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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5세기 : 서유럽 도시와 길드체제에 대한 분석

이번 장에서 다룰 내용은 14세기 서유럽에서 장원이 몰락할 당시 서유럽 도시들은 어떤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시 도시들이 중세적인 봉건제도와 대비되는 새로운 경제형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이들이 근대적일까요? 아니면 당시 도시들도 중세적인 구제도의 하나였을까요? 이 점에 착안해서 한번 도시들을 다루어보죠.

1. 14세기 큰 혼란 속에서 도시는 계층 분화가 이루어지다.

14세기에는 서유럽 전체의 전반적 경제구조가 위축되고 있었습니다. 백년전쟁으로 유럽 전체 경제구조가 흔들렸고, 흑사병으로 인구가 감소하여 도시 경제는 위축되었습니다. 그러나, 12-13세기에 걸쳐 계속된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14세기에도 일부 대상인들은 그 경제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십자군 이후 동방과의 무역은 대상인들의 무역 대상을 서유럽이라는 우물에서 벗어나, 세계무역에 후발주자로서 뛰어들게 한 원동력이었죠.

14세기의 도시는 이전 도시와는 조금 달라집니다. 11세기의 도시들은 솔직히 도시라고 말하기에 너무 협소한 면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장사 영역을 <브로그>라고 설정하여 울타리치고, 그 곳을 자치 도시화한 것이 11세기의 도시들입니다. 이 도시들은 영주나 교회세력이 세금을 수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울타리(브로구스)를 견고히 하고, 울타리 안쪽에서의 자치권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자치도시이지요. 이 울타리 안에서 자유롭게 무역하는 사람들을 <부르조아>라고 합니다. 따라서 초기 도시란 울타리 영역의 규모에 따라 인구 500일 수도 있고, 만명일 수도 있고, 더 성장하여 10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 도시 중 당대 중국과 비교하여 규모가 비슷한 도시, 즉 10-100만의 도시란 유럽을 통털어 10군데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시아에서 보기에 유럽의 도시는 도시가 아니라 시골 향도(?)쯤으로 보였겠지요.

그러나, 14세기 도시들은 원거리 무역을 시작하면서 그 규모를 확대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인 이탈리아 도시들이 그 중심이었지요. 물론 16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에는 대서양 앞바다인 포르투갈, 영국의 도시들도 발전하구요.

이러한 새로운 도시들은 그 자본력과 무역 능력에 따라 도시끼리의 수준차가 아주 심해집니다. 더 심한 것은 도시 내부의 빈부격차입니다.

도시에서 대상인들은 상인길드를 형성하여 그들만의 특권을 누리게 되고, 도시귀족화 합니다. 이들은 봉건제도 내에서의 <길드>라는 체제를 고수하는 보수적인 세력으로서 상층 부르조아지가 됩니다. 상층 부르조아지들은 귀족가문과 혼인이 가능한 계층이었습니다. 이들은 상업의 이익을 금융업, 고리대, 토지사업, 모직물 사업 등으로 재투자하면서 확실한 신분상승을 꾀합니다.

도시내에서 대상인들의 <길드체제>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중소 부르조아지가 됩니다. 이들 중 기술을 가진 자들은 <장인길드>를 조직하기도 하죠. 특히 당시 도시들은 교회나 영주 세력을 배제하고 특허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왕권과 결탁하였습니다. 즉, 왕에게 세금을 내는 대신 왕의 상비군이 도시를 지켜주는 체제였지요. 도시 중산 부르조아지들은 이들 국왕과 철저히 결탁하여 법관, 궁중관료, 세무사 등으로 성장하면서 <신흥 부르조아지>로 성장합니다. 실제 시민혁명기에 주도계층은 길드체제에 길들여진 상층 부르조아지가 아니라, <상인길드>에 포섭되지 못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 이들 중소 부르조아지들입니다. 오히려 <길드체제>는 혁명기에 타파대상이었죠.

마지막으로, 도시내에서 아무런 세력도 가지지 못하고 임금 노동자로서 하루 하루 살아가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농촌에서 농노해방으로 도시에 이주한 농민들, 길드의 폐쇄성으로 인해 기술을 인정받지 못한 직인들, 그리고 도시 빈민들로 구성되어 있었지요. 이들 하층민들을 통털어 <도시 프롤레타리아>라고 합니다.

