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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최악의 인물 - 이승만 편 -

1. 이승만은 땅 속에 묻어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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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한 연구는 학계에서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이유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시기에서 재뿌리기, 초치기, 배신과 분열.... 등등의 장면에 이승만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죠. 역사학자들은 이승만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위 조중동(?)이라 일컫는 한국 사회의 보수적 신문들은 이승만 기념 사업회를 연다던가, 이승만에 대한 기사를 미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글이 나온다 하더라도 사실 별 관심조차 끌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에 대한 신문 기사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보다는 감정적인 측면에서 기술된 것들이 많았거든요.

자, 그럼 제가 왜 이승만을 역사상 최악의 인물편에서 다루려고 하는지 한번 볼까요?(원래 오늘 이완용편을 해보려다가 너무 열받는 사료들 몇편을 보고는 때려쳤습니다. 쓰다 심장마비 걸릴까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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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왕가의 핏줄이기에 무시할 수 없었던 인물...

이승만은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 15대손입니다. 그러나, 이미 양녕대군 8대손부터 종친에서 멀어졌고, 12대손 때부터는 종친 대우를 못받았습니다. 또한 과거 급제자도 오랫동안 없던 관계로 양반대우 받기도 힘든 가문이었죠.

그러나, 이승만이 20살이 되기 전, 갑오개혁이 실시되어 과거라는 것이 없어지고 능력사회로 전환되어 버렸습니다. 20살의 이승만은 과거 시험 대신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배제학당에 들어가 신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전국민이 일본의 강요로 머리를 깍아야 하는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승만은 단발령에 찬성하였다고 합니다. 이승만은 신교육을 받은 자신을 자랑스러워 했고, <부모가 주신 머리를 자르는 것>보다는 <깨끗한 두발>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나봅니다.

1896년 아관파천이 발생하고, 대한제국의 정권이 친미적 성격을 가진 서재필 등의 정동구락부가 주도하자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배제학당은 상당히 대우받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이 학교에서 협성회라는 단체에서 활동하였고, 이후 한국 최초의 신문인 <매일신문>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신문에 글을 쓰면서 그 자신의 입장은 <동양평화론>의 관점에서 기술했다고 합니다. 동양평화론이란, 일본인들이 조선인에게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 청, 대한제국은 사로 친하게 지내야 할 동양의 친구들이므로 일본과 직접 맞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는 관점이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일본 관리들과 이야기하면 들어줄 것이라는 <일본을 분석하지 못한> 관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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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898년~ : 독립협회에서 활동과 <독립정신>

이승만은 자신의 본격적인 정치 입지를 다지고, 존경하는 친미적 경향의 서재필을 본받아 독립협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러시아가 절영도를 조차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등의 글을 쓰고, 서재필의 미국추방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등 독립협회의 일에 열성적이었고, 만민공동회 활동도 하였습니다.

특히, 독립협회가 어용단체인 황국협회에 의해 해산될 때, 이승만이 앞장서서 몸으로 독립협회의 해산을 막고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서 이승만이라는 이름을 국민들에게 멋있게 각인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독립협회의 거두 박영효의 쿠테타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습니다. 24살때부터 6년간이었죠. 재미있는 사실은 감옥에 갖힌 이승만은 친미파로서 죄수로서 최상의 대우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감욱에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이 어려울 때는 미국과 같은 기독교 문명국이 조선을 구원할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국주의의 침략적 모습을 보지 못하고, 미국을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그의 사상이 감옥에서 완성된 것이죠. 이후 이승만의 사상은 다른 민족주의자들과는 반대되는 사상인 <외교독립론>이었습니다. 친한 친구(외국)을 많이 사귀면, 그들의 도움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주장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책 제목은 멋있어 보이죠? 그러나 내용은 형편없는 책이었습니다. 백성들이 힘든 이유인 세금이나 사회 모순, 지주제도 등의 이야기는 없고, 단지 백성들이 현실을 깨우쳐야 한다, 외국과 친구로서 만나야한다 등의 공상적인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죠.

그런데, 이승만이 생각한 가장 좋은 친구란? <미국>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일본을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자들은 친일파로서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좋은 친구인 미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수호자라고 여긴 것입니다. 따라서 이승만은 <친미 기독교주의>로서 자신의 역사관을 고수해 가기 시작합니다.

이승만의 이 역사관이 일제시대 우리 독립운동사에 하나의 비극으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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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04년~ : 미국으로 건너가다.

