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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도룡기에 대한 작품 분석


의천도룡기에 대한 작품 분석

원문 출처 : http://cafe.naver.com/noblood.cafe

의천도룡기에 대하여 가장 잘 분석한 작품분석인 것 같습니다. 가히 지존의 글이네요. 이 글을 쓰신분과 한번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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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신조협려(神雕俠侶)>>,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를 합쳐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이라 한다. 적지 않은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사조삼부곡의 최후 작품인 <<의천도룡기>>는 앞의 두 작품과 거의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째서 사조삼부곡 중의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첫째로, 이 책의 이야기는 앞의 두 책의 이야기보다 근 백 년 후에 발생하므로,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고 사람들이나 사건들도 모두 바뀌었다.

둘째로, 이 책의 주요 인물들과 이전의 두 책의 인물들은 별로 밀접한 관계가 없다, <<신조협려>>의 대협 양과(楊過)는 <<사조영웅전>>의 인물인 양철심(楊鐵心)과 양강(楊康)의 후인이요, 대협객인 곽정(郭靖)의 의질(義侄:의형제의 아들)이다. 또 <<사조영웅전>> 속의 곽정이나 황용(黃蓉), 동사(東邪), 서독(西毒), 남제(南帝:南僧), 북개, 구천인, 주백통(周伯通) 등등의 많은 인물들이 <<신조협려>>에서는 여전히 <<신조협려>의 중요한 줄거리와 인물 관계의 그물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서로 비교해 볼 때, <<의천도룡기>>에는 이러한 <계승 관계>가 전혀 없다. 오직 곽양(郭襄)만이 <<의천도룡기>>의 제1회에서 마치 '용이 머리만 보이고 꼬리는 보이지 않는 듯이' 그렇게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소설 <<신조협려>>의 제일 마지막 회에서 10여 세의 소림사의 하인 장군보(張君寶)가 출현하게 되는데, 그는 전혀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그런 인물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장군보가 바로 <<의천도룡기>>의 일대 무학 대종사인 무당파(武當派)의 개산비조(開山鼻祖)이며, 소설의 주인공인 장무기(張無忌)의 스승인 장삼봉(張三峰)이 되고, 이 소설 속에서 그는 이미 백여 세나 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별로 대단하다고 할 만할 것이 못 되는 <인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비호외전(飛虎外傳)>> 속에 나오는 홍화회(紅花會)의 군웅들은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속의 인물들과 중복되긴 하지만, <<비호외전>>이 <<서검은구록>>의 속편이나 외전(外傳)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의천도룡기>>가 사조삼부곡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일까? 사조삼부곡의 앞 두 권은 시대가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인물들도 서로 계승되고 있고, 또 책이름 속에 모두 조(雕) 자가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의천도룡기>>는 이름에 조(雕) 자가 있는 것도 아니며, 소설 속에서 조(雕)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의 명성과 영향이 너무 컸고, 또 독자들과 관중들이 소설 속의 영웅 대협들의 후인의 이야기를 너무나 알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 여세에 밀려 김용 선생이 <제3부>를 지어 독자들의 염원에 보답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은 아닌지, 혹은 김용 선생이 원래부터 곽양과 양과, 그리고 곽씨 집안과 양씨 집안의 후인들의 이야기를 써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가 중간에 생각을 바꿔버린 것은 아닌지, 등등의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의천도룡기>>가 도대체 사조삼부곡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닌지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지만, 나는 이 문제가 그다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사 사조삼부곡 중의 하나로 볼 수 없다 해도, 그것이 이 소설의 가치나 그 독립적인 의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만약 사조삼부곡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의의와 가치를 더욱 빛내 줄 것이다.

사실 이 삼부곡의 성립에 대한 토론은 있을 수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논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다만, 이 삼부곡의 이름은 <사조삼부곡>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영웅삼부곡(英雄三部曲)>이라고 불러야 옳을 듯싶다.

제1부인 <<사조영웅전>>은 일명 <<대막영웅전(大漠英雄傳)>>이라고도 하며, 곽정이라는 영웅이 대막(大漠:사막)에서 태어나 화산(華山)에서 오르고, 강호에서 나와 조정에 공을 세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제2부인 <<신조협려>>는 신조협(神鳥俠) 양과라는 영웅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강호에 나와 조정에 공을 세우고, 어려움 속에서 태어나 결국 화산의 꼭대기에 오르게 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제3부인 <<의천도룡기>>에서는 장무기라는 영웅 역시 다른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도룡>(屠龍:뛰어난 재능을 지니다)과 <의천>(倚天:하늘에 의지하다)으로써 강호에서 협의로운 마음으로 백성들을 구제하는 협객(俠客)이라고 할 수 있다. '협지대자(俠之大者)'가 바로 이 <영웅삼부곡>의 중심이다.

관찰력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영웅삼부곡의 최후 작품인 <<의천도룡기>>가 완성된 이후에, 김용이 그려내는 인물들이 모두 협객이면서도 의협심이 부족하고, 의로운 행동과 불의의 행동이 명확히 구분이 되지 않으며, 또 무슨 <위국위민, 협지대자(爲國爲民, 俠之大者)>라는 순수한 영웅의 풍모가 없어졌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천룡팔부>> 속의 소봉(蕭峰)과 단예(段譽)와 같은 사람들 역시 대협객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영웅삼부곡의 주인공들처럼 그렇게 이상적인 영웅은 아니며, 그 영웅 인물들의 비극적인 운명과 그 불행한 인생이 강조되어 있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들이 만약 순수한 영웅, 순수하게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대협'을 얘기하려 한다면, 이 영웅삼부곡의 세 주인공을 빼 놓을 수 없다는 점을 쉽게 증명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들은 그것을 <영웅삼부곡>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조삼부곡>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활을 쏘아 새를 잡는 것(射雕)도 영웅이요, 새를 데리고 다니는 것 역시 영웅이며, 새를 쏘지도 않고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던 장무기 역시 영웅이다.

무슨 이유로 <영웅은 반드시 새를 쏘아야 한다>는 말인가? '혈연 관계'로 보면, 이 3부의 소설은 저절로 위치가 가까워진다. 사조삼부곡 혹은 영웅삼부곡이라고 부르는 진정한 까닭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3부의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바로 진정으로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대협객과 대영웅들이다. 당연히 그들은 똑같은 형식의 영웅들이 아니며, 서로가 각기 다른 세가지 형태의 영웅들이고, 혹은 영웅의 세가지 서로 다른 전형적인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곽정이 한 종류이고, 양과가 한 종류이며, 장무기는 또 다른 한 종류이다.
이것이 바로 김용이 이 삼부곡을 써낸, 또한 이 3부의 소설을 삼부곡으로 만든 가장 좋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럼 김용이 <<의천도룡기>>라는 이 소설의 <후기>에서 한 얘기를 살펴 보자.

<<의천도룡기>>는 사조삼부곡의 제3부이다. 이 3부는 남자 주인공들의 성격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곽정은 순박하고 성실하며, 양과는 정이 깊고 호방하고, 장무기의 개성은 비교적 복잡하면서도 연약한 편이다. 그는 비교적 영웅의 기개가 적고, 개성은 비교적 뛰어나지만, 결함 역시 아주 많아서 어쩌면 우리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과 더욱 비슷할 수도 있다. 양과는 절대적으로 생동적인 인물이며, 곽정은 큰 일에 있어서는 결정권을 지녔으나, 작은 일들은 모두 황용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했다. 장무기의 일생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영향 아래 있었다. 환경의 지배를 받아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애정 문제에 있어서, 양과는 소용녀를 죽음보다도 더 깊게 사랑하며 사회의 규범 따위는 무시해버렸다.

곽정은 황용과 화쟁 공주 사이에서 갈등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도덕적인 가치관 때문에 생긴 것이었지, 애정에 있어서는 조금의 고민도 없었다. 장무기는 시종 주지약(周芷若), 조민(趙敏), 은리(殷離), 소소(小昭), 이 네 아가씨들에게 이끌려 다녔다. 마지막에 가서 주지약에게 그는 조민을 가장 사랑하는 것같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대체 어떤 아가씨를 가장 사랑하는지 자기 자신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작자 역시 그것은 알 수 없다. 이미 그의 개성이 이렇게 만들어졌으므로, 모든 것은 순전히 그의 성격에 따라 발전하게 될 뿐, 작가는 더이상 상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장무기와 같은 이러한 사람은 무공이 더 높아진다고 해도 결국에는 정치적인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 그 자신 역시 원하지도 않았지만, 설사 억지로 지도자가 되었다 해도 최후에는 실패할 것이 뻔한 것이다. 장무기는 좋은 지도자는 못 되었지만, 우리들의 가장 좋은 친구는 될 수 있다.

 아마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상술한대로 장무기와 곽정, 양과, 세 사람의 성격이 다른데, '동일한 측면'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성질상'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곽정은 실제로는 정격(正格)의 인물로, 이념적인 영웅이었다. 그는 '어수룩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그런 인격의 이상적인 화신이었다. 따라서 <<사조영웅전>>은 비교적 인간적인 숨결이 느껴지며, <영웅의 신곡(神曲)>과 같은 이념적인 이야기들이 아주 많다.

