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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불교 전파사 - 4장. 위진남북조에 불교가 유행하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이제 중국으로 넘어간 불교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인도 불교는 4세기 까지가 주요 흐름이었고, 중국 불교는 2세기부터가 본격적인 불교시작부분입니다.

1. 왜 위진남북조에서 불교가 유행했는가?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전한 말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에서 흥미로 들어온 것이 기원입니다. 그러나 한나라의 불교는 한무제의 <유교국교화> 정책에 의해 억압받았고, 후한이 망할 때까지 불교사상이 중국에서 제대로 이해된 적이 없었습니다.

실제 중국에서 외래 종교인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민족 왕조인 5호 15국 시대 부터입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관심은 학문적인 심오한 철학에 대한 것이 아니였고, 단지 혼란한 사회상에 불교의 <윤회, 내세>라는 부분이 중국인들에게 공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치열한 혼란은 중화사상이 쇠퇴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중화의 이념은 이제 <이민족도 중화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호한병립의 사상으로 바뀌었고, 어떤 이민족의 종교나 관습도 국가에 따라 인정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불안한 난세에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를 불교의 교리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불교의 윤회삼생사상은 <죽은 뒤 내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고통스런 현실의 도피처를 제공합니다. 지금 현세에서의 고난과 나의 수행이 곧 전생에서 내려온 것이자, 내세에 영향을 주어 <3생>이 결정된다는 이론은 <혼란기의 절망감과 죽음의 공포>에서 백성들을 구원하기 딱 좋았던 것이죠. 윤회, 삼생, 인과응보론은 곧 <업>사상과 연결되어 사람들에게 환영받게 됩니다. 위진남북조에서는 불교, 도교 등의 신비주의적 사상이 크게 유행한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이죠.

2. 호국불교로서 자리잡은 중국의 초기 불교

또 하나 불교 유행의 이유는 바로, 인도에서부터 전개되어 온 <호국불교>사상의 영향입니다. 아쇼카왕의 <전륜성왕>사상으로 대표되는 불교의 호국 개념은 <국가통치이념>으로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중국 대륙이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각국의 왕들은 불교의 주술적인 측면을 최대한 이용하여 백성을 현혹하고, 왕법이 곧 불법이라는 이론을 내세워 백성들을 통치하는 이데올로기로 불교를 활용한 것입니다.

인도에서의 불법은 카르마(정법관념)로 이루어집니다. 샤크라란 세속세계와 불법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란 뜻인데, 이 고리는 현실과 이상을 연결해주기는 하나, 서로간의 간섭은 배제하는 고리였습니다.

쉽게말하자면, 카르마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활의 기준이자, 정치의 기준이고, 인간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고리입니다. 하지만, 국왕권이 이 카르마의 법을 변형할 수는 없고, 단지 카르마의 정법에 따라 올바른 정치를 하는 것만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도에서는 왕권이 불법에 간섭하는 경우가 없었고, 불법은 곧 카르마와 공존하면서 지상 세계에 자비와 관용을 베풀게 됩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논리를 알지도, 알 필요도 없었습니다. 위진남북조의 국가들은 단지 불교가 <전륜성왕>의 이념을 가진 호국적 성격의 이민족 종교라는 것만을 이용하려 하였습니다. 불법은 왕법이 간섭하는 것을 막으려 하였지만, 불법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왕들은 <불교를 왕권으로 지배>하려고만 하였습니다. 불법이 본래 이론을 내세워 왕권에 대항하려 하면, 국왕은 <폐불사건>을 일으켜 불교를 탄압해 버리면 그만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전래된 초기의 불교는 국가종교적인 성격이 강하였습니다. 국가는 대사찰, 대법회를 열어 불교를 장려했지만, 그 목적은 국가지배자의 위상을 높이고, 권력의 지원을 확보하여 호국사상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특히, 이민족 왕조인 북조는 철저하게 불교를 이용하려고만 하였습니다.

3. 불교의 참뜻이 무엇인지는 알지도 못하였다.

초기 위진시대의 불교는 불교 본 뜻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격의불교>였습니다. 위나라의 정음시대 학자들은 불교에 대하여 논의하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불교를 <도교사상>에 끼워 맞추어 논의하는 정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당대 청담사상도 그 내용이 대부분 도교 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므로, 불교에 대해서도 도교적인 수준에서 해석하는 것에 머물렀습니다. 사실 당대학자들이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에 대하여 아무런 자료도 없이 그 참 뜻을 알아낸다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요.

정음시대 하안, 왕필은 노장사상에 불교 이해를 때려 맞추었습니다. 노장사상에서 대표적인 이론인 <무위자연>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지요. 석가모니와 공자 등의 성인들은 모두 노자가 주장한 <무위, 도>를 터득하였기 때문에 성인이라고 인식하였습니다.

이들은 불교, 유교, 도교는 모두 하나의 이론이라고 생각하면서 불교의 난해한 사상들은 모두 도교의 논리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예로 불교에서의 <공사상>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도교의 <무>로 이해합니다. <열반>은 깨달음을 얻어 자연으로 귀속한다는 뜻으로 도교의 <무위자연>로 이해합니다. 불교의 <보살>은 도교에서의 <도>로 이해하며, <진여>는 <본무>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불교가 뭔지도 모르면서 단지 불교사상의 부분적인 부분들을 자의적으로 뽑아서 이해한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따라서 불교의 참 뜻은 알 수도 없었고, 실제 불교의 참 뜻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인도로 가는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위진시대 중반이 되어 <북위정권, 남조안정기>에는 적극적으로 인도에 진출하거나, 서역의 고승을 중국으로 모셔오는 변화가 활발하게 진행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불교가 무엇인지를 아주 조금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국가정권은 불교이해도와는 상관없이 불교를 국가정책으로만 이용하려 하였고, 그 결과 <여러번의 폐불사건>을 경험하면서 불교가 정착되어 갑니다.

그럼 다음 장에서는 실제 불교교리를 이해하려고 한 사람들과 남북조 시대의 불교 이해정도에 대하여 포스팅하고, 인도불교와 비교해보겠습니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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