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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고대사에 대한 총체적 분석



   이 요약본은 히스토리아(http://historia.tistory.com/)에서 포스팅한 일본사 1-14번까지의 내용을 요약식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이 요약본은 이미 블로그에 포스팅 된 내용들을 가공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요약본은 학습 이외의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으며, 이 서문을 포함하여 변형 및 가공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공부할 때 참고자료로만 사용하세요. 가능한 한 일본사에서 다루는 모든 논쟁점과 핵심내용을 다 다루려했으나,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역사 전문 블로그 히스토리아 - http://historia.tistory.com>

문제점이나 의문점은 블로그 방명록이나, 아래 댓글로 문의하세요.

(이 포스팅에 대한 메일문의는 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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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년전 : 죠몬시대(석기시대)

1.  특징

1)  죠몬시대는 신석기 사회(일본의 주장) : 평등사회, 수렵과 사냥 등의 무리사회

2)  주거 : 수혈식 주거 → 땅에 구멍을 판 형태의 지하식 집에 거주

3)  초기 농경 : 본격적인 농경은 아니고, 2-3호(1호당 10명 이내)가 하나의 집락을 이루어 거주 및 농경

4) 조몬시대 말기 청동기, 철기의 사용 → 농경의 발전, 쌀농사 시작, 전쟁의 증가 → 급격한 사회 변화 초래

2.  일본인의 형성

1)  구석기 시대 : 35만년전에 일본열도에 인류 등장(일본인 50만년전으로 간주중)

2)  실제 일본인의 조상

1.  일본측 주장 : 약 3-4만년전(일본에서는 크로마뇽인의 시대 정도로 끌어올려놓음)

2.  일반적 주장 : 1만년전 쯤 빙하기 이후 충적세기에 일본열도가 분리되면서 한반도, 기타 지역에서 이주한 인종들(고몽골인종)로 구성

3) 인종 : 고몽골인종 → 죠몬인을 구성 → 야요이 시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인종과 합쳐져서 일본인 주류 구성

1.  일본측 주장 : 일본인의 조상은 에스키모계, 남미계와도 유사함을 주장 → 다원론적 구성을 주장

2.  일반적 주장 : 한반도에서 건너온 인종이 절반 이상을 이룬다는 다수설

4)  죠몬시대 토우(흙인형) : 임산부 여성을 상징 → 주술적인 면 등이 부각됨

 기원전 5세기 - 기원후 3세기 : 야요이 문화

1.  기원전 3세기 이후 청동기, 철기 보급

1)  농경 발전 : 청동기, 철기를 이용하여 농경 발전 → <쌀농사 시작>, 인구 증가

2)  청동기, 철제 무기 사용 → 통일 국가로의 발전 기틀 마련 : 국가활동의 시작

2.  야요이 문화의 중심부 논쟁

1)  북부 규수(기타규슈를 포함하는 9주) 중심설과 나라현(나라지방) 중심설의 대립

2)  일반설은 규슈설 : 나가사키 - 후쿠오카 - 키타규수 지방 → 이후 동진하여 나라현으로 발전

3)  동진 :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에 걸쳐 청동기, 철기, 벼농사, 야요이 토기가 일본 열도에 전파

3.  야요이 문화의 성립

1)  기원전 5세기 키타규수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것이 기원(야요이 문화는 발견 동네의 지명을 딴 것임)

2)  기원후 1세기 이후에는 철제기구가 본격적으로 보급 → 생산력 증가, 빈부차의 심화

4.  외부 문화의 영향

1)  한반도 남부인들의 이동으로 이루어졌음의 증거

1.  갑작스런 일본인들의 인구 증가와 체형의 변화 → 평균신장의 증가와 얼굴이 길어짐

2. 야요이 문화의 청동기, 돌칼, 묘제 등이 한반도와 유사함 → 야요이식 토기는 죠몬과 다른 한반도식임

2)  일본의 자생론 증거(일본 일부학자 주장)

1.  벼농사는 대륙에서 도래한 것이나 그것은 꼭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러시아, 태평양 등 다양한 경로가 있음

2.  벼농사가 바로 전국적으로 전파된 것 자체가 이미 일본인들이 벼농사에 익숙하였다는 증거

3.  벼농사는 중국 강남에서 규수로 전파되었고, 중국농법은 이미 일본인이 알고 있었다는 주장

 일본의 건국 신화와 야마타이국 논쟁

신화 내용은 요약본으로 일일이 포스팅하기 어렵네요.

