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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에 대한 분석

원문 출처 : http://cafe.naver.com/noblood.cafe

놀랍다는 말밖에 안나오는 군요. 이렇게 까지 소설을 정확히 분석한다면, 정말 여러번 읽은 분 같습니다. 저도 신조협려 여러번 읽었지만, 못 따라 가겠네요.

사실 1편 사조영웅전에서는 <중화사상>과 <명분> <의리>라는 측면이 많이 등장하고, 주인공 곽정도 그 테두리 안에서 작품이 서술되고 있던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부분들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보여주었는데, 이 신조협려에서는 그러한 곽정의 <명분>과 <의리>라는 1편에서의 감동을 깨고 새로운 인물로서 등장한 <양과>의 모습이 정말 새로웠었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니 더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신조협려를 다시 읽고픈 느낌이 팍팍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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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은 사(詞)가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삶과 죽음을 함께 하도록 하는가?

 천지의 남북을 짝지어 나는 새들아,

 너희들은 몇번의 여름과 겨울을 함께 보내었더냐?

 사랑의 기쁨과 이별이 고통,

 그 사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여인이 있으니,

 그대는 마땅히 무슨 말이 있어야 하리.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자욱하고,

 온산에 저녁 눈 내릴 때, 그 홀로 누구를 찾아가야 좋은가를!

 

이 <조기매피당(調寄邁陂塘)>은 금(金)나라의 시인 원호문(元好問)이 금나라 태화(泰和) 5년에 지은 사(詞)이다.

 관찰력이 뛰어난 독자라면, 이것이 바로 <<신조협려>>라는 이 소설 속에서 이막수(李莫愁)라는 여마두가 항상 즐겨 부르던 노래임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이 사가 바로 이 <<신조협려>>의 주제가이다.

 이 <<신조협려>>는 김용의 유일한 삼부곡(三部曲), 즉, '사조삼부곡' 중의 제2부이다. 하지만, '사조삼부곡'은 시대 배경과 그 주요 인물들이 모두 다를 뿐 아니라, 창작의 중심(주제)과 그 풍격 등등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1부인 <<사조영웅전>>의 중심이 영웅(英雄), 즉 협(俠)이나 의(義)에 있다고 한다면, 제2부인 이 <<신조협려>>의 중심은 바로 여인, 즉 성(性)이나 정(情)에 있다. 김용의 작품은 대부분이 감정적인 처리와 묘사를 거칠 뿐 아니라, 이러한 범주를 거쳐 다른 인물들에게 선명하고 생동감 있는 예술적 형상을 부여한다.

그의 작품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모두 성정(性情:성격)이 풍부하다. 하지만 정이라는 것은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므로, 작자의 창작 속에, 그리고 독자들의 감상 속에 거대한 열정과 흥미를 증가시켜 준다. 김용의 작품은 상당수의 서로 다른 성정과 서로 다른 인물들이 변화막측하게 얽히고 섥히는 세계를 이루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무궁한 반향과 깨달음을 불러 일으킨다. 더군다나 <<신조협려>>는 가히 김용의 '성정 세계'를 묘사한 작품 가운데 백미라고 할 것이다.

一. 風月無情說開篇(세월의 무정함으로 첫장을 시작하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라는 이 두 소설의 제목을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 있으면서도 의의가 있는 작업이다. 이 두 소설은 모두 네 글자로 제목을 삼고 있으며, 똑같이 40회로 이루어져 있다.

<<사조영웅전>>의 제목은 대부분이 <대막풍사>(大漠風沙:대사막의 모래 바람), <만궁사조>(彎弓射雕:활쏘기), <홍도군사>(洪濤群사=沙 밑에 魚:큰파도속의 상어떼), <황촌야점>(荒村野店), <헌원대전>(軒轅臺前), <철장봉정>(鐵掌峰頂), <대군서정>(大軍西征:서쪽으로 진군하는 대군), <시비선악>(是非善惡:시비와 선악을 가리다)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반면에 <<신조협려>>는 <활사인묘>(活死人墓), <옥녀심경>(玉女心經), <백의소녀>(白衣小女), <예교대방>(禮敎大防:예교의 금기), <절정유곡>(絶情幽谷), <의난정미>(意難情迷), <동방화촉>(洞房花燭), <정시하물>(情是何物:정이란 무엇인가), <생사망망>(生死茫茫:생사가 망막하다) 등의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조영웅전>>의 마지막 회는 <화산논검>(華山論劍:화산에서 무예를 겨룸)이고, <<신조협려>>의 마지막 회는 <화산지정>(華山之頂:화산의 정상)이다. 보기에는 둘 다 '화산논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아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사조영웅전>>에서는 곽정(郭靖)과 황용(黃蓉)이 '화산논검' 후에 양양성을 방비하러 달려가고, 후에 다시 공교롭게도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게 되는' 순간에 징기스칸의 유언을 듣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날 저녁, 징기스칸이 금빛 장막에서 세상을 떠날 때, 임종 직전에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웅, 영웅이라..."

아마도 마음 속으로 줄곧 곽정이 했던 그 말을 되새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곽정과 황용은 대한의 시신에 예를 표한 뒤, 타뢰(拖雷)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날로 남쪽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돌아 오는 길에 백골의 잔해가 잡초 사이에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을 보고 착잡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들 둘이 이처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 비록 여한은 없다 할 수 있겠지만, 백성들의 고난이 이처럼 심하니 어느 때에 다시 태평한 세월을 누릴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는 바로 다음과 같지 않은가?

 "전쟁의 불길은 아직 다하지 않았고

 가난한 촌락은 피폐하여 몇 집만이 남아 있네.

 새벽 달빛만

 싸늘한 모래 사막을 비추는구나."

 소설은 이렇게 결말을 맺고 있다. 다 읽고 나면 대막(사막)의 영웅들과 활쏘기에 능했던 호걸들에 대한 여운이 감돌게 되며, 작가의 백성들을 걱정하는 마음과 이 세상에 대한 연민의 뜻이 전달되어, 독자들의 마음속에 감돌며 끊임없이 메아리치게 된다.

 이에 반하여 <<신조협려>>의 마지막 회는 바로 군웅들이 화산의 정상에 모이는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곽양(郭襄)은 고개를 돌리자, 장군보(張君寶)의 머리 위에 있는 상처에서 피가 용솟음치고 있는 것을 보고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장군보는 대단히 감격해서 감사의 말을 하고자 했으나 곽양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는 것을 보고는 아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가 왜 이처럼 상심하는지 알 길이 없어 끝내 감사의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았다.

이때 양과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의 만남은 아주 즐겁고 뜻깊은 것이었습니다. 훗날 강호에서 다시 만나 함께 술을 나누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십시다. 우리들은 이만 작별합시다."

말을 하면서 옷소매를 한번 흔들더니 소용녀(小龍女)의 손을 잡고 신조(神鳥)와 함께 나란히 산을 내려갔다.

이때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었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으며, 나무 꼭대기의 까마귀가 까악까악, 울고 있었다. 곽양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는 바로 다음과 같지 않은가?

 "가을 바람이 차갑게 불어 오고,

 가을 달은 밝게 떠 있구나.

 낙엽은 모이면 다시 흩어지기 마련이요,

 까마귀는 둥지를 틀었다가는 다시 떠나는 법.

 어느 날 다시 만나 상사(想思)의 정을 나눌 수 있을꼬,

 지금 이 밤은 정 때문에 견디기 어렵기만 한데."

 이렇게 결말을 마감하고 있다. <<사조영웅전>>과 비교해 보면, 그 의경(意境)과 정조(情調)에 있어서 대단한 차이가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책의 최후의 단락(詩)에서 말하고 있는 <지금 이 밤은 정 때문에 견디기 어렵기만 한데>라는 묘사라든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는 등등의 묘사에 독자들 역시 상당 부분 공감할 것이다.

 다시 서두 부분을 이야기해 보자. <<사조영웅전>>의 첫 회의 제목은 <풍설경변(風雪驚變)>이고, <<신조협려>>의 서두는 <풍월무정(風月無情)>이다.