하지만 양과의 성격 속에는 약간 풍류적인 느낌과 혈기가 배어 있어서 인간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우선,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하늘'에서 '속세'로 내려온 듯한 소용녀였고, 둘째로 그 자신 역시 심산대해(深山大海) 속에서 무공을 연마했기 때문에 점점 속세의 티를 벗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같은 <신조협>이 되었기 때문에, 역시 이념적인 영웅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그저 '잘못을 고치고 바른 길로 돌아선' 대영웅일 뿐, <<신조협려>>는 '반은 하늘에 속하고 반은 세속에 속하는' 그런 소설이 되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장무기의 경력은 비록 곽정과 양과에 비해 더욱 전기적이고 더욱 곡절이 많긴 하지만, 그 형상 자체로 말하자면, 그는 이미 '인간화'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무슨 <선천적인 이성을 지니고, 겉으로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뛰어난 인물>의 화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잘못을 고치고 바른 길로 돌아선 인물>의 전형도 아닌, 하나의 구체적이면서 생동적이고 성격이 복잡한 살아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천도룡기>>의 이야기들도 비록 겉보기에는 여전히 신화적이고 전기적 색채를 농후하게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적인 '맛'을 풍기고 있다.

어떤 사람이 사조삼부곡에서 <<사조영웅전>>을 가장 <정종>(正宗)이라 평가한다면 그것도 옳다. 혹은 <<신조협려>>가 <<사조영웅전>>에 비해 더욱 기묘하고 다채로우며 마음에 드는 장면이 많기 때문에 가장 오묘한 작품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의천도룡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들은 이 3부의 소설이 각자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또한 각각 지니고 있는 그 장점은 바로 작가가 부단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오래 끌지 않으며, 가공을 거쳐 형태를 만들어 나간 인물들을 부단히 변화 발전시킨 결과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계열소설(系列小說)> 이나 <삼부작> 류의 작품들에 비해 훨씬 뛰어난 점이라 하겠다.

 一. 의천(倚天)과 도룡(屠龍)

 책 이름이 <<의천도룡기>>이므로, 우리들은 이 <의천>과 <도룡>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의천이란 보검(寶劍)을 가리키는 말로, 의천검(倚天劍)을 말한다. 도룡은 보도(寶刀)를 가리키는 말로, 도룡도(屠龍刀)를 말한다.

자연히 이 도룡도와 의천검이 이 <<의천도룡기>>라는 소설 속에서 아주 중요한 도구(道具)가 된다. 그것의 운명과 이름, 출현과 쓰임에서 작가의 장인 정신을 잘 표현해 준다. 그것들의 의의는 결코 하나의 도(刀)와 하나의 검(劒)이라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 소설의 제 1, 2회인 <천애사군불가망(天涯思君不可忘)>과 <무당산정송백장(武當山頂松柏長)>에서는 수십 년의 옛 일을 더듬으며 장군보가 무당산에 올라 장삼봉이 되어 무당파(武當派)를 열게 된 경력을 더듬고 있는데, 그것은 이 책의 설자(楔子) 내지는 도입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본문>은 제 3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3회의 제목은 <보도백련생현광(寶刀百煉生玄光)>이다.

본문이 시작되자마자 도룡도가 출현한다. 하지만, 이 <도룡보도>는 상서롭지 못한 물건인 듯했다. 이것이 출현하는 곳에는 곧 피비린내가 가득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를 원했기 때문에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암암리에 손에 넣으려 계략을 세우는 통에 각 문파에 피비린내를 몰고 왔던 것이다. 심지어는 이 칼을 얻을 생각이 없었던 무당삼협(武當三俠) 유대암(兪岱巖)조차 기이한 인연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영문도 모르는 채 뜻밖의 재난을 만나 결국 폐인의 신세가 되고 만다.

이 도룡도가 나타나는 곳이면 그 곳이 어디든지 분쟁과 도살이 생기니, 정말 상서롭지 못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보도가 상서롭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설사 도룡도가 보도라 해도, 사람에 따라 쓰임이 달라지는 법이다. 보도를 빼앗아 자기 혼자 가지려는 것은 실제로 강호에서는 밥먹듯이 흔히 있는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 보도에는 <무림 지존은 도룡보도이니,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자 누구인가! 의천이 나타나지 않으면 무엇이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

(武林至尊, 寶刀屠龍, 號令天下, 莫敢不從! 倚天不出, 孰與爭鋒?)>라는 말이 따라다니고 있었으니, 이 말이야말로 도룡도가 큰 분쟁과 피비린내를 일으키게 된 근본 원인이 되었다 하겠다. 다만 우스운 것은 이 말이 대체 무슨 뜻인지, 제대로 해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며, 그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담긴 오묘한 비밀을 풀지 못했다는 점이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 도룡도의 출현 및 그로 인해 벌어지게 된 사건들에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의의를 찾아 볼 수 있다.

우선 '앞 책들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이 도룡도는 곽정과 황용이 만든 것이다.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라는 이 <앞 책>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 책들과 <뒷 책>을 연관시켜 주는 것이 바로 이 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 '곳곳에 그 중심 되는 뜻이 잘 요약되어 있는' 격이다.
다음으로, 칼이 상서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가련하기만 하니, '탐욕' 때문에 그것을 '빼앗으려' 하고 결국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들 이 명기를 탐냈고, 더군다나 <무림의 지존>이라는 이 말 때문에 모두들 그것을 소유하고자 온갖 계략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헛되이 자신의 생명만 날려버리고 말았다.

오묘한 점은, 이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도 <무림의 지존>이라는 말에 어떠한 <뜻>이 담겨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속임수 중에서도 아주 어리석은 속임수였다.

이 도룡도는 정말 인성 중에서도 악하고 비참한 면을 잘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3회에서 소설의 <본문>이 시작되면서, 인성의 <원형(原形)>이 묘사되기 시작한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유대암이 말했다.

"이제 당신은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는 급한 일이 있기 때문에 당신과 함께 있을 수가 없으니, 우리들은 여기에서 이만 작별해야 하겠습니다."

그 노인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네는...어째서...이 보도를 빼앗지 않는가?"

유대암이 웃으며 말했다.

"보도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내 것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함부로 빼앗는단 말입니까?"

그 노인은 그 말을 믿지 않으며 말했다.

"자네는...자네는 대체 무슨 계략을 꾸며 날 어떻게 괴롭힐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유대암이 말했다.

"전 당신과 아무런 원한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계략을 꾸며 당신을 괴롭히겠습니까? 오늘 밤 이곳을 지나가다가 당신이 중독되어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저 도와준 것일 뿐입니다."

그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내 목숨은 자네 손에 달려 있으니, 죽일테면 죽이게. 무슨 악랄한 수단을 써서 날 괴롭혀도 죽으면 그만이야. 죽어 귀신이 되면 자네를 살려두지 않겠다."

이에 성격이 아주 너그러운 유대암도 더 이상 성질을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제가 누군지 아십니까? 무당파 문하의 사람이 어찌 감히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한단 말입니까? 이것은 해독약입니다. 당신 몸에 있는 독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으니 이 단약으로 완전한 치료는 할 수 없겠지만, 최소한 당신의 목숨을 3일은 연장시켜 줄 것입니다. 당신은 이 보도를 해사파(海沙派)에게 넘겨주고 그들만이 지닌 해독약을 얻어다가 목숨을 구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 노인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누가 내 도룡도를 가진단 말이냐?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유대암이 말했다.

"당신의 목숨이 사라지는 판에 이까짓 보도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차라리 목숨을 버릴테다. 이 도룡도는 내 것이란 말이다."

말을 하면서 칼을 꽉 껴안고는 칼에 뺨을 비벼대는 모습이 정말 말할 수 없이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 <천심해독단(天心解毒丹)>은 삼키고 있었다.

 <난 차라리 목숨을 버릴테다. 이 도룡도는 내 것이란 말이다.> 이 말은 정말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더이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이 없어지게 되었고, 이성과 지혜가 사라져버리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탐욕> 때문에 목숨마저 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노인은 이름이 덕성(德成)이고, 외호(外號)는 해동청(海東靑)이라고 했는데, 무슨 호인이라고도 할 수 없고 덕도 없고 이룬 바도 없는 인물이었다. 이 인물은 <<의천도룡기>>라는 이 소설 속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인물로, 백이면 구십 구 명의 독자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의 이야기를 보면, 김용이 '쓸데없는 묘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도 인성의 비극과 비참함, 그리고 우스운 단면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책 속에서 도룡도를 빼앗으려다가 귀중한 생명을 잃는 이야기는 아주 많으니 여기에서는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
이상의 두 가지 점은 그저 '힘들이지 않고 순리대로' 써나간 것으로, 김용과 같은 이러한 대가들이 무슨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저 '뜻에 따라 지은' 것일 뿐이다.

이 도룡도가 소설 속에서 미치는 작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다음의 세번째 특징이야말로 책 속의 고사와 주인공들의 운명의 근거가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무당삼협 유대암은 우연한 기회로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는(결국에 가서는 구하지 못한 셈이지만), 자기의 목숨의 반을 주어버리고, 마침내 폐인이 되어 모든 무공을 상실하고 만다.

