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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불교 편> -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불교와 도교의 한판 승부... 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9화. 서로 우위를 점하려던 불교와 도교의 한판 승부... 1. 이민족 왕조에 뿌리내린 도교 자, 이제 불교의 수준은 를 벗어나고 있었다. 구마라집이 불경을 번역한 이후, 불교는 진정한 불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도교의 이론을 빌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불교 이론의 다양한 연구는 다양한 학파가 형성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각, 학파들은 도교 이론을 부정하고, 대승 불교 고유의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도교는 뭘하고 있었을까? 도교 역시 혼란기를 이용하여 확실한 을 확립하여, 위진남북조의 혼란기를 이끌어갈 사상으로 성장했다. 원래 도교는 춘추전국시대 에서 기원한다. 당시에는 여러 제가 백가 중에 하나로서 을 주장하는 였기 때문에 , 등으로 말할 수 있겠다. 은.. 더보기
불교이야기 1-6장. 남북조 불교와 정토종, 선종의 역사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6장. 남북조 불교와 정토종, 선종의 역사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중국에 전해진 불교가 이민족 왕조인 북조, 중국왕조인 남조로 갈라진 뒤 수나라에 의해 통합되는 과정을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1. 북조의 불교 : 불법이 왕법에 대해 도전할 수 없다! 북조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를 을 위해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초기 5호 16국 시대에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 자치게 불교를 으로 활용하려 했던 점이 강하였습니다. 불교의 참뜻이나 교리는 굳이 국왕이 알 필요도 없었고, 단지 불교의 모든 핵심 교리에서 왕권에 유리한 측면만 부각시키려는 불교가 이 때의 불교였으니까요. 바로 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던 수많은 고승들이 바로 북조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 더보기
불교이야기 1-4장. 위진남북조에 불교가 유행하다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4장. 위진남북조에 불교가 유행하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제 중국으로 넘어간 불교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인도 불교는 4세기 까지가 주요 흐름이었고, 중국 불교는 2세기부터가 본격적인 불교시작부분입니다. 1. 왜 위진남북조에서 불교가 유행했는가?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전한 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흥미로 들어온 것이 기원입니다. 그러나 한나라의 불교는 한무제의 정책에 의해 억압받았고, 후한이 망할 때까지 불교사상이 중국에서 제대로 이해된 적이 없었습니다. 실제 중국에서 외래 종교인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민족 왕조인 5호 15국 시대 부터입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관심은 학문적인 심오한 철학에 대한 것이 아니였고, 단지 혼란한 사회상에 불교의 라는 부분.. 더보기
위진남북조의 토지제도 분석 : 둔전제, 점전제, 과전제, 균전제 위진남북조의 토지제도 분석 : 둔전제, 점전제, 과전제, 균전제 이번 장에서는 북위의 토지제도인 균전제도에 대하여 심도있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북위의 균전제도는 이후 포스팅 될 당나라의 와 비교해서 파악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하네요. 이후 당나라의 에서도 북위 균전제를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1. 중국 전통의 은 계속되어야 한다. 북위의 토지제도를 다루기에 앞서 한나라 멸망 후 토지제도의 변천을 간략히 다뤄보겠습니다. 한나라는 한무제의 으로 상인들이 호족화 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실제 후한은 지방의 토지와 군사를 가진 호족들이 연합한 이었고, 왕망의 신이 멸망한 것도 때문이었습니다. 후한말 황건적의 난의 원인도 에 대한 반발이 원인이 되었고, 이 황건적을 진압한 자들도 인 조조, 원소, 동탁 등이었습니다. .. 더보기