 <<사조영웅전>>의 서두에 나오는 첫 장면은 설화인(說話人:이야기꾼)이 이민족의 침략과 난세에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묘사하면서 시(詩)로써 그 증거를 대고 있다.

 복숭아 나무는 주인도 없이 홀로 꽃을 피우고,

 망망한 저녁 안개 속에 까마귀 날아드네.

 우물을 둘러싼 허물어진 담벼락이 몇 곳이나 남아 있으려나,

 그곳들은 모두가 다 사람이 살던 집이었는데.

 원래 사람들이 살던 집이, 전란에 모두 무너진 담벼락과 부서진 기와더미로 변하고 말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 뒤, 양철심(楊鐵心), 곽소천(郭嘯天), 구처기(邱處機)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곽정(郭靖)'과 '양강(楊康)'이라는 이름을 지어 <정강의 치욕(靖康之恥)>을 잊지 말자는 뜻을 다짐하던 사건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신조협려>>의 서두 부분은 월나라 여인이 연꽃을 따는 모습을 그린 구양수(歐陽修)의 <접연화(蝶蓮花)>라는 사(詞)로 시작하고 있다. 십여 세 정도 되는 소녀들이 호숫가에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노래 부르며 희희덕거리는 장면이 나오고, 이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여도사는 길게 탄식을 하더니 왼손을 들어 선혈이 낭자한 손바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가 저리도 좋을까? 어린 여자애들은 그저 희희덕거리며 노래만 부를 뿐, 가사에 담긴 상사(想思)의 고통이나 애절한 한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여도사의 십여 장 뒤에서 청색 도포를 입고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역시 줄곧 조금의 미동도 없이 계속 서서 노래를 듣고 있다가 <무정한 세월 속에 사람은 간데 없고, 옛 정은 꿈 같으니 공연히 가슴만 미어지네>라는 가사를 듣자 갑자기 극히 가벼운 탄식을 내뱉었다.

이 '극히 가벼운 탄식'은 아마 이 책에서 시종 끊임없이 메아리치고, 글자 사이 사이와 문단 사이 사이에 감돌면서 독자들의 눈과 귀에 부각될 것이다.

이 소설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이 두 인물은 바로 무삼통(武三通)과 이막수(李莫愁:여도사)이다. 의미있는 것은, 이 두 인물 중 한 사람은 봉두난발에 얼굴이 온통 주름 투성이이에 실성한 사람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나이도 어리고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으며 아주 부드럽고 침착하며 조용해 보이기는 하지만 마음은 독사처럼 악랄한 사람이어서 서로 정반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 두 사람이 사실은 겉모양만 다를 뿐 속은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정(情) 때문에 미치게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정(情) 때문에 사악하게 변한 사람이었으니, 모두 치정(癡情:정에 빠짐)의 덫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소설이 이처럼 서로 다른 원인에서 출발하여, 결국 치정(癡情)이라는 동일한 결과를 맞게 된 두 인물로써 서두를 연 데에는 아주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이곳에 오게 된 것은 커다란 관련이 있다. 이 강남의 육가장(陸家莊)에는 예전에 무림에서 아주 유명한 부부, 남편 육전원(陸展元)과 부인 하원군(河沅君)이 살았었다.

육전원은 원래 이막수가 그 당시 마음에 두고 사모하던 사람이었고, 하원군은 바로 무삼통의 의붓딸이자 무삼통이 마음속으로 사모하던 사람이었다. 육전원과 하원군이 결혼하던 날, 무삼통과 이막수가 동시에 나타나 신랑과 신부를 곤란하게 만들었으나, 혼례식에 참석하고 있던 대리국(大理國) 천룡사(天龍寺)의 고승이 출수하여 이 두 사람을 가로막고는, 자기의 얼굴을 봐서 이 신혼 부부에게 10년간의 평안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무삼통과 이막수는 '정에 미치게' 되었고, '원망이 한'이 되어, 한 사람은 실성하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마도(魔道)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10년이라는 기한이 다 채워지자, 이 두 사람은 '그리움의 책임'을 묻고, '그리움의 원한'을 청산하고자 또다시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이 육전원과 하원군이 함께 황천길로 떠난지 수 년이나 되었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이런 것을 일러 풍월무정(風月無情:세월의 무정함)이라 하던가? 세월은 무정하지만 사람은 유정(有情)한 법이다. 그러나 사람의 애정은 매번 원한을 낳고 결국 미치거나 마도에 빠지게 하여 자기에게도 해를 끼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다.

무삼통은 차라리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 해도, 이막수는 정 때문에 원한이 쌓였고 그 때문에 이성을 상실하게 되어 강호 사람들에게 화를 뿌리고 다녀 여마두(女魔頭)로서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이막수는 바로 이 <<신조협려>>에서 아주 특수하면서도 중요한 인물이며, 그녀를 이 책의 주인공 중 하나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무삼통은 복수를 하러 왔다가, 육전원과 하원군이 이미 죽은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기껏해야 비석에 머리를 박고 손으로 무덤을 파내며 미친듯이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막수는 죽은 육전원의 형제 일가의 모든 사람들을 죽여버리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하(河)'라는 말과 '원(沅)'이라는 말만 들어도 살기를 띠었다.

그녀가 예전에 육전원의 혼례식에 나타난 후, 하노권사(河老拳師) 집안의 남녀노소 20여 명을 때려 죽인 적이 있었는데, 이 하노권사는 그녀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하원군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성이 하씨라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온 집안의 생명을 도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더욱 심한 예도 있다.

그녀가 무삼통에게 말했다.

"나는 일찍이 이렇게 맹세한 적이 있었어요, 누구든지 내 앞에서 그 천한 년의 이름을 들먹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죽이든지 아니면 내가 죽고 말겠다고. 이전에 원강(沅江)에서 화물선 예순 세 척을 박살냈던 것은 단지 그들의 초패(招牌)에 그 더러운 글자가 쓰여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 일에 대해서 당신도 들은 적이 있으실텐데요."

의심할 여지 없이 이막수는 이미 낙심하다 못해 미쳐버려, 이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인성(人性)까지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신조협려>>에서 이막수의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분에 몸을 떨게 할 정도로 끔찍할 뿐 아니라 가장 한스러우면서도 슬픈 이야기라 하겠다.

정 때문에 미쳐버린 무삼통과 정 때문에 마두가 된 이막수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강남의 육가장에 나타나 '그리움의 원한'을 청산하고자 한 것은 '정 때문에 화근이 된' 것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이라는 것이 이성을 어지럽히고, 결국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기 때문에 '군자(君子)들은 하지 않는' 것이라고들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무삼통과 이막수는 모두 '정' 때문에 미치고 사악하게 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원인은 '정' 때문이 아니며, 그들이 미치고 빠져들고 사악하게 되고 분노하게 된 것은 그들 각자의 성격에 의해 단련된 의지와 이성의 정도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나 책 속에서, 그들처럼 '사랑했으나 그 사랑하는 사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아주 많지만, 미치거나 사악하게 된 사람은 그저 소수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원망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지만, 그저 몰래 가슴 아파할 뿐 절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우환을 끼치지 않는다.

무삼통과 이막수를 대상으로 세밀한 '심리 분석'을 해 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지면의 한계상 아주 세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어도 대략 한두 가지 정도는 살펴 볼 수 있다.

무삼통이 실성하게 된 것은 완전히 '자기 억제'의 도가 지나쳐 '심리 상태가 변하게 된'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의 의붓딸이었고, 자기에게는 아내가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은 무림계에서 유명한 인물로, 그는 원래 대리국의 명신(名臣)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감정'은 평상시엔 그저 가슴속에 억눌러 두고 밖으로 드러내 보일 수가 없었으며, 급박한 상황 변화와 좌절에 충격을 받아 갈등을 일으키게 되어 결국 이성과 의지를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이막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방임한' 결과 미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고묘파의 제자로 남녀간의 정을 억눌러야 했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간의 감정까지도 모두 억누르고 자제해야 하는 것이 그녀의 문파의 규율이었다. 따라서 이런 그녀가 강호에 와서 정에 얽힌 비참함을 맛보자, 본래 억눌려져 있던 모든 것들이 '심리 상태가 변하게 되어' 더욱 심하게 제멋대로 방임하고 밖으로 드러내어, 결국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병의 원인은 이미 고묘(古墓) 속에서 그 씨가 뿌려져 있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들은 고묘파의 사적(事迹)과, 고묘파가 생기게 된 원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막수의 병의 원인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책 속의 남녀 주인공인 양과와 소용녀와도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이 두 남녀 주인공들은 바로 고묘파의 제자들이다.

