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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사조영웅전에 대한 분석

사조영웅전에 대한 분석

원문 출처 : http://cafe.naver.com/noblood.cafe

놀랍다는 말밖에 안나오는 군요. 이렇게 까지 소설을 정확히 분석한다면, 정말 여러번 읽은 분 같습니다. 저도 사조영웅전 여러번 읽었지만, 못 따라 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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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이 발표되자, 김용의 '무림지존(武林至尊)'의 지위가 진정으로 확립되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김대협(金大俠)'이 무협 소설계의 '진명천자(眞命天子)'임을 공인하게 되었다. 김용의 모든 작품 중에서 <<사조영웅전>>은 그 영향력이 가장 크고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이 이토록 거대하고 광활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까닭은 당연한 말이지만 행운에 힘입은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독자와 비평가들은 쉽게 다음과 같은 원인을 종합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는 그 줄거리가 곡절이 많고 생동감이 흘러 넘치기 때문이며, 두번째로는 인물들의 개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고, 세번째로는 문장이 고아하면서도 치밀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떤 소설이든지 이상의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면 당연히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한 부의 무협 소설이 이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뜻밖의 기쁨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당연히 아낌없이 최고로 추종될 것이다.

물론 이 세가지가 <<사조영웅전>>의 선명한 우수성과 특색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독자들을 사로잡았다고 보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다. 게다가 이 세가지가 반드시 이 소설의 진정한 가치인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이 진정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하는 요소는 위의 이 세가지 뿐만이 아니라, 이 세가지 외에 근본적인 한가지가 더 있어서 그러하니, 그것은 바로 강호 영웅들을 위해 지은 <<춘추(春秋)>>이기 때문이다.

<춘추(春秋)>>는 역사서로, 유가(儒家)의 저명한 '십삼경(十三經)' 가운데 하나이다. 공자(孔子)가 편집하고 교정을 보아서 장엄하고 고아하고 엄숙한 동시에 미언대의(微言大義)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사조영웅전>>, 일명 <<대막영웅전(大漠英雄傳)>>은 강호의 영웅들과, 초야의 호걸들과, 녹림의 호한(好漢)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강호의 은혜와 원수, 복수 등에 대해 쓴 '무협 소설'이며, 협의를 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위급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에 대해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무협'에 대한 일을 쓰고 있으니 어찌 유가의 정통 경전이자 진실한 역사서인 '춘추'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사조영웅전>>를 사서(史書)의 차원에서 <<춘추>>와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결국 한 권의 무협 소설일 뿐이며, 무협 소설이기 때문에 '천하를 태형하게 하고 백성들을 편하게 한다'는 것을 가슴속의 포부와 가치 기준으로 삼아 장엄하고 깊은 시름을 담을 수 있었으며, 또 기이하고 곡절한 표현과 고아하고 치밀한 문장이 어우러져 글자 사이마다 '미언(微言)' 속에서 '대의(大義)'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점에서 <<춘추>>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이다.

주인공과 기타 주요 인물들의 품평 기준 역시 작품 자체에서 얻어지고 있다. 따라서 <<사조영웅전>>은 무협 소설 중에서 상품(上品)이요 정격(正格)이라 말할 수 있으며, 김용 무협 소설의 '경전(經典)' 가운데 하나라고도 칭할 수 있겠다. 믿지 못하겠다면 이제부터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자.

一. 사조논검(射雕論劍)과 대막화산(大漠華山)

<사조영웅전>>은 일명 <<대막영웅전>>이다. 그 이름 때문에 쉽게 사람들은 이 책이 몽고의 초원과 사막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부언하자면, 몽고의 영웅 테무진(鐵木眞), 곧 징기스칸(成吉思汗)의 이야기를 썼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왜냐하면 징기스칸은 바로 역사상 유명한 '활의 명수' 이자 '사막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는 말이 있다.

@ 징기스칸은 활 쏘는 일만을 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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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시대 역사의 거인 모택동의 <<심원춘(沁園春).설(雪)>>에 나오는 말이다. 징기스칸이라는 고대의 영웅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정평(定評)이라 할 수 있다. 동시에 또한 이 <<사조영웅전>>의 성격을 규정해 주고, 아주 믿을 만한 근거들을 제공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책 중의 징기스칸(테무진)의 형상과 어려운 창업(創業)과 전투 속의 영웅의 본색 역시 아주 진지하고 세밀하고 다채롭게 쓰여져 있다.

책의 결말 부분에는 임종을 맞는 징기스칸에 대한 흥미 있는 장면이 있다.

징기스칸이 말 고삐를 잡고 사방을 둘러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곽정(郭靖)아, 역사상 내가 건립한 대국에 비교할 만한 나라는 없었다. 나라의 중심이 아주 확장되어 동서남북이 모두 일 년은 걸려야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디 말해 보아라. 고금의 영웅 중에 그 누가 나보다 뛰어날 수 있겠느냐?"

 곽정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말했다.

"대한의 뛰어난 무공은 아무도 따를 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 한 분의 위업을 떨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백골이 쌓였으며, 얼마나 많은 고아와 과부의 눈물이 흘려졌는지 모릅니다."

징기스칸은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채찍을 들어 곽정의 머리를 내려치려고 했다. 그러나 곽정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자 허공에 들어올렸던 채찍을 거두며 한탄했다.

"아, 너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냐?"

징기스칸은 담담히 웃었으나 안색은 노랗게 되어 탄식하며 말했다.

"내 좌우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너처럼 대담하게 감히 내게 진심을 말하는 자가 없었다."

그는 계속 눈살을 찌푸린 채 오만한 빛을 띄면서 시원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일생 동안 천하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무수한 나라를 멸망시켰지만 네 말대로라면 영웅이라 할 수도 없다는 게로구나? 허, 정말로 어린애의 말이로군!"

말 엉덩이에 채찍을 때리며 말을 달려 돌아왔다.

그날 밤 징기스칸은 금빛 막사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직전, 입으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웅, 영웅..."

마음 속으로 계속 곽정의 그 말을 되뇌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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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할 여지 없지 징기스칸은 살아서는 인걸(人傑)이요, 죽어서도 영웅인 불요불굴(不撓不掘)의 대 호걸이었다.

당연히, 재치 있는 독자라면 한번에 <<사조영웅전>>의 진짜 주인공이 징기스칸이 아니라 나이 어린 소년 영웅 곽정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사조(射雕:활의 명수)'라느니 '대막(大漠:사막)'이라느니 하는 것들은 바로 곽정의 인생 역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곽정은 어려서 몽고의 사막에서 자라났고, 활의 명수인 철별(哲別)이라는 스승 밑에서 무예를 단련했기 때문에 그 역시 불요불굴(不撓不掘)의 '사조영웅(射雕英雄:활의 영웅)'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제5회 <<활쏘기(彎弓射雕)>>에 보면, 테무진이 먼저 한 마리를 쏘아 맞혔고, 그 아들인 와활대(窩闊台)와 타뢰(拖雷)도 각각 한 마리씩 맞췄다. 그러나 곽정 혼자 '화살 하나로 둘을 쏘아' 두 마리를 떨어뜨린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사조영웅(射雕英雄)은 의심할 여지 없이 곽정인 것이다.

곽정은 사막에서 자라났고, 또 활의 영웅이므로, 곽정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소설은 자연히 <<사조영웅전>> 혹은 <<대막영웅전>>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다 하겠다.

그러나, 이 작품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이름은 <<논검영웅전(論劍英雄傳)>> 혹은 <<화산영웅전(華山英雄傳)>>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 책의 제6회의 앞부분을 보면 곽정이 여섯 명의 사부를 따라 몽고의 사막에서 중원 본토로 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바로 진정한 소설의 시작 부분이다.