이로 인해 무당파의 제자들이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유대암이 상처를 입게 된 원인에 대해 조사하게 되었고, 무당오협(武當五俠) 장취산(張翠山)도 하산하여 조사를 벌이다가 은소소(殷素素)와 만나 함께 양도입위(揚刀立威)를 행하는 천응교(天鷹敎)의 왕반산(王盤山)으로 가게 되었고, 또 금모사왕(金毛獅王) 사손(謝遜)에게 사로잡혀 남극의 빙화도(氷火島)에까지 가게 되었으며, 여기에서 장취산과 은소소는 부부가 되어 주인공인 장무기를 낳게 되었고, 이 빙화도에서 십 년 동안 살며 대륙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따져 본다면 모든 사건 하나 하나가 전부 이 도룡도와 상관이 있는 일이다. 만약 도룡도가 아니었다면, 장취산이 하산하여 사교(邪敎)의 여인인 은소소와 사귀게 될 리도 없었고, 만약 이 도룡도가 아니었다면 사손 역시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을 끌고 남극의 빙화도까지 갔을 리도 없었으며, 당연히 이렇게 특수한 환경과 운명이 아니었다면, 장취산이라는 이 명문의 자제가 은소소같은 이러한 이교도의 요녀와 부부가 될 리도 없었고, 장무기를 낳았을 리도 없었으며, 사손과 결의형제를 맺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손이 장무기의 의부가 될 리도 없었을 것이다.

따져 본다면, 장취산 부부의 죽음도, 사손과 만나고 붙잡히고 구해지는 것도, 그리고 장무기의 일생 동안의 비극과 기이한 운명도, 모두 이 도룡도와 관련이 있으며 이 도룡도에 의해 생겨나게 된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이 도룡도가 이 소설 속에서 끼치는 작용(구성 방면에 있어서의 작용)은 가히 대단하다 하겠다.

네번째로, 무림계의 분쟁을 일으키고 무수한 인명을 빼앗았으며, 대부분의 군웅 호걸들에게 영향을 미친 이 도룡도가 최후에는 결국 장무기의 손에 떨어지게 되고, 장무기는 이것에 의해 군웅들을 지휘하여 몽고의 관병을 물리치고 소림사와 군웅들의 생명을 보존하며 대 승리를 거두게 된다.

보기에, 이 <무림 지존은 도룡보도이니,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자 누구인가!>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같다. 소설의 결미 부분에 이르러서야 이 도룡보도의 비밀이 풀리게 된다. 그것은 모두가 상상하던 것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야 장무기가 그에 담긴 진정한 비밀을 풀게 된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장무기는 품속에서 얇고 누런 종이를 꺼냈다. 바로 원래 도룡도 속에 감추어져 있던 <<무목유서(武穆遺書)>>였다. 그는 <병곤우두산(兵困牛頭山)>의 부분을 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서달(徐達)은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고는 자세히 읽더니 감탄과 존경을 금치 못하여 탄식하며 말했다.

"무목(武穆)의 용병(用兵)은 정말 신에 가까울 정도였으니, 정말 후인들은 따라갈 수가 없겠습니다. 만약 악무목(岳武穆)께서 오늘날에도 살아 계셔서 중원의 호걸을을 지휘한다면, 오랑캐들을 사막 북쪽으로 쫓아 보내는 일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아주 공손이 그 유서(遺書)를 되돌려 주었다.

장무기는 받지 않으며 말했다.

"<무림 지존은 도룡보도이니,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자 누구인가!>라는 이 말에 담긴 진정한 뜻을 나는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소위 <무림 지존>이라는 말은 보도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칼 속에 숨겨진 유서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병법을 연구하여 적을 맞으면,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말 것이니, 결국 저절로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보도 하나에만 의지한다면 어떻게 정말로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겠습니까? 서형, 이 병서를 그대에게 드릴 터이니, 당신이 악무목의 유지를 받들어 강산을 되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서달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말했다.

"제가 무슨 덕이 있어서 그럴 수 있겠습니까? 어찌 감히 교주님의 그런 은사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장무기가 말했다.

"서형은 사양하지 마십시오. 저는 천하의 백성들을 위해 이 병서를 당신에게 드리려는 것이니까요."

서달은 두 손을 떨며 병서를 받아 들었다. 장무기가 말했다.

"무림계에 전해지는 말 중에는 또 <의천이 나타나지 않으면 누가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는데, 의천검은 이제 두 동강이 났습니다. 하지만 훗날 다시 붙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검 속에 숨겨진 것은 아주 대단한 무공의 비급이었습니다. 저는 이 몇마디 말에 담겨진 참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병서는 오랑캐를 쫓아 버리는데 쓰는 것이며, 만약 누군가가 혼자 대권을 장악한 후에 자신의 위엄과 행복을 위해서 잔인하고 횡포한 짓을 저질러 세상 백성들에게 그 화가 미치게 된다면, 한 영웅이 의천검으로 그 자의 목을 잘라버리라는 뜻인 것입니다. 백만 대군을 통솔하는 사람이 설사 천하를 호령할 수는 있다 해도, 반드시 의천검의 일격을 막아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서형, 이 말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서달은 등에 땀을 흘리며 듣고 잇다가 이윽고 말했다.

"교주님의 말씀을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목유서>>를 탁자 위에 올려 놓고는 아주 공손하게 네번 절을 하고는 다시 장무기에게도 절을 하며 병서를 준 은혜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후에 서달은 과연 신처럼 용병의 기술을 발휘하여 원나라 군사들을 연패시켰고, 최후에는 몽고인들을 변방 밖으로 쫓아냈다. 이로 인해 사막 북쪽에까지 그 위업을 떨치는 일대의 공적을 세우게 되었다.

바로 이렇게, 이 <도룡도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동시에 <의천검의 비밀> 역시 그에 의해서 밝혀지게 되었다. 확실히 이렇게 큰 비밀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은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 데 있어 일종의 구성적 배치의 필요에 의해 고심하며 고안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무림 지존은 도룡보도이니,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자 누구인가! 의천이 나타나지 않으면 무엇이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라는 이 말에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의천이 나타나지 않으면 무엇이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라는 말에도 작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즉, 의천검과 도룡도가 서로 맞부딪히게 되어야 비로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병서와 비급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무엇이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라는 말에 숨겨진 작은 비유라 할 수 있겠다.

사실 고사의 구조와 연관이 있을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소설의 내용 및 주제와도 연관이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이 소설은 강호의 군웅들이 도룡도와 의천검을 빼앗으려고 다투는 이야기인 듯하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중원의 아녀자들이 이민족 통지자인 몽고족(원나라) 병사들에게 대항하는 이야기와(이것이야말로 <도룡도의 참 뜻>이라 할 수 있다), 또 강호의 호걸들의 작은 은혜와 작은 원한과 큰 원수와 큰 원한이 서로 뒤섞여진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이 <<의천도룡기>>는 일반적인 무협 소설에서 다루는 <군웅들이 보물을 빼앗는> 그런 간단하면서도 천박한 이야기의 형식을 뛰어 넘어 <김용의 풍격>을 형성하고, 또 <강호를 묘사하면서도 강산에 의미를 두는> 혹은 <정과 원한을 표현하면서도 세상사와 연관이 되는> 소설이 된다.

다시 더 깊게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장무기의 그 말에 대한 해석은 가히 중국 고대의 <역사관>과 <영웅관>의 종합적이면서도 기본적인 격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병서(兵書)를 가지고 이민족을 몰아내어 왕위에 오르는 동시에 무도(無道)한 일을 저지른다면 즉시 의천검으로 물리치라는(암살하라는) 뜻인 것이다.

중국의 옛 선조들은 무슨 <정치 체제>나 그 <민주와 법치>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임금에게 덕이 있기를 바라고, 임금에게 덕이 없는 것을 걱정하고, 영웅이 무도한 자를 암살하기를 꿈꾸었던 것이다.
중국의 역사는 한 편의 <암살>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왕조가 바뀌어 <본족(本族)>이 통치하든 이민족이 통치하든, 그것은 그저 내용만 바뀌고 형식은 그대로인,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 아주 슬픈 <정치적 이상>이라 할 수 있다.

다섯번째로, 이 책에서 도룡도와 의천검은 항상 장무기와 커다란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최후에 이것을 <순순히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고> 만다. 병서이든, 비급이든 그가 얻어내고 또 모두가 그 사실을 인정했으며, 그는 명교(明敎) 교주의 신분으로 은연중에 중원의 군웅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이 <천하를 호령하매 감히 따르지 않을 자 누구인가!>라는 말은 당연히 그에게 주어졌어야 했으며, 그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마땅히 그를 위해 사용되었어야 옳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서달에게 주어버린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서달은 <역사적인 인물>로 바로 용병에 있어서는 귀신처럼 능하고, 주원장(朱元璋)을 보좌하여 몽고의 오랑캐들을 내쫓고, 중화(中華)를 다시 일으켜 명나라를 건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병서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진실>인 듯이 보인다.
사실 여기에 바로 이 책의 오묘하고 커다란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이니, 책 속에서 쓰고 있는 주인공 장무기는 개세(蓋世)의 영웅이요

, 절세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명교의 교주로서 은연중 중원 군웅들의 영도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정치적인 지도자>의 재목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훌륭한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한번도 정치적 지도자가 되겠다거나, 언젠가는 <왕위에 오르겠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따라서 이 <<의천도룡기>>에 담겨진 의미에 대해서 반드시 각도를 바꿔 보고 감상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二. 영웅과 범인(凡人)

이 <<의천도룡기>>는 대 영웅과 대 호걸의 전기(傳記)를 적은 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 책은 신(神)같은 영웅이나 효웅(梟雄)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기보다는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성을 그려내고 있다.

