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  모바일  |  이메일  |  블로그  | 교육연구소  |  온라인진단  |  인강사이트  |  평생교육원  | 웹하드자료실

 

위만조선전

위만이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하였을 때는 마침 효혜, 고후(한나라 혜제왕 대 여후 섭정기)의 때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된 무렵이였다. 요동태수가 위만으로 외신(외번)을 삼아요새 밖의 만이를 막아서 변방에서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만이의 군장들 가운데 천자께 들어가 뵙고자 하는 자는 이를 막지 말도록 하자고 아뢰니 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이 때문에 위만이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자 주변 소읍을 침략하여 항복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땅이 수천리나 되었다.

위만이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다시 손자 우거에게 이르자 한나라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을 자못 많이 유인하였다. 또 일찍이 들어와 천자를 뵙지도 않으면서 진번 곁의 진국(한반도 남방의 중국, 3한의 모태)이 글을 올려 천자를 보고자 해도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하였다.

원봉 2년에 한에서는 섭하를 사신으로 보내 달래고 타일렀으나 우거는 끝내 조서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섭하는 돌아가다가 국경 위에 이르러 패수에 도착하자 부하를 시켜 자기를 배웅하러 나온 조선비왕 장을 죽인 다음 재빨리 강을 건너 요새로 달아났다. 돌아가서 이 사실을 천자에게 보고하여 자기가 조선 장수를 죽였다고 하자 천자는 잘했다고 칭찬하며 더 캐묻지 않고 섭하를 요동동부도위로 삼았다. 조선은 섭하를 원수로 여겨 군사를 내어 습격하여 죽였다. 이에 천자는 죄인을 모집해 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좌장군이 양군을 합하고는 급히 조선을 공격하였다. 조선사 노인, 상 한음, 이계상 참, 장군 왕협 등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에는 누선에게 항복하려 하였으나 지금은 누선이 체포되고 좌장군 혼자 장군들을 합쳐 전투가 더욱 급하니 더불어 싸울 수 없을 것 같은데 왕은 항복하려 들지 않는다.” 하고는 음, 겹, 노인 모두 도망하여 한에 항복하였는데 노인은 도중에 길에서 죽었다.

원봉 3년 여름, 이계상 참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우거를 죽이고 항복해 왔다. 그러나 왕검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우거왕의 대신이었던 성이가 거듭 항전해왔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장강과 상 노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백성들을달래 성이를 죽이게 하였다. 이로서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을 삼았다.

                                                             - 사기 조선열전 -

사료해석 : 위 사료는 사기의 관점입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위지동이전같은 사료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사기에 나온 조선의 내용 자체가 <열전>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치사적 관점에서 중국의 동이정복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반면 위지동이전 같은 사료는 민족지학적인 관점이 훨씬 많죠.

중국의 동이정복관점에서 전쟁의 명분이라는 측면에 사기에 많이 들어가 있으므로, 이러한 사료를 비판할 때 중국입장을 생각하면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진짜 그랬을까, 그랬다면 다른 이유가 있었지 않을까, 중요한 사건을 누락시키지 않았을까하는 사료 비판이 첨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데이터분석 및 교육 전문기관

본 협회에서는 회원 외에는 댓글을 달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