북위의 분열과 <수>의 재통일 과정 북위의 분열과 의 재통일 과정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시대 정치사의 마지막 파트로서 북위가 분열된 이후 수나라가 재통일하는 과정을 간략히 다루겠습니다. 중요한 파티는 아니지만, 내용연결상 없으면 허전해서 그냥 포스팅 합니다. 1. 이주영의 부장들.... 강력한 무력으로 화북을 나눠먹다 지난 시간까지 북위의 발전과정을 포스트 하면서 북위 정권이 가진 도 함께 언급했었습니다. 그 위험성이란 바로, 효문제 등이 추구한 강력한 이 평성 원 거주지의 선비족들의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이었지요. 북위는 철저히 중국식 제도와 중국식 문화를 수용함으로서, 기마민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경사회로 전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비족의 근거지인 평성을 버리고, 낙양으로 천도하였으며, 낙양에서 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 더보기
북위의 철저한 한화정책 : 효문제의 한화정책과 북위의 멸망과정 북위의 철저한 한화정책 : 효문제의 한화정책 이번 장에서는 도무제와 북위의 화북 통일 시대에 시도되었던 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 의 천자도 의 천자가 될 수 있다. 효문제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정치적 마인드는 화복 통일 이후 이민족 정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도무제가 북위를 개창하면서 이 곧 북방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여겼던 인식을 효문제는 로 여긴 듯 싶습니다. 효문제는 선비족의 천자가 오랑캐라는 인식은 버리고, 의 천자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선비족이라는 민족적 타이틀 외에는 중국식 제도를 도입하였고, 중국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으며, 중국인들을 다스리고 있는 실제 북위가 곧 하늘의 명을 받은 라는 것입니다. 선비의 .. 더보기
도무제의 위 건국과 북위의 화북 통일 북위의 화북 통일 이번 장에서는 남조와 대비하여 북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북조 정권은 5호 16국의 혼란기를 끝낸 뒤, 북위가 통일하게 됩니다. 실제 북조를 통일할 수 있었던 기반을 마련한 나라는 저족이 세운 이었습니다. 전진의 부견은 강력한 군사력과 유목민족의 기마전술을 융합하여 북조 뿐 아니라, 중국 전역을 통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유목민족정권의 한계라고 할까요? 전진은 전술상의 큰 맹점으로 에서 남조의 유유에게 크게 패한 뒤 몰락하고 맙니다. 결국 북조를 통일한 것은 선비족의 국가인 북위였습니다. 이 때가 남조의 송문제 시기인 439년이었죠. 이 때부터를 북조(북위) vs 남조(송-제-양-진)이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라고 합니다. 1. 북위의 태조 도무제의 건국 북위는 서진 .. 더보기
남조 정권의 계승 과정 : 송, 제, 양, 진의 무신 정권과 귀족 사회 남조 정권의 계승 과정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 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한족 정권인 남조 정권에 대하여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그 두 번재 국가로 을 살펴보죠. 중국 남조는 동진 - 송 - 제 - 양 - 진 - 수(통일국가)로 연결됩니다. 5호 : 후한조부터 중국내지 이주 → 중국지식인의 사융론(한(흉노) - 후조(갈) - 전진(저 : 비수전투) -북위(선비)) △ 秦의 통일(BC 221) → 한제국(BC 202) → 왕망(8년) → 후한(23년) → 삼국시대(220) → 서진(265) △ 화북 : 5호 16국(304-439) → 북위(439-539) → 동위(북제), 서위(북주) → 수의 통일(589) △ 화남 : 동진(317-420) → 송-제-양-진(420-589) 1. 송 나라 시대 실제 송,.. 더보기
5호 16국 시대의 개막 - 5호가 내려와 진을 몰아내다 5호 16국 시대의 개막 - 5호가 내려와 진을 몰아내다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 시대가 시작된 배경은 5호의 중국 진출에 대한 내용을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5호란 흉노, 선비, 저, 갈, 강족을 말합니다. 1. 만리장성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이 다투다 5호는 고대 사회 이래 중국이 선진 문물을 수용하지 못한 미개민족으로 분류한 를 말합니다. 주나라 시대 의 기틀이 마련된 이후 에 소속되지 못한 비문명 지역을 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춘추시대 이후 양자강 유역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양자강 유역의 오, 월, 초 등이 중화문명에 소속되었고, 서방의 진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화 문명권은 서방의 진 ~ 남방의 양자강 ~ 북부 황하유역을 경계로 삼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명권을 벗어난 지역은 모두 의 지역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