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  모바일  |  이메일  |  블로그  | 교육연구소  |  온라인진단  |  인강사이트  |  평생교육원  | 웹하드자료실

서진 시대와 호한체제의 성립

이번 장에서는 이전 포스트인 <위>나라를 계승한 진나라의 역사를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위 나라가 몰락하다.

중국의 위,촉,오 삼국시대를 통일한 위 왕조는 너무 단명하였습니다. 그것은 후한말 이래 호족 세력들이 할거한 시대를 통일했지만, 호족 세력이 상당수 잔존하였기 때문입니다. 위는 호족세력과 개국공신들에게 많은 관직을 내려주었고, 호족세력들을 중앙 관리로 끌어들여 귀족세력으로 재편하려고 했습니다. 또 9품관인법 같은 제도를 계승함으로서 관직임명에 제도적 명분도 만들려 하였죠.

하지만, 호족이 중앙에 올라와 귀족화되면서 초기 조조, 조비의 참신한 기풍은 점점 사라지고, 지배집단이 <귀족세력>으로 변질되기만 하였습니다. 이들 호족들은 중앙에서 서로 편을 갈라 대립하곤 하였고 그 결과 사마의가 정권을 정악하면서 사마씨의 <진> 나라로 정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이 진의 건국도 <선양>의 형식을 빌립니다. 사마염(무제)가 위을 선양으로 이어받으면서 건국된 <진>은 명실상부한 <삼국시대 통일국가>가 됩니다.

2. 진의 사마씨들은 호족들을 제어하지도 못하다.

진 왕조는 건국 자체부터 큰약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진 왕조는 후한 이래의 <호족>세력에 의해 건국된 왕조로서, 사마염이 선양을 받아 왕조를 개창한 자체가 강력한 호족들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진의 사마씨 왕실은 건국을 도와준 강력한 호족 집단들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건국 과정에서의 <호족 연합적 성격>은 마치, 후한 광무제의 건국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사마씨의 진국은 호족을 통제할 힘이 없는 국가였습니다. 진국에서는 호족에게 특혜를 주어 호족들이 활발하게 중앙에 진출하여 왕권에 복속된 귀족체제를 확립하였지만, 이들 호족은 너무나 독자적이었습니다. 호족들은 진 왕실을 보호하는 것보다 자신의 종가(호족가문)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에 급급하였습니다. 이것이 후한과 진의 차이점입니다. 진의 호족들은 이미 삼국시대의 오랜 전란을 거치면서, 왕실보다는 가문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사마씨 정권은 토지제도인 점전제, 과전제 등을 실시하여 호족의 대토질 소유를 막으려 했지만 실용성이 별로 없었습니다.

따라서 진은 호족들을 믿을 수가 없었고, 호족을 통제하고 왕실의 울타리를 단단하게 하기 위하여 왕실의 <왕자들>과 <종친>들에게 토지를 분봉하여 지방 통제를 맡기는 <봉건제도>를 부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 왕조의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합니다. 호족 통제를 위해 파견한 왕자들은 호족과 연합하기도 하고, 때론 독자세력화하여 진 왕실에 위협적인 세력이 되었습니다. 진 왕실은 왕자세력들이 왕실에 반기를 든 <8왕자의 난>으로 중앙집권체제가 무너져 버립니다.

3. 호한체제가 시작되다

서진 시대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의를 찾으라면 호한체제의 시작입니다. 진은 삼국을 통일한 명실상부한 중원의 패자였지만, 이민족을 통제할 만큼 강력한 국가는 아니였습니다. 진은 이미 자체 호족들과 봉건제도를 통해 성장한 왕자세력들도 통제하지 못했으니까요.