이승만은 감옥에서 출소한 뒤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조지 워싱턴 대학에 입학했죠. 당시는 1905년을 전후하여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우리나라의 국권이 일본에 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민족운동가들은 이승만이 미국에서 열혈적인 독립운동을 해줄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많은 선교사들을 만나 독립운동을 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독립운동과는 좀 달랐습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보다는 선교운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어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이승만에게 많은 독립 외교 활동을 부탁하였습니다. 특히,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한국의 독립을 강화회의에서 상정해달라는 요구하는 문서를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친구인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 믿은 것이죠. 그러나, 루즈벨트는 당시 친일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고 이 요구는 묵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이 한국인들을 위해 미국 대통령에게 청원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승만에 대한 기대치와 평가는 더욱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이승만이 실제 해낸 일은 없지만, 친미파인 이승만이기에 시도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부탁하면서 이승만은 독립운동에 거두가 되어 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승만이 정녕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을까요?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았습니다. 예로, 1907년 헤이그 특사로 이승만이 가기를 독립운동가들이 원했을 때, 그는 <미국 명문대학 학위를 받아야 국내 활동이 편해지기 때문에> 거부하였습니다. 또, 장인환 등이 친일적인 미국인 스티븐슨을 죽인 것 등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승만이 원한 건 미국인들이 원하는 기독교적인 외교 활동이었고, 그 외의 것들은 자신에게 불필요할 경우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이것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기본적 태도가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미룬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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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910년~ :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귀국하다.

1910년 공부를 마친 이승만은, 경신학교 교수가 되기 위해 귀국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신학교의 창립자 언더우드와의 계획이 순조롭지 못해 그는 기독교 관련단체인 YMCA의 기독교 교육운동가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조선인에게 전달하겠다는 선교가의 마음자세였지, 독립운동가의 자세가 아니였습니다. 실제, 그는 반일운동이나 혁명을 하고 싶은 의사가 없는데, 일본 총독부가 오해하면 어쩌나하는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이승만은 한국에 돌아와서 성경연구반을 만들고, 반일운동을 하는 학생들에게는 미국 유학과 기독교 정신이 꿈을 이뤄줄 것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나, 1911년 신민회의 105인 사건이 터지면서 민족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조치가 있자, 그 역시 민족운동가로 분류되어 체포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선교사들의 강력한 협조를 얻어 그는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했습니다. 망명 갈 때의 신분은 세계감리교 대회 조선 대표였죠.

다시 미국에 건너간 그는 학생복음회를 조직하고, 한국교회의 독립을 주장하였습니다. 조선 독립이 아니라, 교회 독립이었죠. 이렇게 다시 떠난 그는 30년 넘게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가들과 연줄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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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21년~ :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말아먹다.

이렇게 1910년대의 이승만은 실제 이승만이 독립을 위해 한 일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그가 친미파로서 당시 세계를 이끌어가는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이었다는것입니다.

둘째로는 그가 조선 왕조의 왕족에 속하는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는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역사적 현장속에 <그가 이상하리 만큼 꼭 있었다>는 점입니다. 독립협회의 해산 때 그는 열혈 영웅이었고, 파리 강화회의를 앞두고는 미국 대통령에게 독립을 청원했던 영웅이었습니다.

이승만을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는 <슈퍼스타>로서 독립운동 단체들이 필요로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승만은, 3.1운동 직후 여러 가지 타이틀을 확보합니다. 연해주의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회의의 의장이자, 국내의 독립운동단체인 한성정부의 대통령이었죠. 당시,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각종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하려고 했는데, 그 단체들마다 이승만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각종 독립운동 단체는 이승만의 한성정부를 계승하여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정하고, 이름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을 따르기로 합의하죠.

그러나,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풍지박살이 나고 분열이 됩니다. 당시 신채호, 안창호 등 대부분 민족주의자들은 일본과의 결사항쟁 및 독립군 육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과의 협조와 기독교 정신의 확장을 통한 <외교독립론>을 주장합니다.