책 속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인물은, 장무기를 제외한다면 장삼봉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 장삼봉은 무당파의 진인(眞人)으로, 무당파를 연 사람이고 그가 수련한 무학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하여 가히 고금에 빛나는 인물이라 하겠다. 나이는 백 세가 넘었으며, 일대의 무학 종사였다.
만약 <<사조영웅전>>을 예를 들어 비교해 보자면 동사, 서독, 남제, 북개 및 구천인과 주백통 등보다도 한 수 높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의천도룡기>>에서 장삼봉이라는 인물의 형상은 그렇게 초자연적인 사기(邪氣)도 없고 또 종잡을 수 없는 신출귀몰한 신성(神性)도 없다.

그의 형상이 성공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비밀은 그런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진실함'에 있다. 즉, <장진인(張眞人)>은 '정말로 있었던 사람'일 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도 아주 '진실한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장삼봉은 문무(文武)에 모두 뛰어났고, 혼자서 권법의 이치와 도가의 충허원통(沖虛圓通)의 도를 깨우쳐 후대에 빛나고 천고에 빛날 무당파의 무공을 창출해내어 선대를 계승하고 후대까지 발전시킨 대종사(大宗師)이자, 중국 무학사(武學史)에 있어서 둘도 없는 기인이었다. 하지만 이 <기인(奇人)>은 <<의천도룡기>>라는 이 책 속에서는 아주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며, 쉽게 친숙해질 수 있을 정도로 자상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정말로 어느 한 구석에서도 '기이한 부분'을 찾기 어렵다.

그가 <본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그의 나이는 구십 세였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송원교(宋遠橋)는 등불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 셋째 동생과 다섯째 동생이 분명 무슨 의롭지 못한 일을 보고 참견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부님께선 늘 저희들에게 덕을 쌓고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오늘이 바로 사부님의 생신날이니, 두 동생이 협의로운 일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생신 선물이 될 것입니다."

장삼봉은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더니 말했다.

"흠흠. 내 여든번째 생일 날에는 네가 물에 빠진 과부의 생명을 구했었지. 아주 잘한 일이야. 하지만 매번 10년에 한번씩만 좋은 일을 한가지씩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그 도움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노심초사 하겠느냐?"

다섯 제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장삼봉은 성격이 아주 격의가 없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들 사제지간에는 항상 웃음 섞인 얘기가 끊이지 않았었다.

이 단락에서는 무학의 대종사의 공경할만하고 사랑할만한 성격을 잘 그려내 보이고 있다. 다른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처럼 그렇게 기괴하거나 괴퍅하지 않으며, 공경할만하기는 해도 친숙해지기는 힘든 그런 인물들의 형상과는 다르다.
장삼봉이 백 세의 생일을 맞았을 때, 10년 전에 실종되었던 제자 장취산을 만나는 장면을 다시 살펴 보기로 하자.

가벼운 소리가 들리더니 두 문이 활짝 열렸다. 제일 먼저 장삼봉의 눈에 띈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십 년 동안 날마다 생각하던 장취산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장취산은 훌쩍 그의 품안에 뛰어들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연달아 '사부님!'하고 불렀다. 그는 흥분된 나머지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마저 잊고 있었다. 송원교 등의 다섯 명이 일제히 말했다.

"사부님, 다섯째가 돌아와서 매우 기쁘시겠습니다."

장삼봉은 백 살까지 살았는데다가, 무공을 수련한지 팔십 년이 되었기 때문에 마음은 텅 빈듯 고요하고 세상 만물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 일곱 명의 제자와는 마치 부자와 같은 정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장취산이 돌아온 것을 보자 저도 모르게 그를 꼭 붙들고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러 제자들이 사부가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는 것을 시중들었다. 장취산은 어렵고 괴로웠던 일들은 감히 아뢰지 못하고, 그저 빙화도의 괴상한 사건들과 이상한 사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었다.

장삼봉은 그가 이미 결혼하여 아내를 얻었다는 말을 듣고는 더욱 기뻐하며 말했다.

"네 아내는 어디에 있느냐? 빨리 날 보러 오라고 하여라."

장취산은 두 무릎을 땅에 꿇고는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대담하게도 아내를 맞아들일 때 사부님께 알리지 못했습니다."

장취산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으며 말했다.

"네가 빙화도에서 십 년 동안이나 돌아올 수 없었는데, 설마 십 년을 더 기다렸다가 내게 알리고 결혼을 했어야 된단 말이냐? 우습구나, 우스워! 어서 일어나거라. 죄라고 할 것도 없다. 장삼봉에게 어디 그처럼 융통성 없는 제자가 있었더란 말이냐?"

장취산은 여전히 꿇어 앉은 채로 말했다.
"하지만, 제자의 아내의 내력이 정파(正派) 출신이 아닙니다. 그녀는... 그녀는 천응교 은교주(殷敎主)의 딸입니다."

장삼봉은 여전히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그저 아내의 인품이 괜찮으면 그만인 게다. 설사 그녀의 인품이 나쁘다 해도 이곳 무당산에 오면 저절로 감화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야. 천응교가 어떻단 말이냐? 취산아, 사람은 마음이 너무 좁아서는 안되는 법이다. 절대로 자기가 명문정파라 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정(正)과 사(邪), 이 두가지는 원래 나누기가 어려운 법이다. 정파의 제자가 만약 심지가 바르지 못하면 곧 사도(邪徒)인 것이요, 사파(邪派)의 인물이라 해도 오로지 선을 쌓기만 하면 바로 그가 정인 군자인 것이다."

장취산은 크게 기뻐했다. 자기가 십 년 동안이나 걱정을 했던 고민을 사부가 이처럼 가벼운 몇마디 말로 풀어 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장삼봉이 또 말했다.

"너의 장인 되시는 은교주와 나는 서로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다. 그는 뛰어난 무공은 아주 존경할 만하지. 아주 호탕하고 재주가 많은 기인이다. 그가 비록 성격이 편협하고 행동이 좀 괴퍅한 구석은 있지만, 그래도 비겁한 소인배는 절대로 아니다. 우리들은 그 친구와 아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야."

송원교 등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는 이 다섯째 동생에 대해 과연 대단한 사랑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기르는 개까지도 이뻐 보인다더니, 다섯째의 장인이 그처럼 유명한 대마두인데도 뜻밖에 친하게 지내시겠다고 하시는 걸 보니 말이다.)

이 때 한 시동이 들어와 아뢰었다.

"천응교 은 교주님께서 사람을 보내 장 다섯째 사숙님께 예물을 가져 오셨습니다."

장삼봉이 웃으며 말했다.

"네 장인이 예물을 보내 왔구나. 취산아, 네가 가서 손님을 맞고 대접하렴!"

장취산이 대답했다.

"예!"

이 단락은 평이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아주 다채로운 문장으로 서술되고 있어서, 읽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심금을 울려 아득히 정신을 잃게 만드는 면이 있다.

장삼봉은 백 세가 될 때까지 도를 닦았으니 가히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제자들에 대해서는 부자와 같은 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다섯째 제자가 돌아왔을 때 많은 제자들 속에서 <첫눈에 장취산을 발견하게> 되고, 그 후엔 <잘못 본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비는> 태도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섬세하고 미묘한 묘사는 애정과 자상함이 가득한 사부의 형상을 매우 치밀하고 심도 깊게 그려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가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에서 사람들은 더더욱 감동을 받게 된다. 더욱 정묘한 것은 <장취산이 아뢰지도 않고 아내를 맞아들인 데다가, 그 여자가 사악한 문파의 여자였다>는 이 두가지의 엄청난 사건에 대해서도 장삼봉은 그저 몇마디 가벼운 말로 <넘어가버렸다>는 점이다.

이 문제만 보아도, 송원교 등이 생각했던 것처럼 장취산에 대한 장삼봉의 애정은 정말 지극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부분은 장삼봉의 감정을 한층 깊게 묘사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다른 한편으로 장삼봉의 넓고 초월적인 위대한 마음과 대사(大師)의 감정과 견식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위 <정사(正邪)>라는 것도 대사의 시각에서는 아주 탁월하고 절묘한 깨달음과 해석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의 일곱 제자들 중에는 그 어느 누구도 장삼봉같은 대사의 마음과 견식의 위대함을 깨닫는 자가 없이 그저 다들 <워낙 장취산을 사랑하기 때문에 저러시는 것>이라고만 여길 뿐이었다.