건국신화 및 야마타이국 논쟁 : http://historia.tistory.com/637 이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역사전문 블로그 히스토리아>

 3세기 - : 야마토 정권

1.  성립

1)  성립 증거 : 3세기 말 - 4세기 초 전방후원군 고분의 등장

2)  성립 시기 : 3세기 야마타이국의 여왕 등장(히미코 : 일본서기에서 신공황후로 격상한 여인)

3)  일본 고대 최초의 통일적 국가 : 불교와 율령 수용 후 전성기(6세기 백제 성왕에게 전수받음)

2.  특징

1)  구성 : 야마토(나라현)의 유력 호족들의 연합정권 → 지방 유력 호족을 현주로 임명하는 형식

2)  확장 : 4세기 후반 이후 서부 일본을 통일 → 히미코 이후 야마토 지방 호족들이 연합한 형태

1.  광개토대왕릉비의 왜왕 칭호     

2.  백제와의 교섭 : 칠지도, 한자, 유교, 불교 등 문화 수용

3.  가야 문화와의 접촉 : 스에키 토기

3.  논쟁

1)  야마타이국이 과연 나라현에 있었는가? → 일본에서는 다수설로 인정 / 일부는 규수설 주장

2)  야마타이국이 나라현에서 발전한 이유 : 한반도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교통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나라지방을 중심으로 연합하였다는 설이 다수설

4.  야마토 정권의 고분(야마토 정권의 성격을 증명하는 유물)

1)  3-4c 초기 : 매장자가 신관의 성격 - 부장품에 구리거울과 옥(제정일치 사회의 군장 무덤)

2)  5c 중기 : 매장자가 군사적 통솔자 성격 - 부장품에 마구와 무기(정치적 군장의 성격 강화)

3) 7c 후기 : 매장자가 평민적 성격 - 유력농민(장원주)의 고분 건설 : 고분수가 아주 많음 → 사회변화 상징

4)  7c 이후 : 고분이 거의 없음 - 불교가 전파되면서 화장 풍습 → 불교가 사회를 지배해감을 상징함

 불교와 율령을 키워드로 정리하는 일본고대사

※ 일본 고대사의 키워드 : 불교, 율령으로 정리할 수 있다.

1)  한국사와 마찬가지로 일본 고대사도 불교, 율령을 항상 염두에 두면 이해가 편합니다.

2) 불교는 일본 고대가 중앙집권을 이루기 위한 기본 키워드이고, 율령은 중앙집권을 이루기 위한 필수 항목입니다. 동아시아사는 공통적인 문화권이기 때문에 항상 고대에서 율령, 불교가 중요합니다

3)  실제 일본 고대가 망하는 것도 불교의 신성함이 사라지고, 율령이 문란해지는 시기입니다. 꼭 이것을 생각하면서 고대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일본 자체가 신성성을 더욱 강조하는 국가입니다. 특히 천황가의 신성성은 이 2가지가 좌우합니다.)

1.  5-6세기 야마토 정권 초기 불교

1)  불교 전파 : 6c 백제 성왕기 노리사치계가 일본에 전파 → 쇼토쿠 태자의 수용

2)  6c 아스카 문화 성립

1.  쇼토쿠 태자의 아직기, 왕인 등 백제인 등용 → 한반도와 삼국문화의 수용

2.  호류사 금당벽화, 석가삼존상 등 초기 불교 문화의 완성

3.  중국문화의 직접 수입도 시도 : 견수사, 견당사 등을 파견

2.  7c 다이카 개신과 율령

1)  배경

1.  7c 신라의 삼국통일 및 백제의 멸망 이후 일본은 신라와 교류 → 하쿠호 문화 성립

2.  삼국통일 후 당과의 직접 교류를 통하여 문화 수용 → 불교, 율령체제를 중국에서 직접 수용

2)  다이카 개신

1.  국왕 중심의 유교적 중앙집권국가 체제의 성립 시도 → 천황중심의 중앙집권체제(한반도와는 다름)

2.  천황 : 고대 신화를 통한 선민의식을 가진 존재이자 유교적 덕목을 갖춘 자로서 신성화 → 율령을 일본식으로 수용하여 동아시아 문화권에 편입함

3.  8c 나라 시대

1)  성립 : 50년간 나라 헤이죠코로 천도 → 중국 문화를 적극 수용, 신라, 발해와 교류

2)  특징

1.  불교와 승려세력의 극강화 → 사원세력이 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함

2.  불교세력을 등에 업은 천황이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 → 고사기, 일본서기 등을 제작하여 천황가의 선민의식을 이데올로기화함

