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21) 광무개혁 이야기 1장

1. 광무개혁은 왜 필요했는가?

오늘부터 전개할 이야기는 광무개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광무개혁은 4-5장으로 나눠어서 다루어볼까 합니다. 1장은 광무개혁의 배경이야기, 2번째 부분은 광무개혁의 정치적 개혁과 대한국 국제, 3번째 이야기는 광무개혁의 지조발급과 경제관련 이야기, 4번째 이야기는 광무개혁 때 교육, 공업 등 사회 기반 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이 개혁의 특징과 한계점을 이야기 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일단 광무개혁이 실시된 것은 1897년으로, 이 시기는 앞 장에서 다루었던 독립협회의 활동 및 열강의 이권침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실시됩니다.

우선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광무개혁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돌아와야겠죠?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고종은 제발 돌아와 달라는 국민들과 독립협회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환궁 요구에 감동을 받기도 하죠. 왕을 다른 나라 대사관에 두고,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의 이권을 빼앗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국민들의 강한 의지로 국왕은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을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대외적 배경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조선 국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게 되면 다른 열강 국가들은 러시아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일본과 청을 비롯된 열강들은 고종의 환궁을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실제 당시의 국가 세력 관계는 어느 한 국가가 조선의 이권을 독점하는 것을 다른 국가들이 견제하는 <균점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예로, 청의 영향력이 강해진 갑신정변기에는 미, 일, 영국 등이 조선에 간섭하려 하였고, 일본이 강해진 시기에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이 삼국간섭을 하여 시모노세키 조약을 되돌리기도 하였습니다. 러시아가 강해진 시기에는 영국, 일본 등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조선에 머물기도 하구요. 어느 한 국가가 동아시아 중요 전략지인 조선을 독점하지 못하는 것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조선은 각 국가에게 돌아가면서 이권을 빼앗기고 있었죠.

이 상황에서 고종은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으로 환궁합니다. 국권을 약화시킨 개혁세력이 있었던 곳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해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을 반포하고 조선은 <자주국>이다라는 것을 천명한 것이죠. 당시 분위기 자체가 열강을 몰아내고 우리 스스로 자주적으로 뭔가 해보자.. 으싸으싸... 하는 분위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러한 분위기는 이미 독립협회가 깔아놓았던 것이구요.

고종은 환궁하자마자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고, 국호는 대한제국으로, 연호는 광무라 하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개혁의 목표는 <강력한 전제황권>을 만들어 주변국을 몰아내고 자주국가의 위상을 달성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광무개혁의 기본 방향은 <옛 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고한다>는 <구본신참>이었습니다. 이 구본신참의 이념은 <갑오, 을미개혁>의 문제점을 바로 잡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갑오개혁이 근대화를 위한 개혁이었음은 인정할 수 있지만, 갑오개혁은 너무 성급했고, 또 일본의 의도가 많이 포함된 개혁이었기 때문에 자주적인 개혁이 될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했죠. 예로, 갑오개혁에서는 <조선의 군사력 강화>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일본의 의도가 포함된 개혁이었으니까요,

광무개혁에서는 국왕과 보수파 관료들, 측근세력들을 중심으로 황제권 1원화를 추구하고, 국왕의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서양의 법과 제도를 수용하여 부국강병과 근대 국가를 이루려는 것이 목적이었죠.

2. 독립협회와의 마찰과 탄압...

독립협회를 다루면서 중요하게 다룬 내용은 <입헌군주제와 내각제 문제>였습니다. 특히, 서재필, 박영효 등의 주장이 광무개혁과 충돌하고 있었다는 점을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독립협회는 내각을 중심으로 서구식 의회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서구식 의회를 만들어 국민주권적인 법치국가를 만든 뒤 중추원을 내각으로 개편하여 개혁의 중심기구로 하려고 했죠.

그러나, 고종의 개혁 목적은 절대적인 왕권강화를 통한 국가 발전이었습니다. 즉, 독립협회와 광무개혁은 둘다 국가의 근대화와 발전을 위한다는 목적은 같았지만, 그 방법이 정반대였던 것이죠. 고종이 초기 독립협회를 인정하다가도, 서재필을 추방하고 박영효를 탄압했던 것, 또 관민공동회는 인정하면서도 만민공동회를 탄압하면서 해체시킨 것 등은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였습니다.(독립협회편을 참고하세요.)

따라서 대한제국의 국제 마련, 양전사업 및 지계발급과정, 상공업 육성 등의 모든 부분에서 고종과 독립협회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전제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법을 제정하려 했지만, 독립협회는 내각중심의 국제를 원했습니다. 물론 후기 독립협회 인사인 남궁억 등에 의해 타협안도 나왔고, 박정양 내각이 고종의 비위를 맞추려고도 했지만, 고종은 불만족스러웠죠.

또, 대한제국에서는 왕실재정을 강화하여 왕실의 조세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독립협회는 왕실사무와 행정사무를 분리할 것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마찰을 보인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은 국가의 강력한 법적 근거가 필요함을 생각하고, <헌법>을 구상하게 됩니다. 이래서 <대한국 국제>가 등장하고, 국가 건설방향을 황제권 강화의 방향에서 잡게 됩니다. 개혁에 대해 불만을 가진 독립협회는 해산되었고, 대한제국은 거침없는 개혁을 실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광무개혁은 성공한 개혁으로 평가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정치, 경제, 사회부분으로 나눠서 한번 사료를 통해 분석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짧은 서론이 끝났습니다. 본격적인 광무개혁으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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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히스토리아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