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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의 정관지치와 수성지난

정관지치란?

정관지치란, 당나라 초기의 안정된 정치를 말합니다. 당나라 초기에는 정치가 아주 평안했다는 뜻으로 3대 치세가 있는데, 당태종의 정관지치, 영휘지치, 그리고 당현종의 개원지치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들 평안의 정치시대에는 황제가 현명한 신하를 등용하고 아름다운 정치를 했다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역사서를 적은 지배층의 입장에서였죠. 당나라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고종과 황후로서 여제에 오른 측천무후기의 평안했던 역사는 이 3대 시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정관지치는 당나라를 세운 태조 이연의 아들 당태조 이세민 시기를 말합니다. 사실 당태종은 개국 황제의 5번째 아들로서 왕위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하였습니다. 하지만, 국가를 창업한 이후 나라의 기반을 잡고 공신들에게 상과 벌을 내리는 과정에서 당태종은 형제들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습니다. 마치 조선 왕조에서 이성계의 5번째 아들 이방원이 형제들을 죽인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죠. <왕자의 난>이라는 말도 당태종의 역사책에 먼저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뒤의 당태종은 새로 개창한 왕조의 평안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형제들을 죽이고 올라선 왕위였지만, 왕이 된 뒤에는 백성들을 위해 노력하는 왕이었다고 역사가 기록하고 있죠.

태종의 정관지치는 후대 왕들에게 모범이 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 형태였습니다. 백성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함부로 주워가지 않았고, 도둑이 없어서 사람들은 아무대서나 야숙을 해도 되는 이상적인 세상이었다고 합니다.

참모를 잘 쓰면 나라를 보호할 수 있다.

이렇게 백성들을 위해 노력한 당태종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많은 개혁을 이룬 것이 아니라, 현명한 인재들을 주위로 가득 모아놓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또 들어가면서 정치를 했다고 합니다. 왕 스스로 근검하게 생활을 하면서 가장 현명한 신하인 두여회, 방현령 등을 자신의 참모로 두었습니다.

유명한 일화는 위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당태종은 자신과 대립하는 형제들을 죽인 후, 자신을 죽이기 위해 계략을 썼던 위징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나, 당태종은 위징이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알고 죽이는 대신 나라를 위해 정치에 참여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또 가장 청렴하다고 소문난 신하 왕규를 모든 신하들을 다스리는 시중의 자리에 두고 막강한 권한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태종이 왕규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현령 이하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어떤 인물인가?"

왕규가 대답하기를,

"부지런히 나라일에 몸바치며, 아는 일에 대해서 소신껏 말한다는 점에서 저는 방현령에 미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재주가 문과 무를 겸하면서 들어가사는 재상의 역할을 하면 나와서는 대장의 역할을 하는 이정에 미치지도 못힙니다. 군주가 요순과 같지 못함을 부끄러이 생각하여 임금님께 간하기를 자기의 임무로 하는 점에서 저는 위징을 따르지 못합니다.."

태종은 이 말을 듣고 왕규를 신임하였다고 합니다.

태종은 항상 신하들과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정치를 하였습니다. 당태종과 신하들이 국가일을 이야기한 말들을 모은 책이 <정관정요>인데, 이 책은 훗날 모든 왕들이 보고 배우는 <제왕학>의 교과서처럼 쓰였다고 합니다.

창업이 어려운가, 수성이 어려운가?

태종이 어느 날 신하들과 이야기 하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일(창업)과 나라를 지키는 일(수성)은 어느 쪽이 어려울까?"

방현령이 대답하기를,

"천지가 시작되던 어두운 세상의 처음에 군웅이 서로 다투어 일어나니, 이들과 싸워 쳐부수고 항복하면서 싸우고 이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창업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태종과 적이 되어 싸운 적이 있던 위징이 반박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제왕은 그 자리를 온갖 고난 속에서 얻어 이를 안일함 속에서 잃어버립니다. 역대 왕들을 보면, 창업 이후에 쉽게 망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수성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

창업과 수성의 논쟁은 당나라에 중요한 문제와 관련되었습니다. 즉, 개국공신들의 업적이 중요한 것인가, 앞으로 국가가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는 기반이 중요한 것인가와 같은 문제가 우회적으로 논의된 것이지요.

태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방현령은 짐과 함께 천하를 얻어 삶과 죽음 속에서 함께하였다. 그러므로 창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위징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안정토록 하고 항상 교만과 사치는 부유함에게 생기고 위기와 화는 잊어 버리고 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수성의 어려움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지나지 않았는가? 이제 수성의 어려움을 알고 조심해야 할 것이바."

이 이야기는 당서 방서현령전의 이야기입니다.

창업은 맹자에 나와있는 말로 업(보)을 시적한다는 뜻입니다. 수성은 성스러운 업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입니다. <정관정요>의 주에 예로부터 업을 창시하여 이를 잃는 자는 적으로, 성한 것을 지키다 이를 잃는 자는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수성의 뜻을 깨닫고 항상 조심했던 태종도 결국 수성을 다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의 후기에는 점점 사치스러운 생활에 젖어갔으며, 초기에 같이했던 신하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수성의 뜻을 잘 알고 있는 지도자 마저 <수성>한다는 것이 어려웠을까요? 초심을 잃지 않는 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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