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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노부

초기 북방국가들의 성장 - 고구려, 부여, 동예, 옥저 초기 북방 국가들의 성장 1. 부여의 등장 부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등장한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고 합니다. 즉,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국가로서 중국에 알려졌을 것입니다. 부여왕이 후한 광무제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으로보아 국제적인 독립국가였을 것입니다. 부여는 송하강 유역의 평야지대에서 5곡의 수학이 풍성하고 금택지이며, 동물자원이 많다고 나옵니다. 반농반목의 농경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측 기록에도 고구려는 나쁘게 써 놓은 것에 비해, 부여는 사람이 후덕하고 예의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여는 보통 예맥족이 일으킨 예족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 예족에서 갈라져 나온 예족 계통의 맥족 국가라고 합니다. 2. 고구려의 등장 고구려의 건국은 삼국사.. 더보기
고구려의 고추가 고추가 그 나라에는 왕이 있고 벼슬로는 상가, 대로, 패자, 고추가, 주부, 우태, 승, 사자, 조의, 선인이 있으며 신분이 높고 낮음에 따라 각각 등급을 두었다. 본디 5족이 있으니, 바로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였다. 처음에는 연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점점 미약해져서 지금은 계루부가 왕위를 차지한다. 관직을 설치할 때에 대로가 있으면 패자를 두지 않고, 패자가 있으면 대로를 두지 않는다. 왕의 종족으로서 대가인 사람은 모두 고추가라고 불렀다. 연노부는 본래 국주였으므로 지금은 비록 왕을 내지는 못하지만 그 적통을 이은 대인은 고추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자체 종묘를 세우고 영성과 사직을 따로 제사를 지낸다. 절노부도 대대로 왕실과 혼인하였으므로 그 대인은 고추라는 칭호를 더했다. -.. 더보기
고구려의 대가와 부체제 증거 사료 대가와 부체제 건안(建安) 연간에 공손강(公孫康)이 군대를 보내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격파하고 읍락을 불태웠다. 발기(拔奇)는 형이면서도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하여 연노부(涓奴部)의 가(加)와 함께 각기 하호 3만 여명을 이끌고 강(康)에게 투항하였다가 돌아와서 비류수(沸流水) 유역에 옮겨 살았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 - 자료 참조 : 고구려의 대가에 대한 사료입니다. 발기는 스스로 하호를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 영역을 옮겨 살았습니다. 초기 고구려 사회가 중앙집권이 되기 전에 부체제 상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더보기
건국기 고구려인의 생활 초기 고구려의 생활 고구려는 요동 동쪽 천리밖에 있다. 남쪽은 조선, 예맥과 동쪽은 옥저와 북쪽은 부여와 국경을 마주한다. 환도 아래 도읍하였는데, 면적은 사방 2천리가 되고 호수는 3만이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넓은 들은 없다. 산골짜기에 살면서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마신다. 좋은 논이 없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다. 동이의 옛 말에 따르면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말이나 풍속 따위는 부여와 많이 같지만 기질이나 옷차림이 다르다. 본디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의 5족이 있었다. 처음에는 연노부에서 왕이 나왔으나 점점 약해져서 지금은 계루부가 왕위를 차지했다.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여 나라 안 촌락마다 저물어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