4.  9-12c 헤이안 시대

1) 배경 : 한반도, 중국의 영향을 벗어나 일본이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시기(독자적인 코쿠후 문화 성립)

1.  가나문자의 제작 : 귀족 계급은 자신의 감정을 가나로 표현 → 독자적 문화의 발전

2.  와카 : 귀족 계급의 국풍적 시가

2)  특징

1.  중국식 율령체제가 동요 : 천황의 신성함이 훼손

2.  지방 호족들의 성장 : 장원이 확대 → 호족이 귀족화되면서 왕권이 약화

3.  외척 세력의 간섭 : 황제권이 외척권에 제약됨 → 왕즉불 사상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됌

4. 이러한 천황권의 몰락은 곧 일본에서 무사들이 막부를 여는 무가정권시대로 가는 과도기적 상황을 보임

 6c 소가씨의 등장

1.  6c 천황권 강화의 노력

1)  배경 : 야마토 호족 연합정권 하에서의 천황권 약화 → 율령, 불교 수용을 통한 천황권 강화를 추구

2)  내용

1.  모노노베씨 가문의 천황권 도전 → 소가씨가 천황가의 도움으로 모노노베씨 주살

2.  소가씨 가문의 조정 실권 장악 → 일본 불교의 공인, 중앙집권화 성공

2.  쇼토쿠 태자

1)  배경 : 소가씨(소가노 우마코)의 정권 장악 → 스이코 여제를 등용하고, 쇼토쿠 태자의 섭정 실시

2)  내용

1.  쇼토쿠 태자는 소가씨에 반발 : 고구려, 백제인 스승 등용(아직기, 왕인 등)

2.  소가씨 위주의 중앙집권화보다 천황권 위주의 중앙집권체제 시작

      → 고구려, 백제의 관등제(12관등제), 율령(헌법 17조) 제작

3.  견수사를 파견, 역사서 편찬

3)  아스카 문화 수용

1.  백제 기술 수용 : 소가씨의 아스카테라, 쇼토쿠 태자의 호류지 건립

2.  종이, 먹, 그림도구의 제조법 전파(담징)

4)  결과 : 소가씨와 쇼토쿠 태자의 대립 → 쇼토쿠 태자가 제거됨(자살설도 있음)

 7c 다이카 개신

1.  배경

1)  소가노 집단의 독주 → 타 귀족(호족)들의 반발

2)  소가노 집단의 몰락 : 나카토미노 가문이 소가씨들을 차례로 암살(닌자 등용)

3)  다이카 개신의 시작 : 나카노 오오에 황자가 소가씨 정권을 타도하고 중앙집권적 개혁 실시

2.  나카노 오에(덴지 천황)의 <개신의 조> 발표

1) 내용 : 토지공전제 → 호족은 토지를 가질 수 없고, 모든 토지와 백성은 천황의 것임을 천명(공지공민제)

2)  결과 : 천황권의 강화 → 호족들은 엄청난 반발 :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다수설

3.  진신(임신)의 난

1)  배경 : 덴지천황의 후계자 관례 무시

1.  관례상 유력호족출신 황후의 황자가 계승

     → 천황은 호족출신인 오아마 황자를 무시하고, 오토모 황제를 천황으로 추천

2)  오토모가 천황이 된 후 문제점

1.  한반도 삼국통일에 간섭 : 백제에 지원한 군대가 참패(백촌강 전투의 참패)

2.  호족을 억압하여 호족세력이 불만이 많음

3)  내용 : 오아마 황자의 반란(진신의 난)으로 천황 탈취

1.  반란을 위해 모은 군대가 엄청나게 강함 → 다른 호족들이 감히 대들지 못함

2.  진신의 난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얻는 오아마는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 추구 → 다이카 개신의 완성

4.  다이카 개신의 핵심 : 율령체제의 성립

1)  배경 : 당에 파견된 견당사를 통해 도입

2)  개념(동아시아 공통)

