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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정책

중국 당제국은 중국 왕조인가, 북방 왕조인가? 중국 당제국은 중국 왕조인가, 북방 왕조인가? 이번 장에서 다룰 내용은 중국 당나라의 건국에 대한 내용입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중국 수나라를 대운하라는 키워드로 한번 살펴보았죠? 당은 그 수나라의 건국 이념과 제도를 거의 대부분 받아들인 나라입니다. 실제, 수나라와 당나라는 유사성이 참 많습니다. 앞 왕조를 무너뜨린 나라가 앞 왕조와 거의 유사한 체제를 가지고 시작하다니... 이유가 뭘까요? 1. 당이 과연 중국 왕조인가? 사실 5호 16국 시대 말기 북주에서 시작되는 지배집단은 당까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집단이었습니다. 역사에서는 이들을 이라고 부릅니다. 지도에서 서위 - 수 - 당으로 연결되는 부분을 자세히 보세요. 관롱집단이란, 5호 16국과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혼란한 중국 사회에서 탄생한 입니.. 더보기
불교이야기 1-6장. 남북조 불교와 정토종, 선종의 역사 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6장. 남북조 불교와 정토종, 선종의 역사 여섯 번째 이야기에서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본격적으로 중국에 전해진 불교가 이민족 왕조인 북조, 중국왕조인 남조로 갈라진 뒤 수나라에 의해 통합되는 과정을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1. 북조의 불교 : 불법이 왕법에 대해 도전할 수 없다! 북조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은 를 을 위해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초기 5호 16국 시대에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이유 자치게 불교를 으로 활용하려 했던 점이 강하였습니다. 불교의 참뜻이나 교리는 굳이 국왕이 알 필요도 없었고, 단지 불교의 모든 핵심 교리에서 왕권에 유리한 측면만 부각시키려는 불교가 이 때의 불교였으니까요. 바로 전 포스트에서 설명했던 수많은 고승들이 바로 북조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 더보기
신문왕의 전제왕권 3 - 토지제도를 정비하다 신문왕의 전제왕권 3 - 토지제도를 정비하다 이번 장에서는 신문왕의 왕권 강화책 중에서 토지제도를 다루어보겠습니다. 토지제도 역시 신문왕의 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면 쉬울 듯 싶네요. 지금까지의 포스팅에서 의 정의를 권주 1인의 독재정치 확립이라는 기존의 논의를 버리고, 로 이해했습니다.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른 전개가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면서 읽어주세요. 1. 관료전을 지급하고, 이후 녹읍을 폐지하다 신문왕 7년 5월, 교를 내려 문무 관료전을 차등있게 지급하다. 신문왕 9년 정월, 교를 내려 내외관의 녹읍을 혁파하고, 매년 조를 차등있게 주었는데, 이것을 영구히 법으로 하다. 성덕왕 21년 8월, 백성들에게 정전을 지급하다. 경덕왕 16년, 내외 관료들의 월봉을 중지하고, 녹읍을 부활하다. 위 사료.. 더보기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의 정치사에 대한 개관 통일신라에 대한 구체적인 포스팅을 하기 전에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개관을 해보겠습니다. 1. 전제왕권이 성립하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국가 운영 체제와 영토의 팽창입니다. 삼국통일은 곧 영역의 확대 뿐 아니라 인구, 생산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또 통일로 인하여 유민 세력에 대한 처우 개선, 군사력의 확보, 정치적 안정의 추구, 반신라세력에 대한 탄압 등 국가적 과제가 많았습니다. 즉, 국가적으로 팽창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과제들을 해결할 정치적 역량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신라의 왕권은 이러한 새 시대의 과업을 를 통해 효율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무열왕은 최초의 진골충신의 왕으로서 새 시대를 위한 체제 개선을 .. 더보기
북위의 분열과 <수>의 재통일 과정 북위의 분열과 의 재통일 과정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시대 정치사의 마지막 파트로서 북위가 분열된 이후 수나라가 재통일하는 과정을 간략히 다루겠습니다. 중요한 파티는 아니지만, 내용연결상 없으면 허전해서 그냥 포스팅 합니다. 1. 이주영의 부장들.... 강력한 무력으로 화북을 나눠먹다 지난 시간까지 북위의 발전과정을 포스트 하면서 북위 정권이 가진 도 함께 언급했었습니다. 그 위험성이란 바로, 효문제 등이 추구한 강력한 이 평성 원 거주지의 선비족들의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이었지요. 북위는 철저히 중국식 제도와 중국식 문화를 수용함으로서, 기마민족의 한계를 극복하고, 농경사회로 전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비족의 근거지인 평성을 버리고, 낙양으로 천도하였으며, 낙양에서 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 더보기
도무제의 위 건국과 북위의 화북 통일 북위의 화북 통일 이번 장에서는 남조와 대비하여 북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북조 정권은 5호 16국의 혼란기를 끝낸 뒤, 북위가 통일하게 됩니다. 실제 북조를 통일할 수 있었던 기반을 마련한 나라는 저족이 세운 이었습니다. 전진의 부견은 강력한 군사력과 유목민족의 기마전술을 융합하여 북조 뿐 아니라, 중국 전역을 통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유목민족정권의 한계라고 할까요? 전진은 전술상의 큰 맹점으로 에서 남조의 유유에게 크게 패한 뒤 몰락하고 맙니다. 결국 북조를 통일한 것은 선비족의 국가인 북위였습니다. 이 때가 남조의 송문제 시기인 439년이었죠. 이 때부터를 북조(북위) vs 남조(송-제-양-진)이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라고 합니다. 1. 북위의 태조 도무제의 건국 북위는 서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