'대막(사막)'에서의 생활과 '사조(射雕:활쏘기)' 장면은 그저 기다란 도입 부분에 불과하다. 그때의 곽정은 진정한 의미로는 아직 독립적으로 강호에 들어오지도 못했고, 그의 영웅으로써의 인생 역정을 시작하지도 않았었다.

중원의 길을 밟은 후부터 곽정의 전설 같은 인생 역정이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중원 강호의 영웅 호한들 중 '절정고수(絶頂高手)'는 바로 화산에서 무예를 논한(華山論劍) '오절(五絶)', 즉 동사(東邪), 서독(西毒), 남제(南帝), 북개(北乞), 중신통(中神通)이었다.

당시의 '화산 1차 논검'에서 '천하제일의 고수'의 자리는 전진교주(全眞敎主) '중신통' 왕중양(王重陽)이 차지했었으나, 곽정이 중원에 들어올 때 왕중양은 이미 세상을 떠났을 때였다.

나머지 동사, 서독, 남제, 북개는 제각기 장단점을 지니고 있어서 당시 사대(四大) 절정 고수이자 무학 종사(宗師)의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이 네 사람 중에서 '남제' 단지흥(段智興)은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기 때문에 '일등대사(一燈大師)'라고도 불리고 있었으므로 남제는 이미 '남승(南僧)'이 되었다.

<<사조영웅전>>의 주요한 줄거리는 곽정이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이라는 '화산오절(華山五絶)' 및 그 문파의 사람들과의 만남과 얽히고 섥히는 은원 관계에 있다.

그는 동사 황약사(黃葯師)의 딸인 황용(黃蓉)과 강호에서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서독 구양봉(歐陽鋒)의 조카인 구양극(歐陽克)이 하필이면 또 황용에게 반하여, 이로 인해 구양극과 곽정, 그리고 황용 세 사람 사이의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힌다. 그리고 곽정의 사부인 '강남칠괴(江南七怪)'와 황약사의 제자인 '흑풍쌍살(黑風雙煞)' 사이는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이다. 또한 곽정이 황용과 만날 때 그는 이미 징기스칸의 딸인 화쟁(華箏)과 혼인 약속을 한 후였다. 이렇게 그 사이의 관계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다행히 곽정은 황용으로 인해 북개 홍칠공(洪七公)을 사부로 모시고 남승 '일등대사'에게 구해지고, '중신통'의 제자인 '전진칠자(全眞七子)'와도 두터운 교분을 쌓게 된다. 그러니 온갖 정과 원한이 얽히고 섥혀 은원 관계가 아주 복잡다단하다.

얼핏 보면 정말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것 같은데다가,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해 보라면, 뒤죽박죽이 되어 말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엄청나게 복잡한 곽정의 이 인생 역정은 결국 '화산논검'이라는 무림의 옛 일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다.

'화산논검'이라는 이 무림의 옛 사건과, 그 옛 일에 얽혀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제자들이 시종 책 전체를 뒤덮고 있으며, 엄연히 곽정의 운명과 그의 인생 길을 지배하고 있다.

만약 곽정의 운명의 수수께끼를 진정코 풀어보려고 한다면, 그 전에 '화산논검'과 '화산영웅'이라는 이 '무림의 옛 사건'에 포함된 '운명적인' 오묘함을 먼저 풀어 보아야만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 책의 가장 마지막 회에는 또다시 '화산논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천하의 고수들이 화산에 모여 25년 전의 옛 일을 다시 재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곽정은 이미 당시 무림의 절정 고수들의 항렬에 진중히 올라 서 있다.

그러므로 '화산논검' 및 '화산영웅'은 실제로는 바로 이 소설의 진정된 중심 줄거리이자 서술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이름은 <<사조영웅전>> 혹은 <<대막영웅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논검영웅전>> 혹은 <<화산영웅전>>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화산논검'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이 '화산영웅전' 안에는 대체 어떠한 심오한 비밀이 내포되어 있는가?

얼핏 보면, '화산논검'의 원인은 그저 무림의 기서(奇書)인 <<구음진경(九陰眞經)>>을 차지하기 위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화산논검' 역시 그저 '무공'의 고하를 가리는 시합인 것처럼 보인다. 책에서는 7일 낮, 7일 밤의 시합을 거쳐 '중신통' 왕중양이 마침내 '무공의 천하 제일인'이라는 칭호를 얻고, 또 <<구음진경>>도 손에 넣었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사조영웅전>> 안에 쓰여진 '화산논검'과 그 '화산영웅'은 단순히 '무공'의 고하를 가리는 시합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린 것은 사실 인격과 포부와 덕성과 도량의 고하 여부였다.

이미 세상을 떠난 왕중양이 무공의 천하 제일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그의 '도가정종(道家正宗)의 내공(內功)'과 그 초인적이고 탁월한 무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위대한 인격과 웅대한 포부로 인해서였다. 이것은 <<사조영웅전>>에서 은근히 세번 묘사되고 있다.

첫번째는 그가 <<구음진경>>을 얻은 후에 그것을 연마하지 않고 숨겨 두었다고 했다. 이것은 그가 이 무림의 기서를 얻으려고 했던 이유가 결코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란한 무림계를 안정시키고자 했기 때문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서독 구양봉의 천박하고 부끄럼 없는 공공연한 공격, 암암리의 중상모략에 비교할 때나, 혹은 동사 황약사가 부부가 한패가 되어 노완동(老頑童) 주백통(周伯通)을 속여 반권의 진경(眞經)을 얻는 것 등등에 비교해 볼 때, 결코 함께 논해질 수 없는 고차원의 행동이었다.

두번째로 왕중양이 세상을 떠날 때 그의 '선천공(先天功)'을 남제 단지흥에게 전수하여 서독 구양봉의 무공을 막게 했으니, 이런 어질고 자애로운 마음은 사람들의 존경을 불러 일으킬만한 행동이라 하겠다.

세번째는 주백통의 입을 빌어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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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도리는 원래 아주 자명한 것이었는데도 난 아무리 해도 깨닫질 못하고 있었단 말이야. 사형께서 옛날 나에게 말씀하시길, 난 무예를 배우는데 천성적으로 총명한 자질이 있고, 나 스스로도 좋아하긴 하지만, 첫째로 너무 빠져들고, 둘째로 구세제인(救世濟人)하려는 포부가 부족하니, 설사 죽을 때까지 열심히 수련을 쌓는다 해도 결국 최고의 경지에까지는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지. 당시에는 난 그 말을 듣고서도 믿지 않으며 무예를 배우는 건 권법이나 병기에 대한 수련을 쌓으면 그만이지, 도량이니 견식이니 하는게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다네. 하지만 이십여 년이 흐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믿게 되었지. 아우, 자네는 마음이 성실하고, 착하면서, 포부가 넓으니, 사형이 돌아가신게 유감일 뿐이네. 만약 살아 계셔서 그가 자네를 보았다면 분명 아주 기뻐하면서 일신의 무공을 전부 자네에게 전수해 주셨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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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왕중양은 포부와 견식(見識)으로 인해 최고의 무공을 익힐 수 있었고 '무공의 천하 제일인'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지, 절대로 행운에 힙입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사조삼부작'의 제2부인 <<신조협려(神雕俠侶)>>에서 우리는 왕중양의 내력과 그 사람됨에 대해 더욱 자세히 볼 수 있다.

