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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헌

무신집권기 신분해방운동 관련 사료 고려사 학습 사료 모음 무신집권기 신분해방운동 관련 사료 (가) 명종23년 7월 남적이 봉기하였다. 큰 도적인 김사미는 운문에 웅거하고, 효심은 초전에 웅거하며 주현을 노략질하였다. 국왕이 듣고 근심하여 대장군 김존걸 등을 보내어 치게 하였으나 도리어 패퇴하였다. 24년 2월에 괴수 김사미가 스스로 투항하였고 그 후 참하였다. (나) 권세가들이 사람을 시켜 조세를 징수하는데 한 토지에서 두세번에 걸쳐 징수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호소할 곳이 없다. 그들의 원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니 화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 이미 우리 마을(공주 명학소)을 현으로 승격하고 수령을 설치하여 안무하더니, 이제 와서 다시 군대를 발하여 나의 어머니와 처자를 붙잡는 의도가 어디있는가. 칼날 아.. 더보기
최충헌의 봉사 십조 고려사 학습 사료 모음 최충헌의 봉사 십조 1. 왕은 참위설을 믿어 새로 지은 궁궐에 들지 않고 있는데, 길일을 택하여 들어갈 것. 2. 근래 관제에 어긋나게 많은 관직을 제수하여 녹봉이 부족하게 되었으니 원제도에 따라 관리의 수를 줄일 것. 3. 근래 벼슬아치들이 공․사전을 빼앗아 토지를 겸병함으로써 국가의 수입이 줄고 군사가 부족하게 되었으니, 토지대장에 따라 원주인에게 돌려줄 것. 4. 세금을 거두는데 향리의 횡포와 권세가의 거듭되는 징수로 백성의 생활이 곤란하니 유능한 수령을 파견하여 금지케할 것. 5. 근래 각 지역의 관리들이 공물 진상을 구실로 약탈 행위를 일삼고 사취하기도 하니 공물 진상을 금할 것. 6. 지금 승려 한 두 사람이 궁중에 무상 출입하고 왕이 내신으로 하여금 불사(佛事)를 관장.. 더보기
통일신라 이후 고려까지 존속한 <부>라는 체제 외위가 페지되고 국왕 근친들은 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1. 외위의 폐지 외위는 앞 장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간략히 정리합니다. 에 대한 글을 읽으시려면 필수적으로 경위와 외위에 관련된 앞 포스트를 읽으셔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신라가 통일되면서 신라의 국왕들은 진골들이 자신의 가신들에게 독자적으로 주던 라는 것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삼국통일 후 왕권을 강화해야하는데, 지방의 외위제라는 독자적 관등제도가 왕에게는 불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외위를 없애면서도 왕의 종친에 해당되는 근친 진골들의 특권까지 제한하기에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통일 후 신라에서는 근친 진골들의 지방 지배을 인정해야 했고, 근친 진골들에게 국가유공자 성격의 을 토지로서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식읍..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