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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이슬람은 과연 칼과 피로 역사를 이루었는가?

이슬람은 과연 칼과 피로 역사를 이루었는가?

코란에 대한 다음 원문과 원문 해설은 한국에 이슬람교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한 다음 사이트에서 제작된 문서들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직접 다운로드 받을 수는 없고, 링크를 참조해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이슬람에 대한 한국판 사이트 주소 : http://www.quran.or.kr/korean/indexk.html

선지자의 새로운 종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그의 아내인 카디자, 시종 자이드, 11살의 사촌 알리였다. 

그 후 메카에서 이슬람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는 정직한 상인 아부 바크르, 아라비아의 철인 우마르, 수줍음 많은 사업가 우스만, 선지자의 용감한 삼촌 함자, 이교도 가정의 노예였던 빌랄이 있었다. 그들은 정말이지 겸손하고 외로운 선지자의 마술의 칼을 저항할 수 없었다! 이 새로운 신앙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메카로부터 머지않아 추방되어 메디나로 이주하였다. 그 칼은 메디나에서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그것의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은 전 아라비아가 이슬람의 신앙을 받아들일 때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그 당시 전세계의 인구와 비교해 볼 때, 아랍 민족은 아주 적은 소수였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아라비아 사막의 경계를 넘어, 로마와 페르시아 제국까지, 지중해의 기슭, 말라카이 해협까지, 그리고 극동아시아의 인도제도까지 그 `칼'을 휘두르기로 결심했다. 사람들마다 계속해서 이 칼 앞에 복종해 나아갔으며 신앙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칼의 날은 정말 예리하였다! 그 칼은 쉽게 심장을 정복하였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항복했다. 그것은 진실의 칼이며, 마치 빛이 어둠을 단숨에 몰아내는 것처럼 그 칼의 반짝거림은 거짓을 일소시켰다. 그 칼이 무뎌진 적이 있었나?  아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

비록 사사로운 이해관계 때문에 부정을 선호하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것들을 빼앗아 가는 사람들의 무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칼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을 계속해서 찔러 나가고 있다.

그 칼에 의해 최근에 정복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래에서 읽어보자. 그들은 다양한 국적과 언어,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독자는 그 진실의 칼에 정복당한 느낌이 어떤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1. 레오폴드 웨이스(무함마드 아사드): 오스트리아의 정치가, 언론가, 작가, 프랑크푸어터 자이퉁의 전 외신통신원, `갈림길에선 이슬람'과 `메카로의 여정'의 저자, 꾸란의미의 번역. (1926년 이슬람 입교)

“이슬람은 나에게 마치 완벽한 하나의 건축 작품 같다. 모든 부분들이 조화롭게 서로를 보완하고 지탱하고 있다. 절대적 균형과 견고한 평정을 이루며, 어떤 것도 남거나 부족한 것이 없다.”

현주소: Dar Al-Andalus, 3 Library Ramp, Gilbraltor, Morocco.

2. 에마드 홀트: 영국 시의원,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 여러 곳을 여행,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의 비교 연구와 조사에 몰두. (1975년 이슬람 입교)

"이슬람의 칼이란 강철로 만들어진 칼이 아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왜냐하면 이슬람의 칼이 바로 내 심장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그 칼은 내게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가져오고 일깨워주었다."

현주소: 23 Welland Garden, Rerivale, Middlesex

3. 보건 코판스키 (보그담 아타울라 코판스키): 폴란드 출신의 미국인. 역사와 정치학 박사. 이슬람 세계에서 매우 흥미 있는 여행을 경험. 폴란드 공산주의 정권 하에 두 번 감옥에 수감(1968, 1981-82) 1974년 이슬람 입교

“12살 때 교회의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인 신앙심에 환멸을 느꼈다. 2년 후 1962년 프랑스 식민주의에 맞서는 알제리 무슬림 무자히딘의 투쟁의 승리에 감동 받았다. 그것은 이슬람이 내게 쏜 첫 번째 화살이었다. 고등학생시절과 대학생활의 초기 나는 레드의 전형적인 반항세대의 표본이었다. 꾸란의 진실을 향한 나의 길은 느리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았다.