그는 어렸을 때 학문을 먼저 배운 뒤 후에 무공을 연마하고 강호를 종횡무진 누빈 영웅 호한으로, 금나라 병사가 남침하여 국토를 피폐하게 만들고 백성들을 살상하는 것에 분노하여 금나라 병사들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중원 지방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후에 금나라의 세력이 너무 강해져 싸우면 싸우는 대로 패배하자, 이에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그러나 출가를 했어도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포부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기에 강호의 '천하 제일'이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중신통' 외의 네 명의 고수인 동사, 서독, 남제, 북개는 어떠한가?

<<사조영웅전>>의 제39회 <<선악과 시비를 가리다(是非善惡)>> 중에서 구처기(丘處機)가 곽정에게 아주 명백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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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요 며칠동안 계속 생각하던 의문과, 무예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에 대한 의문점 등에 대해 말한 뒤 마지막으로 탄식하며 말했다.

"제자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사람들과 싸우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동안 배운 무공을 아무리 해도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오랜 습관을 버릴 수가 없어 조심하지 못하고 있다가 또 한 사람을 넘어뜨려 머리가 깨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구처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곽정아,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란다. 수십 년 전, 무림의 비급인 구음진경이 세상에 나오자 얼마나 많은 강호의 호걸들이 이로 인해 죽음의 화를 입었는지 모른다. 후에 화산의 논검에서 내 스승이신 중양진인께서 군웅들 중 가장 뛰어나 그 진경을 차지하셨다. 그분은 본래 이것을 없애 버리고자 하셨으나, 훗날 말씀하시길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뒤집어 버릴 수도 있으니 복이든 화든 모두 그 사람이 어떻게 쓰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마침내 이 경서를 보존하기로 하신 거지. 천하의 문재(文才)나 무예, 온갖 좋은 병기들도 모두 사람들을 이롭게 하지 않는 것이 없는 반면, 또한 세상을 해롭게 하지 않은 것이 없다. 네가 오로지 착한 마음만 지닐 수 있다면 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은 법인데, 무엇 때문에 잊어버리려고 하는 게냐?"

곽정이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도장님의 말씀이 비록 옳기는 하지만, 지금의 세상을 생각해 보면, 강호의 호한들은 모두 동사, 서독, 남제, 북개의 네 사람의 무공이 가장 높다고 말하고 있는데, 제자가 자세히 생각해 보니 이 네 분의 선배님들의 무공 수준에 도달하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렵기만 한 일이요, 또 설사 그렇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저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무슨 좋은 점이 있겠습니까?"

구처기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무겁게 말했다.

"황약사는 괴퍅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대한 의분과 말하기 힘든 마음속의 고통을 지니고 있겠지만, 그는 항상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지 결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지는 않아서 나도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질 않는다. 구양봉은 워낙 못된 인간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단황야(段皇爺)는 인자하고 도량이 넓으신 분이라 나라를 다스릴 때도 백성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셨지만, 그 분은 자신의 사소한 은혜와 원한 때문에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고 있으니 대인대용(大人大勇)한 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직 한 분 홍칠공 홍방주(洪幇主)님만큼은 협의가 있고 의리를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곤란함과 어려움을 도와 주고 있으니 나는 그분을 아주 존경한다. 화산의 2차 논검이 곧 있을 텐데 설사 다른 사람들이 무공으로 홍방주님을 이긴다 해도 천하의 호걸들은 모두 홍방주님을 무림의 제일인자로 모실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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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처기는 비록 무공은 일류 고수들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 견식(見識)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서, 과연 왕중양의 의발제자 다웠다.

위의 이 대화는 실제로 이 '화산논검'의 진상을 잘 설명해 주는데다가 그 이야기의 중심 내용을 잘 요약한 것이다.

화산은 오악(五嶽) 중에서 서악(西嶽)이라고 불리는 산으로 옛 사람들은 오악을 오경(五經)에 비유하여 화산을 <<춘추>>와 같다고 했다. 위엄 있고 장중한 것이 천하 명산 중에서 다른 어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험한 산이다.

그런 까닭에 '화산논검'의 영웅들에 대한 고사(故事)를 적은 이 <<사조영웅전>>은 바로 장중하고 고아하면서, 또 심각하고 엄숙한 <<강호춘추(江湖春秋)>>인 것이다. 작자가 쓴 이 <<사조영웅전>>은 실제로 강호의 영웅과 재야의 인사들과 민간의 호걸을 위해 쓴 역사서 <<춘추>>인 것이다.

이 <<강호춘추>>는 '화산논검'의 위에서 말한 5대 고수들의 탁월한 무공에 대해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의 서로 다른 인격과 개성, 포부와 의지 및 인생에 있어서의 선택에 대해 더욱 주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소설에는 당시 '화산논검'에 미처 참석해지 못했던 초일류 고수인 '철장수상표(鐵掌水上漂)' 구천인과 '노완동' 주백통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두 사람은 무공으로 말하자면, 충분히 일류 고수의 수준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인품이나 포부가 부족한 점이 있으니, '노완동' 주백통은 무예를 배우는 일에만 정신없이 빠져들고, 가슴속에 아무런 큰 뜻도 품지 않고, 그저 비정상적으로 세상사에 지나치게 어두우므로 논할 필요가 없다. 구천인은 더더욱 스스로 타락하는 것을 즐기는 인물로, 책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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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칠공이 또 말했다.

"구천인, 너의 철장방(鐵掌幇)의 이전 방주이신 상관검남(上官劍南)은 얼마나 훌륭한 영웅이셨느냐. 그 분은 일생 동안 오직 나라에 충성만 하다가 돌아가셨다. 또 너의 사부가 걸출한 호한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더란 말이냐? 너는 네 사부의 뒤를 이어 방주의 자리를 맡고서는 금나라와 야합해 적에게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하니, 죽어 무슨 낯으로 상관 방주님과 네 사부를 뵈려는 거냐? 네가 오늘 화산에 올라온 것은 무공 천하 제일의 명성을 차지하겠다는 망상 때문인 모양인데 너의 무공이 가장 뛰어나지도 못하려니와 설혹 네가 최고라 하더라도, 천하의 영웅들이 너 같은 매국노에게 굴복할 것 같으냐?"

이 말을 듣고 구천인은 얼빠진 듯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수십 년 동안의 지난 일이 하나 하나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부의 평상시의 가르침, 후에 철장방의 방주가 될 때 사부는 병상에 누워 방규(幇規)와 유훈을 전해주면서, 애국과 애민을 어떻게 하라고 간곡히 일러 주었었다. 그런데 자신의 나이가 점점 많아지고 무공이 강해질수록 본방의 충의보국하라던 교훈에 점점 위배되는 짓만 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렇게 되자 철장방은 점점 타락해 갔고, 충의를 아끼는 사람들은 본방을 떠났으며 간악한 무리들만 모여 명예롭던 철장방은 더러운 도둑의 소굴로 변해 결국 갖은 못된 짓만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고개를 드니 하늘에 걸린 명월이 보였고, 고개를 숙이니 홍칠공의 두 눈동자가 늠름한 위엄을 담은 채 준엄하게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문득 일생 동안 자신이 한 일을 생각하니 어느 것 하나 천지 자연의 이치에 위배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도 모르게 전신에 식은 땀이 비오듯 흘렀다. 그가 탄식하며 말했다.

"홍방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세우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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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칠자', '강남칠괴', '흑풍쌍살'을 비롯한 '동사의 제자들', '어초경독(漁樵耕讀)' 등등의 무림의 호한(好漢)과 호걸(豪傑)들은 혹은 바르고, 혹은 사악하며, 혹은 선하고, 혹은 악하고, 혹은 멍청하고, 혹은 괴이하다. 그들보다 못한 <<춘추>>의 여러 등장 인물들 역시 어느 누구 하나 이 '춘추'의 '역사의 붓'의 평가를 받지 않은 자가 없다.