심지어는 알리지도 않고 은소소를 아내로 맞아 십 년이나 결혼 생활을 한 장취산조차, 비록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진실로 큰 회포와 견식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정세에 밀렸고, 정에 이끌려 그리하게 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십 년 동안 마음 속으로 고민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작자는 의도적으로 꾸미지 않고도 일대의 무학 종사 장삼봉의 초월적인 마음과 견식을 정말 친숙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장취산이 형제지간의 의를 위해 자살하고, 장무기가 몸에 중상을 입게 되었을 때 장삼봉의 비통함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장삼봉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은 흐르는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는데, 두 손으로 무기를 꽉 안고는 장취산의 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취산아, 취산아, 네가 나를 사부로 모셨고 죽기 직전엔 이 아이까지 내게 맡겼지만, 난 너의 외아들조차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으니, 내가 백 살까지 살았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천하를 주름잡는 무당파의 명성은 또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내가 죽는게 차라리 더 나을 것 같구나!"

제자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제자들은 장삼봉을 사부로 모신 이래로, 항상 그가 편안히 유유자적한 모습만 보았었지, 이처럼 침통하고 애닯아 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사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조금의 미동도 없었으니, 그것은 극도로 상심했기 때문이었다!>라 할 수 있다. 백 년이나 도가의 무학을 수련해 온 이같은 대종사가 뜻밖에도 한 어린아이 때문에 이처럼 비통함을 느끼는 장면이 우리에게는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또한 장삼봉은 무림에 다시 없을 위대한 대종사라는 신분으로 장무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직접 그 어린 아이를 대리고 소림사로 가서 <병을 고칠 수 있는 무예를 구걸>하면서까지 그 생명을 구하고자 애쓰니, 이것은 과연 평범한 사람은 배울 수도 없는 커다란 마음이요, 영웅적인 기개라 할 수 있으며, 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평범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정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두 사람이 일위정(一葦亭)에 도착하자 멀리 소림사가 보였다. 두 명의 젊은 스님이 담소하며 걸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장삼봉은 그들을 손짓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무당산 장삼봉이 방장 대사를 뵈러 왔다고 좀 전해 주시겠소?"

두 명의 승려는 장삼봉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래 뜨고는 그를 살펴 보았다. 그가 키가 이상하리만큼 크고 수염과 머리털은 은빛이었으며, 얼굴에는 불그레한 윤기가 돌고 빙그레 웃는 모습이 아주 친근하게 느껴졌고, 푸른 도포에는 먼지가 아주 많이 묻어 있었다.

장삼봉은 성격이 자유 분방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했으며 몸치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시절에 강호에서는 등 뒤에서 그를 <납탑도인>(납탑이란 더럽고 지저분하다는 뜻)이라 부르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그를 <장납탑>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이제 무공이 점점 고강해지고 명성도 점점 드높아지면서부터는 감히 그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었다.

두 스님은 속으로 생각했다.

'장삼봉은 무당파의 대종사이고, 무당파와 우리 소림사는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혹시 싸움이라도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장삼봉은 시퍼런 안색에 말라빠진 열 한두 살 정도 먹은 소년을 데리고 있고, 또 두 사람이 모두 위협적인 빛을 띄지 않고 있어서 무슨 위세를 부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당신이 정말로 무당산의 장..장진인이시라는 말입니까?"

장삼봉이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을 해도 들통날 것인데 내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소?"

다른 스님은 그의 말에 전혀 한 문파의 대종사다운 위엄이나 기개가 없는 것을 알고는 더더욱 의심이 생겨서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농담하는 게 아닌가요?"

장삼봉이 웃으며 말했다.

"장삼봉이 뭐 그리 대단한 게 있다고? 이름을 사칭한다 한들 뭐 좋은 일이 있겠소?"

두 사람은 반신반의하면서 나는 듯이 소림사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이것이 진정한 장삼봉의 모습이다. 겉에서 안을 살펴 보아도, 행동이나 말에 한 문파의 대종사다운 위엄과 기개가 전혀 없다. 소림사의 두 스님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던 <대종사>의 형상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살펴 볼 필요가 없고, <진인(眞人)>을 보아도 진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점만 보아도 이 두 스님이 얼마나 천박하고 속된 자들인지 알 수 있다. 동시에 이것이 바로 김용 소설의 절묘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장삼봉의 형상, 성격, 기개가 각자의 마음속에서 대단히 생동적인 미를 느끼게 해 준다고 하겠다.

하지만 더더욱 신기하고 오묘한 부분은 제 20회에서 <장삼봉이 습격을 받아 상처를 입는> 단락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삼봉은 공상(空相)이 오랫동안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않은 채 애통해하며 우는 보습을 보자 손을 뻗어 그를 일으키면서 말했다.

"공상 사형, 소림사와 무당파는 원래 한 집안이라 할 수 있으니, 이 원수를 반드시 우리가 ..."

그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공상이 쌍수로 그의 아랫배에 일격을 가했다. 이것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장삼봉의 무학은 아주 심오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비록 모든 것을 마음 먹은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달해 있었지만, 원수를 대신 갚아달라고 부탁하며 멀리서 달려온 소림사의 고승이 자기에게 암습을 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여전히 공상이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정신이 혼미해져서 저도 모르게 자기를 적으로 착각하고 일격을 가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랫배에 맞은 장력은 바로 소림파의 외문 신공인 금강반야장(金剛般若掌)이 분명했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상은 온힘을 다해 장력을 격출했는데, 그의 얼굴은 백짓장처럼 하얗지만 입에는 아주 교활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장무기, 유대암, 명월(明月), 세 사람은 이 갑작스런 변고를 보고 너무 놀라 멍청해져 있었다. 유대암은 폐인의 몸이기 때문에 나서서 사부를 도울 힘이 없었다. 장무기는 나이가 어려 견식이 짧았기 때문에 이 순간 공상이 왜 사부를 공격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저 놀라 아, 하고 소리를 질렀을 뿐이었다. 장삼봉은 왼손을 들어 팍,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공상의 천령개를 내리쳤다. 이 일장은 솜처럼 부드러웠지만, 위력은 무쇠보다도 더 강했기 때문에 공상은 그 즉시 두개골이 마치 진흙처럼 부서져내렸고,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한 채 죽어버리고 말았다.

유대암이 급히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이라는 한 마디를 하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장삼봉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는데 돌연 머리 꼭대기에서 허연 김이 솟아 오르고, 입에서 선혈을 토해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단락은 그가 장삼봉을 평범한 사람으로써 그려냈기 때문에 더더욱 정묘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무협 소설에서는 장삼봉처럼 오랫동안 무학 수련을 쌓고 견식도 깊은 무학의 대종사가 우선 이처럼 쉽게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이 없으며, 습격당해 쓰러지는 일도 없으며, 이처럼 중상을 입게 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예를 들어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동사, 서독, 남제, 북개 및 주백통 등을 살펴 보자. 만약 그들이 서로 무공이 비슷하지 않았더라면(예를 들어 서독이 북개를 습격하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그처럼 쉽게 속아 넘어가 상처를 입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삼봉은 그랬던 것이다!

그 원인은 오직 작자가 그를 진실한 무학의 대종사로(사람이지 신이 아닌) 그려냈기 때문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속아 넘어가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장삼봉의 마음에 인의가 가득하고 <남을 해치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며 <남을 방어하고자 하는 마음> 역시 조금도 없었음을 보여준다. 만약 그가 <오랫동안 강호의 일을 겪으며> <다른 사람을 방어하려는 마음이 없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계략을 짜고 항상 경계하며 살아 왔을 경우에도 이처럼 뛰어난 일대 무학 종사가 될 수 있었는지는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인품에 있어서든 무공에 있어서든 진정한 대종사라면 모두 장삼봉 처럼 <속아 넘어 가서>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속아서 상처를 입었지만 즉시 죽지 않고 결국 적을 막아내기까지 했으니, 그의 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속고 상처입는 이 한 단락의 묘사가

장삼봉의 인품과 무공에 조금도 손해를 입히지 않으며, 오히려 그의 인품의 뛰어남과 무공의 심오함을 더더욱 부각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장삼봉이라는 이 인물의 형상은 소설 속에서 진정으로 <인간화> 되어 있으며, <신격화> 되어 있지 않고, 또 그를 <살아서 생동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수식하여 꾸미고> 있지 않다. 그리하여 영웅과 평범한 사람을 함께 써내어 평범한 부분일수록 더욱 영웅적으로 다가오게 만들고, 대영웅일수록 얼핏 보기에는 가장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 <<의천도룡기>>에서는 장삼봉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당칠자(武當七子:무당파의 일곱 제자)> 역시 살아 있는 듯이 묘사하고 있다.

송원교(宋遠橋)는 단정하고 예의 바르면서 조금의 허례 허식이나 꾸밈이 없다. 유연주(兪蓮舟)는 말이 적고 과묵하면서 정이 아주 많다. 유대암(兪岱巖)은 성격이 강렬하면서도 진중한 면이 있다. 장송계(張松溪)는 지혜가 많고 일을 계획하는데 능하다. 장취산(張翠山)은 소탈하면서도 '여린 면'이 있다. 은이정(殷梨亭)은 마음이 약하고 성격이 유약하다. 막성곡(莫聲谷)은 어려서 사랑스럽다. 이처럼 모두가 <평범한 사람>의 성격을 가진 동시에 <영웅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다.