1974년 터키를 방문했을 때 술탄과 칼리프 술레이만 카누니의 폴란드왕국에 대한 정책에 대해 M.A 논문을 썼다. 거기서 나는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에 깊이 사로잡혔다. 아단! 그것은 예배를 위한 부름이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알지 못하는 강한 힘이 나를 이스탄불에 있는 낡은 사원으로 인도했고, 거기서 나이 지긋하고 수염을 기른 한 터키인이 미소지으면서 나에게 우두, 즉 예배전 몸을 씻는 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샤하다를 통해 무슬림이 됨을 선언하였고 나의 첫예배인 마그립 예배를 마쳤다. 잡동사니 같은 이데올로기들을 몰아냈고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평온해지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쁨을 느꼈다. 나는 무슬림이 되었다”
현주소: 3013 Harrel Drive 203 Grand Praire TX 75051 U.S.A

4. 벤가타찰람 아디야르(압둘라 아디야르): 인도인, 언론인. M. 17년 간 카루나니디의 무라솔리 일보 뉴스 편집자로 근무. 1982년에 T. N 정부로부터 칼라이마마니상 수상

“나는 창조, 여성의 지위, 우주의 창조 등의 이론에 대해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곤 했던 골치 아픈 의문점들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바로 이슬람에서 듣게 되었다. 성 선지자의 인생이야기에 나는 매료되었으며, 그것은 다른 세속적인 지도자와 그들의 철학과 비교했을 때 한결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

현주소: 1 Ashok Avenu, Rangarajapuram, Kodambakkam, Madras, India.

5. 허버트 호보흠(아만 호보흠): 독일 외교관, 선교와 사회 사업가.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독일인 외교 임무를 수행하는 지성인. 현재 리야드의 독일 대사관의 문화담당관

“나는 인생의 여러 개의 다른 체제하에서 살아왔고,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공부하는 기회를 얻었지만 그 어느 것도 이슬람만큼 완벽한 것이 없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많은 체제들 중 어떤 것도 고귀한 인생을 위한 완벽한 규범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직 이슬람만이 그것을 갖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착한 사람만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이슬람은 이론만 내세우지 않는다. 실제적이다. 이슬람이란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완벽한 복종을 의미한다.”

현주소: Cultural Attache, German Embassy, P. O. Box 8974, Riyadh-11492, Saudi Arabia.

6. 캣 스티븐스(유스프 이슬람). 영국인, 전 기독교인 유명한 팝가수(1973년 이슬람 입교)
“대중매체에서 항상 보여지는 일부 바르지 못한 무슬림의 행동에 비추어서 이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가령 자동차의 운전자가 술이 취해서 벽을 들이받았을 때, 차 자체를 나쁜 것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다. 이슬람은 모든 인류를 일상생활에서, 영적, 심적, 육체적 차원에서 길을 인도한다. 우리는 이런 가르침의 원천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꾸란과 선지자의 본보기이다. 거기서 이슬람의 이상을 볼 수 있다.”

현주소: Chairman, Muslim Aid, 3Furlong Road, London, N7, U. K.

7. 마가레트 마르커스 여사 (마리얌 자밀라) 미국인. 전 유태인. 수필가이자 언론인. 여러 권의 책 집필 (1962년 이슬람 입교)

“이슬람의 도덕과 법의 권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이슬람에서의 기쁨과 행복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행하는 의무의 실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스런 만족감이다. 이슬람에서 의무는 항상 권리보다 더 강조된다. 오직 이슬람에서만 절대적 가치에 대한 나의 의문점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오직 이슬람에서만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결국 그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해 준다.”