기묘하게도 원래 고묘파의 형성은 사람들을 감상에 젖게 할만한 다른 한 쌍의 애정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제1차 '화산논검'에서 '무공의 천하제일인'의 칭호를 얻은 '중신통(中神通)' 왕중양(王重陽)과 여자 영웅 임조영(林朝英)과의 이야기이다. 왕중양은 전진교주(全眞敎主)이자 전진교의 창시자이고, <<사조영웅전>>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으며 애정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다가, <<신조협려>>에서 불쑥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색다른 수법으로, 신묘한 필법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부분이라 하겠다.

왕중양은 소년 시절 먼저 글을 배운 뒤 다시 무공을 연마하여, 강호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던 영웅 호한이었는데, 금나라 병사들이 침입하여 국토를 훼손시키고 백성들을 죽이는 것에 의분을 품고 의병을 일으켜 금나라 병사들에게 대항했으나, 결국 싸움에서 패하게 되자 출가해버렸다. 스스로 '활사인'(活死人: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라고 칭하며 종남산(終南山)의 한 고묘에서 살면서 묘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았으니, 그는 비록 살아 있기는 하지만 죽은 것과 같았는데, 이는 금나라 병사들과 같은 하늘 밑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옛 친구들과 옛 부하들이 찾아왔지만 왕중양은 의기소침하고 낙담한데다, 강호의 옛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여 끝끝내 묘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았다. 8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의 평생의 강적인 임조영이 묘문 밖에서 7일 밤낮으로 온갖 종류의 욕을 해대며 그를 도발하여 결국 왕중양은 참지 못하고 도전에 응하고자 묘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임조영이 박장대소하며 <이미 나와버렸으니,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요.>라고 말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두 사람은 이런 뜻밖의 사건을 거치면서 결국 적의 관계에서 친구가 되어 함께 강호를 누비게 되었다. 임조영은 왕중양을 깊이 사모하고 있었으며, 그와 부부의 연을 맺으려 하였다. 당시 두 사람이 끊임없이 싸운 것도 임조영이 고의로 왕중양과 가까와지려고 했던 것이었으나, 그녀의 자존심과 오만함 때문에 먼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후에 당연히 왕중양도 그녀의 마음을 알게 되었으나, 그는 끝내 나라의 원수에 대해 품은 한을 잊지 못하며 항상 오랑캐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는데 어찌 가족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말하며 임조영의 깊은 애정에 대해서는 그저 멍청한 척하며 모른체 할 뿐이었다. 임조영은 그가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여 결국 끝없는 원망과 한을 품게 되었다.

두 사람은 본래 적에서 친구가 된 사이었으나, 또다시 애정 때문에 원수가 되어 종남산에서 무예를 겨루어 승자를 가리고자 했다, 시합 결과 왕중양이 임조영에게 패하여, '활사인묘'에서 나가게 되었고, 임조영은 '활사인묘'를 차지하고 '고묘파'를 만들었으며, 왕중양은 출가하여 같은 산에서 도를 닦으며 전진파를 만들게 된 것이다. 소설 속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왕중양과 임조영은 모두 무학의 기재들로, 원래 한 쌍의 천생 배필이었다. 두 사람 간에는 제삼자가 끼어든 삼각 관계도 없었으며, 친구나 사제 간의 분규 따위도 없었다. 왕중양은 전에 의병을 일으켜 금나라에 대항하는 거사에 진력하느라 여자와 사사로운 정분을 나눌 여유가 없었다.

그가 패하여 석묘에서 홀로 살고 있었는데 임조영이 찾아와 위로하니 그 부드러운 정과 깊은 정성은 가히 사람을 감동시킬 만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성사가 되지 않아 천추에 한을 남기게 되어 한 명은 출가하여 도사가 되었으며, 한 명은 석묘 안에서 쓸쓸히 살아갔던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을 구처기 등의 제자들은 물론 몰랐으며, 왕중양과 임조영 두 사람조차도 말하지 못한 것이었으니, 오직 <무연(無緣)> 두 글자에 원인을 돌려야 할 성싶다.

두 사람은 무공이 높고 자부심이 대단해서 무학을 담론할 때마다 경쟁심이 생겨나 시종 서로 지려고 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도 그 경쟁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임조영이 전진 무공을 제압하는 <옥녀심경>을 창안해 냈으나, 왕중양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구음진경>을 무덤 속에 새겨 놓은 것이다.

 이처럼 인연이 없다 해도 인연이 닿게 되고, 인연이 있다 해도 인연이 닿지 않게 되어, <정(情)의 하늘은 깁기 어렵고 한(恨)의 하늘은 메우기 어려워>,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감상에 젖게 할 만한 이야기 하나가 더해진 셈이다.

왕중양과 임조영 두 사람은 정이 있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다. 아아, 세상에 묻노니, 정이란 과연 무엇인가?

 二. 離合無常道楊龍(끊임없이 만났다가 헤어지는 양과와 소용녀)

 다시 <<신조협려>>의 남녀 주인공인 양과와 소용녀에 대해 말해보자. 이 두 사람은 아주 독특하고 특수한 인물들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주 기이한 감정이 감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의 감정과 인생은 아주 기이한 온갖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것들이 이 끊임없이 헤어짐과 만남을 되풀이하는 <<신조협려>>의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다. 사실, 비극적인 맛이 가득한 이야기라 하겠다.

신조협려는 아주 호방하고 풍류가 가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읽어보면 쓸쓸함과 처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양과와 소용녀는 줄곧 '순진 무구한 동남동녀(童男童女)'라고 불리던 옥같이 아름다운 사람들로, 하늘의 혜택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고 이상적인 사람들이라고 찬미 받던 존재였다. 하지만 양과는 청년 시절 한쪽 팔을 잘리는 고통을 맛보게 되고, 또 소용녀는 아무런 애정도 느끼지 못하는 자에게 순결을 잃는 아픔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표면적인 고통은 오히려 그들이 겪는 일생의 비통함과 온갖 재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정도이다.

<<신조협려>>라는 이 책의 주요한 줄거리는 바로 양과와 소용녀 사이의 파란만장한 애정 이야기가 그 주요 실마리가 된다 하겠다.

고묘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지는 관심이 사부와 제자 사이에 마땅히 있어야 하는 의리라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으나, 고묘 안에 그들 두 사람만 있는 이상, 만약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이해하고 동정하지 않았다면, 누구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와 동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 한 쌍의 어린 남녀는 그들 자신이 깨닫기 이전에 이미 서로 깊은 애정을 갖게 된 것이었다.

어느날 그들은 상대방 없이는 절대로 더이상 살아갈 수 없으며, 자기의 생명보다 상대방의 생명이 수백배, 수천배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남녀라면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깊은 애정을

 지니고 지성지정(至性至情)한 마음을 갖춘 이러한 두 명의 남녀가 맞부딪히고 서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에만,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이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진정한 사랑'과 '깊은 애정' 때문에 상대방을 자기 자신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일들이 일어나며, 애정 문제의 온갖 파란만장함과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파란만장함과 어려움은 종종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면서도 잔인하고, 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면서 진실한 경우가 많다.

양과와 소용녀는 서로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본인들이 깨닫게 되면서, 그들은 매번 이전 어려움이 다 해결되기도 전에 또다른 어려움을 맞게 된다. 따져 본다면 이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모두 네번이었으나, 그들이 이별해 있던 시간은 장장 십여 년에 걸쳤으니, 그간의 잔인하고 괴로웠던 일들에 대해서는 차마 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 네번은 모두 소용녀가 주동적으로 양과를 떠난 것이었고, 떠난 원인은 바로 양과에 대한 깊고 진실한 애정이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보다 훨씬 더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순결을 잃게 되어 낙심한 때문'이었고, 한번은 '예교의 규율에 부딪혔기 때문'이었고, 한번은 '오해' 때문이었고, 한번은 바로 '자기를 희생하여 상대방을 구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매번 점점 더 괴로워졌고, 더더욱 비참해졌으며, 매번 이별의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고, 또 매번 더더욱 진실했었다.

