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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철기 국가 관련 사료

<옥       저>

동옥저의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있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자라며 농사짓기에 적당하다.    [삼국지] 위서동이전동옥저


<동     예>

    나라가 작아서 큰 나라 사이에서 시달리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마침내 고구려에게 복속되었다. 고구려는 그 나라 사람 가운데 대인을 뽑아 사자로 삼아 토착지배층과 함께 통치하게 했다, 또한 대가로 하여금 맥포(담비의 가죽), 물고기, 소금, 해초류 등 조세를 한꺼번에 모아 천 리나 되는 거리를 져나르게 하였다. 또 옥저의 미녀를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며. 옥저의 사람들을 노복과 같이 취급하였다.   

<삼국지>위서 동이전

<옥저>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굿세고 용감하다. 소나 말이 적고, 창을 잘 다루며 보병전을 잘한다.  음식, 주거, 의복과 예절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

                 

<예>

(1) 삼베가 산출되며 누에를 쳐서 옷감을 만든다. 새벽에 별자리 움직임을 관찰하여 그 해의 풍흉을 미리 안다. 구슬과 보옥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

(2) 그들의 성질은 조심스럽고 진실하며 욕심이 적고 염치가 있어 남에게 구걸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언어와 예절 및 풍속은 대체로 고구려와 같지만 의복은 다르다. 남녀가 모두 곡령(목 둘레를 등글게 한 옷)을 입는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

(3) 대군장이 없고, 한대 이후로 후, 읍군, 삼로 등의 관직이 있어서 하호를 통치하였다. .....예의 풍속은 산천을 중요시하여 산과 내마다 구분이 있어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동성끼리는 결혼하지 않는다. 꺼리는 것이 많아서 병을 앓거나 사람이 죽으면 옛 집을 버리고 곧 다시 새 집을 지어 산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

(4) 위나라의 2군인 낙랑군과 대방군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조세를 거둘 일이 있을 때에는 예의 백성들도 마치 군의 백성들처럼 세금을 납부하게 하고 일을 시킨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예


<마   한>

(1) 마한은 삼한 중 서쪽에 위치하였다. 그 백성을 토착민으로 곡식을 심으며 누에를 치거나 뽕나무를 가꿀 줄 알고 면포를 만들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2) 마한은 서쪽에 위치하였다. 토착민인 그 백성은 곡식을 심으며 누에를 치고 뽕나무를 가꿀 줄 알았으며 면포를 만들었다. 나라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어서 세력이 강대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라고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삼          한>

(1) 그 풍속은 기강이 서 있지 않으며, 각국의 도읍에는 우두머리가 있으나 읍락에 뒤섞여 살기 때문에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였다. 꿇어앉아 절하는 예절도 없다. 거처로는 초가에 흙으로 집을 만들어 사는데,  모양이 마치 무덤과 같으며 문은 윗부분에 있다. 온 집안 식구가 그 속에 함께 살기 때문에 나이와 남녀의 구별이 없다. 장례에는 관은 있으나 곽은 없다. 소나 말을 탈 줄 모르기 때문에 소나 말은 모두 장례용으로 써버린다. 구슬을 귀하게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지만, 금은과 비단은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의 성질은 굳세고 용감하다.머리카락은 틀어묶고 상투를 드러내는데 마치 날카로운 병기와 같다.

(2) 베로 만든 도포를 입고 발에는 가죽신을 신는다. 나라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성곽을 쌓게 되면 용감하고 건강한 젊은이는 모두 등의 가죽을 뚫고 큰 밧줄로 그곳에 한 발(犮)쯤 되는 나무막대기를 매달고 온종일 소리지르며 일을 하는데도 아프게 여기지 않고 그렇게 작업하기를 권하며 이를 건강한 것으로 여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3) 왕망의 지황연간(20-22) 에 염사치가 진한의 우거수(우두머리)가 되었는데, 낙랑의 땅이 비옥하여 사람들이 풍요하고 안락하게 산다는 것을 듣고 도망가서 항복하기로 하였다. 살던 동네를 나오다가 밭에서 참새를 쫒던 사내를 하나 만났는데, 그 말하는 것이 한(韓)인이 아니었다. 이유를 물으니 사내가 대답하기를 “우리들은 한(漢)나라 사람이며. 내 이름은 호래이다. 우리들 무리 1천6백 명이 나무를 벌채하다가 한(韓)의 습격을 받아 모두 머리를 깎이고 노예가 된 지 3년이 지났다”고 하였다. 염사치가 “나는 한나라의 낙랑에 항복하려고 하는데 너도 가지 않겠는가?”고 하니 호래가 좋다고 하였다. 그래서 염사치는 호래를 데리고 떠나 함자현에 이르렀다. 현에서 군에 연락하자 군은 염사치를 통역으로 삼아 금증에서 큰 배를 타고 진한으로 들어가면서 호래 등을 데려갔다. 함께 항복한 무리 l천여 명을 구했는데 나머지 5백여 명은 이미 죽었다. 염사치가 이를 진한에 따져서 '너희는 6백 명을 돌려보내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낙랑에서 만 명의 군사를 보내어 배를 타고 가서 너희를 공격할 것이다'고 하니, 진한은 '5백 명은 이미 죽었으니 대신 보상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진한인 l만 6천 명과 변한 포 l만 6천 필을 내어 놓았다.  

[위략]

(4) 별다른 진귀한 물건은 나지 않으며 동물과 초목은 대략 중국과 동일하다. 큰 밤이 생산되는데 그 크기가 배 만하다. 또 꼬리가 가는 닭이 나는데 그 꼬리의 길이는 모두 5자 남짓이나 된다. 그 고장 남자들은 간혹 문신을 하는 사람도 있다.  [삼국지]위서 동이전한


<변        한>

(1) 변한은 토지가 비옥하여 오곡과 벼를 심기에 적당하다. 누에치기와 뽕나무 가꾸기를 알아 비단과 베를 짤 줄 알았으며, 소나 말을 탈 줄 알았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

(2) 나라에서 철이 생산되는데 한, 예, 왜인들이 와서 사간다. 시장에서의 매매는 철로 이루어져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으며, 낙랑과 대방의 두군에도 공급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변진


<부     여>

(1) 옛 부여인의 풍속에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2) 형벌은 엄하여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재산을 몰수하며, 그 집안 사람들은 노비로 삼는다. 도둑질을 하면 l2배를 변상하게 하였다. 남녀간에 음란한 짓을 하거나 질투하는 부인은 모두 죽였다. 투기하는 것을 더욱 미워하여 죽이고 나서 그 시체를 나라의 남산 위에 버려서 썩게 한다. 친정 집에서 그 여자의 시체를 가져 가려면 소와 말을 바쳐야 한다.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 삼는 것은 흉노의 풍습과 같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3) 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모두 얼음을 넣어 장사 지내며, 사람을 죽여서 순장을 하는데 많을 때는 백 명 가량이나 된다. 장사를 후하게 지내는데, 곽은 사용하나 관은 쓰지 않는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4) 토질은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이 자라기에는 적당하지만 오과(복숭아, 오얏, 살구, 밤, 대추)는 생산되지 않는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5) 백성들의 호수가 8만여 호, 백성들은 지상에 집을 짓고 살며 궁실과 창고와 감옥 등이 있다.

<삼국지> 동이열전30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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