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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의 화북 통일

이번 장에서는 남조와 대비하여 북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북조 정권은 5호 16국의 혼란기를 끝낸 뒤, 북위가 통일하게 됩니다. 실제 북조를 통일할 수 있었던 기반을 마련한 나라는 저족이 세운 <전진>이었습니다. 전진의 부견은 강력한 군사력과 유목민족의 기마전술을 융합하여 북조 뿐 아니라, 중국 전역을 통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창기 유목민족정권의 한계라고 할까요? 전진은 전술상의 큰 맹점으로 <비수의 전투>에서 남조의 유유에게 크게 패한 뒤 몰락하고 맙니다. 결국 북조를 통일한 것은 선비족의 국가인 북위였습니다. 이 때가 남조의 송문제 시기인 439년이었죠. 이 때부터를 북조(북위) vs 남조(송-제-양-진)이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라고 합니다.

1. 북위의 태조 도무제의 건국

북위는 서진 시대에 탁발부라고 불리는 선비부족에서 기원한 국가입니다. 이 탁발부는 가장 강력한 북조 국가인 전진의 부견에게 복속당하였으나, 전진이 몰락한 뒤 도무제가 <위>를 건국하면서 선비족 국가로 재기하였습니다.

위의 도무제가 국가를 건립한 시기는 아직 북방에서 미약한 부족 국가 수준이었습니다. 북위의 도무제는 미약한 선비국가를 키우기 위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흉노, 저족, 강족 등 이민족들이 북조에서 내노라 하는 국가들을 건설하였지만, 결국 몰락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도무제는 앞선 이민족 국가들의 흥망에서 답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것은 유목적 풍습 때문이었습니다. 농경민은 토지에 정착하여 국가에 안정적인 조세원으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기마민족은 전쟁에 있어서는 유리하지만, 국가를 세우고 수성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불리한 민족이었습니다. 도무제는 결심합니다. 북방민족의 유목적 특징인 기마민족의 전통을 과감히 버리고 농경사회로 전환하기로 말이죠.

2. 중국식 율령체제를 시도하다

도무제는 제일 먼저 <중국식 농경사회로의 전환>을 시도합니다. 일단, 선비족의 유목사회 풍습을 과감히 버리고, 모든 부족을 정착시키는 것에 주력하였습니다. 선비족의 부락민들은 북위의 수도 근처로 모아 땅을 나눠주고, 거주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부락민을 지배하는 유목민족식 호장 제도를 없애 버리고, 모든 부락민들을 호구로 나눠 평등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부락민들이 정착을 하면서 많은 토지를 개간하게 되고, 개간한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들은 모두 둔전민으로 편제됩니다. 둔전민은 평소에는 농업에 종사하지만, 전쟁시에는 바로 전사로 투입될 수 있도록 훈련도 병행합니다. 중국식 부병제도를 유목사회에 접목한 것이지요.

도무제의 획기적인 유목사회 전환책은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제 북위는 화북지방을 통일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였고, 훗날 <효문제>가 중국식 한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로서 북위는 중국식 율령체제를 갖춘 국가로서 다른 <5호>국가들과는 질적으로 차별된 국가체제를 마련합니다. 또, 북위가 중국체제를 접목하여 국가를 운영함으로서 진정한 <호-한 체제>가 완성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3. 도무제의 후예들은 북방 정복을 완성하다.

이제 도무제의 후예들은 도무제의 강력한 부병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가 연전연승을 거두게 됩니다. 타 북방 민족 국가들이 유목적 성향을 버리지 못한 것에 비해, 부족제를 탈피하고 국민개병주의를 택한 북위는 주변 민족 국가들을 차례로 점령합니다. 탁발사, 탁발도와 같은 선비의 용감한 전사왕들은 결국 화북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고, 중국 남조마저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북위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부족제적 유목체제를 중국식 황제지배체제(제민지배체제)로 전환하고, 중국 사회에 빨리 적응하여 <한족>들이 선비 국가에 대한 거부감을 적게 가지도록 유도했기 때문일 것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한화정책>은 문제점도 많았습니다. 급속한 한화정책으로 선비족은 유목민족의 기상을 잃어 버리고 너무 중국식으로 동화되어 버리게 되는 점이 첫 번재입니다. 한족들이 선비족을 후진문화를 가진 민족이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 무력으로 북방을 통일했다는 인식을 갖게 되어 민족적 갈등이 심해지고, 선비족과 한인 중 어느 쪽이 우월한가를 놓고 알게 모르게 갈등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이 갈등은 효문제의 한화정책이 완성된 시점부터 비롯되어, 끊임없이 북위정권의 약점으로 남습니다. 실제 북위정권이 몰락하게 된 것도 선비족과 한인간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노골화된 시기와 일치합니다.

그럼 다음장에서는 북위하면 빼놓을 수 없는 <효문제>를 포스트로 자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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