임시정부 대통령인 이승만의 이 외교독립론 주장으로 임시정부는 분열되고 맙니다. 임시정부를 다시 만들자는 창조론과 이승만을 버리고 다시 임시정부를 구성하자는 개조논의 까지 나왔고, 거기에 이승만의 몇 가지 비리가 더해져 이승만은 쫒겨나게 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결국 사분오열 되면서, 임시정부의 성격을 잃었고 이 망가진 임시정부를 죽기살기로 수습하여 다시 일으킨 사람은 <김구> 선생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김구 선생님이 이끌어간 임시정부로, 대통령제가 아닌 주석제 또는 국무령제(장관제도)의 임시정부입니다.

이후 이승만은 계속적으로 외교독립론만을 주장하면서, 미국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우리가 광복하는 날까지 구미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미국의 실세들과 많은 친분을 맺어두었습니다. 특히, 기독교가 중요한 미국에서 기독교 실세들과의 친분은 아주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할 수 있었죠. 이러한 영향력을 우리 나라의 대대수 독립운동 노선과 연결시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펠레의 예언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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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45년~ : 맥아더 장군, 하지 장군 VS 이승만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이승만은 미전략사무국 문관 대령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이 때 맥아더와 하지는 이승만의 귀국을 돕고 그를 협조하였는데, 그 이유는 해방된 한국사회에서 좌파를 억누르고 친미파의 과도정부를 만들기 위한 책략이었습니다.

특히 임시정부의 요직에 있었던 이승만은 맥아더와 하지에 의해 그 명성이 실제보다 훨씬 더 크게 부풀려 졌습니다. 국민들은 이승만이야말로 불세출의 영웅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승만은 귀국하자마자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고 통합적인 정치행보에 들어갑니다. 그는 극우적인 성향으로 공산주의자를 싫어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초기에는 <공산주의 경제정책도 채용할 점이 많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밑으로 모인 단체는 친일파의 잔제세력과 극우파인 한민당 세력 뿐이었습니다. 중도좌파와 극좌파는 친미적인 이승만을 경계하였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이승만의 또하나 아쉬운 점이 드러납니다. 자신의 지지기반이 <한민당>이기에 그는 친일파와 민족반역자 처벌을 은근히 반대한 것입니다. 이 점은 민족사에서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되고 맙니다.

또, 이승만은 당시 김구 등 중도파들과 함께 미국, 소련의 신탁통치를 결사 반대하였는데, 이것은 국민들에게 이승만이 민족주의자라는 인식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여운형등이 세운 <조선인민주의 민주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족주의자들을 분열시키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 이유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통대로 국가가 세워져야 자신이 주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초기에 공산주의와 연대할 수 있다던 이승만이 그 말을 한지 얼마 안되어 공산당을 <소련의 사주를 받는 자>들로 매도하고 공존할 수 없다고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그 시점이 공산주의자들이 친일파 처벌과 반민족주의자 처벌을 강도있게 원했고, 여운형 등의 국민대표가 세운 <조선 인민주의 민주공화국>을 옹호한 시점과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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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47년~ : 김구 VS 이승만의 구도

1947년 이승만의 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당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구와 연합하여 우파의 범 신탁통치 반대세력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김구와 연합한 이승만은 하지 등 미국세력을 등에 업고 김구를 넘어서게 됩니다. 반탁운동을 주도했던 세력 중 미국은 이승만을 의장에 선임하고, 김규식과 김구는 부의장과 총리에 임명하였습니다.

김규식과 김구는 이 결정에 의의를 가지지 않고, 남북 통일 노선을 추구하는데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김규식과 김구는 남북한이 하나로서 투표하고, 남북한이 통일된 상태에서만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만약 남북한이 이 상태로 분열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였죠. 민족주의자들은 대부분 이 생각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남한만이라도 정국이 안정되기를 원했습니다. 거기에 이승만이 <정읍발언>이라는 유명한 사건을 일으켜 풍파를 일으킵니다.

이승만은 평소, <남한만이라도 빨리 정부를 수립해야 하므로, 38선 철폐와 자율적 정부 수립이 필요하다>라고 말한 것이죠.

그런데, 이승만이 말한 자율적 정부 수립이란, 만약 38선이 철폐되지 않으면 남조선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미국이 주장해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말합니다. 특히, 전북 정읍에서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해버립니다.

난리가 났죠. 김구는 <38선을 베고 쓰러져 죽는다고 해도 통일이 아니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또 김규식은 이승만과 같은 극우파를 제외해 버린채, 우파와 좌파가 연합하여 남북한 통일을 추진하자는 좌우합작운동을 시도합니다. 이로서 이승만은 왕따를 당하게 되죠.

