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정척사

수능 근현대사 정리 2 :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6. 개화 세력의 대두와 개화 정책의 추진 개화파의 뿌리는 박지원, 박제가를 축으로 하는 북학파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후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와 청을 왕래했던 오경석과 같은 역관 출신의 중인들로부터 신 문물이 전파되면서 중인들도 통상개화론의 주연들로 등장하게 된다. 통상개화론자들 이후로 개화파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청의 양무 운동(洋武運動)를 모델로 개화하고자 하는 온건 개화파와 문명 개화론에 입각하여 변법적(變法的)인 개화를 모색하는 급진 개화파가 그것이다. 온건 개화파 같은 경우 청의 북양대신 이홍장이 주장했던 것처럼 중체서용(中體西用)을 중심으로 깔아둔 양무 운동을 근본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청나라와 친하고 상대적으로 일본과는 감정이 좋지 않았다. 동도 서기(東道西器). .. 더보기
1882년. 임오군란이 조선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 1882년. 임오군란이 조선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 1. 1882년이 나타내는 시대적 상징은 무엇인가? 이번 장에서는 임오군란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임오군란 하면 보통 이라고 알고 있고, 또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시콜콜 다 아는 이야기, 교과서에 써 있는 이야기를 굳이 또 적을 필요가 있을까... 고민끝에 이번 포스트에서는 임오군란을 1882년이 가지는 상징성을 가지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오군란이 과연 군란인가? 이런 주제로요. 일단 지난 장까지 설명했던 이라는 부분을 복습해 놓으세요. (그림 1) 임오군란 때의 격전지 모습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의 조선은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체제가 동요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1880년 조선 책략이 유입되.. 더보기
(한국근현대사 5) 1860년대 이후 계속된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1860년대 이후 위정척사는 계속되었다. 1. 위정척사란? 흥선대원군이 18363년부터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노론 세도 가문을 축출한지 10년... 1873년 민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원군이 실각하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개화정책을 실시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개화정책은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조선책략이 유입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 사상을 우리 전통 유교주의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무런 근거없이 서양을 싫어해서도,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신분질서의 하나인 성리학을 수호하기 위해서만도 아니였습니다. 물론 통상요구가 조선의 신분제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들기는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것을 .. 더보기
조선책략 반대상소 - 홍재학 조선책략 반대상소_홍재학 대개 서양의 학문은 천리를 어지럽히고 기강을 소멸시킴이 심하다는 것을 다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양의 물건은 대부분 음탕하고 욕심을 유도하며, 유교 윤리를 깨뜨리고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며, 천지를 거역하는 것들입니다. 서양의 학문과 물건은 귀로 들으면 창자가 뒤틀리고 수컷이 다른 것으로 바뀌며 눈으로 보면 창자가 꼬이고 위가 뒤집히며, 코로 냄새를 맡고 입술로 그것에 닿게 하면 마음이 변하여 실성하게 되니 이는 곧 그림자가 서로 부딪치고 전염성이 서로 감영되는 것과 같으며, 그 사람의 좋고 싫음이 향배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상을 받들지 않는다 해도 예수교의 책을 읽게되면 성인에게 죄를 얻는 시작입니다. 전하의 백성들의 과연 귀와 눈과 코와 입이 있습니까 없.. 더보기
