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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이야기 17 - 무로마치 막부의 경제정책과 막부외 붕괴

1. 경제가 발달하고 서민이 성장하다.

무로마치 막부기는 일본 역사상 경제적인 성장기였습니다. 슈고 다이묘들이 지방 장원에서 경제력을 발전시켰고, 그들이 조선과 명을 공격하는 왜구의 기반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반대로, 가난한 농민들이 왜구가 되어 조선을 약탈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왜구는 생활이 궁핍하여 조선을 약탈하는 자들이었지만, 왜구가 빈번해지면서 밀무역과 전문 해적질을 주로 하는 왜구도 등장하였고, 왜구인 척 하면서 자국을 약탈하는 중국밀매상들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왜구의 등장으로 조선과 명은 모두 무로마치 막부의 왜구 대응에 관심을 보였고, 왜구 진압의 대가로 무역로를 열어주었습니다. 막부는 류쿠왕국과 동남아시아까지 무역을 진행하면서 막부 재정을 튼튼히 하였습니다.

명과의 감합무역으로 명일무역을 독점하는 항구도시가 발달하였습니다. 사카이 항구는 명과의 무역을 책임지는 곳으로 성장하였고, 도시의 위세는 지방 세력가인 슈고다이묘와 견줄만 하였습니다. 일본사에서는 이 자유도시의 등장을 중세 길드체제 속에서 성장한 서구식 자치도시와 견줄만 하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일본에도 다이묘의 개입을 차단한 치외법권적 도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는 자치를 주장하는 마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라고 생각되네요.(이 부분... 좀 주관적입니다....)

첫 번째는 슈고가 다이묘가 되면서 전통 마을들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행정관인 슈고가 남북조 시대를 거치면서 다이묘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했었죠? 슈고들이 세금을 강요하고 멋대로 행정처리를 하자 마을들이 스스로 단합하면서 마을내부의 자치권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앞서 말했던 사회 경제력의 발전입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해양 무역을 통해 많은 선진기술들이 보급되었습니다. 또 우경이 확대되고, 면화가 재배되었죠. 고려에서 문익점이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온 것처럼 당시 일본도 새로운 기술을 계속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농업 기술의 발달은 자치도시의 성장과 부농층의 성장을 가져오게 되죠.

또 농업과 무역의 발달로 전문 직인과 동업조합의 발달하고 상업과 수공업도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일본에서 5일장이라 불리는 정기시장이 등장하는 시기도 이 시기이며, 화폐제도와 어음제도가 크게 발전한 시기도 무로마치 막부기입니다. 무로마치 막부기는 경제적으로는 큰 의의가 있었던 시기네요.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성과물이 고스란히 농민들 손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슈고와 지토들은 장원 소유자가 되어 자치마을과 농촌 경제의 잉여생산물을 착취하려고 했고, 농민들은 영주건, 무사건, 불교승려건 간에 자신을 약탈하려는 자들과 싸워야 했죠.

그 결과 무로마치 막부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농민 봉기가 끊이지 않는 시기입니다. 발전하는 사회경제력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 그리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의 투쟁은 끝이 없었고 이것이 곧 무로마치 막부가 채 150년도 안되어 망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2. 민중은 성장하는데, 막부는 붕괴되었다.

14세기 이후,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서민층이 성장하면서 서민 문화는 더욱 발달하였습니다. 가마쿠라 막부기에 서민적인 6불교가 등장했다고 이야기했었죠?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는 정토종과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간단명료한 선종은 서민들 사이에 더욱 유행하였습니다.

서민들은 이 불교 문화에 스스로의 문화를 더해 무로마치 문화를 이끌어 갔습니다. 예로 서민들을 위한 막간 연극(쿄켄) 공연이 성행하였고, 여러 사람이 노래를 이어부르며 감정을 공유하는 <연가>도 유행하였죠.

당시 차 예법이라 불리는 <다도>의 격식이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였는데, 서민들 역시 차를 마시는 여유와 경제력을 가지고 다도를 익혔습니다.

그러나 15세기로 넘어가면서 서민들의 성장과 달리 막부의 상황은 위태로웠습니다.

막부의 재정은 명과의 무역 및 성장하는 경제력이었는데, 이것을 막부가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죠. 특히 지방 행정관인 슈고들이 남북조 시대 이후 대토지를 소유하여 슈고다이묘가 된 이후, 막부는 이들의 이권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슈고들이 서로 토지 쟁탈전을 벌이기도 하고, 돈과 군대를 보유한 슈고다이묘들이 막부에 덤비기까지 했죠.

슈고다이묘들의 성장은 결국 실력자가 막부를 다스려야 한다는 사회분위기로 넘어갔고, 1467년부터 10년간 <오닌의 난>이라고 불리는 슈고들의 하극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3. 무로마치 막부의 멸망과 전국시대의 시작

무로마치 막부 말기 <오닌의 난>을 기점으로 하극상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졌습니다.

이 당시 하극상이나 혼란을 틈타 경제력을 보유하게된 자들이 있었고, 부농층 중에 기회를 잡아 다이묘(영주)가 된 자도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슈고다이묘와 다른 경제로 새롭게 등장한 다이묘(영주)를 <센코코 다이묘>라고 합니다.

센코코 다이묘는 막부를 의식하지 않고 대토지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영토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관료제, 상비군을 운영하면서 독자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작은 <독립국>을 선언한 것이지요. 바야흐로 전국시대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표적인 작은 독립국은 <오아리의 작은 영주인 오다 노부나가>의 영토, 그리고 라이벌 관계로 유명한 <우에스기 겐신과 다케다 신겐>의 영토 등을 들 수 있겠네요. 막부는 이들 독립영토들을 통제하지 못하였고, 겨우 이들간의 전쟁을 막거나 불똥이 막부로 튀지 못하게 하는 정도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소극적인 중립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죠.

15세기의 무로마치 막부는 동네 독립국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1573년 15대 쇼군을 마지막으로 <오다 노부나가>에게 항복함으로서 무로마치 막부는 망하고 전국시대가 시작됩니다.

다음 장에서는 오다 나부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한 전국시대를 이야기 한 뒤 와 에도막부시대를 개관하겠습니다. 한국사에서도 조선시대 이후와 근현대사의 기록이 많고 다룰 부분도 많듯이 일본사에서도 에도막부 이후의 시기가 다룰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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