최초의 이별은 소용녀가 이성을 상실한 구양봉에게 혈도를 눌려, 소용녀를 홀로 연모하다가 결국 제정신이 아니게 된 전진교의 제3대 장문 제자 윤지평(尹志平)에게 순결을 빼앗기게 되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아주 비극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윤지평의 행위는 아주 파렴치하기는 했지만, 그는 사악한 사욕(私慾)의 댓가로 진정한 애정과 생명을 잃게 되고 만다. 소용녀는 그가 양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순결을 잃고서도 태연자약할 수 있었다. 뜻밖에 양과는 무슨 일인지 전연 모르는 채, 여전히 그녀를 '아가씨'라고 불렀으므로, 소용녀는 순결을 잃은 데다가 또다시 극도로 낙심하고 절망하게 되었다.

양과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배신자'를 당장에 쳐 없애지 않고 그저 상심한 채 멀리 떠나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양과는 소용녀가 순결을 잃은 사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고, 남녀 사이에 대해서 항상 무지 몽매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소용녀가 떠나가도 그저 <어쩔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녀의 흰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더니 마침내는 산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비참한 마음이 생겨 땅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다. 이리 저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사부에게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어째서 그녀의 표정이 그리고 기이했는지, 한 때는 부드럽고 다정하다가 한 때는 또 원망에 가득차서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자신을 '아내'라고 부르라고 하고, 또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몇 년 동안 그는 소용녀와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은 채, 모자처럼 또 남매처럼 지내왔지만, 한번도 '부부'라느니, '애정'이라느니 하는 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소용녀가 이유도 알 수 없이 떠나가 버린 것은 그의 애간장을 끓게 했고, 상심한 나머지 몇 번이나 바위에 머리를 박아 죽고 싶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었으니, 그것은 '아가씨'가 갑자기 떠나갔으니 또 갑자기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이리하여 양과는 고묘에서 나와 하산하여 돌아다니다가 백의 소녀 육무쌍(陸無雙)과, 신세가 처량한 완안평(完顔萍)과 알게 된 후에야 '아가씨'는 영원히 떠나갔으며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소용녀가 자

신의 정인(情人)이자 아내가 되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승관(大勝關)의 <영웅대연(英雄大宴)>에서, 기약없이 헤어졌다가 우환과 고난을 겪은 양과와 소용녀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자, 이번에야 그는 소용녀가 더이상 그의 아가씨가 아니며, 그의 아내가 되려고 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그 역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를 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전의 어려움이 막 해결되자마자 또다른 어려움이 닥쳐 온다.

양과가 비록 남녀 사이의 애정 문제를 이해하고 소용녀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했으나, 그것을 천하 영웅들에게 알리기도 전에 그는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무공으로 달이파(達爾巴)와 곽도(藿都) 사형제를 대패시키고 만다. 그가 아내로 맞이하려는 '아가씨'는 바로 그의 사부였고, 사부를 아내로 맞이하거나 혹은 '아가씨'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모두 '예교의 금기'를 위배하는 것이요, 천하 영웅들이 부끄럽게 생각하고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물며 양과가 생존한 연대는 바로 예교의 금기가 아주 심했던 송대(宋代)였던 것이다! 비록 강호의 인물들이라 해도 감히 그것을 위배하지는 못했다.

소용녀는 처음에는 그래도 이해하려 들지 않았지만, 후에 황용의 가르침을 듣고(황용은 양과와 소용녀의 애정 문제에 있어 여러번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극을 만들어내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연구할만한 가치가 많다) 또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보고 들으면서 마침내...

그녀는 그날 밤 객점에서 황용이 하는 말을 듣고 만약 양과와 부부가 된다면 그에게 누를 끼쳐 세상 사람들이 평생토록 그를 경멸하고 침을 뱉으며 욕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그와 함께 고묘 안에서 살 경우, 세월이 오래 지나면 그는 반드시 고민하며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리 저리 생각하며 긴 밤을 지새우다가 마침내 마음을 굳게 먹고 조용히 떠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양과를 너무도 깊이 사랑하여 이와 같이 모질게 마음을 돌렸지만, 그를 사랑하는 깊은 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만약 고묘로 되돌아간다면 그가 반드시 찾아 올 것이었다. 그래서 혼자 이리 저리 들판과 골짜기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하루는 혼자 앉아서 내공을 수련하다가 갑자기 그리움이 물결처럼 사납게 밀려와 이겨내기가 어려워 내식이 돌연 경맥과 충돌하여 예전의 상처가 재발하게 되었다. 만약 공손곡주(公孫谷主)가 지나가다가 그녀를 구출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황량한 산에서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공손곡주는 짝을 잃은지 이미 오래 되어 소용녀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을 보자, 실로 상상하기도 어려운 미모의 여인이라 저도 모르게 사람을 구하는 일에 열 배의 정성을 들였다.

그 때 소용녀는 마음이 어두웠고, 또 이후로 혼자 살 것을 생각하니 반드시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해 끝내는 다시 양과를 찾을 것만 같았다. 다시 양과를 찾는다면 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되겠기에 괴로워하던 중 공손곡주가 진정으로 대하고 구혼의 뜻을 토로하자 즉시 허락을 한 것이었다.

남의 부인이 되면 양과 와의 깊은 인연도 완전히 끊어지게 되는 것이요, 게다가 이 깊은 골짜기는 외인이 들어오는 일이 드물어 여기서 산다면 그와 마주치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완동이 돌연 나타나 소동을 피우더니 마침내 그를 골짜기로 끌어들일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소용녀의 이번 떠나감은 스스로도 단장이 끊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동시에 양과에게 끝없는 고난과 절망적인 아픔을 가져다 주어 하마터면 절정곡(絶情谷)에서 뛰어내려 죽을 뻔하게 만들었다. 이 모두가 예교의 금기가 불러 일으킨 사건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러한 온갖 우여곡절과 고난을 겪으면서 양과와 소용녀의 깊은 애정이 선명하게 돌출되게 되었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이 도대체 기뻐할 일인지 슬퍼할 일인지 알 수 없게 만들게 된다.

양과가 온갖 고난을 겪고 절정곡의 어려움을 헤쳐 나온 후, 다시 소용녀와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오직 18 일의 시한부 생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만약 곽정과 황용을 죽일 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원수도 갚고 이로써 절정곡에서 정화(情花)의 독의 해약제를 바꿀 수 있을 터였으나, 양과는 도리어 곽정의 드높은 의기와 의협심에 감동 받아 그 역시 온통 의협심이 끓어오르게 되어, 그를 죽이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게 된다. 후에 곽부(郭芙)를 사랑하게 되어 분쟁을 일으킨 무씨 형제를 화해시키기 위해, 거짓말로 황용이 이미 곽부를 자기의 아내로 주기로 허락했다고 속이게 되는데, 하필이면 이 말을 소용녀가 듣게 된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소용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을 주었다. 순식간에 우주 만물이 모두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만약 이런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라면 양과의 언행이 이전과 크게 다른 것을 보고는, 의심이 생겨서 일이 끝날 때를 기다려 그에게 물어서 그 진실을 밝히려 했겠지만, 소용녀의 마음은 맑고 깨끗한 수정처럼 조금도 속세의 티끌이 묻지 않아서 인간들이 속이고 거짓말하는 여러 경우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양과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하고 허튼 소리를 했어도 그녀에 대해서는 조금의 농담도 하지 않아, 그녀는 양과의 말이라면 지금까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다. 이에, 그녀는 슬프고 처량해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양과는 이 탄식을 듣고서 큰 소리로 '아가씨'하고 불렀으나, 소용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얼굴을 가리고는 멀리 도망가버린 후였다.

