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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이야기 30 - 진의 제도사 : 전제주의적 황제지배체제

이번 장에서는 진나라의 제도사만 다루어 보겠습니다. 진에 대한 이야기는 통일배경론, 진의 정치사, 진의 제도사로 나누어 3파트를 정리하고, 나머지 파트에서는 진나라가 중국 역사에 남긴 유산 부분을 다루어 보죠. 그게 진나라 이해에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1. 진의 중앙정치제도

진의 중앙정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제주의적 중앙집권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쉬운 말로 황제 개인의 권한을 극대화 하기 위한 조직들인 것이죠.

일단 국가 업무를 맡아보는 자리는 3공이 있는데, 3공으로 분리한 것은 국가 권한을 삼권분립 함으로서 감히 황제에게 덤비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3공은 그 직무상 서로 견제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삼공은 승상, 어사, 태위입니다.

승상권 : 정치행정업무, 좌우 승상 존재
   태위 : 군사 및 사법기구
   어사대부 : 감찰 기구

원래 승상이란 서주시대 국왕을 도와 예법을 관장하던 관리입니다. 서주시대 예를 맡는 다는 것은 예법을 아닌 관리들에게 작위를 내려주는 것으로서 인사권을 가진 관서를 말하는데, 진나라 대에는 이 승상이 최고행정의 수반이 되었습니다. 실제 중국사에서는 행정실권을 가진 재상을 <승상>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진나라의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이후 한나라에서는 시중, 상서 등이 이 승상권을 행사하게 되며, 나중에는 시중은 직함이, 상서는 행정업무를 보는 상서성으로 용어가 자리잡게 됩니다.

태위는 원래 전국시대 병무를 담당하는 <위>라는 관직을 총괄하는 큰 위(태위)로 쓰이는 명칭으로 병권을 담당하면서 황제에게 무반 인사권을 건의할 수 있었습니다.

어사는 원래 사관으로서 역사적인 글을 적는 자였는데, 이들이 전국시대에 돌아다니면서 감찰 업무를 하였고, 진니라에서는 어사의 수장(어사대부)를 감찰 최고직으로 하였습니다.

이 삼공의 아래에는 9경이라는 부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9경은 중요 업무를 논할 때 3공과 논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권과 연결된 황실을 통해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따라서 이 9경이라는 부서가 나눠 했던 업무 역시 황제권 강화를 위한 것이었고, 이 당시 9경은 황제의 수족이라고 보면 됩니다.

2. 지방 행정 제도

지방행정제도는 중국역사의 큰 틀인 <군현제도>입니다. 군현제도는 군-현-향-정-리 라고 하는 5단계의 행정구역을 통해 황제가 직접 전국을 다스리는 것으로 이중 군, 현 단위에 황제 직속의 관리가 파견됩니다.

진시황은 전국을 36군으로 나눈 뒤, 그 아래 현을 두고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지방관을 파견할 때도 중앙과 똑같이 삼권을 분리해서 서로 견재시킨다는 점입니다.

지방행정권 : 군수, 현령을 파견
   지방감찰권 : 시어사, 현승 파견
   지방군사권 : 군위, 현위 파견

이렇게 지방권을 분리하여 각각 황제 통치 하에 둡니다.

다음으로 제민지배 내용을 볼까요? 진시황은 백성들을 직접 지배하기 위하여 군현제를 실시하였는데, 군현은 황제가 직접 임명하지만, 그 이하 향, 정, 리 등 작은 소단위 동네들은 관리를 파견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향 이하는 지방 호족과 부호가 향리를 임명하여 그들이 자치를 하면서 군현의 군수, 현령에게 통제를 받게 하였습니다. 또 오, 십 제도를 만들어 다섯 집, 열 집이 서로 감시하도록 하는 제도(오십제 : 오가작통법)를 둠으로서 연좌제적 처벌을 통해 감히 국가에 반란을 일으킬 꿈도 못꾸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법가적 지방 통치체제를 흔히 역사에서 <제민지배체제>라고 합니다. 제민이란 모든 백성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이 곧 중국 지방제도의 기본틀로, 중국 역사에서는 황제지배체제는 항상 제민지배체제가 목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군현제도는 이름만 바뀔 뿐 중국 역사에서 쭈욱 ~ 계속됩니다.

이 군현제는 황제의 명령이 지방에 직접 침투함으로서 효율성을 강화하면 면도 있지만, 징병제도 등 군사제도와도 연결되어 부국과 강병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제도라고 인식했으니까요.

3. 군사제도

마지막으로 군사제도를 간략히 보면, 상앙의 변법 이래 추구한 전공수작제도가 계속 이어집니다. 즉, 능력있는 자들 위주로 군 지휘관을 선발한 것이지요. 군공에 따라 승진에 큰 제한이 없는 것도 특이합니다. 특이한 관점에서 보면 열린사회라고 할까요?

군사제도는 부병제도였는데, 모든 토지를 가진 농민들이 농사철에는 절반씩 돌아가며 군역을 하고, 농한기에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훈련을 받는 제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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