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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

개화기 기획 자료 : 흥선대원군의 정책과 역사적 평가 흥선대원군 시대, 격동의 한국사 속에서 어떻게 봐야할까?이번장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실시한 정책에 대하여 논의해보려고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1863년부터 1873년까지 약 10년간 정치를 이끌며 한국 근현대사의 주된 흐름을 이끌어간 사람입니다. 1. 개화와 척사가 난립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직전의 한국사회는 개화, 척사라는 두 흐름이 정치 전반에 긴장감을 주던 시기였습니다. 1860년대, 서양에서는 이양선을 보내 아시아 각국에 통상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또 중국은 서양에 의해 베이징을 점령당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습니다. 러시아는 연해주를 차지하여 우리와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세계사적 흐름.. 더보기
최익현의 대원군에 대한 반발 상소 최익현의 상소 호조참판 최익헌이 상소하였다. 참고글 : 최익현의 말을 단순히 요약하면, 대원군이 서원 철폐한 것, 원납전 걷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지요. 양반의 기득권을 침해한다는 이 상소를 통해 최익현은 대원군이 물러나고 고종이 친정해야 한다는 논리로 까지 나아갑니다. 더보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 관련 사료 대원군의 서원 정리 사족이 있는 곳마다 평민을 못살게 굴지만 가장 심한 곳이 서원이었다. 먹도장을 찍은 다음 편지 한통을 고을에 보내서 서원 제수전을 바치도록 명령하였다. 사족이나 평민을 물론하고 그 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주머니를 쏟아야 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서원에 잡혀가 혹독한 형벌로 위협을 받았고 화양동 서원 같은 곳은 그 권위가 더구나 강대하여 그곳에서 보내는 편지를 화양동 묵패지라 하였다. 백성들은 탐학한 아전들에게 시달렸는데 여기에 또 서원 유생에게 침탈을 당하니 모두 살아갈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원망을 하고 이를 갈아도 하늘만 쳐다볼 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대원군이 영을 내려 나라 안 서원을 죄다 허물고 서원 유생들을 쫒아 버리도록 하였다. 감히 항거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 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