양과는 그 소리를 이막수가 나타나 소리를 낸 것으로 생각하고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것이라 여기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소용녀는 한혈보마(汗血寶馬)를 이끌고 혼자서 황야를 질주하며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녀의 나이는 이미 스물이 넘었지만 그 동안 계속해서 고묘에 살았기 때문에 세상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던 터라 식견은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과아가 이미 곽소저와 약혼을 했다니 이제 다시는 나하고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었구나. 이제 생각해 보니, 곽대협 부부가 그래서 그와 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아는 내가 이 일로 상심할까 두려워서 나에게 말하지 못했었구나. 아, 그는 정말 나에게 늘 잘 대해 주었었지.'

또 이렇게도 생각했다.

'그가 곽대협을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지 않고 계속 머뭇거리는 것을 그 당시에 난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곽소저 때문이

었구나. 이런 점들로 보아 곽소저에 대한 그의 정은 매우 두텁구나. 내가 만약 보마를 끌고 가 그에게 주었다면 그가 다시 나를 생각하여 곽소저와의 혼사에 무슨 변고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나 혼자서 고묘로 돌아가자. 이 골치 아픈 세상은 나의 마음과 정신을 혼란시킬 따름이다.'

만약 그저 이러할 뿐이라면, 그래도 나은 셈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이 순결을 잃게 된 것이 양과 때문이 아니라 전진교의 윤지평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만다.

윤지평은 멍청하게 말했다.

"당신이군요!"

소용녀가 말했다.

"그래요, 나에요. 당신들이 방금 한 말이 모두 사실이란 말입니까?"

윤지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입니다! 절 죽여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는 장검을 돌려서 창 밖으로 내밀었다. 소용녀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났고, 마음속의 처량함과 분노는 극도에 다달았다. 천명을 죽인다 해도 만명을 죽인다 해도 자신은 이제 순결한 처녀가 될 수 없고, 이제는 영원히 이전과 같이 양과를 깊이 사랑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소용녀는 세번째로 '양과를 오해하고' 동시에 또 '순결을 잃게 된 진상'을 알게 된 이중의 충격 때문에 양과를 떠나게 된다. 이번에는 극도로 망연자실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그녀는 종남산(終南山) 전진궁(全眞宮) 앞에서 9대 고수에게 포위당해 치명적인 중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양과는 한쪽 팔을 잘리는 고통을 겪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는 슬픔을 겪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또 가슴 가득한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한줄기 희망을 품은 채 종남산에 오르게 되어 소용녀의 생명을 구하게 되지만, 한 걸음 늦었기 때문에 그녀가 중상을 입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양과가 만약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했다면, 이러한 재앙에서 능히 그녀를 구했을 것이다. 천도(天道)는 예측할 수 없고, 세상 만사는 말하기 어려우니, 어찌 모든 일이 사람의 뜻대로 되겠는가? 인간 세상의 슬픔과 기쁨, 만남과 헤어짐, 길흉화복과 영욕은 종종 한 순간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양과와 소용녀는 마침내 모든 것을 떠나 전진관(全眞觀)의 대전(大殿)에서 중양조사(重陽祖師)의 화상(畵像) 앞에 예를 올리고 혼인하여 마음속의 소망을 풀게 된다. 하지만 이 때 양과는 중독된 정화의 독을 아직 채 없애지 못한 상태였으며, 소용녀는 더더욱 위험한 상태로 생사가 한 순간에 달려 있는 지경이었다!

소용녀가 네번째로 양과를 떠난 것은 마치 생사의 이별처럼 장장 16년에 걸친 긴 이별이었다! 양과는 혼자 살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천신만고 끝에 얻은 반쪽의 단약을 깊은 계곡 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소용녀는 단장초(斷腸草)가 정화의 독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안 후, 양과가 해독제를 잘 복용하여 인간 세상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 그녀 자신은 심연 속에 몸을 던지고는 '16년의 약속'을 기약하게 된다! 그렇게 한 까닭은 양과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하고, 또 16년의 시간이 그의 사랑과 근심을 희석시키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생사가 망망하게 인간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하는 한 쌍이 이처럼 견디기 힘든 온갖 종류의 어려움을 만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16년 후 뜻밖에도 하늘이 내려주신 인연이 기이하여, 이 인간 세상의 괴로움을 극도로 맛본 한 쌍의 젊은 부부는 마침내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소설의 작가는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아주 분명하게 쓰고 있다.

무협 소설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기이하고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 나는 줄곧 무공이야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해도, 인간의 성격만큼은 항상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끔 쓰기를 희망해 왔다. 양과와 소용녀의 만남과 헤어짐은 아주 기이한 사건이고 신기할 정도로 우연성이 지나치지만, 사실 그것들은 모두 두 사람의 성격 자체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두 사람이 만약 이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두 명 전부 곡(谷) 속으로 뛰어들 리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소용녀의 천성이 순수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곡 아래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혼자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양과가 지성(至性)한 성품을 지니지 않았다면 분명 16년을 하루처럼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만약 곡 아래가 연못이 아닌 바위 투성이였다면, 두 사람은 뛰어 내리자마자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결국 같은 곳에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세상 일의 우연함과 변화, 성패(成敗)의 관건은 비록 기회나 인연에 따라 저절로 행운과 불행의 구분이 생기는 법이지만, 근본을 따져 본다면 모두가 각자가 원래 지니고 있는 성격에 따라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양과의 성격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대만의 학자인 증소욱이 <김용이 그려낸 성정 세계>(<<신조협려>>의 인물 형태에 대해서 논함)에서 쓴 글 중에서 양과를 <강맹(剛猛)한 생명>에 분류시키고 양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앞에서 곽정이 순박한 선천적 이성을 대표하는데, 이 이성은 독립적이고 완전하며 스스로 주재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제, 우리들이 만약 이 양강(陽剛)한 이성을 일종의 생명의 성질을 지닌 말로 바꿔 말하면, 그것은 바로 일종의 양강(陽剛)한 생명이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명은 본질적으로 원래 공허하면서도 자주성이 없는 것이므로, 이 양강한 생명 역시 독립적이고 자주적이며 타인에 대한 사랑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실제로 그 독립성과 자주성은 그저 의기의 강맹함일 뿐이요, 그의 사랑 역시 감정적인 풍류일 뿐, 절대로 이성적이거나 도덕적이지 않으며, 전부가 그저 방황하는 야수의 기운일 뿐이다. 양과(楊過)가 바로 이러한 강기(剛氣)의 대표로서 그는 이로 인해 경박하며 제멋대로이며 사라졌다 갈라졌다 변화가 많으며 또한 생명의 뜨거운 힘과 그 모습도 장소에 따라 터져 나온다. 압박을 받거나 모욕을 받으면 생명에 결함, 슬픔, 갈구가 있는 사람은 그 때문에 정신이 나가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은 당연히 황용(黃蓉)의 맑고 넓으며 가벼우면서도 부드러워 생명의 정도(正道)를 얻게 되는 성질과는 다르다. 생명의 본질은 공허한 것이라서 그 표현도 마땅히 음유(陰柔)하고 온순한 것으로 정도를 삼아야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던 도덕 이성의 감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음유한 생명은 한번이라도 상처를 받게 되면 곧 억울해하면서 위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부딪히면서 결단력을 갖게 되거나 혹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기질을 지니므로 양강의 생명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음기가 왕성한 생명도 무한한 경계에서는 말 못할 괴로움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다만 부드러운 성질의 생명이 쉽게 감화를 받고서 그것을 길러 무한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주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무한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는 어떠한 억울함도, 어떠한 속박도, 어떠한 지도도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진정으로 모욕을 받는 일이 없으며 강한 권력에 의한 일체의 모욕을 받지 않는다. 이치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도덕적인 교훈 일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음으로 가능성 있는 귀결점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하겠다. 하나는 적극적으로 도덕과 인의의 이상을 지향하여 그의 생명의 모든 뜨거운 힘을 모두 바침으로써 하나의 합리적인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로는 소극적으로 철저하게 고요한 심오한 경지(玄境)로 돌아감으로써 조급해하며 불안해하는 그의 생명을 평정시키는 것이다. 전자는 그의 생명을 근본적으로 이루는 것이며 후자는 그의 생명을 잠시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책에서 양과는 전자를 포기하고, 결국 충허(沖虛)한 경계를 대표하는 소용녀(小龍女)에게 돌아간 것이다.