그러나, 당시 미국은 소련을 적대시하는 봉쇄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구, 김규식 보다는 이승만을지지하였습니다. 특히, 김구는 유엔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치르자는 통일정부 입장을 내세우는데, 이승만은 남한의 반절정부라도 세우자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갈등은 큰 것이었습니다.

결국, 1948년 치루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총선에 김구와 다수 민족주의자들이 불참하였습니다. 그리고 제헌국회의 투표결과 이승만 의장, 신익희, 김동원 부의장이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헌법제정 후 이승만과 이시영이 대통령과 부통령이 된 것입니다.

대통령은 이승만이 되었지만, 이승만이 김구를 배척하면서 주장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주장>은 우리 역사에서 지금까지 지울 수 없는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잘못된 선택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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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대통령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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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건립에 지대한 공을 세운 개국공신인 점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승만을 이렇게 최악의 인물로 질타하는 이유는?

그 이유는 하나 하나의 행적이 역사를 바꾸는 기로에 있는 대단한 인물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 있었음에도, 하나같이 역사의 흐름을 백성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이승만 하면 생각하는 것은 <자유당과 독재>입니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인상깊게 남은 정책이 <북진통일>밖에 없습니다.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반대파는 <정치깡패>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습니다. 친일파 청산 등의 특별법은 만드는 족족 폐기시키거나, 협박으로 사장시켜 버렸습니다. 토지 개혁은 철저하지 못하여 자원의 평등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선교 중심의 외교독립론을 주장했던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평화통일론>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떠오르는 야당 대표 조봉암을 죽여 버리기도 했습니다. 북한 사주를 받은 자라고 하여 사형선고를 내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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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승만은 부정부패가 누적되어 3.15 부정선거 등의 이유로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 하와이로 망명을 떠납니다. 4.19 혁명이 일어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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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 몇가지를 적어보았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건국 의장이자, 초대 대통령으로서 남긴 업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일부 업적이 그의 잘못된 행적들을 덮어둘 수가 없을 정도로 한국 근현대사에 큰 상처를 남긴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최악의 인물로 이승만을 다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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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앞부분 1-5장 기술을 위해 인용한 논문
                - 청년기 이승만의 언론, 정치활동, 해외활동, 주진오, 역사비평 1996년 여름본(계간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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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글 :
2007/10/16 - [한국사사료모음/13.일제시대사료] - 대한민국 건국강령(대한민국 임시정부, 1941 / 조소앙)
2007/06/02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성명서(1946)
2007/05/18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이승만 정권의 평화선 선언
2007/05/18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 창당 선언문 (1951년)
2007/05/18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승만의 정읍발언 (1946년)
2007/04/25 - [한국사사료모음/13.일제시대사료]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탄핵서
2007/04/25 - [한국사사료모음/13.일제시대사료] - 대한민국 임시헌장 선포문
2007/04/25 - [한국사사료모음/13.일제시대사료] - 조소앙의 <대한독립선언서> 전문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4. 19 기자 체험기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4. 19 에 대한 해외 신문의 반응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이승만의 정읍 발언
2007/03/17 - [한국사사료모음/14.현대사사료] - 4. 19 혁명 자료 -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 의사
2007/01/13 - [왕조별왕계표/대한민국] - 대한민국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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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이승만의 진실 2014.07.31 0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님 유튜브에서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동영상 한 번만 봐주세요 ㅜㅜ
    재판할 때도 양쪽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듯이, 이승만에대해서도 이미 나쁜놈이라고 생각하시겟지만.. 객관적으로 다시 한 번 평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Favicon of http://http://historia.tistory.com/2370 BlogIcon 바른 역사 알자. 2014.08.24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무섭습니다. 좌파의 역사왜곡이 정말.. 1940년 대, 진주만 습격 직전, 이승만 박사가 미국에 한국 독립의 필요성이라는 호소문을 써서 당시 코리아가 뭔지도 모른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광복군 oss에 참여하게 됩니다.

    임시정부 말아먹었다는 근거는 무엇이죠?

    이승만 박사는 미국이 passport에 Korea는 나라가 없어서 쓰지 말라한거 계속 쓰다 우기지만 결국 못 쓰게 해서 분풀이로 직업 occupation 란에 Korean teacher 라고 쓴 애국자였고, 전 부인과 결별 후 프란체스카를 만나기 전까지 수십년간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차도 없이 가난해서 미국이 차까지 대준 금욕주의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북한의 친일파 숙청이라는 왜곡된 정보가 교과서에 판치고 (김일성은 악질 친일파를 고위직에 고용한 악질 공산주의자) 이승만 박사를 매국노로 몰아 대한민국 건국의 위대성을 더럽히는 좌파식 교육은 반드시 사라져야합니다.