프롤레타리아란, 고대로마에서 최하층 계급을 뜻하는 proletariatus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을 영위해 가는 무산자(proletaria)로 이루어진 계급을 지칭하기 위하여 독일의 사회학자인 K.마르크스가 1840년대에 사용한 개념입니다. 즉, 유산계급인 부르주아지(Bourgeoisie)에 대비되는 무산계급(無産階級)을 뜻하는 말이지요.

이들 최하층민(프롤레티리아)의 불만사항은 <길드체제의 배타성>이었습니다. 특히 장인길드는 비숙련공 - 숙련공 - 마스터 로 이어지는 계서구조가 있어서 일반인들이 기술을 익혀서 이 구조의 상층부로 올라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일반직인들은 전문기술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기술노동자로 분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직인조합>을 결성하고 그들만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지만, 시민혁명이 끝나고, 길드가 완전히 사라지는 18세기까지도 그들의 권익인 인정되지 못하였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심한 노동착취로 인해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을 원한다>는 극단적인 문구가 등장합니다.

2. 상인길드의 성장과 대자본의 축척

당시 중세의 경제체제는 <길드제도>를 통하여 대상인에게 철저하게 유리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예로, 100년 전쟁이 일어나서 대부분의 소규모 무역도시가 파탄나고, 중소 상인이나 하층민들이 생활고를 겪을 때에 대상인들은 전쟁 호황으로 더욱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백년전쟁으로 양모수출이 어려워졌고, 대부분 유통상인들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대자본을 가지고 국가와 결탁한 상인들은 영국 자국산 모직물을 육성하면서 이 것을 기회로 더욱 성장합니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양들을 울타리쳐서 기르고, 그것으로 산업을 부흥한다>는 <incloser> 운동이 그것이지요. 인클로저 운동은 단어 그대로 안에 양들을 가둬 키운다(in + closer)는 뜻 입니다.

프랑스에서도 백년전쟁으로 상파뉴 무역권이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중소 상인과 하층민들은 힘들었지요. 그러나, 대상인들은 이것을 기회로 남북 무역로를 연결합니다. 즉, 대자본으로 선단을 만들어 해로를 통한 이탈리아 무역항로를 뚫습니다. 이탈리아는 동방과 무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방물산의 중계무역은 남부 이탈리아와 북부 영국을 이어주면서 큰 차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익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시들이 대성장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한자동맹으로 대표되는 <도시동맹>들입니다.

즉, 유럽에서 14-15세기 전쟁과 흑사병으로 사회가 문란했다고 하지만, 근대 사회의 기반이 되는 상업자본 자체가 붕괴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이 상업자본이 근대사회의 자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자본력은 당시 아시아의 인도, 투르크, 중국을 이어주는 무역권에 비하면 10% 규모였으니까요. 문제는 유럽의 상업자본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16세기 신항로 개척 당시 아메리카의 막대한 금을 가져와서 상업혁명을 일으킬 기반이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죠. 16세기 아메리카의 금은 유럽의 무역권을 아시아 무역권과 비슷하게, 어떤 면에서는 우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중요한 것은 유럽의 대상인 자본가가 있었기에 유럽사회가 아시아 무역권과 교류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피렌체 가문 등은 동방 무역으로 막대한 금융 기반을 쌓았고, 이들은 복식장부 등을 이용하는 등 합리적인 기업 경영 기술을 발휘하였습니다.

