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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이야기 20 - 에도막부의 재정과 조세개혁

1. 막부 공통의 관심사 : 재정문제

일반적으로, 일본의 중세라고 부르는 시기는 막부 시대를 말합니다. 이 막부시대의 막부는 국왕이 아니라 막부의 군사지도자 쇼군이 다스리는 시기입니다. 일본은 중세부터 이미 군사정권으로 역사를 쭈욱~ 이어오네요. 어쩌면 근대 일본사에서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열망이 왜곡되고 군국주의로 나간 것도 천황 이데올로기와 막부정권의 전통이 일본인들 머릿 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한 나라의 역사라는 것이 자신들도 모르게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에 투영된다는 것을 보면 <역사>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중세에서 막부의 영양분은 <재정>이었습니다. 막부는 직접 국왕가로 불릴 수 없었고, 천황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막부는 하늘의 자손이라는 <정통성>보다는 힘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재정이 필수였습니다.

최초의 막부인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진 것도 재정적인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몽골의 침입에 맞써 싸운 무사들이 전쟁 이후 재정난에 허덕이며 보상을 해주지 못한 막부에 대하여 더 이상 신뢰를 하지 않았거든요.

무로마치 막부는 명나라와의 공무역을 재개하고, 조선과의 교린 무역, 류쿠 및 동남아시아와의 활발한 무역로를 개통함으로 재정을 확보하고 초기 막부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4세기 이후 명, 조선의 등장 등 급변하는 동아시아의 상황과 상공업의 발달이라는 시대 흐름을 무역로 확보로만 해결하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즉, 성장하는 농민층의 힘을 끌어안을 능력이 없었죠. 농민층의 잉여생산은 막부가 아닌 지방 다이묘들에게 넘어갔고, 성장한 다이묘들이 독립국을 세우면서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즉, 막부의 존립 근거인 재정을 원활히 통제하지 못한 것이죠.

2. 에도 막부 : 확실한 농민 통제로 조세를 확보하다.

반면, 에도 막부는 이전 막부들과 달리 가장 확실한 농민통제를 실시합니다.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가 실시했던 <변법>과 같은 부국강병책을 도용한 것이죠. 에도 막부는 농민에 대한 통제가 확실한 조세 증가로 돌아온다는 것을 전국시대의 혼란함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일단, 농민층을 엄격한 신분으로 묶어버립니다. 에도 막부의 무사, 농민, 수공업자, 상인 이라는 신분 공식은 아주 엄격해서 농민은 어디로든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농민은 국가에 부역, 조세 등을 납부해야만 했죠.

농민들은 연대책임제인 <고닌구미>에 묶어 있었습니다. 중국과 조선에서 실시한 <오가작통법>과 같은 것이었죠. 누군가 세금을 내지 않고 도망가면 이웃이나 친척이 부담해야 했습니다. 특히 사치하는 자들은 주변인들을 같이 처벌함으로서 서로 서로 엄격하게 감시하도록 체제를 마련하였습니다.

또, 성리학의 토지 이념을 강조하여 토지는 하늘의 근본이라고 역설하였고, 농민이라는 직업이 다른 2, 3차 산업의 직업보다 우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토지를 중요시하는 사회의 특징인 <가부장권>을 중요시하여 가장에 대한 항명은 쇼군에 대한 가신의 항명과 동일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농민들보다 높은 계급의 무사들은 농민들보다 우월하는 이념으로 <무사도>를 강조하였습니다. 일명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불리는 무사도는 무사가 해야할 일들을 규제하면서, <무사는 힘써 일하는 농민을 보호해야한다>는 이념을 역설적으로 강조합니다.

제도적으로 막부는 <토지영대적 매매의 금지령>과 <분지제한령>을 법적으로 반포하여 농민을 보호하였습니다. 농민들이 가진 토지는 헐값에 매내할 수 없고, 상속도 법에 의한 것으로 제한한 것이죠. 이것은 소농민을 보호하면서, 국가에 내는 세금 공급자들을 확보하려는 국가의 정책이었습니다.

3. 무역을 통한 재정확보가 달라지다.

무로마치 막부는 대외 무역을 통하여 막부 재정을 확충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도 막부는 이전 막부보다 대외 무역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에도 막부는 대외적으로 <쇄국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보통 쇄국정책이라고 하면 다른 나라의 문물을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과는 좀 다른 개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쇄국이란, <서양에 대한 쇄국> 및 <농업상품에 대한 쇄국>입니다.

