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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타도운동

1882년. 임오군란이 조선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 1882년. 임오군란이 조선에 미친 영향에 대한 글 1. 1882년이 나타내는 시대적 상징은 무엇인가? 이번 장에서는 임오군란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임오군란 하면 보통 이라고 알고 있고, 또 교과서에서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시콜콜 다 아는 이야기, 교과서에 써 있는 이야기를 굳이 또 적을 필요가 있을까... 고민끝에 이번 포스트에서는 임오군란을 1882년이 가지는 상징성을 가지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오군란이 과연 군란인가? 이런 주제로요. 일단 지난 장까지 설명했던 이라는 부분을 복습해 놓으세요. (그림 1) 임오군란 때의 격전지 모습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의 조선은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체제가 동요하는 시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1880년 조선 책략이 유입되.. 더보기
(한국근현대사 5) 1860년대 이후 계속된 위정척사 운동의 흐름 1860년대 이후 위정척사는 계속되었다. 1. 위정척사란? 흥선대원군이 18363년부터 집권하여 안동김씨의 노론 세도 가문을 축출한지 10년... 1873년 민씨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원군이 실각하고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개화정책을 실시합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듯이 개화정책은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조선책략이 유입되면서 구체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화 사상을 우리 전통 유교주의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반대한 이유는 아무런 근거없이 서양을 싫어해서도, 조선 왕조를 지탱하는 신분질서의 하나인 성리학을 수호하기 위해서만도 아니였습니다. 물론 통상요구가 조선의 신분제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들기는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것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