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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토막 역사 13화) 개항기 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돈이 쓰였을까?

1. 조선 후기에 어떤 돈을 쓰고 있었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한반도에서도 <화폐>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럼 조선 후기 이후 개항기까지 어떤 돈들이 주로 쓰였을까요?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주도하여 화폐가 쓰인 것은 고려 성종기부터입니다. 중앙집권이 이루어지고, 최승로의 건의로 유교정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고려 초기초기부터죠. 이 때의 화폐란, 국가가 세금을 효율적으로 걷어 행정적으로 사용하기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화폐유통을 권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백성들은 돈의 효용성을 몰랐지요. 고려 시대 유명한 스님인 의천도 화폐 유통이 국가경제와 사원경제를 원할하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세금은 현물세로 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토지세는 쌀과 콩으로, 군역은 군포로, 특산물세는 각 지역의 특산물을 직접 내는 형태였죠. 이러한 현물을 운반하는 것도 일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세금을 내기가 힘들었습니다. 조선시대 대납(대신 내주고 이자붙여 받는 것), 방납(미리 내주고 후에 받는 것)과 같은 형태의 세금내기가 유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화폐가 본격적으로 유통된 것은 조선후기 상평통보가 사용되면서입니다. 보통 가운데가 뻥뚫린 이러한 엽전은 사용하기도 간편하였고, 가운데 구멍에 돈을 꿰어차고 다니기도 용이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화폐가 본격적으로 유통되었음에도 시중에 화폐가 없어서 곤란을 겪는 <전황>이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화폐가 재산으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자들이 화폐를 저장하기만 하였지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계속 화폐를 발행하고, 부자들은 계속 화폐를 저장만 하니 돈의 진정한 가치 중 저장가치만이 제 기능을 한 것이죠. 유통가치, 교환가치로서의 돈이 사용되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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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

2. 갑오개혁 이전에 사용했던 화폐들

조선 후기부터 사용된 대표적인 돈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엽전>입니다. 영조, 정조 때 이 엽전은 돈의 구실을 제대로 하였고, 사람들은 돈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동김씨 등이 집권한 세도정치 때에도 탐관오리들은 백성들을 착취하곤 했는데, 그 때에도 돈의 가치를 이용하곤 하였습니다. 이자를 붙여 돈을 늘리는 고리대업을 할 줄 알았던 것이죠.

이후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이후, 초기에는 화폐의 균형이 잡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기존의 돈을 걷가나, 마구 새로운 돈을 발행하여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경복궁 중건을 위해 원하는 사람만 내라던 <원납전>은 백성들에게 강제로 걷었기 때문에 <원망하면서 납부한다는 뜻의 원납전>으로 말이 바뀝니다. 또 새로운 돈인 당백전을 마구 찍어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더욱 고달팠고, 시중에 돈이 남아도는 관계로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자신의 돈이 부족해지자 청나라 화폐를 수입하여 국내에서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이것을 <청전>이라고 합니다.

대원군 이후, 민씨 정권이 정치를 하면서 청, 일본 등과 본격적인 무역을 시작하였습니다. 1880년대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돈들이 유통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1894년의 갑오개혁까지 우리나라의 공식화폐는 엽전이었지만, 유통된 화폐는 다양해졌죠.

1880년대 초기에 청, 일본과 무역을 하기 위해 사용한 화폐는 멕시코의 은화였습니다. 신항로 개척 이후 가장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돈이었고, 당시 세계 금융시장이 은본위 화폐제를 선호하였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지요. 그런데, 점차 일본과의 무역량이 많아지면서 일본의 화폐가 조선시장에 들어오게 됩니다. 무역시장에서 주로 사용하던 <멕시코 은화>가 점차 <일본 은화>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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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은화


해외 국가들과의 접촉이 많아지자, 정부는 엽전보다 더 큰 단위의 돈을 만들었습니다. 1883년부터 엽전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된 돈이 <당오전>이라는 돈입니다. 당오전은 <엽전 5개의 가치는 갖는 돈>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이 돈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불량 화폐가 너무 많이 많들어져서 시중에서 당오전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 돈의 실제 가치는 상당히 낮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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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 당오전


3. 갑오개혁 이후에 사용하게 된 화폐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본격적으로 갑오개혁이 추진되면서 화폐도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이 새로운 돈이 바로 <백동화>입니다. 백동화는 갑오개혁 때부터 주조되었고, 대한제국기에 대량으로 주조되면서 엽전을 대체하였습니다. 이 돈의 명칭이 백동화인 것은 원료가 <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백동화는 엽전 24개의 가치를 갖는 돈이었습니다. 당오전이 엽전 5개인데, 백동화가 엽전 24개의 가치를 갖는 돈이라면 당시 물가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겠네요.

갑오개혁 때 사용된 또 다른 돈은 <일본 지폐>였습니다. 일본 지폐는 청일 전쟁 때 일본이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유통되기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1897년 일본이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화폐단위를 바꾸면서 <일본은화> 대신에 <일본지폐, 일본금화>가 많이 사용됩니다. 일본은화와 일본금화, 그리고 우리나라의 백동화는 그 가치를 같게 하여 1:1:1로 교환할 수 있는 화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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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화


그리나, 백동화 역시 당오전과 마찬가지로 불량 화폐가 너무 많았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백동화와 엽전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고, 백동화는 점점 가치가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백동화와 일본은화(일본금화)는 실제로는 1:1의 가치였지만, 사실 백동화 2개 이상을 주어야 일본은화와 바꿔주었다고 합니다.

조선에서는 일본화폐가 조선에서 대량 유통되면서 생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만약 조선에서 대량 유통되는 일본화폐가 일본의 농간으로 모두 일본에 환수된다면 조선은 화폐 공황을 맞아 큰 위기가 닥칠 수 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환수되는 일본 은화와 구별하기 위해 조선에서만 유통되는 은화에 도장을 찍었고, 도장을 찍은 은화는 조선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을 <각인 부은화>라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개항기에 조선에서 유통된 화폐들은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후기 우리 상업은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고, 외국과의 무역 개방은 상인들에게 큰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체계적이지 못한 화폐단위는 상인들에게 변수로 작용하였습니다. 훗날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실시한 화폐개혁으로 우리 상인들은 모두 몰락하게 됩니다.

일본이 실시한 화폐개혁이란, 백동화를 모두 일본화폐로 바꾸고, 일본화폐만을 공식화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량 백동화는 바꿔주지 않았고, 그 교환도 1:1의 맞교환이 아니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재력이 있는 상인이 아니면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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