 동일한 글에서 증소욱 선생은 소용녀를 아래와 같이 평하고 있다.

우리는 <<신조협려>> 중의 소용녀의 풍모를 평가하여 본 바 있다. 그녀는 맑고 담담한데다 세속을 초월하여 거의 투명하기까지 하였다. 깊고 그윽한 고묘 속에서 아주 오랜 옛날의 기나긴 적막을 대하듯이 오래도록 살았기 때문에 실제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조화를 부리게 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영원토록 늙지 않으며 그녀의 모습은 영원토록 그저 한 소녀일 뿐이다. 그녀는 단지 절대적인 충허, 절대적인 고요일 뿐이며, 또한 이러한 충허와 고요는 오묘하게 저절로 생겨난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의 형상을, 즉 충허한 가운데 자취가 묘연한 하나의 존재를 실재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일종의 심오한 경지이자 음기를 순전하게 하는 본체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장자(莊子)>> 속의 다음과 같은 상징을 생각나게 한다.

<막고사산에 신선이 살고 있는데 피부는 얼음과 눈 같으며 아주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오곡을 먹지 않으며 바람을 호흡하고 이슬을 마신다. 구름의 기세를 타고 나는 용을 부려 천하의 밖에서 노닌다.>

나아가 양과와 소용녀가 결합하는데 있어서의 본질적인 결함을 말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이제 우리는 양과와 소용녀가 결합하는데 있어서 중간에 어떤 곤란과 결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앞에서 이런 충허한 이상적 경계가 인생의 궁극적이고 원만한 이상이 아니며, 이런 강맹(剛猛)한 생명도 온화하며 맑고 넓은 생명은 아니라고 이미 제시한 적이 있다. 이로 인해 본질적으로 이런 결합은 다만 일시적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결국 소용녀가 짧은 시간 동안 세속의 세계로 내려왔던 것도, 양과가 그 생명의 충동을 안정시길 필요가 있었던 것도 정신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의 잠시 동안의 필요에 의해서 그랬을 뿐이었다. 결국, 소용녀는 다시 심오한 세계로 되돌아 가야 했고 양과 역시 다시 인간 세상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만남은 기껏해야 뜬 구름처럼 만났다 헤어지는 것에 불과했을 뿐, 그 인연이 다하면 서로 손을 흔들며 각자 제 갈길로 갔으니, 소용녀도 양과도 그저 잠시 쉰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나 분명 그렇게 결정되긴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기를 꾀하는 동안에는 외부 세계에서 곤란에 부딪힌 적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내재적인 결함도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도 양과는 외부의 여러 인연을 끊고 결국에는 소용녀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비극적인 성질을 드러내고 있다.

이 비극을 양과의 입장에서 말해 보면 그는 원래 스스로 도덕이라는 이상 세계에 이를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청허(淸虛)한 경계에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용녀의 입장에서 말해 보면 그녀가 양과를 대하면서 말하고 행동한 많은 일들은 그녀가 양과를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두 사람의 결합에는 분명치는 않아도 은근히 위기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증소욱 선생의 논술에는 비록 생소하고 난삽하며 이해하기 힘든 점이 많긴 하지만, 양과와 소용녀가 서로 사랑하고 결합하게 되는 필연성과 거기에 잠복해 있는 위기에 대해 대체로 분명하게 논술하고 있다. 실제로 소설 가운데 양과와 소용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부딪히게 되는 어려움은, 비록 외부 세계의 객관적인 상태로부터 연유한 것이긴 하지만, 그 근본을 따져 보자면, 마음속에, 혹은 잠재 의식 속에 잠복해 있는 위기를 깨닫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그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소설 가운데 양과와 소용녀가 어려움에 당면할 때면 매번 모두 소용녀가 양과를 떠나가게 되는데, 표면적으로 볼 때는 양과가 무책임하기 때문에 소용녀가 떠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양과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를 위해 희생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층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소용녀가 여러번 떠나갔던 것이 결코 이런 결합에 대한 잠재의식으로부터 도피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을 가지고 말해 보자면, 소용녀는 이미 정욕을 잊어버린 속세를 벗어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양과는 마음이 불과 같고 풍류가 넘치는 이 속세의 영웅이었다.

소용녀가 양과를 사랑하는 것은 양과의 열정과 '끊임없는 추구'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었고, 양과가 소용녀를 사랑한 것은 그녀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유유하게' 행동하여 속세의 여자들과 비교해 볼 때 한층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이 한 쌍의 젊은 남녀는 어려서부터 고묘에서 함께 살며 바깥 사람은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저절로 마음이 통하여 모자같고 자매같고 남매같고 또 연인같이 보이기까지 했다.

양과의 애정은 세상의 어려움을 두루 겪으면 겪을수록 점점 더 그녀에 대한 마음이 굳어져 갔으며 생사를 돌보지 않을 정도까지 되었으니, 그 원인은 세상의 고난을 두루 겪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도리어 구조적으로 사라졌다 헤어졌다 하며 변화 무쌍한 것이야말로 양과의 이상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좋아, 크게 고통스러워야 더욱 달콤한 법이다. 고통스럽지 않아서 달콤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지. 나는 다만 미치도록 빠져들 수 있을 뿐 태평하고 안정된 시절을 보낼 수는 없어."

하지만 소용녀는 평안하고 고요한 것에 잘 적응했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태평하고 안정된 시절>을 좋아했던 것이다. 따라서 재난을 수없이 당해도 양과는 소용녀와의 오랜 결합에 위기가 왔음을 조금도 알아차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세상의 고난을 두루 겪게 되는 애정에 대하여 이상한 열정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에 반해 소용녀는 다만 그때 그때 깨달으면서 잠재의식으로 도피하고 또 도피할 수 있었다. 이런 것을 일러 바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으리라.

남녘 하늘 북녘 땅 나란히 날으는 나그네,

지친 날개로 늦여름에 돌아오네.

환락도 떠나가고 이별로 괴로워하나,

도중에 다시 사랑에 빠질 여자 있으려나?

三. 정이 무어냐고 세상에 묻노라.

소설 속에는 상술한 내용 이외에도 또한 표면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비록 각기 다르긴 해도 오히려 암암리에 소설의 근간과 큰 주제와 서로 상통한다.

소설 중 절정곡(絶情谷)의 주인 공손지(公孫止)와 그의 본처인 철장연화(鐵掌蓮花) 구천척 간의 혼인 비극이 바로 그 한 예가 된다. 그 원인을 살펴 보면, 실제로 구천척과 공손지 두 사람의 성격과 인품 및 의지와 수양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구천척은 흉악하고 야만스럽고도 위압적으로 통제하곤 했기 때문에 확실히 공손지가 오래도록 참지 못하고 싫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천척이 공손지의 정부(반드시 정이 있는 것은 아니며 그저 서로 친하게 지낼 뿐이었으나)에게 지나치게 잔인한 짓을 했던 것은 별 탈 없었던 것에 반해, 공손지의 보복은 너무나 음흉하고 잔인하다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던 것이다.

공손지가 소용녀를 만나게 된 이후 소용녀에 대한 애정은 정말 정신이 나간 듯한 지경이었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정욕과 소유욕을 참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소용녀를 아내로 맞으려고 했음에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오랫동안 억제되었던 정욕이 갑자기 제방이 무너진 듯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그는 무예를 배운 호걸이라는 당당한 신분이었음에도 마침내 완안평(完顔萍)에게 손을 뻗쳐 겁탈하고 말았으니, 그 행동은 이미 강호(江湖) 주변의 건달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하겠다. 후에 이막수(李莫愁)의 미모를 보게 되자 또 사욕을 품고 그녀와 친하게 지내고자 하여, 여러 차례나 친딸에게 상처를 입히는 댓가를 치르면서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정말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후에는 구천척에게 유혹당하여 여귀봉(勵鬼峰) 의 깊은 동굴(이곳은 바로 구천척이 갇혀 있던 곳)에서 함께 죽게

되었으니 정말 길은 달랐지만 결국 같은 결말을 맞았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정(情)과 성(性)이 욕(欲)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는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각자 개성의 근본적인 표현일 뿐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이것 역시 인간성의 영원한 비극의 한 부분이라고도 하겠다.

