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중국에 임나일본부 승인 요청
일본의 임나부 지위 인정 요청 흥이 죽자 아우 무가 즉위하여 을 자칭하니, 순제 승평 2년에 을 제수하였다. - 송서 권 57, 이만, 왜국 - 비가 죽자 경이 즉위하여 세조 대명 원년(457)에 사신을 보내어 제수를 요청하니 조칙을 내려 허락해주었다. - 송서 권 57, 이만, 백제국 - 사료해석 : 위 1번째 사료는 5세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이 정치적 균형을 이루는 시기에 왜가 백제를 통하지 않고 중국 남조와 직접 교역을 하려 했던 증거입니다. 왜는 남조 왕조들에게 한반도 남부의 여러 나라들에 대한 영도적 지위를 인정해야 함을 강요합니다. 중국 남조의 사서에는 찬, 진, 제, 흥, 무로 이어지는 일본 5왕의 이름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임나 일본부설의 주요한 근거로 작용될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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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해석 과정
광개토대왕릉비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능비(陵碑) 비신(碑身) 높이 5.34m. 각 면 너비 1.5m.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한다. 414년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제1면 11행, 제2면 10행, 제3면 14행, 제4면 9행이고, 각 행이 41자(제1면만 39자)로 총 1,802자인 이 비문은 상고사(上古史), 특히 삼국의 정세와 일본과의 관계를 알려 주는 금석문이다. 내용은 크게, ① 서언(序言)격으로 고구려의 건국 내력을, ② 광개토대왕이 즉위한 뒤의 대외 정복사업의 구체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담았으며, ③ 수묘인연호(守墓人烟戶)를 서술하여 묘의 관리 문제를 적었다. 한·일 고대사학계의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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