서 우리나라는 청에게 내정간섭을 심하게 받게 되죠. 그리고 일본은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청을 견제하고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조선과 지속적인 조약을 체결합니다. 일단, 임오군란 때는 제물포 조약을 통해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얻어냅니다. 갑신정변 때의 톈진조약으로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이 청군과 공동 출병, 공동 철수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냄으로서 최소한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청에게 밀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의 정치적 주도권은 아직 청에게 있었죠. 청은 을 납치하.. 더보기
러시아사 9 - 알렉산드르 2세 알렉산드르 2세(1855~1881) 알렉산드르 2세는 개혁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전왕대 크림전쟁의 비참한 패배를 구경하였기에 내정개혁의 필요성 및 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모든 것을 시도하려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는 유럽에 대한 여행을 완화하고, 정치범들을 석방합니다. 또 출판물에 대한 검열도 완화합니다. 특히, 그는 농노해방령을 내립니다. 이것은 모든 농민을 해방시키고, 각 농가는 일정한 토지를 할당받는 것으로서 러시아의 민중이 정말 오랜 시간 투쟁한 결과의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았습니다. 왜냐면 종래 가진 토지는 이미 지주에게 빼앗긴 경우가 많았고, 새로 할당된 토지는 장기간 상환금이 부담되어 있는 토지라서 매입금 부담이 큰 것이었습니다. 또 할당된 토지가 농촌공동체(미르)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 더보기
러시아사 8 - 니콜라이 1세 니콜라이1세 19세기 러시아는 농노제적 후진사회가 계속되었습니다. 알렉산드르 1세는 이러한 러시아를 개혁할 방안을 찾았는데, 이것이 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내각제를 도입하여 새 관료조직을 마련하면 사회개혁을 될 것이다... 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것을 토지 귀족이 오히려 독점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전제적인 지배는 계속되는데, 그 형태만 바뀌어서 토지귀족이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토지귀족이 관료조직을 통해 국가를 다스린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럽의 자유주의 물결은 계속 러시아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일부 토지귀족과, 젊은 장교, 대학생 등의 지식인들은 농노제 및 전제정치 폐지를 희망하여 비밀결사조직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추진한 것이 데카브리스트의 난입니다. 이 난의 주체.. 더보기
러시아사 6 - 에카테리나 2세 에카테리나 2세(재위 : 1762~1796) 에카테리나 2세는 표트르 3세의 부인인데, 표트르 3세(1761~1762)는 제위기간이 짧았습니다. 표트를 3세가 추구하였던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무언가가 많은 지배층의 불만을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표트르 3세는 러시아 장교 그룹에 의해 살해당하였습니다. 또 에카테리나 2세도 남편에 대항하여 직접 음모를 꾸몄다고 합니다. 에케테리나 2세는 남편의 죽음으로 왕위에 올랐는데, 그녀는 표트르 1세와 같은 강력한 러시아를 꿈꾸는 여제였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던 그녀는 마키아벨리즘에 감탄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녀는 장서 12권의 전집을 낼 정도로 글을 좋아했는데, 초기에 그녀는 디드로, 달랑베르, 볼테르 등 계몽사상가들을 후원하기도 하였다고 하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