또한 이 소설은 결코 무슨 무공의 고하를 써낸 것이 아니라 이야기 중에 강호 군웅들의 선악의 옳고 그름과 그 인격의 높고 낮음을 선명히 부각시키는데 중심을 두고 있다.

따라서 화산에서 무예의 고하를 논했다는 '화산논검'은 실제로는 무예와 인품을 논한 것이다. 그런 고로 '화산영웅전'은 실제로는 <<춘추영웅보(春秋英雄譜)>>가 된다. 비록 강호와 재야의 이야기에 대해 쓴 것이긴 하지만, 그 엄숙하고 장엄한 내용과 심각하면서도 정확한 묘사는 그 어느 것 하나 <<춘추>>의 엄숙하고 장엄함과 다를 것이 없다 하겠다.

二. 위국위민(爲國爲民)은 협(俠)의 근본

<<사조영웅전>>이든, <<대막영웅전>>이든, 혹은 <<논검영웅전>>이든 <<화산춘추>>이든 그 주인공은 곽정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소설은 젊은 주인공 곽정의 곡절 많고 기이한 강호에서의 인생 역정을 서술한 것이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이 책의 마지막 회인 <<화산논검>>은 곽정이 마침내 '제2차 화산논검'의 영웅 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화산의 정상에 오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곽정이 화산에 오르는 것은 그저 그의 이야기 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책의 주지(主旨)를 담은 부분이다. 어째서 다른 산악이나 명산 대천(名山大川)이 아닌 '화산'에서 무예의 고하를 가렸을까?

여기에는 <<춘추>>와 같은 선인들의 비유 외에도 또 다른 전문적인 이야기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진박노조(陳搏老祖)의 고사(故事)이다.

이 진박노조는 당말(唐末)에 살았던 인물로, 양(梁), 당(唐), 진(晉), 한(漢), 주(周) 5대를 거치면서 매번 왕조가 바뀌고 성씨가 바뀌는 것을 보고 항상 근심 걱정하며 은거 생활을 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한번 잠이 들면 1년을 잔다고 하는데 사실 그는 천하가 혼란스럽고 백성들이 고통받는 것을 걱정하여 집 밖을 나가지 않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송(宋) 태조(太祖)가 등극했다는 소식을 듣자 박장대소하며 나귀 등에서 굴러 떨어질 정도로 기뻐하며 말하길 '이제서야 천하가 태평해 지겠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송 태조는 인자하고 백성을 매우 사랑하니 천하의 백성들은 확실히 그의 등극으로 편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전해 오는 얘기로 송 태조와 희이선생(希夷先生:진박노조)이 내기 바둑을 두며 화산(華山)을 걸었는데, 송 태조가 내기에서 지자 그 후부터 화산의 모든 토지는 어떤 세금도 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바로 이 화산이 원래 천하의 혼란스러움과 백성들의 고통을 걱정하던 사람이 살던 곳이니, 천하의 영웅들이 여기에 와서 '검(무예)를 논하는' 것에는 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으로, 마땅히 이 도가(道家)의 성지(聖地)를 더럽혀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당시의 진박노조가 비록 천하를 걱정했다고는 하나, 그저 손을 빼고 은거할 뿐이었으니 전혀 본받을 바가 없다. 바로 책 중에서 구처기가 말한 <몽고가 북방에서 딴 생각을 품고 남침하는데도 송나라 군신들은 멍청하고 어리석어 천하의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도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남아들은 그 '못한' 일을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희이선생은 비록 고인(高人)이기는 했으나 세상을 걱정하면서도 손을 빼고 은거만 하고 있었으니, 인(仁)과 의(義)를 지닌 사람이라면 취할 바가 못 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산논검에 참가하여 황약사, 홍칠공과 각각 3백 초씩 싸우고 패하지 않았을 뿐이니 사실 '천하 제일 고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제2차 '화산논검'의 결과로만 말하자면, 오히려 '구음진경을 거꾸로 연마한' 서독 구양봉(거꾸로 연마했다는 것은 구양봉이 구음진경을 연마한 방법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양봉의 인품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 결과는 자못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것이요, 무슨 '선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일반적인 대단원의 결말이 아닌 것이다.

이 결과는 확실히 사람들로 하여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사(邪)는 정(正)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여기에서는 적합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한 천하의 대세가 바로 이와 마찬가지로 '정(正)이 사(邪)를 이길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대 영웅과 대 협객이란 무공의 고강함으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요, 그 인품과 도량 및 행동거지가 어떠한지,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행한다'는 것은 바로 공자(孔子)가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바로 중국 전통에 있어서의 '유가(儒家) 대협(大俠)'의 최고의 이상적 상태인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회의 이름이 비록 <<화산논검>>이기는 하지만, 그 마지막 부분은 곽정, 황용, 동사, 북개가 함께 화산을 내려오던 중 화쟁공주를 만나 몽고군이 양양성(襄陽城)을 공격하리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곽정과 황용이 결국 동사 황약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양양을 구하러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것이 바로 '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행한다'는 '대협(大俠)'의 행동거지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 희이선생 진박노조보다 훨씬 나은 점이다. 또한 의심할 여지 없이 동사, 서독, 남제, 북개 등 절세의 고수들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옛날의 왕중양만이 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보면 '화산의 정상'의 진정한 '천하제일인'은 당연히 곽정일 수밖에 없다. 비록 그의 무공이 아직 최고의 수준에 이르지는 못하여 황약사나 홍칠공 등의 절세 고수들과 함께 거론하기에는 좀 부족하다고는 하나, 그의 포부와 인품, 그 도량과 인격은 이미 그 고인(高人)들을 뛰어 넘어 '화산의 정상'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양양성을 구하는 것'은 마치 '화산논검'과 상관 없는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로 '화산논검'의 또 다른, 그러면서도 더욱 본질적인 형식인 것이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사조영웅전>>의 주인공은 마땅히 곽정과 양강(楊康) 두 사람이어야 한다.

이 소설의 동기는 전진도사(全眞道士) 구처기와 양철심(楊鐵心), 곽소천(郭嘯天) 세 사람이 싸움 끝에 정이 들고, 또 우연히 양부인과 곽부인이 모두 생명을 잉태하고 있어서, 구처기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데서 시작된다.

구처기는 앞으로 세상에 나올 어린 주인공들에게 각각 '곽정'과 '양강'라는 이름을 지어주니, '정강(靖康)'이라는 두 글자의 이름으로 '정강의 치욕'을 잊지 말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곽정과 양강 두 사람의 '이름'은 <<사조영웅전>>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 다음으로, 구처기는 '강남칠괴'와 함께 양씨와 곽씨의 유복자를 찾아 무예를 가르쳐주고 18년 뒤에 가흥에서 다시 만나 누구의 무공이 높은지 겨루자는 내기를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강남칠괴는 멀리 사막까지 가서 곽정에게 무예를 가르치게 되고, 구처기는 양강을 제자로 삼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곽정과 양강 두 사람은 이 소설의 공동 주인공이다.

세상 일이란 항상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인지라 사람들의 의표를 벗어나는 일이 많은 법이다.

양강의 어머니인 포석약(包惜弱)은 당시 착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대금국의 왕인 완안홍렬(完顔洪烈)의 생명을 구해 주게 되고, 이로 인해 크나큰 화근을 만들게 된다. 완안홍렬은 포석약에 의해 생명을 건진 뒤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잊지 못한다.

