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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칙령

화폐와 한국사(1) - 인류가 처음 사용한 최초의 공식 화폐는 무엇일까요? 돈으로 보는 한국사 (1) 인류가 화폐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1. 인류가 돈을 사용하기 시작하다. 오늘 이야기 하려는 부분은,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개화기 이후 일제시대부터 광복이후 현대사회까지의 돈들을 보면서 으로 역사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자, 그럼 돈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요? 일반적으로 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곳은, 세계 4대 문명 지역이었습니다. 즉, 최소한 청동기 시대이후, 돈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폐라는 것이 등장하려면, 일단 화폐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을은 존재해야 하고, 그 마을들간에 장사가 이루어져야 하겠죠? 또, 장사를 할 때,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마을 전체를 세력권으로 삼아서, 강제적으로 화폐를 써라... 라고 말할 수 있.. 더보기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기독교 편> - 5화. 예수의 탄생을 멋대로 만들어버린 콘스탄티누스 1세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5화. 예수의 생일을 멋대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1. 디오클레티니아누스 : 전통신과 이단신의 처절한 싸움 기원 후 3세기, 로마 제국은 새로운 체제 변환을 겪어야만 했다. 로마가 작은 도시 국가 단계였을 때엔 귀족 공화정으로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고, 제국이 되어가면서 절대권을 가진 황제에 의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라는 정복국가가 더 이상 정복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내부적인 갈등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공화정 말기부터 등장한 군부세력은 로마 사회의 확고한 지배층으로 자리잡았고, 황제권이 약해졌을 때마다 국가를 한바탕 뒤흔들곤 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권은 무력에 의존하였다. 기존 로마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로마인들은 전통적인 상무정신을 잃었고, 황제 자리는 .. 더보기
크리스마스와 12월 25일 - 역사속에서 위조된 어두운 이면들... 크리스마스와 12월 25일 - 역사속에서 위조된 어두운 이면들... 이 세상 모든 현상을 역사로 설명하는 블로그이다 보니, 크리스마스마저도 역사 속에서 살펴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마구잡이 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성탄절이란 말은 무엇이지? 크리스마스의 한국식 번역어인 성탄절은 말 그대로 을 말합니다. 크리스찬들의 용어이지요. 그런데, 크리스마스(christmas)란 말은 원래 의 의미를 가진 단어는 아니였습니다. 크리스마스란, 북유럽 계열의 앵글로-섹슨 계열의 언어 christes-Masses란 단어에서 비롯되는데, 그 뜻은 라는 뜻이었습니다. christes는 이고, Masses는 를 뜻하는 예배 단어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를 로 번역하고 있는데, 사실 이 번역은 ..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11 - 로마 크리스트교의 성립과정과 발전과정 1번째... 로마제국과 크리스트교 이야기 1번째 1. 초기 로마의 종교 초기 로마는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로마 문화 자체가 그리스적인 요소를 많이 받아들었고, 그리스 문화는 이집트 문화의 요소를 받아들인 탓에, 로마의 신화를 보면 거의 그리스 신화와 체계가 비슷합니다. 그리고, 이집트 오리시스 신화 등의 영향을 받은 신화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신화는 제우스 신을 쥬피터라고 부르는 등 명칭과 풍습, 일부 줄거리 등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신화내용도 유사한 부분이 많죠. 이러한 다신교의 풍습이 로마 초기부터 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로마의 종교는 그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황제 예배를 시도합니다. 즉, 그리스 신화의 가장 상위신인 쥬피터(제우스)를 황제의 권위와 맞먹는 권위로 신격화한 상태에서 .. 더보기
로마사 이야기 8 -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트누스, 그리고 콜로누스 제도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 그리고 콜로누스제도 1.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인황제 시대 이래 약해진 로마는 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노력을 시도합니다. 제정 로마가 후기로 가면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트누스는 강력한 황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독재적 개혁정치를 실시합니다. 그럼 이번 장에서는 이들 철인황제들의 개혁 정치를 한번 볼까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정치는 로 총괄할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2명의 황제와 그 2명의 황제 아래 2명의 부황제로 이루어진 황제단이 제국을 나누어 통치하는 4제통치를 실시합니다. 이중 디오클레티아 누스가 최고 황제권을 가지며, 그가 죽을 시 아래에 속한 직속 부황제가 제국을 계승하는 형태의 정치체제입니다. 이것을 실시한 목적인 황제가 죽은 후 군인들에 의해 이.. 더보기
테오도시우스 1세의 기독교 국교화 정책의 이유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와 이민족의 로마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이민족 융합 정책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동쪽으로 수도를 옮긴 후 2개의 로마가 되었을 때, 동로마에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했던 황제였습니다. 이당시 서로마 제국에서는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막스무스라는 반란군 때문에 동로마로 피신해 있었는데,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서로마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여동생(갈라티아)에게 반하여 그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역적 막시무스를 치기 위해 서로마로 진군했지요. 당시 로마는 이미 고대 제국의 영광이 사라져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동로마, 서로마는 모두 게르만 용병을 동원하여 공격과 수비를 하고 있던 시기였지요. 당시 동로마는 주력부대가 고트족 부대였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