황준헌의 조선책략 조선책략 지구의 위에는 막대한 나라가 있는데, 아라사(러시아)라고 한다. 그 너비가 광대해서 3대륙에 걸쳐 있다. 육군 정예병이 백여만이고, 해군 거함이 이백여척이다. 다만, 나라를 북쪽에 세워서 하늘은 차고 땅은 척박하였다. 고로 빠르게 그 영토를 넓혀서 사직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선세로부터 표트르대제 이래 새로 강토를 개척하여 이미 이전보다 10배가 넘었다. 지금의 왕에 이르러서는 다시 4해를 관할하고 팔방을 병합하려는 마음으로 중아세아에 있는 위구르의 모든 부족을 잠식하여 거의 다하였다 천하가 모두 그 뜻이 작지 아니함을 알고 왕왕 합종하여서 서로 항거하였다. 투르크 한 나라를 러시아가 오랫동안 병합하고자 하였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협력하여 유지해 나감으로 러시아가 끝까지 굳세게 그 뜻을 .. 더보기
홍재학의 조선책략 반대상소 조선책략 반대상소_홍재학 대개 서양의 학문은 천리를 어지럽히고 기강을 소멸시킴이 심하다는 것을 다시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서양의 물건은 대부분 음탕하고 욕심을 유도하며, 유교 윤리를 깨뜨리고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며, 천지를 거역하는 것들입니다. 서양의 학문과 물건은 귀로 들으면 창자가 뒤틀리고 수컷이 다른 것으로 바뀌며 눈으로 보면 창자가 꼬이고 위가 뒤집히며, 코로 냄새를 맡고 입술로 그것에 닿게 하면 마음이 변하여 실성하게 되니 이는 곧 그림자가 서로 부딪치고 전염성이 서로 감영되는 것과 같으며, 그 사람의 좋고 싫음이 향배를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상을 받들지 않는다 해도 예수교의 책을 읽게되면 성인에게 죄를 얻는 시작입니다. 전하의 백성들의 과연 귀와 눈과 코와 입이 있습니까 없.. 더보기
윤선학의 상소 - 동도서기론 동도서기론 : 윤선학의 상소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유의 윤리는 하늘로부터 얻어서 본성에 부여된 것인데, 천지에 통하고 만고에 뻗치도록 변하지 않는 이치로 위에서 도(道)가 되었습니다. 수레, 배, 군사, 농업, 기계는 백성에게 편하고 나라에 이로운 것으로 밖에 드러나 기(器)가 되니, 제가 바꾸고자 하는 것이 기인 것이지, 도가 아닙니다. - 승정원일기, 고종 19년 12월 22일, 윤선학의 상소 - 참고글 : 동도서기에 대한 명확한 내용이 담긴 사료입니다. 윤선학은 도는 우리 것으로, 기는 서양 것으로 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더보기
고영문의 상소 - 동도서기론 동도서기론 : 고영문의 상소 서양 각국에 사신을 파견하여 우호를 신장시키는 한편 기술 교사를 청하여 우리 나라 상하 인민들에게 새 기술을 가르치고.... 정부와 따로 공의당(의회)을 특설하여 시무에 밝은 인사들을 참여시켜 정사 논의를 돕게 하고.... 서울 안에 큰 규모 상민들을 불러 모아 이해 편부를 상의하게 하고, 그 손해에 따라 징세하도록 하며.... 법에 따라 채광을 장려하고 화폐 유통을 장려하여, 놀고먹는 자를 없애도록 해야 합니다. - 일성록, 고종 19년 9월 22일, 고영문 상소 - 참고글 : 동도서기를 하는 구체적 방향에 대한 고영문의 상소입니다. 더보기
고종 황제의 동도서기론 주장 동도서기론 : 고종의 주장 왕이 말하였다. - 고종실록, 고종 19년 8월 5일 - 참고글 : 동도서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동도서기란, 강화도 조약 이후 서양의 열강의 침투를 막기 위해서 우리의 도덕, 윤리는 그대로 유지하되, 서양의 기술, 기계만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즉, 동양 유교이념인 도, 서양의 기술인 기를 합하여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동도서기론은 1881년 곽기락의 상소에서 출발압니다. 곽기락은 서양의 기계, 농업, 임업에 관한 책 중 이로운 것들을 받아들에 가려 쓰자고 하였습니다. 서양 사람이 싫은 것이지, 좋은 기술 자제도 싫은 것은 아니라는 논리이지요. 이러한 동도서기론을 조선에서는 개화 정책에 반영합니다. 위의 글은 고종의 글입니다. 더보기
곽기략의 상소 - 동도서기론, 중체서용론, 서양과학우위론 곽기략의 상소 형이상을 도라 하고 형이하를 기라고 한다. 도는 형상이 없어 기 속에 머무르니 도를 구하고자 하는 자는 기를 버리고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러므로 군자의 학은 체(體, 몸)와 용(用, 기술)을 서로 밑천 삼고 기와 도를 같이 익히는 것이다. - 속음청사, 상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뀔 수 없는 것이 도(道)이고, 자주 변화하여 고정될 수 없는 것은 기(技)이다. 무엇을 도라 하는가? 삼강(三綱), 오상(五常)과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도라고 한다. 요순, 주공의 도는 해와 별처럼 빛나서, 비록 오랑캐 지방에 가더라도 버릴 수 없다. 무엇을 기라고 하는가? 예악(禮樂), 형정(刑政), 복식(服食), 기용(器用)을 기라고 한다. 당우삼대 조차도 덜하고 더함이 있거늘 하물며 수천년 뒤에 있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