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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여왕

후백제 건국 이야기 사료 후백제 건국 이야기 견훤은 상주 가은현(경북 문경 가은) 사람으로 본래의 성은 이씨였는데, 후에 견으로 성씨를 삼았다. 아버지는 아자개이니 농사로 자활하다가 후에 가업을 일으켜 장군이 되었다. .... 신라 진성여왕 6년(892) 아첨하는 소인들이 왕의 곁에 있어 정권을 농간하매 기강은 문란하여 해이해지고, 기근이 곁들어 백성들이 떠돌아 다니고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에 견훤이 은근히 반심을 품고 무리를 모아 서울 서남쪽 주현들로 진격하니, 가는 곳마다 호응하여 무리가 달포 사이에 5천여인에 이르렀다...... 하고, 드디어 후백제 왕이라 스스로 칭하고 관부를 설치하여 직책을 나누었다. - 삼국사기 - 사료해석 : 신리 말기 호족들은 스스로 장군, 성주, 왕으로 칭하고 일부는 국가를 건국하였으니 .. 더보기
원종과 애노의 반란 - 한국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농민 반란 원종과 애노의 난 "한국사에서 볼 수 있는 기록상으로는 가장 오래된 최초의 농민 반란.... 민중이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다." 통일신라 말기에 집권적인 지배체제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중앙정부의 지배층 내부에서는 권력쟁탈전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중앙에서는 전골왕족의 왕위계승법칙이 붕괴되어 실력위주의 왕위 계승이 시도되었습니다. 거기에 폐쇄적 골품제와 고대적 수취제도의 모순으로 진골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층이 불만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골품제 자체의 모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귀족들은 단지 골품제도의 운영상의 문제로 생각하였다는 점입니다. 실제 신라말은 농업생산력이 발전한 시대였습니다. 북방의 간척사업, 예성강 유역 개발, 중국 선승들의 선진농법 수용 등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지만, 골품제는 이것을 수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