양씨와 곽씨 두 집안을 망하게 한 화근은 원래 바로 완안홍렬의 음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포석약은 완안홍렬의 계략에 빠져 남편인 양철심이 죽은 것으로 알고, 후에는 결국 완안홍렬에게 시집가 대금국의 왕비가 되고, 이로 인해 양강은 완안강(完顔康)이 되어 대금국의 '왕자'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양강이라는 인물은 비록 총명하고 영리하기는 하지만, 성실하고 소박하고 말주변이 없는 곽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귀를 탐하고, 인품이 떨어지며 경박한데다가 악행도 많이 저질러 마침내는 제 명에 못 죽고 만다.

양가창법(楊家槍法)의 유일한 계승자요, 당년에 금나라에 항거하던 명장 양재흥(楊再興)의 후예인 이 양강이 뜻밖에도 완안강이라는 대금국의 '왕자'가 된 것은 아마도 운명의 장난일 것이다. 이 운명의 장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씁쓸함을 금치 못하게 한다.

양강의 성격과 인품은 부귀영화나 명예에 있어서, 인정 세태에 대해서, 혼인과 애정의 태도에 있어서 전부 곽정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따라서 '곽정과 양강' 두 사람 중 하나는 화산의 영웅이 되지만, 하나는 철창묘(鐵槍廟)의 원귀(怨鬼)라는 완전히 상반된 길을 걷고 마니, 이 역시 사람들로 하여금 한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구처기와 강남칠괴의 다시 없을 호탕한 내기는 무예를 겨뤄보지도 못한 채 끝났지만, 구처기는 머리를 숙이고 패배를 자인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양강의 인품이 아주 악독하고, 품행도 뒤떨어져서 구처기는 그저 내기에서 졌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담담하게 논하자면 곽정과 양강은 그 인품이나 최종적인 무학 수련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를 보였지만, 그 형상의 의의와 예술적인 가치로 말하자면, 그 형상은 아주 깊이있고 선명하게 부각되어 이 두 사람이 각기 뛰어난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인물의 형상은 모두 대단히 선명하고 또 아주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두 사람을 '같은 길을 걸었으나 다른 종말을 맞은' 점으로 서로 비교해 보면, 이 형상의 의의가 더욱 깊고 선명하게 부각된다.

양강은 자기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일을 하여 부귀 영화, 권력과 명예에 구속되어 마침내 간사하고 악하게 되었으니, 곽정의 착하고 성실한 심성과, 정의와 선을 행하는 태도, 실로 '자아'를 뛰어넘어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걱정하는 마음과 비교할 때 아주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 두 주요 인물에게 중국인들의 인격에 대한 이상적 규범과 가치 판단의 근본적인 규범 및 근거가 집중되어 있다. 양강 같은 사람과 비교해 볼 때, 곽정의 인격 품성이 주는 매력과 심도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어진다.

곽정이라는 이 형상의 본질과 의의는, 그 외적(外的)인 성격과 행동으로 말하자면, 충성스럽고, 성실하고, 순박하고, 포부가 광대하며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하여 '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커다란 의협심을 행하는 데 있고, 내적인 본질로써 말하자면, 바로 중국인들의 '매우 정교한 것은 겉으로는 졸렬하게 보이고, 아주 현명한 사람은 멍청한 것처럼 보인다'는 인생의 경지와 철학적인 이상 및 인생의 규범을 구현한 데 있다.

대만의 학자인 증소욱(曾昭旭) 선생은 <김용이 그린 성(性)과 정(情)의 세계>(<<여러 사람들이 본 김용>> 1권에 실림)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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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곽정은 순박하고 성실한 선천적인 이성을 대표하고 있고, 황용은 활발하고 가벼운 생명의 흐름을 대표하고 있다. 이성은 인간에게 내재한 진정한 중심이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완전하며 시비를 판단할 능력을 지니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도한다. 이성에도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의 차이가 있는데, 선천적인 이성은 순박한 원기(元氣)로 가득한 고로, 그는 시비를 판단함에 있어 절대로 심사숙고하지 않고, 그저 잠시 생각만 해도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문제만으로 말하자면, 이것으로 충분하지만, 사람의 이성이라는 것은 자기 문제 뿐만 아니라 남의 문제에서도 필요하니, 남의 문제에 있어서는 동정심이나, 이해, 용서, 임기응변 등등의 많은 곡절이 있기 마련이어서 더더욱 명석하고 신중한 논리로 헤아려보고 설명해 보아야 실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성이 바로 후천적인 이성이다.(당연히 후천적인 이성은 선천적인 이성에 통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뿌리 없는 꽃잎이 되기 쉽다.) 곽정은 이런 이성을 지니지 못했다. 그는 그저 순수한 성실함을 지녔을 뿐, 겉으로 드러나는 훌륭함은 전혀 지니지를 못했다.

그런 까닭에 표면적으로 보면, 그는 마치 멍청하고 바보스럽게 보여 양강이나 구양극 공자의 총명함과 교활함에는 아주 뒤떨어 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연마한 무공 역시, 강맹(剛猛) 순양(純陽)한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이 위주였다. 하지만 '지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는 말도 있듯이, 그의 이러한 순박함과 모자람은 완전히 자주적일 수 있었다. 그가 처음 홍칠공을 만나 항룡십팔장의 제1초인 '항룡유회(亢龍有悔)'를 배울 때, 그저 단순하고 아무런 기교도 없는 이 일 초로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났지만, 설령 그 때 그의 무공이 높았다 하더라도 그는 열 배의 적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곽정이 선천적인 이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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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맞는 말이다. 곽정의 성실함과 강직함, 순박함과 충성, 우둔함은 과연 총명하고 영리한 황용의 좋은 배필감이다.

<<사조영웅전>>의 곽정과 황용의 사랑 이야기는 이 책 중에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정격(正格)의 사랑'일 뿐만 아니라, 김용의 모든 소설에서 극히 드물게 보이는 행복한 결합이다.

처음 보면, 황용은 총명함과 재치, 박학다식함, 무공과 인품이 모두 그보다 뛰어난데도, 하필이면 첫눈에 우둔하고 정직하기만 한 '멍청이' 곽정에게 반한데다가, 그 첫눈에 반한 정이 계속 변함이 없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심지어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미녀가 추남에게 시집가는 일이라는 등, 황용의 선택을 '아깝다'고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구양극이 풍채도 말쑥하고 멋있는데다가 무공이나 지혜가 어느것 하나 곽정보다 낫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용이 곽정에게 반한 것은 '현명한 눈만이 영웅을 알아보는' 격이었다. 곽정은 인품과 포부가 남달라 '매우 정교한 것은 겉으로는 졸렬하게 보이고, 아주 현명한 사람은 멍청한 것처럼 보인다'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을 뿐 아니라, 최후에는 마침내 화산 논검의 대협(大俠)의 길을 걷게 된다.

이 결합과 그 의의는 작가의 인격에 대한 이상을 표현해 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중국인들의 사랑에 대한 이상을 표현해 준다. 증소욱 선생은 일찌기 이렇게 말한 바 있다.(같은 곳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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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영민하고 지혜로운 생명이 강직한 곽정과 함께 산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작은 일에 있어서 우리는 곽정이 항상 어리석고 우둔한 것을 보게 된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에서 임기응변으로 생명의 새로운 자태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원래 황용의 몫이다. 하지만 일단 커다란 난관을 만나게 되면 곽정이 중심이 되고 황용은 그에게 어떠한 충고도 하지 못하게 된다. 충의나 성실, 도덕적 이상과 같은 이러한 문제의 가치 판단은 본래 선악의 구분이 없는 생명은 알 수 없는 것으로, 깨끗하고 막힘이 없는 자연의 생명만이 이럴 때 제 분수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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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곽정은 충직하고 사랑스럽고, 아주 생동감 넘치며 유머스러워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는 우둔해서 복을 얻고 순박해서 복을 얻는다.