소설 중에는 또다른 하나의 희비극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삼통(武三通)의 두 아들인 무돈유(武敦儒)와 무수문(武脩文) 형제가 동시에 곽부(郭芙)를 사랑하여 그 애정을 자제할 수 없게 되자 골육간에 서로 해칠 마음을 품게 되어 결국 너 죽고 나 살자는 한판 승부를 벌이는 장면이다. 다행히도 양과가 거짓말로 해결하고 나자, 그 이후부터는 돌연 형제애를 드러내게 되었다. 그리하여 완안평과 야율연(耶律燕)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각자 의기 투합하여 결국 '대단원'으로 끝을 맺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한때 사람들에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어떤 사람은 무씨 형제가 행복해지길 원했고, 또 어떤 사람은 오히려 무씨 형제가 잽싸게 '정을 옮겨 각자의 길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는 어떤 슬픔마저 느끼기도 했다. 마치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씨 형제와 곽부는 함께 도화도(桃花島)에서 어릴 때부터 지내며 같이 성장하였는데, 첫째로 그 섬에는 그녀 외에는 젊은 여자가 없었으며, 둘째로 지내는 날들이 길었던 탓에 자연스레 정도 깊어지게 되었으며, 셋째로 곽부가 비록 지혜도 넓지 못하고 마음도 자비롭지 못했지만 소년들이 보기엔 아주 아리따웠으며 비할 데 없이 아름답기만 했기 때문에, 만약 두 형제가 곽부에게 정을 쏟지 않았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후에 '정이 변하게 된' 까닭은 우선은 갑자기 곽부가 매정하고 의롭지 못하다는 말을 듣게 되어 (비록 양과가 거짓말로 속이기는 하였으나 사실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 상심하게 되었으며, 다음으로 넓은 바다 텅빈 하늘처럼 외로운 속에서 인연이 닿아 완안평과 야율연 등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애처롭고 가련하면서도 온유하고 우아하여, 곽부가 '성격이 비뚤어지고 소심한데다' '매일 사람들을 역겨워하면서 학대하는' 것과는 아주 달랐던 점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 가운데서 끝을 맺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곽부도 거의 동시에 야율제(耶律齊)를 만나게 되어 결국 무씨 형제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곤역을 더 이상 치를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조협려>> 중에서 가장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부분은 자연히 양과와 소용녀 사이의 애정의 변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양과와 육무쌍(陸無雙), 정영(程英), 완안평, 공손녹악(公孫綠愕), 곽부, 곽양(郭襄) 등등의 소녀들 간에 얽히고 섥힌 애정 문제를, 어떤 사람은 이 소녀들의 양과에 대한 애정의 태도와 '응분의 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태도와 국면이 온화하면서도 아름다워 숙연하게 만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양과는 지정지성(至情至性)하고 용맹하고 강하며 풍류가 지나쳤고, 지혜가 많아 임기응변에 능했으며, 활기로 가득차 있었으며 또 매우 의롭고도 쾌활하였다. 게다가 나이도 어리고 잘 생겼으며 무력이 뛰어났으며 태도가 소탈하여 소녀들에게 천부의 흡인력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소년 영웅이 가는 곳마다 애정을 남기고 항상 풍류가 넘치고 소탈하게 행동하여 애정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이것 역시 인간성의 비극 혹은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그가 소용녀에게 유일한 애정을 가졌고 그것이 확고부동했다고는 하지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전히 이처럼 많은 아가씨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할 수 있다.

이것은 양과의 성격의 다른 한 측면을 표현하고 있는 동시에, 다른 수많은 성격들을 묘사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과는 육무쌍의 앞에서 일부러 '멍청하게' 굴면서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그녀를 <아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양과의 경박한 일면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육무쌍이 비록 천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악하지도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노련하게 흉악한 짓을 저지르는 인물도 아니었다. 다만 내심을 감추지 못하고 시원시원하게 밖으로 드러내면서 품고 있던 정을 감추지 않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을 뿐이었다.

양과는 정영의 앞에서는 '의협심이 많고'(정영은 줄곧 그가 육무쌍을 구해내고 또 황용의 모녀까지 구해내는 것을 보았는데) '의기가 높으면서도' '가슴속에는 격정과 충동과 결단력이 가득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정영가 양과에 대해 품은 애정은 비록 가끔 가다가 드러났지만, 육무쌍에 비하자면 끝내 함축되어 있고 깊숙한데다 활달하고 초월적이었다. 이것은 그녀의 성격이 외유내강하며 총명하고 빼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양과는 완안평에게는 '의롭고 무공이 뛰어난 듯' 행동하였다. 완안평이 복수를 하려다가 도리어 사람들에게 모욕을 받고 의기소침해 있을 때에 양과가 홀연히 나타나 그 생명을 구해 주고 지기(知己)로 삼아 무공을 가르쳐 주면서 그녀가 원수를 갚는 일을 도와주었다. 따라서 크게 감동하여 마음속에 깊은 인상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비록 완안평이 애처롭고 가냘픈 존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실제를 추구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공손녹악에게 있어서 양과는 '재미있고 소탈하며 경박하게' 행동하였다. 공손녹악은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절정곡에 있었으므로 거의 바깥 사람들과 접촉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처럼 풍류적이고 소탈한 남자 양과가 나타나 제일 먼저 그녀의 미모를 칭찬하면서 그칠새 없이 웃고 떠들고 한데다가 대범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그녀는 감동을 받은 것이었다. 결국 운명이 기구하여 정조있고 사랑스러운 이 아가씨는 끝내 그 아버지에게 살해되었지만, 이것은 그녀가 마음속으로 애정을 품었던 사람을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양과는 공손녹악이라는 이 아가씨에게 전혀 마음을 주지 않고 입으로만 사랑다고 말했을 뿐이었다.

곽부와 곽양 자매의 양과에 대한 애정은 실로 특별했다.

먼저 곽부에 대해 말해 보자. 그녀는 본래 양과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난 죽마고우였으나 그녀가 교만해서 쉽게 양과의 화를 돋구었기 때문에 만났다 하면 곧 헤어지곤 했다.

그녀는 본래 그녀의 부친에 의해 양과에게 시집가도록 되어 있었으나, 그녀의 어머니가 말렸고 또 자기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과의 애정도 점차 식었고 결국 양과가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쏟으면서 그들의 사이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녀는 원래 양과에게 커다란 은혜를 입었지만, 성격도 통하지 않은데다 기질도 맞지 않아서 원수 대하듯 하였으며 또한 그의 팔을 잘라내고, 모욕을 주거나 욕을 하는 행동을 보였다.

양과에게 있어서의 곽부나, 곽부에게 있어서 양과나 하나같이 그 성격이 맞지 않았으며 기질도 통하지 않았으므로 그들 둘은 물과 불처럼 화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들이 중년이 되었을 때 소설속에서는 갑자기 자기도 잘 깨닫지 못하고 남들도 모르고 있던 내심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감정을 들추어내고 있다.

이십 년 동안 그녀는 항상 자기의 속마음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양과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그를 원수처럼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내심의 깊은 곳에서는 그에 대해 말로는 이루 형연할 수 없을 정도로 연연해하면서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양과만 그녀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도 잘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이때 마음속의 원한과 사악함이 사라져버리자, 그녀는 비로소 갑자기 원래 자신은 그에 대해 이처럼 절실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적진에 뛰어들어가 남편을 구하려고 했을 때 난 대체 누구를 위해 더 걱정을 했단 말인가? 꼬집어 말할 수가 없구나.'

천군 만마가 서로 싸우고 죽이는 이 전쟁터에서 곽부는 갑자기 자기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곽양의 생일날에 세가지 선물을 보내왔을 때 왜 나는 그토록 뼈에 사무치게 싫어했었을까? 그가 곽도의 음모를 파헤쳐서 남편으로 하여금 개방 방주의 자리에 앉게 했는데도 나는 어째서 도리어 남몰래 화를 냈던 것일까? 곽부야, 곽부야, 너는 자기의 친 여동생마저도 질투하고 있었던 거다! 그는 곽양에 대해서는 그처럼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면서 나에게는 그 반만큼도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또 화가 나서 양과와 곽양을 한번 쏘아 보았으나 또다시 놀라면서 즉시 깨달았다.

