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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중국의 동진 시대 : 북래귀족들이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하다.

중국의 동진 시대 : 북래귀족들이 강남을 개발하기 시작하다.

이번 장에서는 5호 16국 시대가 진행되는 동안 한족 정권인 남조 정권에 대하여 간략히 포스팅해보겠습니다. 그 첫 번재 국가로 <동진>을 살펴보죠. 중국 남조는 동진 - 송 - 제 - 양 - 진 - 수(통일국가)로 연결됩니다.

1. 동진 정권의 시작 : 북래 귀족들이 정권을 잡아 버리다.

서진이 멸망한 이후 사마씨인 사마예는 남쪽으로 내려와 새로운 동진 정권을 수립하였습니다. 이 동진 정권은 북방의 5호에 비해 중국 전통 왕조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한족들은 동진 정권으로 서로 내려오려고 하였고, 동진 정권은 화북의 한족 지배층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나가며 북방 북가들과 대립할 수 있는 힘을 쌓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조의 중국 왕조들은 토착 귀족인 낭방 양자강의 귀족들보다, 북방에서 내려온 귀족들을 더 우대하였다는 점입니다. 북방귀족들은 진에서부터 보호를 받던 지배집단으로 동진정권의 사마씨들과 쉽게 연합할 수 있었고, 쉽게 귀족관료화되었습니다. 특히, 북방귀족으로서 초창기 동진정권기에 내려온 귀족들은 지배집단으로서의 <주도권을 선점>하였고, 늦게 내려온 북방귀족들보다 먼저 사회경제적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초기에 토착 귀족들은 북에서 내려온 북방 귀족들을 우대하였습니다. 왜냐면 같은 한족으로서 북방 이민족에 대항해야 한다는 명분과 함께 민족의식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동진 정권이 안정되고 먼저 내려온 북방귀족들이 사회경제적 <지배집단>이 되어 버리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동진정권 초장기에 북에서 내려온 귀족들은 이제 토착 귀족들을 점차 배재해 버리면서 그들만의 <귀족사회>를 만들어 버립니다.

특히, 북에서 내려온 동진 초기의 귀족들은 단순한 귀족이라기 보다 <호족출신의 무장>들이 많았습니다. 삼국시대와 위, 서진을 거치며 전란에서 살아남은 호족들이 점차 귀족화하는 단계가 이 시기였던 것이지요. 북래 호족들은 중앙관직과 대토지를 독점하면서 그들만의 증명서와 호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자강 이남의 토착귀족들을 <오랑캐와 같은 지역에 사는 한족>으로 경멸하였습니다.

2. 동진시대 : 드디어 남방의 경제력이 북방을 능가하다.

이들 북래 귀족이 내려오면서 사회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가장 큰 변화는 북방의 선진적 농법이 강남 양자강 지역에 전수되면서 강남 농법이 강북을 능가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원래 은, 주 시대 중국은 화북지방만이 중화로 인정받았고, 농토로서 농사짓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중원이라는 문명>이 성립되기에 황하유역의 황토가 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황하의 황토는 석기로도 개발이 가능하지만, 양자강 이남의 습한 지역은 석기로는 도저히 개간할 수 없었죠. 따라서 은, 주 시기의 <중원>이라는 개념은 황하강 유역입니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 철기의 확대로 <회수>를 경계로 하여 양자강 유역이 개발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등장한 나라가 춘추 5패와 전국 7웅에 속한 초, 오, 월의 강남 국가들입니다. 비로소 이 시기에 강남이 중국 <중원> 역사에 편입됩니다. 하지만, 이 때 강남의 경제력은 강북에 비해 너무 초라했죠.

이 강남이 강북수준으로 개발되는 계기가 삼국시대 손권의 오나라가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오는 강남의 특유 기후와 양자강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강남을 곡창지대로 만들려고 하였고, 양자강 수운을 통하여 내륙 교통의 요지로서 국력을 키우려고 하였습니다. 특히 삼국지를 읽다보면 그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오는 강남을, 촉은 관중과 성도 일대의 개발에 노력하였더군요. 하지만, 촉의 시대 성도와 남만지역은 아직도 미개발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강남의 개발은 바로, 동진시대 <북래귀족>이 내려오면서 강북과 대등하게 발전합니다. 북래귀족들은 호족출신으로 대농장 보유의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호족의 소유물인 객, 고리, 문호, 노비 등의 가솔들을 이용하여 엄청난 강남 땅을 개간하고 대토지 사유화를 실현합니다.

강남은 원래 좋은 기후조건과 비옥한 농경지였고, 후한이래의 정치적 혼란에서도 소외된 지역이었습니다. 북래귀족이 내려오면서 가져온 선진기술이 합쳐지자 강남은 엄청나게 발전합니다. 실제, 이후 수-당을 거쳐 송대에는 강북보다 강남의 경제력이 2-3배 앞서나가게 됩니다.

원래 강남 농법은 들판에 불을 지른 후 물을 대는 화경수누법을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북래귀족들은 철제 쟁기 등을 활용하여 땅을 깊게 갈아 엎어서 농사를 짓는 <심경세작법>을 실시합니다. 이 방법은 지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도 농사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으로 강남은 이제 비옥한 쌀 농사지대로 전환하여 훗날 <강남 델타지대>를 형성하는 근간으로 자리잡습니다. 이후 남북조를 통합한 수문제와 양제는 이 강남의 경제력을 너무도 탐내어 엄청난 대운하를 건설하여 강남-강북을 연결하였습니다.

그 결과 무리한 토목공사로 국가 멸망을 초래하기도 하는데, 수의 이 대운하 공사로 이후 당 제국은 강남 경제력을 바탕으로 당 후기의 혼란기에서 오랫동안 버티게 됩니다. 또 강남의 경제력은 당 말기 형세호라는 새로운 계급을 탄생시키기도 하며, 중국 사회에서 사대부라는 지식인 지주층이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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