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  모바일  |  이메일  |  블로그  | 교육연구소  |  온라인진단  |  인강사이트  |  평생교육원  | 웹하드자료실

 

우정국 정변

갑신(1884) 9월 다케조에 신이치가 부임지인 조선에 왔다. 이때 중국와 프랑스는 안넘전을 벌이고 있었으므로, 일본 공사는 김옥균 등을 꾀어 말하기를 <청국은 이제 조선을 돌아볼 틈이 없으니 청국세력을 배제하고 독립할 기회는 바로 이때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하니 매일 밤 모여서 은밀한 화합을 가지고 일본군을 의탁하여 청국인을 방어하며 자객을 양성하여 청당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로부터 군함을 파송하여 후원해준다는 밀약까지 받았다.

- 박은식, 한국통사 -

같은 해 10월 17일 우정국이 낙성되고 홍영식이 총판이 되매, 연회를 베풀고 대관들과 각국 공사, 영사들을 초청하였다. 이에 육조판서와 내아문, 외아문 독판, 전후좌우 네 영사, 그리고 미국 공사 푸트, 영국 영사 애스톤, 청국 영사 진수당 등이 모두 연회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일본 공사는 병을 칭탁하고 오지 않았으며 서기 시마무라를 시켜서 대행하도록 하였다.

같은 날 오후 6시에 연회를 시작하였는데, 홍영식 등은 미리 왕궁문 앞과 경우궁 안에 사관생도들을 매복시켰으며, 또한 우정국 앞 개천에 자객을 매복시켜 방화로 신호를 하게 하였다. 김옥균 등은 출입이 잦았으나 지휘하는 형적은 속이고 극비에 부쳤다. 10시가 되어 갑자기 담장 밖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그 때 달이 밝아 대낮 같은데 불빛이 충천하였다. 민영익은 <불이야> 소리를 외치며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밖으로 나오니 앞 개천을 따라오던 자객이 칼로 내려치자 영익이 몇 군데 자상을 입고 쓰러지자, 빈객들은 모두 대경실색하였다. 일당들은 여기서 청당을 모두 죽이려 하였으나 단지 민영익 한 사람만을 부상시켰다. 박영효, 김옥균, 사광범 등은 대궐로 달려가 바로 침전에 들어갔으니, 미리 내응이 되어 있던 궁녀가 문을 열고 기다린 까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들은 헐떡이며 급히 아뢰되 <청나라 군사가 난을 일으켜 불빛이 성안에 가득하고 대신들을 마구 죽이니 급히 자리를 옮기시어 피신하소서> 라고 청하고, 아울러 일본 공사를 불러들여 호위케 하라고 청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김옥균 등은 울며불며 달래다가 위협하며 빨리 떠나라고 요구하였다. 중관 유재현이 살해되니, 왕은 창황히 침전에서 나갔으며, 조태호, 홍태후와 왕후, 태자 이하는 모두 걸어서 따라나섰다.

영숙문에 이르러 갑자기 총소리가 일어나자, 김옥균 등은 급히 외치며 청병들이 많이 이르렀으니 서둘러야 한다고 하였다. 이 총소리는 일당들이 미리 이곳에 사관생도들을 매복시켜 왕이 이르는 것을 엿보아 총소리를 내 암호로 삼은 것이었다. 다시 일본 공사를 불러들여 호위해달라고 청했으나 왕이 듣지 않자, 김옥균, 서광범 등은 품과 있던 연필과 서양 종이를 꺼내어 일사내위(일본공사는 나를 지켜라)라는 넉자를 쓰고, 인신 증거도 없이 일본 공관에 보냈다. 왕이 경우궁에 당도하였다는 소식이 일본 공관에 이르자, 일본 군사들은 이미 낭우에 가득하고 일본 역관 아사야마는 맞아 뵙고, 공사 다케조에는 따라 들어왔다. 왕은 동상에 어거하시고, 일본 공사와 일당들은 청사에 거처했다. 조금 뒤 사관생도 12명이 입궁하여 둘러쌌으며 김옥균, 홍영식 등은 슬퍼하며 우는 모양을 짓고 있었다. 이에 일본병은 궁문을 에워싸고 일당들은 그 가운데 거하면서 외부와 내통을 억제했다.

- 박은식, 한국통사 -

이 때 우리 민인들은 일본인을 원수로 보았고 맹세코 함께 살 수 없다 하여 만나면 치고받아 죽이기까지 했다. 청병 또한 일본 공사관을 밤에 몰래 공격하여 39명을 죽이고 부녀는 욕을 보였으며 방사를 파괴하니, 드디어 다케조에 공사는 깃발을 내리고 군대를 이끌고 서소문을 빠져 도망쳤다. 이 때문에 우리 백성들은 더욱 노하여 일본 공관을 불태우고 육군 대위 이소하야시를 죽였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은 머리를 깎고 양복 차림으로 영사관에서 나무 궤짝 속에 몸을 감추고 24일 일본 상선을 타고 도망쳤다.

- 박은식, 한국통사 -

참고글 :  1884년 10월 17일 우정국 정변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당시는 임오군란 이후 청의 세력이 조선에서 강했습니다. 청에서 파견나온 고문 멜렌도르프는 국왕에게 이것저것을 요구할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개화파의 김옥균은 국왕에게 일본에서 차관을 빌려 국가의 재정위기를 벗어나자고 건의했으나, 멜렌드르프는 많은 량의 돈을 주조하여 재정위기를 벗어나자고 하였죠. 문제는 김옥균이 일본에서 차관을 빌리는 것에 실패하였다는 점입니다.  이 당시 김옥균은 정변을 일으키지 않으면 바로 청 및 반대파에 의해 제거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갑신정변은 가장 급박한 상황에서 가장 개혁적으로 일어난 정변이었지만, 가장 짧은 기간만에 실패한 정권을 만들기도 한 사건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데이터분석 및 교육 전문기관

본 협회에서는 회원 외에는 댓글을 달 수 없습니다.

  • 꼭두각시 2011.03.31 1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마등으로 조선을 밝히려 생각하다니...아니 밝힐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입니다
    본디 온전한 상태에서 조선의 앞날을 도모해도 열강들의 득세에 눌려 어려울터인데 자신의 처지가
    급박하다고 난을 계획하고 저질렀으니 얼마나 준비가 없고 부실하였는지는 뻔한 노릇입니다
    .....밀림의 왕인 사자도 작고 연약한 영양 한마리 잡는데 온마음을 다하는 모습이건만 ...두서없는
    욕심이 자신을 망치고 조선을 망쳤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지식이란 냉정한 이성이 없이는
    아무 쓸데가 없는 노릇이라는걸 알게해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