    • 레이너 2014.09.09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그렇게 역사왜곡이라고 보여지지 않습니다만?
      이승만이 벌인일이라 밝혀진 대부분은 팩트가 맞구요. 다만 그걸 어떻게 해석하냐.. 하는 것은 사람들 마다 차이가 있죠.
      왜곡의 뜻이 무엇인지 개념부터 확실히 알고 오세요.
      이승만이 조국에 대해서 악의가 있었는지 선의가 있었는지는 쉽게 판단하긴 어렵지만, 그가 벌인 일들이 조국 역사에 악영향을 많이 끼쳤다는 사실은 그냥 상식적으로 판단해봐도 부정하긴 어렵습니다. (광복군과 OSS의 협력조차도 결과론적으로 결국엔 실패로 끝장난거죠. 그래서 막판에 우리손으로 광복을 얻었습니까?)
      이승만의 독재때문에 숨겨졌던 사실이 많은데 이제와서 뒤늦게 밝혀지는게 긍정적인 것 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압도적으로 많타는 사실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정치역사가 우리 손도 아니고 미국 보고서를 통해 밝혀지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닙니까?

    • 레이너 2014.09.09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가 애국자였냐 매국노였냐를 떠나서, 한가지 확실한건 그가 대한민국에 끼친 부작용입니다. 악의 선의를 떠나서 이런 부정적인 결과를 끼친 것만 봐도,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무능함에 다름 아닙니다. 오히려 미래를 내다보고 문화선진국이 적합한 방향이다라고 생각한 김구선생님이 미래를 아주 잘 내다보신거죠. 인구 500만 뿐인 핀란드 같은 나라도 우리랑 똑같은 전쟁의 잿더미에서 시작했는데 지금 차이를 보세요? 역사에서 선택이란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당연 이승만 박정희는 좋은 평가를 못받는겁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도자를 호평해야지, 당장의 문제에 지들 편할대로 악수를 두어서 부정적으로 수습하는 지도자는 훗날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듭니다.

  • BlogIcon 바른 역사 알자 2014.08.24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승만이 기독교 선교자 였다고 비하를 하시는데,

    당시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기독교 출신이었습니다.

    이건, 그들의 자서전, 프로필, 평전등에서 확인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김구, 안창호, 이회영, 전덕기, 이상재, 이준, 이동휘, 강우규 등등..

    그럼 이 분들도 모두 독립운동은 안하고 선교만 했다고 욕 먹어야 하겠네요..

    이상 이승만 한 사람을 두둔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닌, 우리나라의 건국의 위대성을
    (미국이 수백년걸쳐 이룬 발전을 이승만 정권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적- 경제기반 다짐, 국제적- 독도 침범하는 일본군들 총으로 경고, 문화적- 문맹률 급격 감소 등을 수 십년의 짧은 기간 동안 업적을 이룬) 까는 비애국적 태도가
    근심되어 쓴 글입니다.