1.  율 : 형법, 국가의 통치체제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형법

2.  령 : 행정법, 국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법의 통칭

3.  격 : 시대가 변하여 율령이 맞지 않을 때 임시로 쓰는 법 → 율령이 폐기될 경우 격이 율령을 대신하여 활용됨

4.  식 : 율령에서 제시한 법의 큰 틀에 포함되지 않는 세부적인 시행규칙

5.  다이카 개신의 제도

1)  개요 : 천황을 중심으로 하여 관료제와 행정제도를 정비한 천황제 국가

2)  중앙제도 : 천황 및에 2관 8성을 구성

3)  지방제도 : 기내와 7도의 행정구를 나누고 관리를 파견

4)  신분제도 : 양천제도의 신분사회

5)  토지제도 : 남녀 모두 구분전을 지급받는 대신 조세를 부담 → 남자는 요역, 군역이 추가됨

6.  하쿠호 문화의 성립

1) 8세기 초반 : 삼국통일 후 백제, 고구려 유민의 일본 유입 → 백제, 고구려 문화로 인해 하쿠호 문화 성립

 다이카 개신 이래 일본 고대의 토지 제도 정리

1.  7c 다이카 개신 : 개신의 조

1) 배경 : 야마토 정권의 호족 연합적 성격을 천황권으로 돌리기 위함 → 왕토사상에 입각한 토지제도 주장

2)  내용 : 공지공민제도를 포함한 4개조

1.  모든 땅은 국가의 소유이며, 모든 사람은 천황에 속한 사람이다.

2.  이와 동시에 <반전수수법>을 발표함

2.  개신의 조와 연관된 <반전수수법 >

1)  배경 : 견당사 등 도당 유학생들이 당의 선진 토지제도를 수용하여 일본에서 실시

2)  개요 : 당나라 균전제의 왕토사상을 기반으로, 공유, 균분, 환수 제도를 실시함

1.  백성에게 땅을 공평히 주고, 대가로 세금을 받으며, 사후 토지를 반납하게 하는 제도

2.  균전법의 조, 용, 조를 그대로 실시

3)  내용

1.  6세 이상의 남자에게 토지(반전)을 하사한다.

2.  양민에게는 2단(107평)을, 천민에게는 2/3단을 주고 토지를 준 대가로 세금을 걷는다.

반전 = 토지 / 수수 = 주고받다(수수료) 라는 뜻

4)  결과

1.  농민의 반발 : 가혹한 세금이 싫어서 유망함

2.  호족의 반발 : 토지 공전제에 대한 불신과 부정

3.  7c말 삼세일신의 법(3대에 제한된 사유법)

1)  배경 : 반전수수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천황권에 반발함 → 새로운 법의 제정

2)  내용

1.  황폐해진 반전을 개간한 자는 평생 그 땅을 개간자에게 준다

2.  황무지를 개간한 자는 3대에 걸쳐 토지 사유를 인정한다.

3)  결과

1.  천황가는 균전의 이념(왕토사상)을 버리고, 일정기간이나마 백성들의 토지소유권을 인정

2.  그러나, 백성들은 3대가 지나면 땅을 버리고 다시 황무지로 만든 뒤 떠나버림

    → 결국 국가가 토지를 소유한다는 <개신의 조>의 원칙을 버림

4.  8c 간전영년사재법(토지 영구 사유법)

1)  배경 : 반전수수, 삼세일신이 지켜지지 않음

2)  내용 : 국가가 토지공유원칙을 포기 → 토지를 개인이 가질 수 있음을 공식 인정

3)  결과 : 토지사유화를 초래 → 대토지 소유자의 성장을 방관함

5.  10c 이후 새로운 토지 사유 계층의 등장

1)  배경 : 토지 사유의 인정으로 인한 토지소유자의 성장 → <봉건제도의 기원 등장>

2)  내용

1.  귀족과 불교사원의 유력자들의 대토지 소유 : 간전영년사제법을 활용

2.  부농층도 성장 : 개간을 통하여 영주화 → 가난한 농민과 농노를 부려 토지 개척(개발영주의 등장)

6.  10c 개발영주를 중심으로 한 봉건적 질서의 탄생

1)  새로운 질서

1.  개발영주(부농)이 장원을 가지고 농노를 이용하여 농사를 지어 돈을 벌게 됨

2.  개발영주(농민지주)는 유력 귀족에게 형식적으로 토지를 바치고 세금을 냄 → 유력 귀족은 세금을 받으며 개발영주의 땅을 지켜줌

3. 유력 귀족은 개발영주에게 받은 돈이나 일부의 땅을 황족이나 중앙 실력자에게 바치고 관직, 권력을 얻음

2)  내용

1.  개발 영주는 유력귀족에게 봉사함으로서 국가의 조세압박을 피하게 되고, 귀족은 재력이 생김

2.  개발영주는 차츰 돈을 모아 스스로 무장하고, 자신의 토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시작함