이 무당칠자는 하나 하나가 모두 대영웅이면서도 또한 수족과 같은 형제지간의 깊은 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아주 큰 감동을 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의천도룡기>>에서 가장 신묘하게 묘사된 인물로는 장삼봉 외에 사손(謝遜)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두 인물이 장무기가 성인이 된 이후에 가장 친한 친척인 탓도 있을 것이다.

장삼봉이 온화하고 해학적이면서 평범한 사람과 비슷하고 또 기상이 늠름하고 위엄있으며 일가견을 이룬<정파(正派)>의 우두머리로 묘사되었다고 한다면, 사손은 과격하고 극단적이고 호방하며, 신 같기도 하고 귀신 같기도 하며 지정지성(至情至性)하며 홀로 우뚝 선 <사파(邪派)>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손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옥반산의 작은 섬이었다. 거의 대마두(大魔頭)의 형상을 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자기를 <금모사왕(金毛獅王)>이라고 거리낌 없이 지칭하고 있었다. 한번 길게 외치면 영웅들은 대부분 기억과 이성을 상실하고 말았으니 그 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행동은 아주 편파적이면서도 격렬하고, 항상 쉽게 사람들을 죽이고 상처 입히곤 하였으니 거의 대마왕과 다를 바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 인물은 가히 <전기> 속에서나 등장할만한 인물로, 보기에는 진정한 <인간미>가 거의 없이, 그저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이상한 성격>이요, 나쁘게 말하자면 거대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는 과거에 종종 발작을 일으켜 끔찍한 짓을 저지르곤 해서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겠다.

하지만 남극 빙화도에서 장무기의 최초의 울음 소리를 듣게 되자 이 악마같은 미친 이상한 괴물인 금모사왕은 완전히 이성을 회복하게 되어 그저 <지정지성>의 성품만 남기고 나머지 사악한 요소들은 전부 사라져버리게 되었다.
그가 이처럼 끔찍하게 변했던 이유는 엄청난 사기를 당해 믿고 의지하던 사부가 자신의 아버지와 아내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아무런 이유 없이 피비린내 나는 깊은 원한이 쌓이자 이 지정지성의 사나이는 이성과 인성을 상실하여 악마의 길에 들어서서 오직 아버지와 아내를 죽인 원수를 갚을 생각만 하게 되어, 이 때문에 강호의 사람들이 모두 치를 떨며 끔찍히 여기는 괴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장무기가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듣는 그 순간부터, 장취산과 그가 결의 형제를 맺는 그 순간부터, 그가 지정지성한 진면목을 회복한 그 순간부터, 이 인물은 아주 공경받을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친숙한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손과 장무기 사이의 부자간의 사랑은 소설의 줄거리가 진행되어 가는데 있어 중요한 작용을 하는 동시에, 가장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손이 만약 장무기를 그리워하지 않았다면, 무림계에서 그를 잡고자 하는 그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무림계에서는 그를 잡아 복수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연하게 자삼용왕(紫衫龍王)을 따라 중원으로 되돌아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자삼용왕을 따라 그녀와 함께 영사도(靈蛇島)에 머물렀던 이유는, 자삼용왕이 장무기의 행방을 찾는 것을 돕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사손이 성곤(成昆)에게 붙잡혀 소림사로 끌려가 있을 때, 장무기가 혼인식 도중 주지약과의 혼인이 깨지는 것도 아쉬워하지 않고(당연히 그가 내심으로는 조민을 깊게 사랑하고 있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지만), 또 소림사와 무림계 전체에 죄를 짓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의부 사손을 구출해 내고자 했던 것은 사손과의 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부자 간의 정은 세상에서 보기 힘든 것으로, 사람들과 이 천지를 감동시키기에 족한 것이라 하겠다.
마지막에 그 결과는 뜻밖으로 나타나게 된다. 우선 사손은 원수를 갚아 성곤의 무공을 폐쇄시킨 뒤, 자기 역시 전신의 무공을 소실시켜 버리고는 천하 영웅들의 보복을 달게 받겠노라 자원하고 나서게 된다.

사손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 사손은 너무나 악한 짓을 많이 해서 사실 오늘까지 살아 남을 생각이 없었소. 천하 영웅들 중에서 가족이나 스승이나 친구를 이 사손에 의해 잃게 되신 분은 부디 이 사모의 생명을 거두어 주시기 바라오. 무기야, 너는 절대로 막아서도 안되고, 또 이후에 복수를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그래야 이 의부의 죄과가 더해지지 않을 게야."

장무기는 눈물을 머금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군웅들 속에는 비록 그에게 철천지 원한을 지닌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가 자기의 전 가족의 원한을 갚으면서도 그저 성곤의 무공을 전폐시킬 뿐이었으며, 또 자기 자신의 무공 까지 없애버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이상 그를 칼로 찌르거나 일격을 가한다는 것은 정말 영웅 호한이 할 짓이 못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무림의 호걸들은 본래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아주 가볍게 볼지언정 절대로 모욕을 당하려고는 하지 않는 법이다. 소위

<선비는 죽임을 당할지언정 모욕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이 두 사람이 사손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야말로 정말 가장 큰 모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손은 조용히 참기만 했다. 과거에 그가 저질렀던 죄악에 대해 정말로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 사람씩 걸어 나오며, 어떤 사람은 사손의 뺨을 갈기고, 또 어떤 사람은 사손에게 발길질을 했고, 또 욕을 퍼부어 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사손은 시종일관 고개를 숙이고 참고 견딜 뿐, 피하거나 맞받아 치지 않았다.

사손은 빙화도에서 장무기의 울음 소리를 들은 그 순간 부터, '악마'에서 애정과 자애가 충만한 진정한 사람으로 변모했던 것이다. 이처럼 자기의 죄와 업보를 절실히 뉘우치면서 자기의 무공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모욕을 감수하기로 한 그는, 정말 사람으로써는 행하기 힘든 대 영웅, 대 호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 것이다.
최후에 사손은 출가하여 스님이 된다. 이것 역시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것이 그에게는 가장 좋은 결말이었다는 점과, 이 소설의 정묘함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사손이 출가하여 스님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三. 공로와 성정(性情)

이 책의 주인공인 장무기는 확실히 진정한 '성정을 지닌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작자가 이 책의 <후기>에서 밝히고 있는 바 대로 <장무기는 좋은 지도자는 아니지만, 우리들의 좋은 친구는 될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는 <공로를 가볍게 여기고> <정의(情意)를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김용의 소설에서 진정으로 우리들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

<<사조영웅전>>의 곽정은 비록 성격이 순박하고 성실하기는 하지만, 너무나 융통성이 없고 진지하기 때문에 쉽게 우리들의 친구가 되기는 힘들다. <<신조협려>>의 양과는 비록 풍류가 넘치고 마음 내키는대로 일을 하는 자유로운 성격을 지니고는 있지만, 역시 그와 평등한 관계에서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천도룡기>>> 속의 장무기는 우리들 보통 사람들과 '천생 연분'이라 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김용의 이전 소설 속에서는 항상 정사(正邪)가 분명하고, 오랑캐와 한인이 분명히 구별되었다. <<사조영웅전>>의 곽정은 바로 '정사(正邪)가 양립할 수 없는' 사나이였기 때문에, 장인인 동사 황약사와 시종 마음이 맞지 않았었고, 서독 구양봉과는 철천지 원수지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막에서 태어나 자라났고, 징기스칸과 부자와 같은 정을 나누었으며, 타뢰와는 '안다(형제)'의 의를 맺었고, 화쟁 공주와는 혼인 약속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곽정은 몽고인들과 대송 사람들이 원수지간이라는 것을 알고, 또 몽고인들이 금나라를 멸망시키고는 송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몽고를 빠져나와 대송으로 돌아왔다.

그는 부귀 영화를 쫓는 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대송이라는 몰락한 나라의 평민이 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심지어 어머니의 생명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몽고에 대항하여, 나라와 백성을 지키고자 했던 '충성심이 강한' 대협사의 의기를 잘 보여 주는 인물이었다.

<<신조협려>>의 양과 또한 어려서부터 강호를 떠돌아 다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속된 기질'이 있었고 쉽게 격렬해지는 성품이어서, 전진교에 죄를 짓고 심지어는 공공연하게 '예교의 금기'에 도전하는 지정지성(至情至性)한 사나이였지만, 최후에는 고난 속에서도 협의라는 결실이 맺어져 결국 곽정과 함께 협력하여 나라를 지켜, 만 백성에게 추대받는 인물이 된다.