  • BlogIcon 벌레박멸 2014.09.11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승만을 무조건적인 신격화를 하려는 일부 개신교 및 극우파는 이 비판적인 글을 보고 본인들의 뿌리를 건드는 것이 맘이 상했을테죠 맘같아선 친일쓰레기 후손들까지 싹 쓸어버리고 싶지만 현 집권여당이 그 유지를 이은 당이니 할 말도 없습니다 우린 아직 역사적으로 윤리적인가를 봤을 때에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고 이런 비판적 글을 우리 사회가 깊이있게 생각하고 타락한 윤리적 사건들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BlogIcon 목윤희 2015.02.10 15: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승만대통령을 신격화 하다니요. 그분도 반만년 군주국가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애쓰셨던 훌륭한 선조 중의 한사람이셨을 뿐이지요. 그러나 단지 이승만 한사람의 역사를, 왜곡된 사실로 폄하하거나 모독하는 것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작, 그 정체성까지 우습게 만들고 많은 분들이 목숨걸고 살려낸 그 노고와 헌신을, 왜곡시킨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혹시 Japan Inside Out이란 책 읽어보셨나요. 이승만이 청년시절부터 30년 이상을 전세계에 외치고 다녔던 일본의 실체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출판한 것인데. 일본을 최고의 우방으로 여기고 있던 미국은 그 책의 내용을 믿지도 않았고 이승만을 욕하기만 했었지요. 그 책에서 일본이 어떤 무서운 나라인지. 조선만 먹고 끝날 나라가 아니다. 만주를 공격할 것이고 중국도 공격할 것이다. 대학살을 통해서다. 그리고 석유때문에 알래스카나 진주만을 공격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조선을 돕지않으면 결국 미국. 너희의 자식들이 공격당할 것이다. 이런 내용이었죠. 결국 그가 예견한대로 되었고요. 제가 본 다큐자료나 일차사료들을 살펴보았을 때, 친미라기 보다는 미국을 이용한 사람이었습니다. 할 말은 다했고요 비굴한 적 없던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비록 나라는 없어졌고 혹은 나라가 세계 최빈국이었던 상황에서도 비굴한 적 없었습니다. 아이젠하워의 초청으로 미국상하의원 앞에서 합동연설한 영상들 찾아보세요. 33번의 기립박수를 받았지만 내용은 다 미국 혼내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라의 윤리와 정체성에 대해 그만큼의 높은 기준을 가지고 계신, 깨어있는 분이신것 같은데 왜곡된 자료나 누군가의 사관을 통해 전해들은 사실 말고 오리지널 소스들을 찾아 조금만 공부해보시면 대한민국에 대해 ㅡ물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많지만ㅡ좀더 다른 시각을 갖고 미래를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친일청산이 단 한번도, 한명에게도 시행되지 않은 정권이 김일성정권인데요 북한도 그것은 인정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사실 북한을 평가하고 공개처형. 정치범수용소. 강제북송. 영아살해. 특권층 비호에만 쓰이는 국가재정. 등을 향해, 북한인권을 위해 큰소리를 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승만은 저희 친척도 아니고 뭐 사람은 누구나 호불호가 있기에 또 오해하고 오해받고 살 수 밖에 없기에 천편일률적인 평가를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한민국의 기초를 흔들고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니까요. 우리가 충성하는 것은 국가이지. 정부가 아니니까요. 어떤 정부이든지 이 나라는 우리나라니까요.

  • 2015.02.21 1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만약 이승만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고 김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도덕석 정당성은 후손들에게 인정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승만의 정읍발언만 놓고 보면 이승만은 참 나쁜 사람이군요.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놓고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승만이 정읍발언을 했든 안했든 이미 김일성은 적화통일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에 두어야지요.
    김구는 통일 문제에서 만큼은 김일성에 비해 현실감각이 부족했고 따라서 김일성에 의한 남한의 공산화가 이루어졌을거라고 생각합니다.

  • 지나가다가 2015.03.22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 글 내용에 공감하면서 덧붙입니다.

    이승만이 현실감각, 권력에 대한 감각이 탁월했던 것은 분명하다.
    당시 한반도엔 국내 정치 세력들이 어떻게 손 쓰기 어려웠던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라는 국제정치적 현실이 있었고 이승만은 이를 알았고 김구나 김규식은 이를 몰랐다. 김구가 이상주의자였고 보수성이 강해서 당시 극좌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적 온건 좌파까지도 포섭하지 못 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이승만이 현실감각이 뛰어났다는 것 정도이지, 자유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수호했다던지 우리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지켰다던지 하는 평가는 과장되었다. 당시 어차피 미국이 있었기에 한국이 공산화될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 이는 6.25 전쟁 이후 수립된 한미방위조약에 관해서도 적용가능하다고 봄. 포로교환 등으로 이승만이 미국을 붙잡아두었다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미국이 6.25전쟁 이후 어떤 일이 있든 남한을 버렸을까? 거기에서 이승만의 활약을 몇 퍼센트 정도로 평가해야 할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벌였던 여러 가지 행각을 보면 그의 목적은 단 하나, '대통령'으로서의 절대 권력을 누리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 누군가는 자유민주주의가 우리나라의 전통이 아니었다,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당시 의회에서 논의되는 것을 보면 '군주제' 따위는 국가 형태로 논의된 적도 없고 권력에 대한 견제가 주된 쟁점이 되었다. 그 때마다 이승만이 나서서 판을 엎었고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다. '반공주의'에 관심이 있었고 그를 이용해 절대권력이 되는 것만 바랐다는 것.

