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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

공민왕의 반원 자주정책 고려사 학습 사료 모음 공민왕의 반원 자주정책 (가) 5년 5월에 정동행성의 이문소(정동행성의 부속 기관)를 폐지하였다. 5년 6월 원의 연호인 지정의 사용을 중단하였다. 요사이 반역한 신하 기철 등이 군사를 움직일 것을 꾀하여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고 하였는데, 다행히 성덕에 의지하여 화근을 막게 되었습니다. 5년 7월 동북면 병마사 유인우가 쌍성을 함락하니 쌍성총관부의 총관 조소생과 천호 탁도경이 도주하였다. 이에 화주, 등주, 정 주 등 화주 이북을 꼬두 회복하였다. 공민랑 (나)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두기를 청하고 스스로 판사가 되어 다음과 같이 방을 내렸다. ‘요사이 기강이 크게 무너져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포학하게 되어 종묘. 학교, 창고, 사원 등의 토지와 세 업전민(대대로 내려오는 토지와 노비.. 더보기
공민왕의 개혁정치 고려사 학습 사료 모음 공민왕의 개혁정치 (가) 충목왕이 즉위하여 공민왕을 강릉부원대군으로 봉하였다. 층목왕이 돌아가시니 고려에서 왕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원에서 충정으로 왕을 계승케하고 인하여 (공민)왕을 머믈러 숙위(궁궐에 머물러 지키는 것)케 하였다. 처음에 충숙왕이 공민왕을 윤택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으므로 충정 원년에 윤택이 이승로와 더불어 글을 (원의) 중서성에 올려 왕을 세우기를 청하였다. 이 해에 왕이 노국공주에게 장가들었는데 , 3년 10월에 원에서 국왕을 삼았다. (나) 공민왕 5년 3월, 기씨의 족속이 후(기철의 누이 동생이 원순제의 후궁)의 권세를 믿고 횡포하매 어떤 사람이 밀고하기를 ‘기철이 은밀히 쌍성의 반란민과 작당하여 반역을 도모하 나이다.’하니, 왕이 환조(이성계의 부친인 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