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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보상

(근현대사 20) 독립협회 이야기 - 본문(카툰수정) (근현대사 20) 독립협회 이야기 - 본문 1. 1896년 : 독립협회를 발족하고, 독립신문을 만들다. 지난장에서 독립협회가 발족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요인을 아관파천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죽은 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하였고 이후 러시아와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열강들이 우리의 이권을 침탈하였습니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망국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었고, 우리가 독립국가임을 천명하는 수단으로 독립협회를 발족한 것입니다. 보통 독립협회하면, 전국민이 참여한 거국적인 민족운동단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협회가 생긴 것은 사실 국가 존망의 위기감을 느낀 정부 기득권 세력과 개혁세력들로부터입니다. 독립협회의 초기 맵버는 서재필 등을 비롯한 구미파 세력(친미적 세력, 정동구락부 .. 더보기
(근현대사 10장) 청과 일본이 조선의 경제권을 놓고 다양한 조약을 맺다. 청과 일본이 조선의 경제권을 놓고 다양한 조약을 맺다. 1. 정치적 침략 못지 않게 경제적인 침략이 중요하였다. 1880년대 조선에서는 청과 일본이 조선의 주도권을 놓고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시기였습니다. 초기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까지만 해도 청이 조선에서 전통적인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대립은 1894년 동학운동 당시 청일전쟁 기점으로 일본에게 정치적 주도권이 넘어갑니다. 청과의 정치적 대립에서 승리한 일본은 이후 조선이 러시아를 통해 일본을 견재하려고 하자 을미사변 등을 일으켜 조선의 주도권을 유지하였고, 1904년 러일 전쟁을 계기로 조선에서 일본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인정받습니다. 러일전쟁 직후, 을사조약이 체결되었고,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이렇게 일본은 조.. 더보기
부보상, 보부상? - 보부상이 아니라 부보상을 써야 한다? 부보상, 보부상? 1. 부보상 용어 사용운동에 대한 인터넷 기사 지난 25년간 부보상 명칭 되찾기 활동을 벌여온 경기대 이훈섭 교수가 그간의 활동을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부보상의 용어가 왜곡된 사유와 아울러 조선왕조에서의 부보상의 역사적 역할과 행상문화 그리고 아직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부보상 관련 귀중한 사료를 현대어로 번역해 실었다. 저자는 “부보상 명칭회복 운동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 상인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학문의 광복운동”이라며 “조선시대 유통경제의 중심축에서 활약한 부보상의 활동을 널리 알리고, 식민통치과정에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명칭을 바로잡는 동시에 부보상에 대한 고찰과 재정립을 통하여 이들의 얼을 되살려 보고자 그간의 연구업적을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고 밝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