거기에 서진은 오랜 전란으로 인해 떠난 민심을 적절히 수습할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방을 지방호족과 봉건된 왕자들에게 맡겨 버리는 형세였으니까요.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은 이미 한나라 이래 국교가 된 유교를 버린지 오래였습니다. 이 당시에는 이미 향락적인 성향의 노장사상이 유행하였고, 허무한 염세주의 사상이 전국에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또 긴 혼란기 속에서 허약해진 중국 사회에는 이미 이민족들의 중국내 거주를 인정하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삼국시대에 유비, 조조 등은 이민족의 힘을 빌려 상대 국가를 견제하려고 하였고 이것은 북방 이민족이 중원에 내려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서진은 이민족(5호)의 만리장성 이내 거주를 허락하였고, 중국인(한족)과 이민족이 이제 중국 영토에 같이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호(오랑캐)와 한(한족 : 중국족)의 공존체제라고 부릅니다.

서진 시대는 길고 긴 중국 역사 속에서 호한체제가 시작된 기점입니다. 이 시기 이후의 모든 중국사는 결국 한나라를 계승한 전통 중국 왕조(한족 국가)와 북방에서 내려온 이민족 왕조(침투왕조, 정복왕조)의 기나긴 싸움이 됩니다.

결국 서진은 이민족의 침투에 의해 무너집니다. 이민족인 <흉노>가 <영가의 난>을 일으켜 한나라 이후 구축한 중화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이민족인 5호 국가가 중국에 자리잡는 역사가 시작된 것이죠. 이 <영가의 난>이 바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호한체제 성립을 가져온 사건입니다.

4. 서진의 멸망

결국 서진은 호족들을 제어하지 못하여, 봉건제를 실시하였다가 <8왕자의 난>으로 국가 체제가 무너지고, 이민족들이 적극적으로 서진에 침투하게 됩니다. 결국 이민족인 <흉노>족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흉노>족은 진시황, 한무제 등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통일 군주들과의 항쟁에서도 살아남아, 결국 중국사회를 정령한 최초의 이민족 국가인 <한>을 건국합니다.

이후 중국은 가장 혼란한 시기인 5호 16국 시대를 맞이합니다. 서진은 수도를 옮겨 동진이 되었고, 중국의 주요 영토는 중화사상에 의해 오랑캐라고 규정된 국가들이 나누어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곧 호한체제의 출발이자, 모든 민족이 중국 영토안에서 어울어지고, 이 모든 민족을 통일하기 위하여 서로 항쟁하는 시대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 이후는 중화민족의 시대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아울러 정복하고 제국을 건설하려는 각 민족국가들이 <세계국가>, <세계시민>을 추구하는 시대로 나아갑니다.

블로그 이미지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데이터분석 및 교육 전문기관

본 협회에서는 회원 외에는 댓글을 달 수 없습니다.

  • Favicon of http://nahahah.tistory.com Jen 2007.06.14 21: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한체제론은 현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한제 교수님의 이론입니다. -_-;;거기에 대한 소개는 하나도 없네요 그리고 글에 참고문헌이나 인용 혹은 주석등등이 없네요-_- 타인의 저작들을 빌려 글을 쓰면 그 정도는 기본 아닌가요

    • Favicon of https://xn--2n1bk9rtmh26jp7fdva.com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2007.06.15 0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충고 감사합니다.
      사실 포스트할 때, 그런 부분들을 신경써야하는데, 지금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특정 책에서 인용한 글들은 출처를 밝히고 있지만, 이렇게 짧게 시대개관하는 글들은 거창한 글들도 아니고, 대충 생각나는 대로 적은 거라 출처를 찾아적을까 고민하는 경우가 많네요.
      이 포스트에서 호한체제, 정복왕조, 침투왕조, 세계시민주의 등등의 용어들은 어느 책에나 나오는 너무 일반화된 용어들이라 신경쓰지 못하고 적어올렸네요.
      충고 감사합니다. 이후 적는 모든 포스트들은 사소한 글이라도 관련된 사실이 있다면, 모두 출처를 적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신경써서 포스트하겠습니다. 인터넷으로 글을 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면서도 조심스럽네요. 주의하고, 많이 고민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