하지만 장무기는 시종일관 '정사(正邪) 사이에서 방황'했고, 심지어는 '정(正)보다는 사(邪)쪽에 더 가깝기까지' 했다. 이것은 어쩌면 그의 아버지가 명문 정파의 수제자였던 반면, 어머니는 이교도 사문(邪門)의 '요녀'였던 것에 기인하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다가 사손이라는 이 '대마두'가 그의 의부였으니 '정파보다 사파에 더 가까운'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는 구양진경(九陽眞經) 신공을 연마한 후에 뜻밖에도 <건곤대나이>라는 <기이한 무공>을 연마했고, 또 페르시아의 <사파의 무공>을 연마했으며, 거기에다가 사손이 어렸을 적에 가르쳐 준 <칠상권(七傷拳)>까지 익히고 있었으니, 곽정이 줄곧 강맹하고 순수한 <항룡십팔장>을 익혔던 것에 반해, 그는 무공 역시 <정사 중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그는 후에 뜻밖에도 당시 무림계에서 가장 <사악한 무리>라고 배척받는 <명교(明敎)>의 교주가 되어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우두머리> 역할 까지 맞게 된다.

자연히, 이 때의 김용 소설의 경계는 이미 어느 정도 초월적인 경계로 심화되어 있어서 <사는 반드시 사악한 것이 아니며, 정이 반드시 올바른 것도 아니>라는 그 이치가 김용 창작의 묘결(妙訣)이 되는 동시에 그가 인성과 인물 성격에 층차를 두는 데 있어서 하나의 지표가 되고 있었다. 그 이치를 일반적인 무림계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정사(正邪) 사이에는 항상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났고, 서로 양립하지 못하는 관계로 대치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근본적으로 이민족이 중원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반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함께 공동의 적에 대해 적개심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무당 진인이자 무학의 대종사인 장삼봉처럼 기개가 넓고 견식이 풍부한 사람이라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이치였다.

장삼봉은 이 도리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장취산이 은소소를 맞은 사실도 이해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은천정을 공명정대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고 칭찬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장삼봉 역시 일단 <사교의 무리>인 상우춘(常遇春)과 직면하게 되자, 그에게 명교를 버리고 무당파로 들어오라고 권유하기도 하고, 거듭해서 장무기가 명교에 들어 가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으니, 장삼봉의 말과 행동 사이에는 약간 차이가 있으며, 또 정사에 구분을 두고 어느 정도는 <사교(邪敎)>에 불만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하지만 장무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처음에 명교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장삼봉의 간곡한 부탁과 명령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또한 후에 상황이 그렇게 되어 명교 교주가 되었던 것도, 그가 정사의 구분에 대해 무슨 뛰어난 견해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명교 자체에 본능적인 호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어머니와 외할아버지, 숙부와 의부는 모두 명교 사람이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며, 또 그가 보기에 명교 교도들은 들리는 소문처럼 그렇게 사악하거나 비천하게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 또 그는 본성이 타인에게 잘 끌려 다니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점 등도 이유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가 미약하게나마 <정파가 반드시 올바른 것도 아니고, 사파가 반드시 사악한 것도 아니>라는 이치를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근본을 따져 말하자면, 그는 바로 고대의 인문주의자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오랑캐와 한인의 구별에 대해 알아보자. 몽고의 이민족이 침입해 오는 이 사건에 대해 그는 비록 '그 침입에 항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몽고 공주 조민 덕분에 모순 속에서 조금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그와 조민 사이의 애정적 갈등과 곡절이 몽고와 한인이 '원수 사이'이기 때문에 생겨난 경우는 아주 적었다. 설사 그가 언제나 조민을 죽여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긴 하지만, 그것은 '민족적 원한'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민의 부하들이 장무기의 여섯째 은숙부에게 중상을 입혔고, 조민은 문파 사람들을 속이고 납치해 갔으며, 또 그가 조민이 사촌 누이인 은리를 죽이고, 도룡도와 의천검을 훔쳐갔다고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시종일관 정말로 조민을 죽이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차마 손을 쓸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 내심의 깊은 곳에 애정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다행히 조민 역시 장무기에 대해서 아주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해칠 의사가 조금도 없었으며, 반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가게 된다. 이것은 조민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민족적 성격'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몽고 여인들은 언제나 대담하고 통쾌하고 단호하게 사랑과 증오를 표현하는 성격적 특징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장무기에게는 역시 '예교의 금기'나 '오랑캐와 한족의 구별' 등등의 한계를 뛰어넘을 필요가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다. 사실 주지약은 여러 차례나 장무기를 속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중원의 호걸들은 명문 정파 사람들이거나 명교 교도들이거나 모두가 장무기와 주지약의 결혼을 바라고 '이민족의 요녀'와 혼인하지 않기를 희망했다. 마치 이전에 모두가 은소소를 '이교도의 요녀'라고 욕했던 것처럼 말이다.

중원 사람들의 눈에 '이민족'은 '요사한 자들'과 동일시 되었으며, '같은 민족'이면 모두가 '정인(正人)'으로 보였던 것이다. 무슨 정사의 구별이라거나 오랑캐와 한족의 원한같은 것은, 이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그저 '같거나 다른' '관념'만이 존재했을 뿐, 무슨 진정한 민족의 원한이라던가 '대의' 따위는 제대로 분별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장무기는 달랐다. 그는 심지어 조민의 '민족'이나 '출신' 따위는 고려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조민이라는 이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애정을 최고로 여기는 '지정지성한 사람'이자 한 명의 '인문주의적인' 고대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네 사람의 여자와 함께 한 배를 탔으니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라는 이 문제 역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현상이다. 소설 속의 조민, 주지약, 소소, 은리, 이 네 아가씨는 모두 장무기를 사랑했다. 이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신조협려>>에서의 육무쌍과 정영, 공손녹악, 심지어는 곽부와 곽양까지도 모두 양과를 사랑했던 것이 이상하지 않듯이 말이다.

기이한 것이라면, 뜻밖에도 장무기 역시 이 네 아가씨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제29회 <사녀동주하소망(四女同舟何所望:네 여자와 함께 한 배를 탔으니 무엇을 바랄 것인가)>의 꿈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장무기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원래 그는 꿈속에서 조민을 아내로 맞이하고, 또 주지약을 아내고 맞이하는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은리의 모습도 예전처럼 아름다와져서 소소와 함께 모두 자기 자신에게로 시집오는 그런 꿈이었다. 낮에는 감히 생각지도 못할 생각들이 꿈속에서 갑자기 사실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이 네 아가씨가 모두 좋았고, 그녀들과 헤어질 수 없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가 은리를 위로할 때에도,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꿈속의 달콤한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장무기의 이 꿈은 아마도 여러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한 남자가 동시에 네 여자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녀들을 아내로 맞이할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질책을 받을는지도 모른다. 비록 꿈속이라고는 하지만, 평소 그런 생각이 있었으니 꿈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일 게다. 더군다나 이 네 아가씨 중에는 진정한 '호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조민은 몽고의 군주인 이민족의 요녀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은리 역시 사악한 기운이 많으며, 무슨 <천주만독수(千蛛萬毒手)>니 뭐니 하는 것을 연공한데다, 사교 출신이며, 아버지의 애첩을 죽이고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고 아버지에게 살해될 뻔한 아가씨였다. 소소는 계략이 뛰어나고, 비록 장무기에게 줄곧 연정을 품고 있긴 했지만, 페르시아 명교 성처녀인 다이스치의 '죄악의 열매'이었고(성처녀는 결혼할 수 없었으며, 더군다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그녀의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주지약은 비록 어려서부터 아는 사이였고, 또 명문 정파 출신이어서 보기에는 잘 어울리는 상대자 같았지만, 그녀의 내심 깊은 곳에는 야심이 가득 차 있어서 그를 속여 먹는 여자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본다면, 이 네명의 아가씨가 확실히 각자 사랑 받을만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무기가 동시에 그녀들을 사랑했으며, 이 '네 미인들'을 함께 아내로 맞이할 생각을 했다는 것은 '찬성'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도덕'이라는 것으로 그를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덕'으로 비난하지 않고 그저 '성격' 탓으로 돌려서 보자면, 장무기가 '일을 맺고 끊는 맛이 없는 유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두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째로 '대체 어느 아가씨가 더 나은가'라는 고민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 그 자신이 알게 되었고, 그 때 스스로 단호한 결단과 선택을 내리게 된다.

그는 주지약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지약, 나는 당신에 대해 항상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소. 은리라는 사촌 누이에 대해서는 감격했었고, 소소에 대해서는 불쌍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소. 하지만 조소저를...조소저를 뼈에 사무치도록 사랑하고 있다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한다. <내가 오늘 그녀를 찾지 못한다면 한이 맺혀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오. 만약 앞으로 다시 그녀와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내 생명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오. 소소가 날 떠났을 때 난 아주 상심했었고, 사촌 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더더욱 괴로운 마음이 들었었소. 그리고 당신이...당신이 이런 짓을 하자 나는 마음이 아픈데다가 또 심히 유감스러웠지. 하지만 지약, 난 절대로 당신을 속일 수는 없소. 만약 내가 죽을 때까지 다시 조소저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난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오. 이런 기분은 다른 사람에게선 한번도 느껴 보지 못한 그런 기분이라오.> 이러한 태도를 보면 이미 자신이 어느 정도 분명하게 알고서 단호히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네 여자와 함께 한 배를 탔으니 무엇을 바랄 것인가>라는 몽상은 확실히 그의 성격이 '일을 맺고 끊는 맛이 없어서 유유부단한' 것에 원인을 돌릴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심리 상태로 볼 수 있다는 점인데, 이는 일종의 보편적인 심리 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도덕과 연관지을 수 없고(왜냐하면 그저 꿈이었으므로), 또 성격으로는 억제할 방법이 없는(왜냐하면 이 역시 꿈이었으므로) 것이었다.