이것은 그의 무공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홍칠공에게서 강양순맹(剛陽純猛)한 항룡십팔장을 배웠는데, 그것이 그의 재능 수준에 아주 적합한, 간단하고도 강맹(剛猛)한 무공이었던 까닭에 곽정과 항룡십팔장은 천생 연분처럼 서로의 장점을 잘 발휘할 수 있었다. 또 곽정은 '강남칠괴'에게서 무예를 익히고 동시에 전진교의 '정종내공(正宗內功)'을 전수받고 다시 홍칠공의 항룡십팔장을 배웠는데, 물론 무예를 배운 것이거니와, 동시에 '사람됨'을 배운 것이기도 했다.

'강남칠괴'의 이름에는 비록 '괴(怪)' 자가 들어가 있지만 그들은 의협심이 강한 인물들로 중대사를 맞았을 때에는 선악의 구분이 아주 분명했다.

마옥(馬鈺)은 '중신통' 왕중양의 수제자로 그 내공 가운데는 왕중양의 대인대용(大仁大勇)한 정신이 깃들여져 있었다. 홍칠공으로 말하면 왕중양이 죽은 후 천하에서 가장 의리있는 사람이었다.

곽정은 스승들로부터 무예를 배움에 있어 아주 적절한 사람들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또 그가 주백통을 만나 그와 결의 형제를 맺은 것 역시 천성이 순수하고 선량한 이들끼리 '의기투합'한 것이었다.

'대막(사막)'이나 '사조(활쏘기)' 등등의 내력은 바로 그의 성격과 아주 막대한 관계를 지닌다. 그 내력들로 인해 그는 기교를 익히지 않고 천성적인 강직함과 진지함, 순박함과 충성심 등의 대협의 성격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곽정이라는 인물 형상에는 선명한 개성과 현실성, 심미적 가치가 깃들어 있으며, 동시에 김용 및 중국 문화의 인격에 대한 이상을 구현하고 있어서, 이상성, 상징성 및 추상적 의의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더군다나 곽정과 양강, 곽정과 황용이라는 인물들이 서로 대비되어 묘사되는 가운데, 종종 '읽을 만한' 부분 외에서도 깊은 상징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소설 중의 다음 단락을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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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자질은 우둔하지만 내공의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이처럼 간단하고 공력이 정심(精深)한 무공을 배우기에 가장 적합했다. 혼자 어렵게 어렵게 연습하자 두어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요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홍칠공이 말했다.

"저 아이의 장법으로 말하면 허초가 실초보다 몇 배나 더 많기 때문에 네가 저 아이와 겨룰 때에는 저 애의 계략에 빠지지 않을 수 없고, 아무리 빨라도 그녀를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이번은 분명 허초라고 생각하면, 그 장법이 분명 진짜인데도 저 애는 허초인 것처럼 속이고, 그 다음 초식은 허초인 것처럼 보이는데도 저 애는 오히려 네 의표를 찔러 진짜로 공격해 들어 오는 것이다."

곽정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홍칠공이 말했다.

"그러므로, 네가 저 애의 장법을 깨고 싶다면, 그녀의 장법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저 애의 장법을 기다렸다가 진짜도 좋고 가짜도 좋고 넌 그저 이 '항룡유회'만 쓰면 되는 게야. 저 애는 너의 이 일초가 겁나서 초식을 거둬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럼 저 애의 장법을 깨게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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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은 홍칠공이 곽정에게 무공과 적을 상대하는 요결을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동시에 홍칠공은 사람이 되는 방법과 그의 인생 철학까지도 전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과 '졸렬한 것이 정교한 것을 이길 수 있다', 혹은 '아주 현명한 사람은 멍청해 보인다'는 말 등은 본래 중국인들의 인생관과 철학에 있어 가장 깊은 이치를 담은 도리이기 때문이다. 또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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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망연히 잘 이해를 못하고 그저 그의 말을 마음 속에 잘 기억해 두었다가 이후에 천천히 생각하려 했다. 그가 무예를 배우는 방법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한 나절 연습하면 나는 열흘을 연습한다'는 것으로 그는 전심전력으로 장법을 잘 익혀 두기만 했다. 처음의 수십 장은 소나무가 계속 요동했으나 점점 힘을 쓰면 쓸 수록 실력이 증가하여 소나무가 이제는 가만히 있게 되었다. 실력이 거의 진경(進境)에 가까워진 것을 알고 마음이 아주 흐뭇했다. 손 언저리가 아주 심하게 부어 빨갛게 되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연습에만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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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이 단락도 아주 간단명료하게 곽정이 어떻게 '고련(苦練)'을 쌓았는지 그것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서 우리는 곽정의 우둔하면서도 성실한 마음과 진실된 성품을 볼 수가 있다. 이렇듯 무공이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무공과 인품은 원래 통일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다른 예를 들어, 몽고의 대군이 국경까지 밀어 닥쳐 그 세찬 기세를 막을 수 없던 장면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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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이 말했다.

"몽고군이 안 오면 그만이지만, 만약 온다면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죽이고 봐요. 정말로 위급하게 되면 그래도 홍마(紅馬)가 있으니까요. 천하의 일을 이렇게 근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곽정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용아, 그 말은 잘못된 말이야. 우리가 무목유서(武穆遺書) 가운데 있는 병법을 배웠고, 또 무목(武穆)의 '진충 보국(盡忠報國)'이라는 네 글자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어? 우리 둘의 힘이 비록 보잘 것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심전력을 다해 나라를 구해야 해. 설사 우리가 여기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부모님이나 사부님의 가르침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결과가 될거야."

황용이 탄식하며 말했다.

"전 원래부터 오늘과 같은 이런 날이 꼭 있을 줄 알았어요. 그래요, 그만두세요. 오빠가 살면 나도 살고, 오빠가 죽으면 나도 죽고, 그러면 그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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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서 진실로 곽정의 의협심 강한 형상이 그 광채를 드러내고 있다. 황용과 곽정의 서로 다른 태도는 그들의 인격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황용은 곽정의 이처럼 굳고 바른 선택에 대해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이해하면서 '원래부터 오늘과 같은 이런 날이 있을 줄 알았다'고 말한다. 황용이 사랑스러운 점은 바로 이런 점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곽정과 황용은 적을 맞아 의연하게 나라와 백성을 구하러 양양으로 달려간다. 위의 대화 중에서 곽정은 완전히 주동적이고, 자각적인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고 진충보국(盡忠報國)하는' 의협심 강한 사람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황용의 사상의 한계는 그처럼 높지 못하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즉 '당신이 살면 나도 살고,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으면 그만인' 그녀는 근본 원칙을 맞아 '뒤따르는 쪽'이 된다. 외세의 침략과 압박에 항거하는 데 있어 두 주인공의 고하(高下)가 분명하다.

三. 개두결미, 자리행간(開頭結尾, 字裏行間)

<<사조영웅전>>은 당연히 한 권의 무협 소설로, 아주 긴 무협의 전기고사(傳奇故事)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무협 소설과 다른 점은 다른 무협 소설이 가질 수 없는 역사적인 진실감과 우국 우민의 포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책 중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소설의 '주제' 및 그 '주인공'의 형상과 의의 가운데에서도 물론 볼 수 있지만, 서두와 결미, 글자 사이와 문장 사이에서도 아주 쉽게 발견된다.

소설의 서두와 결미에는 '난세의 고난'과 '영웅의 진정한 뜻'이 담긴 역사적 진실감과 그 깊은 사상성으로 가득차 있다.

