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창해군

초기 북방국가들의 성장 - 고구려, 부여, 동예, 옥저 초기 북방 국가들의 성장 1. 부여의 등장 부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등장한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고 합니다. 즉,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국가로서 중국에 알려졌을 것입니다. 부여왕이 후한 광무제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으로보아 국제적인 독립국가였을 것입니다. 부여는 송하강 유역의 평야지대에서 5곡의 수학이 풍성하고 금택지이며, 동물자원이 많다고 나옵니다. 반농반목의 농경국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측 기록에도 고구려는 나쁘게 써 놓은 것에 비해, 부여는 사람이 후덕하고 예의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여는 보통 예맥족이 일으킨 예족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이 예족에서 갈라져 나온 예족 계통의 맥족 국가라고 합니다. 2. 고구려의 등장 고구려의 건국은 삼국사.. 더보기
창해군의 설치에 대한 짧은 역사적 기록 창해군 원삭 원년에 예군 남여 등이 우거왕을 배반하고서는 28만명을 이끌고 요동에 와서 소속되자, 무제는 그 땅으로 창해군을 삼았으나 몇 년만에 없애버렸다. - 후한서 동이열전, 예 - 사료해석 : 논쟁이 되고 있는 창해군에 대한 내용입니다. 창해군은 중국의 한(漢)나라가 랴오허 강[遼河]의 동쪽에 설치한 최초의 군현인데요. 위만조선의 성립 이후 고조선이 한과 만주·한반도 지역의 여러 세력과의 직접 접촉을 막고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자 한과 만주·한반도 일대의 세력들은 고조선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두 지역간의 직접교역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예군(濊君) 남여(南閭) 등을 중심으로 한 28만여 구에 이르는 동방 예맥세력의 일부는 BC 128년 요동군에 귀속하여 중국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