현주소: C/o. Mr. Mohammad Yusuf Khan, Sant Nagar, Lahore, Pakistan

8. 윌프라이드 호프만 (무라드 호프만): 하바드대 법학 박사 사회과학자. 외교관. 현재 독일 대사

“이제 얼마동안 더 정확하고 더 간결한 것을 위해, 나는 조직적인 방식으로 철학적인 모든 진실들을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  철학적인 진실들은 야기되는 의심들을 초월해야 한다.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불가지 회의론자의 전형적인 태도는 지성인의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인간은 믿고자 하는 결정을 피할 수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창조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슬람은 의심할 여지없는 훌륭한 조화 안에서 그것 자체를 전체적 실제 안에서 설명한다. 따라서 나는 천천히 한 단계 한 단계 거의 무의식적으로 생각과 느낌 안에서 내자신이 무슬림이 되어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충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해야할 마지막 한 단계만이 남아있다. 그것은 내 개종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오늘로써 나는 무슬림에 되었다”

현주소: Embassy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BP 664, Alger-gare, Algeria.

9. 카시우스 클레이(무함마드 알리 클레이): 미국인 권투선수. 헤비웨이트급 세계 선수권대회 3회 우승. 전 기독교인(1965년 이슬람 입교)

“나는 내 인생에 수많은 즐거운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하지(성지 순례)때 아라파트 평원 위에 서 있었던 순간의 느낌만큼 특별했던 적은 없었다. 거기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적인 분위기에 고무되었다. 150만 명 이상의 무슬림들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축복을 기원했다. 다른 피부색의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왕, 국가의 수장들, ,매우 가난한 나라에서 온 평범한 사람들까지 모든 인종이 두 개의 단순한 하얀 천을 두르고 어떤 오만함이나 열등감도 없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것은 이슬람의 평등의 개념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었다. ”(1989년 7월 15일 "알-메디나"일보 제다에 발표)

현주소: 1200E, 49 St., Chicago, ILL 60615

이것은 진실의 칼에 의해 감복 당한 사람들의 의견이다.

 강철 즉 무력이 이슬람의 엄청난 확장도구였다는 선전에 대하여, 우리는 이러한 근거 없는 주장을 일소하는 몇 명의 비무슬림의 의견을 아래에 수록했다.

1. M.K. 간디 : ... 나는 그 당시 삶의 체제 속에서 이슬람이 승리를 거두었던 것은 무력의 칼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굳건한 단순함이며, 선지자의 완전한 자아 겸허이며, 그의 철저한 약속 지킴이며, 친구들과 추종자들에 대한 그의 강한 헌신이며, 그의 대담함이며, 그의 용감함이며, 하나님과 그 자신의 임무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였다. 칼이 아닌, 바로 이런 것들이 그들 앞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했다. Young India, 1924

2. 에드워드 기본: 무함마드 삶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칼의 일격 없이 순수한 도덕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History of the Saracen Empire, London. 1870

3. A.S.트리톤: 한 손에는 칼, 다른 한 손에는 꾸란을 내밀고 있는 무슬림 병사의 그림은 순전히 거짓이다. Islam, London, 1951-page 21

4. 드 라시 오'렐리: 역사는 광적인 무슬림들의 전설을 매우 명확히 조명한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세계를 휩쓸며, 정복당한 인종들에게 칼끝으로 이슬람을 강요했다는 이론이야말로 역사가들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가장 광적인 불합리한 전설중의 하나이다. Islam, at Crossroads, London, 1923-page8.

5. K.S.라마크리쉬나 라오: 이 모노그래프를 쓰는 나의 문제는 보다 쉬운 것이다. 이제 우리는 왜곡된 역사에 일반적으로 그리 쉽게 길들여지지 않을 것이며,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관점을 지적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슬람과 칼에 대한 이론은 이제 그 어떤 부분도 들을 수 없다. 이슬람의 원칙 `종교에는 강요가 없다'는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Mohammad the Prophet of Islam, Riyadh 1989-page4

6. 제임스. A. 미체너: 역사상 어떤 다른 종교도 이슬람만큼 빠른 속도로 전도되지 못했다. 서구는 이슬람의 번성이 무력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널리 믿어왔다. 그러나 현대 학자는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꾸란은 양심의 자유를 분명히 지지한다.
Islam-The Misunderstood Religion, Readers Digest (American Edition) May 1955

7. 로렌스.E. 브론테: 이들 잘 확립된 사실들은 기독교인들의 문서에서 자주 조장되는 믿음을 철폐시킨다. 그들의 조장된 믿음은 무슬림들이 칼끝을 들이대고 이슬람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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