소설의 서두에는 이야기꾼인 장십오(張十五)가 임안(臨安) 우가촌(牛家村)에서 '엽씨 세째 소저(葉三姐)가 절개 지킨 이야기'를 하면서 이 우가촌에서 은거하던 양철심, 곽소천, 곡삼(曲三) 등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북쪽 백성들의 괴로운 생활 모습과, 남쪽 군신들이 어리석고 무능하여 '항주에서 변주까지 남풍이 불어와 유랑민들을 취하게 하는' 비참한 광경을 서로 대비시켜 사람들에게 마음 속의 불만과 타는 듯한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 때는 바로 영웅을 바라고 영웅을 부르는 시대였다! 나라와 백성을 구하는 구세주, 대협객을 기다리는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남송(南宋)의 군신들은 중원을 잃고 일부 지방으로 쫓겨난 것에 만족하며 조금도 국토를 되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주권을 상실하여 국가를 욕되게 하고 비겁하며 부끄러움이 없어서, 고통받는 백성들은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조정이나 관부에는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으므로 <<사조영웅전>>의 첫 장에 우가촌의 백성들이 남송의 군신들을 마구 욕하는 장면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는 직접 남송의 궁정이나 관부를 묘사하는 곳이 없다. 따라서 작가의 붓은 강호와 녹림에 집중되어 있다.

소설의 이러한 서두에는 선명한 시대 배경이 잘 드러나 있는 동시에 사람들을 분노케 하고 걱정케 하는 역사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망국의 부끄러움, 난세의 고통, 영웅의 포부는 강호의 재야 인사와 녹림의 호걸들을 묘사한 이 전기 고사 중에 가득 담겨 있어서 다른 소설과는 비교도 안되는 특별한 품격을 이루고 있다.

누가 대 영웅인가? 소설의 결미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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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은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 이후 대한을 다시 만날 날이 없을 지도 모른다. 설사 그가 화를 낸다 해도 마음 속의 말은 분명히 말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는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대한, 대한께서는 저를 길러 주셨고, 또 제 어머니를 죽게 하셨으나, 이런 사사로운 은혜나 원한에 대해서는 지금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 다만 대한께 한가지를 물어 보고 싶을 뿐입니다. 사람이 죽은 후 땅 속에 묻힐 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하겠습니까?"

징기스칸은 어리둥절해 있다가 말 채찍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곽정이 말했다.

"맞습니다. 대한께서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수많은 피를 흘리게 하고, 이렇듯 넓은 영토를 차지하셨습니다만, 그것이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징기스칸은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곽정이 또 말했다.

"고래(古來)의 영웅과 현재 존경받는 사람들, 그리고 후세에 추앙받는 사람들은 분명 백성을 위해 일하고 백성을 사랑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보기에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반드시 영웅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징기스칸이 말했다.

"그럼 난 일생 동안 좋은 일은 한가지도 안 했다는 거냐?"

곽정이 말했다.

"물론 좋은 일도 하셨지요. 아주 많이 하셨습니다. 다만 대한께서 남정(南征) 서벌(西伐)하시며 영토를 넓히는 것이 공적이었는지 죄과였는지, 옳은 일이었는지 그른 일이었는지는 말하기가 매우 어려울 따름이라는 겁니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여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모두 그대로 말해 버렸다.

징기스칸은 일생을 자부하며 살았으나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듣자 이상하게도 반박하기가 어려워,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잠시 후 '왁'하는 소리를 내며 한 모금의 선혈을 땅에 토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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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징기스칸은 영웅이라 말하기에 부족했다. 비록 그가 일생동안 천하를 종횡무진 누비며 수많은 나라를 멸망시켜 그 공적이 세상에서 으뜸간다고 할지라도 진정한 영웅은 아니며, 진정코 현재에 존경받고 후세에 추앙 받을 영웅은 아닌 것이다.

또한 징기스칸이라는 이 영웅은 그저 비극적인 영웅일 뿐이요, 한 명의 '초야 인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곽정은 초야 출신으로 강호를 떠도는 남조의 평범한 서민이었지만, 그야말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해 일하고 그들을 사랑하던 대 영웅이었던 것이다. 책에는 또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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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과 화자자(花刺子) 모국왕(模國王), 대금(大金) 대송(大宋)의 황제들은 모두 천하를 걸고 내기 바둑을 두던 자들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이런 제왕과 원수들은 천하를 걸고 내기를 했는데 진 쪽은 강산을 잃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잃게 되었으며, 천하의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동시에 징기스칸처럼 이긴 쪽도 마찬가지로 무수한 사람을 죽이면서 영토를 넓혀 천하의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무슨 대 영웅이 아니라 그저 큰 도박꾼에 불과한 따름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무슨 영웅적인 도박꾼이 아니라, 바로 천하 백성들에게 난세의 고통을 안겨준 괴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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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무협 소설은 이렇듯 역사적인 '사변(思辨)'을 분수에 맞을 정도로 지나치게 사용하고 있으나,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사조영웅전>>이 깊고 심각하며 비범한 의의를 지닐 수 있는 특별한 소설이 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오호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망국의 부끄러움, 난세의 고통, 영웅의 포부여!

이러한 심오한 사상은 <<사조영웅전>>에 가득 넘치며, 글자와 문장 사이 사이에 점철되어 있어서 그것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화가 나고 걱정되어 속을 끓이게 하고, 비분 강개하게 만들고 한탄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곽정과 황용이 태호(太湖)에서 배를 띄우고 노니는 정경을 그린 장면을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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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이 말했다.

"우리 호수에 가서 놀아요."

호숫가의 어촌을 찾아 나귀와 말을 맡기고 작은 배 한 척을 빌려 호수 가운데로 저어 나갔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자 사방은 끝없이 광활하니, 천지 가운데에 호수가 있는 것인지, 호수 가운데에 천지가 있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황용의 옷깃과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살랑 날렸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전에 범대부가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와서 놀았다더니 정말 똑똑했군요. 이곳에서 늙어 죽었다고 하니 관리로 벼슬 하는 것보다 훨씬 좋았을 것 아니에요?"

곽정은 범대부의 전고(典故)를 몰랐기 때문에 말했다.

"용아, 그 고사를 내게 들려 줘."

그래서 황용은 범려가 어떻게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도와 원수를 갚고 나라를 되찾았는지, 어떻게 공을 세운 뒤 물러나 서시와 함께 태호(太湖)에서 은거했는지를 이야기한 뒤, 오자서(伍子胥)와 문종(文種)이 어떻게 오왕(吳王)과 월왕에게 죽임을 당했는지도 들려 주었다. 곽정은 멍청하게 빠져서 듣고 있다가 말했다.

"범려는 과연 똑똑했군. 하지만 오자서나 문종 같은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쳤으니 그야말로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황용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런 것을 일러 '국유도, 불변색언, 강자교. 국무도, 지사불변, 강자교(國有道,不變塞焉,强者矯. 國無道,至死不變,强者矯.)'라 하는 거예요."

곽정이 물었다.

"그 구절은 무슨 뜻이야?"

황용이 말했다.

"국가의 정국이 깨끗하면 높은 관리 노릇을 해도 예전의 청렴결백한 지조를 잃지 않고, 국가의 조정이 부패하면 죽음을 당해도 기개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니, 이것이 바로 당당한 남아 대장부의 도리라는 거지요."

두 사람은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면서 노를 젓지 않고 바람에 배가 떠가는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느새 해안으로부터 십여 리나 떨어져 나왔는데 수십장 밖의 호수 가운데에 일엽편주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부 한 사람이 뱃머리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있고 선미에는 작은 동자애 한 명이 있었다.

황용이 그 고깃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홀로 낚시를 드리우고 있으니 정말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 같네요."

곽정이 물었다.

"수묵화가 뭐야?"

황용이 말했다.