'왜 나는 아직도 이 모양일까? 나는 한 남자의 아내이다. 남편은 나를 깊이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저도 모르게 깊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비록 그녀의 이 일생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긴 하지만, 내심의 깊은 곳에서는 정말로 말 못할 유감이 많았던 것이다. 그녀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가졌지만, 정말로 가장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얻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일생동안 항상 자기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는 채 아주 포악하게 성질을 부리고, 사람들이 모두 기뻐할 때면 자기 자신은 이유도 모르는 화를 내곤 했던 것이었다.

 이 단락은 진실로 절묘하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전체 책에서 가장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바로 이 단락인 것이다! 전체의 책 중에서 가장 다채로우면서도 심각하여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것 역시 바로 이 단락이라 할 수 있다.

이 단락 덕분에 우리들은 양과와 곽부의 성격과 은밀한 내심에 대해 더욱 깊은 깨달음과 이해를 갖게 되고, 그리하여 우리들은 <<신조협려>>라는 이 소설에 대해 더욱 깊은 깨달음과 이해를 갖게 되었다고 하겠다.

곽양에 대해서는 비록 책 속에는 적게 언급되고, 마지막 몇몇 장에 가서야 비로소 양과와 세대가 다른 인물로서 출현하고는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이 소설중 가장 빛나는 인물 형상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양과에 대해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으니, 이것은 또한 전체의 내용 중에서 가장 감동을 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그녀는 <소동사(小東邪)>라 불렸는데 사실은 황약사(黃葯師)와 곽정(郭靖)과 황용의 장점을 겸비하고 있었다. 책에 등장할 때는 비록 나이가 16세에 불과했지만, 용모가 아름답고 빼어났으며 고매하여 뛰어난 기질이 다분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고, 또 마음속에는 남모르는 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영원히 잊혀지기 힘든 인물이 되었다. 심지어 사람들로 하여금 어쩌면 곽양이야말로 양과의 진정한 배우자가 될 수 있는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도 만든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정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죽고 사는 것만큼 알기 어려워서 전부 이해하기란 힘든 법인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인물들도 모두 애정 비극 속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비극적인 애정극의 인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녀들은 성격과 미모가 제각기 달랐지만, 그녀들의 운명만큼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또 이런 아름답고도 총명하며 순박하고도 너그러운 소녀들을 마주 대하면서 양과는 정 때문에 애정을 품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쏟을 수가 없었으니,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양과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삶과 죽음을 함께 하도록 만드는가?

어쩌면 소설중에 이미 상징적인 답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제 17회 <절정유곡(絶情幽谷)> 중의 정화(情花)와 정과(情果:정화의 열매)가 바로 '정이라는 것'의 상징이자 표본일 수도 있다. 꽃나무를 자세히 보면 가지와 잎에 작은 가시가 가득 돋은 것이 보이지만, 그 가시에 비해 꽃잎의 색깔은 너무나 비할데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연꽃처럼 향기로우며 동백과 비슷하면서도 더욱 아름답다. 이렇듯 '아름다우면서도 가시가 많은 것'이 바로 정이란 것의 첫번째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손녹악이, <내 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정이란 본래 이것과 같아서 입에 넣을 때는 감미로우나 맛을 음미해보면 떨떠름하며, 몸체에는 가시가 많이 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있다나요. 꽃에 있는 몇 가지 특색 때문에 사람들은 이러한 이름을 지어준 것이지요.>라고 말한 것처럼, <입에 넣으면 감미롭고 음미해보면 떨떠름하다>는 것이 아마도 두번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 특징은 책 가운데서 쓰고 있다 :

양과는 마음이 편해지자 불현듯 소용녀가 생각났다.

(지금 내 곁에 아가씨가 있다면 나는 영원히 골짜기에서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손가락에 극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상처는 미세한데 엄청난 통증이 밀려와 마치 커다란 쇠몽둥이로 가슴팍을 세게 얻어맞은 것과 같았다. 그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입으로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그러자 녹의소녀가 말했다.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양과는 그녀에게 마음속의 비밀이 간파당하자 얼굴을 붉혔다. 그는 이상한 생각에 물어보았다.

"소저가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정화의 조그만 가시에 찔리면 열두 시진 안에는 그리운 사람을 생각할 수 없어요. 그렇지 않다가는 고통을 당하게 돼요."

양과는 너무나 이상했다.

"거 참 이상한 일이군요."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정이란 이 꽃과 같다는 거예요. 입에 들어갈 때는 달콤하지만 쓴맛이 나고 온몸이 아파온다구요. 그러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꽃에 이러한 특징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 같아요."

"어째서 열두 시진 안에는 누구를 그리워하면 안되는 건가요?"

"아버님 말씀이 정화의 가시에 독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누구든지 일단 용정을 품으면 피가 빨리 순환하고 피 속에 이상한 물질이 생긴다나요. 정화의 가시에 있는 독은 해롭지 않다가도 정욕을 품어 피 속에 형성된 이물질을 만나기만 하면 즉시 고통을 주어 견디지 못하게 한다는 거예요."

양과는 그 말이 신기하지만 일리가 있다고 여겨졌다.

두 사람은 천천히 걸어서 산의 양지 쪽에 이르렀다. 이곳은 햇빛이 밝게 비추고 있었고, 기온도 따뜻하기 때

문에 정화는 아주 일찍 꽃을 피웠고, 지금은 이미 그 열매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열매를 보니 파랗기도 하고 빨갛기도 하며 어떤 부분은 파란 빛깔과 빨간 빛깔이 섞여 있는 데다가 또 잔털도 가득 나 있어서 마치 벌레처럼 보였다.

양과가 말했다.

"정화는 아주 아름다운데, 그 열매는 이처럼 보기가 흉하군요."

그러자 소녀가 말했다.

"정화의 열매는 먹을 수가 없어요. 어떤 것은 시고, 어떤 것은 맵고, 또 어떤 것은 악취가 가득해서 구역질을 일으키기까지 하거든요."

양과가 웃으며 말했다.

"설마 꿀처럼 단 열매는 없단 말인가요?"

그 소녀가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있기는 있어요. 그러나 열매의 겉모양만 보고는 알아낼 수가 없답니다. 어떤 것은 아주 추하게 생겼는데도 달콤한 맛을 지니고 있어요. 하지만 보기 싫게 생긴 것이 반드시 달콤한 것도 아니에요. 그저 직접 먹어 보아야 알 수 있는 거지요. 열 개의 열매 중에서 아홉 개는 쓴 맛이 나기 때문에 다들 그것을 먹지 않는 것이랍니다."

<꽃은 아름다우나 열매는 못생겼음을, 열 개의 열매 중에 아홉 개가 쓴 것을 직접 맛본 후에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바로 '정이라는 것'의 세번째 특징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화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수법을 써서 단장초(斷腸草)로 정화의 독을 해독해야 한다. 이 단장초가 바로 정화수(情花樹) 아래서 자라기 때문에 <정화의 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장초를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 곧 '정이라는 것'의 최종적이고 결론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모든 설명은 <정> 혹은 <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과 답변이 되기에는 부족하며 단지 그저 하나의 상

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상징이라고도 할 수 없고 단지 기이한 상상과 비유일 뿐일 수도 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사람들은 각자 독자적인 품평을 내릴 뿐이다. 그런데 곤란한 점은 한 개인이 <정과(情果:정화의 열매)>를 다 맛보지는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맛 본 정의 맛이 꼭 정화나 정과의 맛일 수는 없으며, 또한 반드시 <정> 혹은 <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정으로 정확한 대답이 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답할 수 없는 문제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근본적으로 답이 없는 문제일 수 있다. 그저 맛보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을 뿐이며, 각자가 배우고 탐색하고 깊이 연구하면서 그 대답을 찾을 수도 있을 뿐이리라.

어떤 사람은 <인성론(人性論)> 및 <애정심리학(愛情心理學)> 같은 이론서 속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소설 속에서, <<신조협려>> 같은 소설 속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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