또 중요한 점은 이러한 대상인의 자본이 중소 상인과 장인들을 압도하였다는 점입니다. 이 당시에는 상업자본이 산업자본을 앞서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상업자본에 의한 <선대제도>가 출현합니다. 선대제도는 <상인길드>에서 원료를 상인이 수입한 다음, <장인길드>의 방적공들에게 원료를 넘겨줍니다. <장인길드>에서는 <임금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 직포공들에게 실을 지급하는데, 이들이 단순노동으로 실을 짜고, 다시 <징인길드>에 제작품을 넘깁니다. <장인길드>는 이 제작된 실로 상인길드가 원한 물품을 생산합니다. 이것은 상업자본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리 제품의 대금과 원료를 <징인길드>에 넘기고, 제작된 물품을 받아 원거리 무역으로 외국에 파는 방법입니다. 이 선대제도가 있었다는 점 자체가, 당시 <상업자본과 상인길드>의 영향력이 다른 계급, 특히 <장인계급>으로 대표되는 도시 제 2 신분층을 능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더욱 부를 축적하는 대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왕권과 철저하게 결탁하기 시작합니다. 제 2신분들(장인, 전문즉종인)이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왕권가 결탁했다면 이들 대상인들은 자본력으로 왕권에 도움을 줍니다. 예로, 프랑스의 자크퀘르는 백년전쟁비를 프랑스에 부담하였고, 영국의 양모상인길드는 영국 왕실에 장미 전쟁에 대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영국 양모수출 독점적 지정항구>임을 인정받기도 합니다. 즉, 상업자본이 왕실과 결탁하여 상업발전의 기반을 닦는 동시에, 왕권 역시 절대왕정으로 나아갈 재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지요.

3. 대상인과 상인길드에 대한 도시 반란이 시작되다.

지금까지 적은 대상인들의 특권은 다른 도시계급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즉, 도시 1신분인 상인길드 소속의 가문들은 상층 부르조아지로서 도시귀족화되었고, 그들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도시의 모든 행정과 업무를 독점적으로 지배하였습니다. 그리고, 길도조직의 배타성과 특권성은 일반 도시민들이 장인, 상인으로 나아갈 길을 막아 버리는 것이었고, 도시에서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임금노동자의 증가만을 뜻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대상인들이 많은 도시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의 피렌체, 베네치아, 영국 양모산업의 중심지인 플랑드르 지방이었습니다. 따라서 대대적인 도시 반란은 이 지방에서부터 시작되었죠.

14세기 피렌체 지방에서 일어난 <치옴피의 반란>을 한번 볼까요? 이 반란은 <상인길드와 장인길드>의 배타성에 대한 양모공들의 반란이었습니다. 당시 <징인길드>는 <상인길드>의 배타성에 반발하고 있었고, 일반 기술자들은 <장인길드>의 기술서열제도에 반발하고 있었습니다. 양모공들은 자신들의 기술을 인정해달라고 외치며, 길드를 결성할 권리, 도시행정에 참여할 권리, 자신들에게도 평등한 사법권을 줄 권리 등을 주장하면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을 기점으로 도시 귀족들에 대한 끊임없는 반란이 일어납니다. <장인길드>들도 <상인길드>가 배타적인 특권으로 자신들을 억누르려고 하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독일에서는 수공업자 조합이 도시행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즉, 이러한 반란들을 살펴볼 때, 도시의 길드체제는 이미 길드체제의 전성기인 13-15세기 무렵부터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13세기 십자군 원정이 끝나면서, 유럽사람들은 동방이라는 새로운 무역로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길드체제와 유럽내 자체 무역으로는 새로운 무역체제를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미 길드에 속하지 않은 수많은 상인들이 등장하고, 모험가가 등장하였으며, 배타적인 길드체제보다는 자유로운 무역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 확립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길드는 이러한 새로운 사회체제를 수용하지 못하였고, 유럽의 도시는 새로운 무역로를 감당하기에 너무 작았습니다. 이러한 모순점은 도시 내 반란으로 이어졌고, 유럽은 새로운 시민의 시대로 도약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길드체제는 계속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과제는 도시 내부에서 해결된 것이 아니라, 대상인과 결탁한 강력한 국왕세력에 의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흔히 말하는 절대주의 시대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이 과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따라서 신항로 개척이 이루어지고, 유럽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갈 때, 도시 내부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세력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18세기에 이르러 권리는 없고, 과도한 세금만 부담해야 했으며, 길드체제의 배타성으로 <구제도의 모순> 속에서 살아온 시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하였습니다. 혁명은 어느 순간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도시와 농촌 내부에서 곪았던 모순들이 터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해서 중세 말 농촌의 문제점, 도시의 문제점을 차분히 살펴보았습니다. 다음장에서는 이러한 농촌, 도시 문제가 생긴 큰 원인 중의 하나로서 유럽 중세 말기를 파탄으로 몰고간 백년전쟁에 대하여 제 나름대로의 관점대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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