에도 막부는 중국, 조선, 류큐 등 동아시아의 전통 무역은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교류하던 서양과의 무역은 단절하고, 단지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문물을 수입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에도 막부의 정통성 문제와 막부 유지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서양 세력이 활발하게 일본에 진출한 것은 신항로 개척기인 오다 노부나가의 <전국시대>였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통일을 위한 새로운 사상으로 크리스트교를 적극 수용하고, 에스파냐, 포르투갈 등에서 대포 등의 문물을 수입하였습니다.

그러나, 에도 막부가 개설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에도 막부는 농민을 막부 재정의 원천으로 생각하여 무사와 농민을 중심으로 한 엄격한 신분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들어온 카톨릭은 인간 평등을 주장하는 사상이었습니다.

또, 에스파냐, 포르투갈 등 카톨릭 국가들과는 성격이 다른 네덜란드라는 신교 국가가 17세기 유럽을 주름잡자 일본은 카톨릭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의 자유롭고 활발한 무역 분위기는 엄격한 카톨릭과는 사뭇 달랐죠. 네덜란드를 이용하여 이전 카톨릭을 막아볼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스파냐, 포르투갈 등의 국가들이 에도 막부와 멀리 있는 규수 지방의 다이묘들과 무역을 계속하였다는 점입니다. 에도 막부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위해 서양과의 무역을 단절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네덜란드는 카톨릭 국가들을 누르고 일본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끊임없이 카톨릭 세력을 모략했고, 그 결과 일본에서 네덜란드를 제외한 서양 세력들을 모두 배척하는 <쇄국정책>이 탄생한 것이죠.

이제 에도막부는 막부 재정의 근간을 무역에서 찾으려는 이전 막부의 재정책을 버리게 됩니다. 일본은 나가사키 항구 하나만을 열고, 네덜란드 및 중국하고만 무역을 했습니다.

조선과는 전통적으로 협상을 진행했던 대마도(쓰시마섬)에서 무역을 하였습니다. 조선과 일본의 무역은 대마도주가 거의 독자적으로 주도했고, 대마도주의 태도에 따라 무역의 어감이 달라지기도 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대마도주의 존재를 거의 막부 실력자의 존재와 대등하게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에도 막부가 다른 막부와 달리 오래 지속된 것은 이 쇄국정책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른 막부의 무역을 통한 재정확보와 달리, 에도 막부는 일본 국내 상품을 타지방, 또는 해외에 유통시키는 것 자체까지 제한하였죠.

즉, 에도 막부의 사회는 농업기반의 자연경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것을 경계하였고, 막부체제는 동요없이 계속 지속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 쌓이고 쌓인 농업의 잉여생산물이 터져나오면서 막부의 의도와는 달리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고, 새로운 부자와 상인들에 의해 도시에 <죠닌 문화>라는 중산층 문화가 생기기도 합니다.

아무튼, 쇄국정책으로 에도막부는 오랜 기간동안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에도 막부의 초, 중반은 일본의 평화시대이면서 일본 고유의 국학이 발전한 시대입니다. 외국 사상은 네덜란드의 <난학> 정도였죠.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쇄국정책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전 막부에서와 같이 활발한 문물 교류가 줄었고, 서구와의 교류도 원할하지 못하였죠. 미국과의 교류도 서구인들을 통해 몇 번 왕래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4. 재정이 부족하다~ - 막부의 재정확보 노력

도쿠가와 에도 막부는 초기 쇄국정책과 농업 안정책으로 많은 재정을 확보하였으나, 4대 쇼군 이후 조선의 성리학을 이념으로 정착시키면서 막부의 성격과 재정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성리학의 탄생한 중국 송나라의 문치주의, 조선의 문반 우월주의가 무신정권인 막부에도 영향을 준 것이죠. 에도 막부에서 성리학이 국가 관학으로 정착된 것은 4대 쇼군기부터입니다. 성리학은 동아시아의 정권 강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학문이죠. 충효윤리와 국가 윤리가 지배층의 이념과 절묘하게 일치하니까요. 특히 이황이 주장한 이기론과 군신관계론은 막부 지도자들의 입맞에 딱 맞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막부 지도자들은 서양에서 넘어온 크리스트교를 탄압하고, 일본 전통 지배층인 불교세력을 다시 옹호하였습니다. 특히, 무가 정권에 딱 맞는 선종 계열을 중시했죠. 일본의 선종은 가마쿠라 막부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루었죠?