이것은 젊은 남자가 인생의 애정 문제 속에서 갖게 되는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심리 현상일 뿐이다. 그저 장무기는 그것을 표현해 냈다는 점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이처럼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안에 담긴 이치는 <애정심리학>을 읽어 본 독자라면, 특히 청춘을 겪어 본 독자라면 더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므로 더이상 말하지 않겠다. 더군다나 결국에는 그 자신에 의해, 또 <천명>에 의해 결국 <유일한> 선택을 내리지 않았던가.
이제 장무기의 성격에 대해 말해 보자. 그의 성격은 비교적 특수하다고 할 수 있다. 일세의 영웅적인 인물들은 모두가 전부 강인하고, 결단력 있으며, 용맹하고, 뛰어나고, 주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의지가 강한 인물들이다. 더군다나 무협 소설의 주인공들은(김용의 소설 역시 그러하다) 모두가 '대협'이어서 무공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인품과 성격 모두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점을 지니고 있다.

장무기는 무공과 인품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성격은 아주 평범하면서 자못 유약하고 판단력이 뒤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그를 '순종적'이라고 한다면 칭찬이 되겠지만 '우둔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책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그가 확실히 결단력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유유부단하다고 말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와 주지약, 조민, 은리, 소소의 네 아가씨가 함께 배를 타고 갈 때, 확실히 다음과 같은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이 네 명의 아가씨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나에게 깊은 정을 품고 있으니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어느 하나와 혼인을 하게 된다면, 나머지 세 명이 크게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대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시종 일관 방화하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그 생각을 피하려고만 하다가 이런 생각도 했다.
'오랑캐들을 아직도 이 나라에서 쫓아내지 못했고, 강산을 되찾지도 못했다. 오랑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어찌 가정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어찌 이 아가씨들에게 사사로운 정을 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또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명교 교주의 신분이니, 내 말 한마디, 내 행동 하나가 전부 본교와 무림의 흥망 성쇠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내가 일생 동안 더러운 짓을 하지 않았다고 자신하고는 있지만, 만약 여색에 빠져 든다면 결국 천하 영웅들의 비웃음만 사게 될 것이고 본교의 명예만 더럽히고 말게 될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도 생각했다.

'어머님은 죽기 직전에 내게, 아름다운 여자가 가장 잘 속이는 법이니 죽을 때까지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 하셨으니, 어머니의 유언을 뇌리에 잘 새겨 두어야 할 것이다.'

정말로 그는 여러 방면으로 고민했지만, 그것을 모두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일에 불과할 뿐이었다.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 그 중의 한 아가씨를 사랑한다고 해도 광복이라는 대업에 장애가 있을 턱이 없었고, 명교의 명성에 해를 끼칠 리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그가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면 그만이었는데도 그는 감히 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후에 소소는 페르시아로 떠나고, 은리는 죽게 되고, 또 은리가 조민에 의해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게 되자, 그는 더이상 고민할 필요 없이 주지약과 결혼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알 수 없는 것이어서, 한바탕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진상이 폭로되어, 주지약과 조민 두 아가씨 가운데 원래 그가 선하다고 생각했던 쪽은 악한 여자였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쪽은 선하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다행히 자기가 아직 주지약과 결혼하는 큰 실수를 범하기 전에 공연한 조민의 방해 덕분으로 일이 어렵게 꼬이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조민이 갑자기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리게 되고, 그 때 주지약이 장무기의 감정을 '따져 묻게' 되자, 그제서야 그는 자기의 가장 깊은 속마음에 간직했던 애정을 확신하게 되어, 그것을 결단력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그는 비록 무예가 고강하기는 했지만 성격은 정말로 유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이 닥쳐올 때마다 항상 그 자연적인 이치를 따르기는 했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는 옆에 있는 사람의 의견을 거스르지 못하고 자기의 의견을 버리면서까지 남의 의견을 따르는 타입이었다. <건곤대나이> 무예를 익힌 것은 소소의 부탁 때문이었고, 명교 교주 노릇을 한 것도 은천정(殷天正)과 은야왕(殷野王) 등이 간곡하게 부탁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던 것이었으며, 주지약과 정혼하게 된 것은 사손의 명령을 따른 것이고, 주지약과 결혼하지 않게 된 것은 조민의 압력 때문에, 특히 사손을 구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옛날 금화파파(金花婆婆)와 은리가 강제로 위협하는 대신, 부드러운 말로 그에게 함께 영사도로 갈 것을 부탁했었더라면 그는 어쩌면 영사도로 갔을지도 모른다.

장무기의 성격의 핵심적 요소는 인자함과 성실함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속에서는 그의 '남을 속이지 못하는' 성격과 이로 인해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성격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만약 장무기의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대기'를 쓴다면 정말로 전문적인 한 편의 문장이 될 것이다.

그가 대륙으로 돌아온 후에 처음으로 벌어진 사건은, 강호의 악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를 몰랐기 때문에 <의부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사실을 말해 버려서, 결국 부모가 목숨을 잃고 또 의부가 곤란에 처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 후에라도 사람이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속지 않아야 마땅하겠지만, 그가 약을 얻기 위해 곤륜파(昆侖派) 장문인인 하태충(何太沖)을 속여 산 밖으로 빠져 나올 때 그는 또 참지 못하고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고 만다. 만약 그 때 양소(楊逍)가 적시에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그와 양불회(楊不悔)는 아마도 함께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대부분 남을 속일 줄 모르고, 남을 속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남에게 속아 넘어가기 마련이다. 장무기가 대륙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한 거지에게 속아 끌려가 몸에 중상을 입어 생명의 위험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인 은소소는 죽기 직전 그에게 <여인들이 널 속이는 것을 조심해라. 이쁜 여자일수록 더욱 사람을 잘 속이는 법>이라고 신신당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교훈을 뼈저리게 새기며 <속지 않도록 조심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대로 장무기의 '강호에서의 생활'과 그 인생의 역정은 대부분이 끊임없이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역사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주구진(朱九眞)과 주장령(朱長齡)에게 속아, 하마터면 의부의 소식을 알려주어 의부와 자신의 생명을 위험하게 할 뻔했었다. 또 후에는 모르는 채, 혹은 신경 쓰지 않은 채, 혹은 일부러 자신이 원해서까지, 조민과 주지약, 은리와 소소에게 각각 속아 넘어가기도 했다. 다행히 이 네 명의 소녀가 모두 그에게 깊은 정을 품고 있었기에 적어도 생명의 위험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이 네 명의 아가씨 중 그 어느 누구의 상대도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사도에서 진우량(陳友諒)은 사손이 눈이 멀었기 때문에 속여 넘길 수 있었지만, 금화파파와 조민의 '혜안(慧眼)'은 속이지 못했었는데, 뜻밖에도 장무기는 거기에 속아 넘어가 사실을 반대로 알고는 진상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도 그는 또다시 주원장(朱元璋)에게 속아 넘어가 명교 교주의 자리를 양소에게 내놓고는 조민과 함께 은거하게 된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주원장이 자신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고 했던 계략이라는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가 바라는대로 해 준 것이었다.

장무기는 심성이 후덕하고 협의로우며, 충성심도 있고, 용감하고, 호기로우면서도 자비로운 마음도 지닌 일대의 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평범한 '호인'으로, 다른 사람을 속일 줄 모르고 항상 남에게 잘 속아 넘어가는 인물이기도 했다. 경험도 많았고 교훈으로 삼을 만한 일들도 많았지만, 그는 끝내 '경험과 교훈을 체득'하지 못하고 마침내 '변화'에 변화만 거듭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장무기는 진정 성정이 충만한 인물이요, 진정으로 공로를 가볍게 여기고 정을 중시하는 인문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정치적 포부가 없었고, 정치적 재능 역시 없었고, 정치적 야심도 없었으며, 정치가라면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사기성'이나 '인내심' 역시 없었다. 어쩌면 그에게 그런 포부와 야심이 없었기 때문에, 강호와 강산의 '임기응변술' 대신 구양진경과 같은 무공을 연마할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남극의 빙화도에서 태어나 십 년 동안 보살핌과 사랑만 받으며 자라는 동안 '바깥 세상'에서 자란 사람들처럼 위험을 겪지도 못하고, 속고 속이는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그의 성격이 그저 인자하고 너그러우면서 온화하고 순종적으로 결정되어, 정을 더 중시하고 공로나 원대한 계획 같은 것을 중시하지 않는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의천도룡기>> 속에서 의천검과 도룡도는 장무기의 부모와 의부를 말도 못할 고난과 위험에 처하게 만들어, 결국 부모는 죽음에까지 처하고 말았으며 그 자신도 역시 온갖 위험을 겪어야 했다. 결국 보도와 보검을 얻게 되어 그 안에 담긴 비밀을 풀기는 했지만, 그는 그 공마저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반쯤은 자신이 원해서 그런 것이요, 또 반쯤은 남에게 속아 넘어가서 그랬던 것이었다. 최후에는 그저 은거하는 신세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려 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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