"그건 아무런 채색도 하지 않고 그저 검은 필묵으로만 그리는 그림을 말하는 거예요."

곽정은 시야를 넓히며 푸른 산, 맑은 물,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 붉은 석양과 저녁 안개를 바라보았으나 어디에도 검은 묵 같은 색깔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게 있었다.

황용과 곽정이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보니 아까의 그 어부가 여전히 뱃머리에 단정히 앉아 조금의 미동도 없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황용이 웃으며 말했다.

"저 사람의 인내심이 아주 대단하네요."

가벼운 바람이 불어와 뱃머리에 물결이 넘실거렸다. 황용은 노를 저으며 노래를 불렀다.

"방선천리능파거(放船千里凌波去),

약위호산유원(略爲昊山留願).

거둔수부(去屯水府),

진수신녀(溱隧神女),

구강동주(九江東注).

북객편연(北客翩然),

장심편감(壯心偏感),

연화장모(年華將暮).

염이숭구은(念伊嵩舊恩),

소유고우(巢由故友),

남가몽(南柯夢),

거여허(遽如許)!"

뒷 부분을 부를 때 소리가 처절하게 가라앉았다. 이 노래는 <수룡음(水龍吟)>이라는 곡으로 물에 떠다니는 배에서 느끼는 감상을 읊은 것이다. 그녀는 상반부를 부르고는 그쳤다.

곽정은 그녀의 눈에 은은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그녀에게 노래 가사에 담긴 뜻을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청량한 노래 소리가 들려 왔다. 곡조는 황용이 부른 것과 같은 <수룡음>의 하반부였다.

"회수요기미귀(回首妖氣未歸),

문인간영웅하처(問人間英雄何處),

기모복국(奇謀復國),

가령무용(可怜無用),

첨혼백선(尖昏白扇).

철쇄횡강(鐵鎖橫江),

금범충랑(錦帆沖浪),

손랑양고(孫郞良苦).

단수고계습(但愁鼓桂褶),

비음양부(悲吟梁父),

누류여우(淚流如雨)."

멀리 바라보니 바로 아까 낚시를 하던 그 어부가 부르고 있었다. 소리는 격앙되어 있었고 비분강개한 기상이 가득했다.

두 배의 거리가 수 장으로 좁혀지자 그 어부가 말했다.

"호수에서 이렇게 훌륭한 손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쪽으로 건너 오셔서 함께 한잔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황용은 어부의 말씨가 공손하면서도 우아하여 더더욱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혹시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 됩니다."

어부가 대답했다.

"훌륭한 손님은 만나기 힘든 법, 호수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인연이니 이쪽으로 건너 오십시오."

세 사람은 두어 잔 술을 마셨다. 어부가 말했다.

"형제께서 방금 부르신 수룡음의 가사는 비분 강개한 회포가 담겨 있어 정말 절묘한 가사입니다. 형제는 나이도 젊은데 뜻밖에 가사에 담긴 깊은 뜻을 깨닫고 있으니 실로 대단합니다."

황용은 그 말을 듣고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송나라 왕실이 남쪽으로 천도한 이래 시인, 묵객 그 어느 누구 하나 나라 걱정을 안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 어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황용이 다시 말했다.

"장우호(張于湖)는 <육주가두(六洲歌頭)>에서 말하기를 '시는 해석 안함'이라 했으니 바로 그 뜻이 아니겠습니까."

황용은 이어 드높이 시를 읊었다.

"문도중원(問道中元),

유노상남망(遺老常南望),

취보예정(翠褓霓旌),

사행인도차(使行人到此),

충분기전응(忠憤氣塡膺),

유루여경(有淚如傾)."

그 어부는 황용이 읊은 시를 다시 높게 따라 부르며 세 잔의 술을 연달아 비웠다.

두 사람은 의기 투합하여 시사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사실 황용처럼 어린 나이에 무슨 국가에 대한 슬픔이 있겠는가? 사 중의 깊은 뜻에 대해서는 더더욱 깨닫기 어려웠다. 그저 이전에 아버지가 말하던 것을 듣고 지금 그대로 옮긴 것 뿐이다. 그러나 아주 잘 깨닫고 있는 듯한 말투가 자못 포용력과 고상한 취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여 그 어부는 반상을 치면서 칭찬하고 있었다.

곽정은 옆에서 듣고 있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어부는 황용에게 감복하여 즐거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날이 저물어 호수에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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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에서는 어린 남녀가 호수에 배를 띄우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노래 부르며 노는 장면을 마치 눈 앞에 보이는 듯이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 가운데 황용의 영특함과 총명함과 박학다식함, 그리고 곽정의 우둔함과 멍청함, 적은 견식, 성실히 질문하는 성격과 기질을 아주 분명하면서도 선명히 묘사하고 있다. 또한 문장이 아름답고 고아한데다 언어가 정련되고 신묘하여 강호의 경치와 배 안에서의 풍경을 아주 잘 그려내고 있다. 더욱 흥미 있는 것은 그 '어부'가 원래 동사 황약사의 대제자인 육승풍(陸乘風)으로 황용과는 한 집안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투가 고상하고 '대창(對唱)'이 자연히 잘 맞을 수밖에 없었던 점이다.

두 사람이 부른 노래는 바로 강호의 경치와는 자못 '거리'가 있는 '국가의 비극'을 담은 사(詞)였다. 오묘한 점은 황용은 '입은 거칠지만 악의는 없고' 곽정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를 못하고 있어서' 얼핏 보기에는 무심하고 의도 없이 순수하게 되는 대로 부르고 되는 대로 듣는 것 같지만, 절대로 작자가 아무런 의도 없이 쓴 장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입은 거칠지만 악의는 없는' 것과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를 못하는' 가운데 작자 자신의 국가에 대한 슬픔, 난세의 고통 및 깊고 넓은 정감을 투입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술 세 잔을 연거푸 마신 뒤에 그 시를 복창케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호수 위에서 노니는 장면의 묘사는 아무런 구속없이 유유자적한 모습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박자를 늦춘 대목으로, 글자와 문장 사이 사이에 <詩>의 함축된 뜻이 두루 넘치고 있다.

위에서 인용한 시는 문인 아사(雅士)들의 필체와 마음으로 쓰여져서 고상하고 침통케 하면서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리게 한다. 하지만 소설의 서두와 결미에 있는 간단한 시구에 쓰여진 천하 백성의 난세 속의 고통스러운 상황처럼 분명하면서 의미심장하지는 않다. 소설 서두에 있는 시는 이러하다.

"복숭아 나무는 주인도 없이 홀로 꽃을 피우고(小桃無主自開花),

망망한 저녁 안개 속에 까마귀 날아드네(煙草茫茫晩帶鴉).

우물을 둘러싼 허물어진 담벼락이 몇 곳이나 남아 있으려나(兒處敗垣圍故井),

그곳들은 모두가 다 사람 살던 집이었는데(向來一一是人家)."

소설 결미에 또 다음과 같은 시도 있다.

"전쟁의 불길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兵火有餘盡),

가난한 촌락에는 몇 집만 남아 있네(貧村才數家).

인적 없는 새벽(無人爭曉渡),

달그림자 싸늘한 모래 사막을 비추는구나(殘月下寒沙)!"

그렇다. <<사조영웅전>>의 책 전체에 담긴 함축적인 뜻은 이 두 수의 간단명료하게 보이는 시 가운데 담겨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와 이 문장은 남다르게 특이한 부분을 지니고 있다. 만일 <<사조영웅전>>을 강호 영웅들의 <<화산춘추>>라고 한다면, 서두와 결미에 있는 이 두 수의 싯구는 바로 <<화산춘추>>의 '서문'이요, '대강(大綱)'인 것이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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