문제는 이렇게 막부 정권이 무신적인 기풍을 잃어가고 <문치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게 됨으로서 국가 재정이 약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도 막부 초기 정책인 자영농 육성, 강력한 중앙집권, 무사를 중심으로 한 사회통제가 흔들리고, 막부가 원하지 않았던 <상인계급>이 점차 뜨게 된 것이지요. 특히 지방에서 돈좀 벌었다 싶은 자들이 장사에 나서고, 무사들마저 고리대의 맛을 알게 되면서 막부의 튼튼한 재정줄이 흔들리게 됩니다.

도쿠가와 8대 쇼군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코호의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이 개혁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은 18세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상인층이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막부의 쇼군은 국가 재정 확보를 위해 <검약령>을 반포하였습니다. 검약령의 중요 내용은 <식산흥업>이라는 구호입니다. 일제시대 일본이 많이 외쳤던 그 구호네요. 식산흥업이란, 농업 생산량을 늘려 국가 기반을 단단하게 하자는 논리입니다. 따라서 식산흥업의 핵심은 토지개발과 농업장려, 품종개량, 비료개발 등이었죠.

그런데, 이 정책을 실시하면서 늘어난 농업 생산력과 상품작물들은 많은 세금으로 인해 국가로 넘어가게 되었고, 국가는 세금을 미곡(쌀, 콩)으로 받아가면서 성장하던 농민층의 생산력에 찬물을 끼얻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농민은 성장하는데, 그 성장한 만큼의 생산물을 국가가 가져간 것이죠. 이러한 정책은 짧게는 막부 재정에 도움이 되나, 장기적으로는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막부 후기로 넘어가고 19세기가 되면서 막부는 더욱 더 재정 부족으로 허덕이게 됩니다.

19세기에 막부는 막부 존속을 위한 결단으로 <간세이 개혁>과 <톈보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 개혁은 성장하는 농민과 상인들의 생활을 보장하면서 같이 커가자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잉여생산물을 수탈하여 막부의 창고를 채우려는 정책이었습니다.

일단, 성장하는 상업자본을 인정하여 상업자본에 세금을 부과합니다. 동업자 조직인 자를 인정하면서, 이들이 남기는 이윤은 철저하게 세금으로 걷어갑니다. 일본 에도 막부기에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다는 일본학자들이 있는데, 실제 이러한 상업자본의 수탈로 일본 자본주의가 에도막부기에 형성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19세기 개혁의 내용은 <귀농령>입니다. 에도 막부는 농민이 살아야 세금을 걷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가난한 농민들의 채무를 모두 없애줍니다.(채무파기령) 그리고, 어중간한 상인들은 모두 농촌으로 돌아가라며 협박을 합니다.(구리귀명령)

이것이 에도 막부 후기의 한계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을 겪은 후였고, 아시아에서도 각 국의 상업자본이 발달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에도 막부는 상업 자본주의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상업자본은 찍어누르거나 수탈하면서 상인들을 농촌으로 돌려 보내려 한 것입니다. 시대착오적이었죠.

실제, 막부의 재정이 몇 년간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상인과 농민을 쥐어짜고 탄압하는 정책은 무사, 농민, 상인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최하급 정책이었습니다.

에도 막부의 재정 정책 실패로 가난해진 무사와 농민들은 결국 막부가 자신들에게 아무 것도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일본사에서 막부의 패망은 모두 재정 문제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결국 지배층인 무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막부 불만 세력들은 막부가 아닌 국왕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전통론>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일본 근대화의 시작인 메이지 유신의 이념 중 하나였던 <존왕양이론>으로 연결됩니다. 해석하면, 왕을 받들어 서양을 물리치자는 것이죠. 막부가 아닌 왕이라는 개념이 일본인의 머릿속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에도 막부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인 <상공업의 발달과 자본주의 논쟁>을 다루고, 일본 상업발달로 등장한 <죠닌 문화>와 막부의 대응을 살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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