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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라

우리는 고조선, 고구려 역사에 취해 한반도 남쪽 <진국>의 역사는 묻어버렸다. 우리는 고조선에 치우쳐 진국을 잊고 있었다. 1. 알려지지도, 알려하지도 않았던 미지의 나라 진국 진국에 대해서 한번쯤은 짚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진국은 중국 사료에 이라고 나옵니다. 衆國이란 쉬운 말로 하면 무리 국가들이란 뜻이네요. 고조선이 북방에서 강성할 무렵의 역사를 우리는 자랑스럽게 배웁니다. 단군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단군의 영토가 평양과 황해도, 함경도 지방을 중심으로 멀리 만주를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넓은 지역을 다스린 자랑스러운 국가가 고조선이지요. 그런데, 그 자랑스러운 고조선이 우리의 뿌리로 자리잡고 있을 무렵, 남쪽 전라도, 경상도에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같은 남방의 원숭이들이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방 영토를 중요하게 취급한 만큼, 남쪽 한반도의 .. 더보기
4세기 고구려의 위기 - 모용씨의 침입, 근초고왕의 침입 고구려의 위기 - 모용외의 침입 12년 봄 2월에 환도성을 수리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가을 8월에 왕이 거처를 환도성으로 옮겼다. 겨울 10월에 연나라 왕 모용황이 용성으로 천도하였다. 건위 장군 모용한이 먼저 고구려를 빼았은 다음 우문씨를 멸망시키고, 나아가 중원을 차지하자고 청하였다. 고구려로 가는 길은 두 곳이 있는데, 북쪽 길은 평탄하고 넓은 반면 남쪽 길은 험하고 좁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북쪽 길로 가려고 하였다. (모용)한이 말하였다. 모용황이 이말을 따랐다. 11월에 모용황이 스스로 날랜 군사 4만을 거느리고 남쪽 길로 진군하여 모용한과 모용패를 선봉으로 삼았으며, 따로 장사 왕우 등을 보내 15000명을 거느리고 북쪽 길로 침략해왔다. 왕은 아우 무를 보내 정예군 5만명을 거느리고 북쪽.. 더보기
연의 침략과 위만의 배신 고조선의 변화 2 (연이 쳐들어 온 이후 뒤이어) 진이 천하를 아우름에 미쳐서는 몽염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이르렀다. 이 때 조선왕 비가 섰는데, 진이 자기 나라를 습격할까 두려와하여 책략으로 진에 복속했으나, 조회는 하지 않으려 하였다. 비가 돌아가고 아들 준이 왕이 된 지 20여년에 진항이 일어나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연, 제, 조나라 백성들이 괴로워하다가 차츰 도망하여 준에게 갔다. 준은 이들을 서쩍 지방에 와서 살게 하였다. 한이 노관으로 연왕을 삼자 조선과 연은 추수로 경계를 이루었다. 노관이 한을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한 뒤 연나라 사람인 위만도 망명하여 오랑캐 복장을 하고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왕에게 항복하였다. 위만이 서쪽 변방에 거주하도록 해주면 중국 망명자들을 거두어 조선의 번병이 .. 더보기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설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 옛날 기자의 후손인 조선제후가 있었다. 은나라가 쇠퇴하는 것을 보고 연나라가 스스로 왕이 되어 동쪽을 공격하고자 하니, 조선제후 역시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오히려 연을 물리치고 주왕실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이에 대부인 예가 중지할 것을 간청하니 이에 중지하였다. 또 서쪽 연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니 연도 역시 중지하여 공격하지 않았다. 후에 조선의 자손들은 점점 교만해져갔다.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조선의 서쪽을 공격하여, 2천여리의 땅을 차지하였다. 만번한을 경계로 이르게 되었으며, 조선은 점차 쇠약해져갔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 사료해석 : 이 사료는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인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민족주의 학자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