    그가 무엇을 실현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자 했는지 그 이외엔 불분명하다. 정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대중과 민중을 위해 나선 것이었다면 이승만이 그들을 위해 했던 건 무엇이었나? 사회경제적 개혁도 깽판치고, 친일파 처벌도 깽판치고, 그나마 존재하던 균형점이었던 조봉암은 그가 의미있는 정치적 경쟁상대가 되자마자 간첩죄로 죽여버리고. 그로 인해 한국 정당체제엔 균형점이 사라졌고 정치문화는 당리당략적이 되었으며 이후 권력을 잡기 위해 폭력을 이용하는 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게 됨.

    반공주의면 모르겠지만 헌법 만드는 과정에서도 보통선거며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게 된 건 미국이랑 유엔 덕분이지 이승만은 한 일이 없음. 그에게 배울 거라곤 눈치? 어떻게 하면 권력의 정점이 될 수 있는지 자신을 위한 판을 어떻게 짤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전술뿐.

  • BlogIcon 2015.03.30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협한 글이네요.

  • 지나가다가 2015.04.07 2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나가다 댓글들을 쭈욱 훑어보니
    이승만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승만'에 집중하는 반면
    이승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좌파'나 '전교조'에 집중하는군요. 재미있네요~

  • 저도 2015.05.03 0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한 일이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미화되는건 이해가 안되는군요. 사실들만 보더라도 이승만을 그렇게 추켜세울 일이 없을텐데...

    미화하는 자들은 어찌나 그렇게 가정을하는지... 일어나지 않았던 것들로 소설을 쓰고 있네요. 역사는 가정이 없다는 기본적인 상식이죠.

    더군다나 전교조나 좌파로 단정짓는 모습은 본인들이 흑백논리의 프레임에 갇혀있다는것을 시인하는 것 같네요.

  • 반민특위 2015.08.16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움이 되는 글들 잘보았습니다. 찬성이던 반대던 그 한생각 일어난 뿌리는 각자가 자라온 환경에 의해 만들어 졌을것 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또한 마찬가지이구요. 옳고 그름이 명확하게 나누어 진다면 벌써 정답이 나와서 우리 인류 역사가 이렇게 오랜 세월 혼란 스럽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서양인은 무지개 색깔을 7빛깔 이라고 표현합니다, 동양에선 전통적으로 5색 무지개, 아프리카 쪽에선 3색 무지개로 인식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무지개 빛깔은 3색도, 5색도, 7색도 아닌 무한대의 색깔이지요.. 보는자의 시각에 따라 그렇게 달라 보일뿐.. 어느것이 정답이고 어느것이 틀린 답은 없지요... 그저 다를뿐.

    이 법칙은 인류 멸망 때 까지 또는 우리의 생각이 멈추는 때 까지 계속 될 것 입니다. 저는 다만 막강한 권력을 장악 했을때 그 권력을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 했는냐 공익을 위해 사용했느냐로 나누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조선시대 27명의 왕중 세종대왕, 정조대왕같은 경우 이를 실천했다고 하더군요. 제주 해녀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더이상 전복을 수라상에 올리지 말라는 말 한마디, 수원성을 쌓으려 강제노역에 동원 되었던 사람들에게 조선 역사상 최초로 급료를 지급했던 그 마음....등등에서 그 권력을 누구를 위해 사용 했는지 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이승만의 1960년 3.15 부정선거 및 죄없는 자들 누명 씌워 살해하는 행태, 6.25 전쟁시 피난가는 사람에게 서울은 안전하다고 거짓말 하며 자신은 부산으로 도망가 있는 행태 등등을 보면 그의 삶의 역사는 자신을 위해 모든 달란트를 썼던자이지 결코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살아온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우리가 존경 해야 할 사람은 커다란 나를 위해 작은 나를 희생한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만은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권모술수에 능했던 사람일 뿐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만 제 뇌속에서 일어난 짧은 생각들 이었습니다....