3. 중세에는 개발영주, 유력귀족, 중앙실력자의 구도가 무사, 슈고, 지토 등으로 발전 → 중세 봉건제의 기원

 8c 나라시대

1.  개요

1)  시기 : 710년 당나라 장안성을 모방한 헤이죠코가 건설 → 80년간 나라현 헤이죠코를 수도로 정함

2)  배경 : 천황이 강력한 세력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중앙집권을 위해 불교세력과 손잡음

2.  내용

1)  천황가인 후지와라씨 가문은 강력한 율령국가를 추진 → 천연두가 돌아 모두 사망함

2)  이후 정권이 빈번히 교체되다 다시 후지와리씨가 집권하였으나, 끊임없이 혼란기가 오게 된 시대

3) 류큐, 간토 등 섬 지역을 통일하려 하였으나 정권 불안정으로 실패 → 류큐는 이후 천년간 독립국으로 남음

4)  토지 사유의 인정 : 심세일신의 법, 간전영년사제법 등의 마련 → 장원의 확대 초래

3.  특징

1)  당문화 모방 : 견당사 파견, 유학생들이 당의 선진문물 수입

2)  신라와의 관계 재개 : 사신 파견 → 9세기 이후에는 사무역 중심의 교역

3)  발해에 사신 파견

4.  문화

1)  나라중심의 귀족문화 발전 : 진호국가불교(호국불교)의 발달 → 텐표문화

2)  국가의 강력함을 보여줄 문집 완성 : 고사기, 일본서기, 풍토기 등

 일본 천황가의 역사서 편찬

1.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

1) 목적 : 8c 강력한 천황권이 완성되면서 중앙집권화를 위한 이데올로기 마련 → 전성기인 덴무천황 때 시작

2)  내용 : 천황가의 신성함과 황실 계보의 정리

2.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

   위낙 방대하여 요약이 안되네요.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http://historia.tistory.com/665 에 자세히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특히 일본서기의 신공황후기, 칠지도 문제 관련 이슈는 꼭 보세요. 8차 교육과정에서는 동아시아사로 별도 교과서가 편제되어 이 부분이 뜨고 있답니다. 교양 서적으로도 이 부분이 많이 나올 것 같네요.)

 헤이안 시대

1.  8c 말 - 11c 셋칸정치(셋쇼)

1) 정의 : 천황이 어리거나 여성일 때 천황의 외조부, 외가 친척, 또는 간파쿠(유력신하)가 정치를 대신하는 것

          (조선 후기 안동김씨 등의 세도정치와 비슷한 정치)

2)  내용

1.  나라시대 이후 후지와라씨 가문에서 천황가의 황후배출 가문이 되어 셋쇼를 시행

2.  지방호족과 개발영주는 후지와리씨와 강력한 불교사원의 후원속에서 봉건적 질서 유지

3.  이후 황후에게서 황태자가 태어나지 못하면서 천황의 부친이 직접 정치하는 형태(원정)으로 넘어감

2.  11c 원정정치(인세이)

1)  정의 : 셋쇼를 누르고 천황의 부친이 상왕이 되어 직접 정치하는 형태

         (조선 후기 안동김씨 가문을 누르고 직접 정치에 참여한 흥선대원군 정치와 비슷함)

2)  내용

1.  강력한 사병집단(사무라이 집단)인 원청을 가지고, 상왕이 직접 정치

2.  사무라이 집단은 부랑자 집단으로 신성한 불교 승병마저 무참히 죽일 정도로 충성심이 강함

3.  후지와리씨의 셋칸이 무너지면서 마나모토씨 등의 대토지 호족, 개발영주들은 독자적 사병을 양성함

3.  헤이안 시대의 몰락(고대의 몰락)

1) 천황과 상왕의 대립 : 무사들이 천황가 내분을 이용하여 성장 → 타이라씨 가문이 천황인척으로 20년 집권

2)  무사들은 첨차 천손(천황가)보다 무력을 가진 자신들이 강함을 인식함

3)  타이라씨 : 일본 절반의 장원 소유, 송나라와의 국제 무역으로 성장 → 중앙 고관으로 진출

4) 미나모토씨 : 강력한 무력을 가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타이라씨를 격파하고 전국을 평정함 → 중세 시작

 이후의 중세 사회

1.  고대 사회

1)  천황권과 호족권의 대립 : 야마토 정권 이래 호족권과 천황권의 대립이 키워드였습니다.

2.  중세 사회

1)  천황권과 무가 막부와의 관계 설정 문제가 가장 큰 키워드

2)  귀족이 아닌 서민층이 점차 대두하는 사회 → 가마쿠라 막부부터 전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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