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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40 - 황건적의 난과 후한의 멸망

이번 장에서는 후한말기 황건적의 난을 간략하게 다루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짧은 글이 되겠네요.

1. 황건적의 난의 사상

황건적이 일어난 이유는 후한시대 중앙과 지방에서 전면적으로 백성들을 압박하는 지배층 위주의 정치가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에서는 어린 황제가 계속 등극하면서 국가적 차원의 실제 정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세금을 걷는 횟수만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환관들은 외척과의 싸움에 몰두하여 민생은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호족들은 대토지를 사유화하여 백성들을 괴롭했습니다. 거기에 왕조말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천제지변과 기아, 홍수 등의 악조건들이 농민들을 토지에서 유리시키고, 농민들을 초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황건적의 난은 일단 음양오행사상에 기반을 둔 사회변혁사상에서 이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창천은 가고 황천은 온다>에서 알수 있듯이 화목토수금으로 순행하는 오행의 법칙 상 <푸른 왕조>의 시대는 가고 <황색 왕조>의 시대가 와야 한다는 민란 전통의 오행 사상이 가미된 것입니다. 중국의 민란에는 적미의 난, 황건적, 홍건적 등 앙조의 <색>을 상징하는 명칭의 민란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어려운 우주 오행의 사상을 각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색>으로 대입하여 철학체계를 정리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또 당시 서역에서 들어온 일종의 <밀교>도 난에 큰 역할을 한 사상입니다. 이 밀교의 영향으로 각종 주술과 미신, 점성술이 음앵오행사상과 결합하여 독특한 사상체계로 발전합니다. 정각의 태평도를 보면 부적을 태운다던가, 전쟁에 이기기 위한 주문을 외운다던가, 불노장생을 위한 약을 마신다던가하는 부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장각 스스로가 그러한 사상을 누군가에게서 전수받았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중국 전통의 신앙에다가 서역 어디선가 유입된 밀종 사상이 합쳐진 것으로 보입니다.

2. 황건적의 난의 특징

황건적의 난의 특징은 일반 민란처럼 중앙정부에 대한 반기를 들고 이루어진 우발적인 난이 아니라, 정각 등에 의하여 비교적 체계를 잡고, 당시 집권층이었던 모든 제 세력에 대한 비판을 조목조목 하면서 등장한 난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황건적의 난을 보면 농민이 중심이었지만, 그 안에는 사회 체제 속에서 중앙에 편입되지 못한 중소 호족과 중앙정치에 반기를 든 청류파 지식인들이 난의 <지도부>로 활약하고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도부는 장각을 중심으로 하는 <태평도>라는 종교를 창시하여 조직적으로 국가에 반항합니다. 이 태평도는 음양오행에, 서역 불교 사상을 가미하고, 맹자의 혁명론에, 도가의 저항권 사상까지 가미한 철학적 이념을 가진 혁명적 종교였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우발적이고 지역적인 농민 봉기를 조직적인 반란군으로 전환하는 데 큰 공을 세웁니다.

당시 한나라의 군현 제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촌락집단인 <향>은 이미 호족에 의해 그 근거지의 공동체성을 상실하였습니다. 또 황건군이 크게 일어난 곳은 어김없이 호족, 환관, 외척이 대토지를 소유한 지역적 기반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난은 붕괴된 촌락질서를 태평도가 흡수하여 가장 적극적인 국가체제 전복 운동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난은 장각이 원소, 조조 등 호족연합군에게 패하면서 사그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오두미교 등이 하북에서 20년간 전쟁을 지속하면서 농민군을 유지했지만, 호족 세력에 의해 격퇴되었고 결국 이 황건적의 난을 통해서 사회의 주도권을 잡은 자들은 혼란기의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대규모 호족 세력들이었습니다.

즉, 이를 통해 볼 때 후한이라는 나라는 호족들이 연합해서 세운 정권으로서, 호족들이 지방 주도세력으로 쭈욱 군림해 오다가, 호족들에 대한 반항으로 민란이 일어나고, 호족들에 의한 민란이 진압되었으며, 호족들이 다음 세대의 주도권을 잡고 새시대를 열어가는 주체가 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호족>을 키워드로 공부하면 쉽게 이해가 되는 나라입니다.

이 호족들이 서로 군공을 세우고, 때론 대립하면서 삼국지에 나오는 위, 촉, 오 삼국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삼국지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후한 대 황건적의 난에 대하여 제 포스트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하북 호족 원소가 중앙의 환관 세력을 주살하고 정권을 잡았지만, 서북 호족 동탁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됩니다. 이후 하북지방 호족들이 연합하여 동탁을 토벌하였고, 이후 하북 호족 세력인 원소와 조조가 서로 대립합니다. 이후 호족 세력들은 각기 자신의 영역을 수성하는 군웅할거 시대를 맞이하다가 조조의 아들 조비 대에 호족세력을 통일하여 <위>나라를 건국합니다.

조조가 통일할 수 있었던 기반은, <중화>사상에만 의존하지 않는 개방적 정책과 함께, 오환, 흉노 등 북방계 유목민도 포섭할 수 있는 정략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청주병으로 대표되는 둔전민을 육성하여, 유민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황무지 개간을 통한 군사비용을 충당하고, 화북의 재건을 단기간에 이루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사인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조조를 한의 정통으로 보고 있지만, 소설인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의 이야기와 <유비의 정통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이문열 삼국지랑 장정일 삼국지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데, 이문열 삼국지는 생생하게 그 상황을 묘사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반면, 장정일의 삼국지는 딱딱하게 흘러가지만 실제 역사적 상황을 그려가면서 자세히 묘사한게 특징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최근에는 삼국지라는 책을 굳이 읽을 필요성이 없다는 점이죠. 중국 역사에서 재미있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는 우리 역사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삼국지보다 우리 고대 역사를 다룬 <삼한지>를 읽으세요. 더 큰 도움이 될 듯 싶네요.

별로 쓸말도 없는 황건적의 난을 포스팅 주제로 잡으니 잡담만 하다가 포스팅이 끝나게 되네요. 다음부터는 이런 중요하지 않은 파트는 사전식으로만 정리해 버리고 끝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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