  • Favicon of http://http://historia.tistory.com/2370 BlogIcon 에휴 2015.08.24 16: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다행이네요.
    미국에 있는 이승만 지인들도 이승만을 한국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애국자'라고 평가했는데.. 로버트올리버가 작성한 기록들 보면 이승만의 독립운동 행적은 더욱 잘 알 수 있을텐데.. 작성자분께서 어떤 근거들을 사용하여 이승만을 비하하려 했는지 궁금하네요.
    백년전쟁에서 보여준 호놀룰루 스타불레틴 신문 기사는 화면에서 카메라 돌리는 거 읽어만봐도 번역도 이상하게 해서 시청자를 우롱하는게 다 보입니다.
    정말 좌파분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면 좀 "유식하게" 하셨음하네요.
    빈수레 덜렁덜렁, 사실 위주가 아니라 자기 의견에 맞추어 소설쓰기, 웃고 지나갈때가 많아요.

  • BlogIcon 권정원 2016.06.19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겉다르고 속다른 정치인은 또다시 나오지 말아야 한다.

  • 어이상실 2016.07.18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결국 신채호가 무장독립을 주장해서 결국 독립군을 창설하고 양성했습니까? 임정을 분열하게 만들어 사실상 와해수준으로 만든건 신채호 책임도 무지하게 컸을텐데요..미국에서 OSS 조선인 요원 양성하는데 일조를 하고 미국으로부터 무기공여를 꾸준하게 요청한 이승만이 훨씬 현실적인 무장 독립운동을 했다고 보는데요? VOA 를 통해서 임정의 활약상과 존재여부 그리고 미국의 전쟁 참여로 인한 전황소식 전달등 민사 심리전까지 수행하여 일본 총독부까지 발칵 뒤집히게 만들었던 이승만을 아무렇게나 까다니 어이상실이군요...

    그리고요 단정론에 관련하여 김구하고 이승만하고는 1947년 12월 까지는 입장차이 없었고요... 장덕수 암살사건 이후로 김구선생 태도변화가 일어나 김일성을 폭탄테러로 죽일려고 까지했던 분께서 김일성하고 손잡아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이 벌어진것인지 알고나 이야기 하는것 입니까? 이로 인해서 우익계 독립운동가및 민족주의자들이 김구와 결별해 버렸단 말입니다.

    이승만은 훌륭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이며 탁월한 안목의 외교가이기도 합니다. 일부 흑역사가 존재하고 정부수립후 국가수반으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만큼 사안이 큰 국가적 사건에 대해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어이없는 사례로 평가받는것은 반대합니다. 이승만을 까는 사람들 최소한 그의 저서 독립정신과 Japan inside Out라도 읽어보길 권장합니다.

  • 알고쓰세요 2016.08.03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쓰면 좋겠네요. 사실과는 다른 본인의 느낌이나 의견이 너무 사실인듯 기술되어있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대로 속겠네요

  • ㅇㅇ 2016.10.20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승만이 대통령되서 친일파 보호하느라 친일파 청산 못하고 나라가 이지경까지 온건데. 그리고 역사적 사실인 4.19는 왜 일어났냐? 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를 했겠냐? 나도 이승만처럼 하나님을 믿지만, 이승만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을 보면 이승만이 진실로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서 천국갔을것같지는 않다.

  • 미철 2016.11.01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엥? 우리역사 최악의 인물이 이승만? 김일성이 아니고? 북한은 우리 역사로 안치나? 일단 우리민족이고 동족상잔을 일으킨 주범인데 아무리 북한 놈이라도 우리역사 최악은 김일성이지.

  • 구마안 2017.06.01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역사 최고의 인물을
    최악의 글로서 혹세무민하고 있네요.
    북한정권이 주장하는 논리 그대로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소름이..

  • zzzzzzzzzzz 2017.07.14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최고의 인물이랜다 병신같은새끼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민학살한것만봐도 이승만은 부관참시 당해도 모잘라 병신들아 ㅋㅋ

  • 빨.갱이 2018.11.13 0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빨.갱이 블로그구나. 미친 고정간첩 새끼가 남한 인터넷 쓰면서 이런 잡글을 쓰다니. 이승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선지자적 혜안을 갖춘 흠잡을데 없는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업적을 아무리 폄훼하려 해도 이승만과 박정희는 한반도 역사에 길이길이 회자되고 빛날 것이다. 남에게 왜곡된 역사를 강요
    주입하는 빨.갱이는 죄값으로 죽음도 모자라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진실을 왜곡하지 마라 악마여.

  • 개솔이ㄴㄴ 2019.05.13 1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악의 인물은 아니라고 봄 공도 많은데ㅋㅋㅋ글쓴이 쥴라 북한삘나네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