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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크리스마스와 12월 25일 - 역사속에서 위조된 어두운 이면들...

크리스마스와 12월 25일 - 역사속에서 위조된 어두운 이면들...

이 세상 모든 현상을 역사로 설명하는 블로그이다 보니, 크리스마스마저도 역사 속에서 살펴보려는 무모(?)한 시도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마구잡이 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성탄절이란 말은 무엇이지?

크리스마스의 한국식 번역어인 성탄절은 말 그대로 <성스러운 예수의 탄생일>을 말합니다. 크리스찬들의 용어이지요. 그런데, 크리스마스(christmas)란 말은 원래 <탄생>의 의미를 가진 단어는 아니였습니다.

크리스마스란, 북유럽 계열의 앵글로-섹슨 계열의 언어 christes-Masses란 단어에서 비롯되는데, 그 뜻은 <크리스찬의 미사>라는 뜻이었습니다. christes는 <예수를 상징하는 크리스찬의 약속된 단어>이고, Masses는 <미사>를 뜻하는 예배 단어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성탄절>로 번역하고 있는데, 사실 이 번역은 12월 25일이 예수 탄생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번역일 뿐, 크리스마스의 본래 뜻과는 약간 다릅니다. 원래 크리스마스의 본 뜻은 <크리스찬들의 미사>라는 뜻이니까요.

또 하나, 크리스마스를 간단하게 X-ma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X는 고대 헬라어에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단어의 첫 번째 글자가 X이기 때문에 X-mas라고 하기도 합니다. 또, 크리스마스 노래에 많이 들어가는 <노엘>이라는 말은 <성탄>이라는 말의 불어식 표현입니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본 뜻은 예수의 탄생일이라는 의미와 약간 다르겠네요. 예수의 탄생일은 보통 12월 25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일단 예수의 성탄일을 12월 25일로 규정한 종교는 <카톨릭 계열>입니다. 역사적으로 12세기 이전까지의 크리스트교는 서방 유럽의 카톨릭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또 하나의 크리스트교 계열인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여기고 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후계자로서 중세시대 또 하나의 크리스트교 중심인 정교회에서는 서유럽과 다른 기준으로 예수 탄생일을 정한 것이죠. (1월 6일은 로마 기준으로 황제의 날을 말합니다.)

그리고, 개신교라고 불리는 14세기 이후의 종교들의 기록에서는 <성탄절>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성탄절에 예배를 드린다던가 성탄 축하 의식을 했다던가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하네요. 최소한 예수 탄생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중세 이후에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크리스찬들과 구약 성경을 공유하는 이슬람의 무슬림들도 예수의 탄생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는 이슬람교에서도 중요한 예언자이니까요. 그러나, 오랫동안 예수살렘을 사수한 이슬람 교도들은 예수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슬람의 기록에 예수의 탄생일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또, 이슬람 사회에서는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고, <예언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굳이 탄생일을 기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슬람이 말하는 예수 탄생의 <성탄>은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 선지자(또는 예언자)로서의 예수 탄생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초기엔... 크리스트교를 반대하면서 죽어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 왜 고대 유럽 사회에서는 12월 25일을 성탄절로 규정한 것일까요? 근거가 있는지 한번 볼께요.

일단, 예수 탄생 연도를 기록한 책은 없습니다. 예수가 태어날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극심한 탄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인을 탄압한 것은 <황배숭배>를 우상숭배로 여기는 십계의 계율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의 일신교 사상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비롯된 로마의 다신교 체계를 위협한 것도 있었죠. 거기에 선지자, 예언자들이라고 자청한 이들의 포교와 지역 거점주의가 로마 행정체계에 큰 위협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누군가의 생일을 기록할 여유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죽음>이었죠. 핍박 속에서 죽은 뒤 천국에 간다는 <내세>의 관념은 탄생일보다 사망일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심어놓았죠. 예수의 죽음과 부활부터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리스도의 기록은 남다르게 탄생보다 죽음에 대한 기록이 많습니다.

크리스트교를 로마 황제가 인정한 것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입니다. 이후 5세기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크리스트교는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크리스트교를 인정한 것은 <크리스트인>들의 생활양식이 제국의 안정을 추구하는 로마의 방향과 일치한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죠. 이상한 내용이간 하지만, 실제 콘스탄티누스 본인과 지도층은 제우스교, 미트라교를 신봉하기도 했습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크리스트교을 국교로 인정하면서 다른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귀족들에게 거부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큰 전쟁을 몇 차례 치르면서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인정하였습니다.

크리스트교를 박해할 때 어머어마한 자들이 죽었다면, 크리스트교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 죽은 자들도 어마어마 했습니다. 평화로울 때는 종교가 사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지만, 갈들이 있을 때의 종교란... 너무 끔찍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표면적인 전쟁의 원인은 크리스트교 때문이었다고 기록되었지만, 사실 황제가 많은 사람들을 죽인 이유는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다양한 신을 믿는 귀족들이 존재하는 한 통일된 제국을 재건하려는 황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탈세하지 않고, 깨끗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당시 크리스트 백성들을 회유하면서 정적들을 죽이고, 통일된 사상체계를 만들려는 것이 황제의 목적이었으니까요.

신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자의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인간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크리스트교를 로마에 도입하려던 황제들은 크리스트교의 교리를 로마 제국의 체계에 맞게 통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동방에서 진시황제와 다리우스 2세가 통일제국의 사상과 문화, 경제체계를 통일했듯이, 서방의 로마 황제들도 국가의 통일성을 위해 사상을 통일할 필요가 있었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로마체계에 맞는 크리스트교의 사상통일에 들어갑니다. 그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이 흔히 말하는 <아타나시우스파의 삼위일체설>이죠. 밀려난 아리우스파는 북쪽으로 넘어가 게르만 민족들을 교화하면서 명백을 유지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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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니케아 공의회)

예수의 생일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직접 주제한 니케아 공의회 직후입니다. 공의회에서 직접 논의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공의회 직후 그리스도의 미사(christmas)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12월 25일에 성탄 축하를 했다는 기록이 354년 처음 나타납니다. 379년에서는 동로마의 근거지인 콘스탄티노플에서도 성탄 축하 의식이 시작되었고, 이후 카톨릭을 신봉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의식을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가 신인가 아닌가부터, 예수의 탄생일까지 모든 것은 로마 제국의 황제와 각 행정단위 주교들이 모여 결정한 것이 되어 버렸네요. 니케아 공의회와 이후 수차례 열린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상들은 그대로 종교불문법이 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 좀더 진보적인 종교이론을 내세운 카다리파나 왈즈파, 위클리프파 등은 모두 이단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아울러 예수의 탄생일에 의문을 품은 이들 역시 모두 <악마, 마녀>로 분류되어 사냥당하고, 처단되었습니다. 축복받은 날을 부정하는 자들은 악마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예수 탄생일은 로마 농경신과 페르시아 태양신의 합작품...

예수의 생일을 정한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의 콘스탄티누스였지만, 그 기원은 <명상록>의 저자인 철인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추수감사제가 12월에 있었습니다. 이 추수감사제의 이름은 <Saturnalia : 새터날리아>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이나 삼한의 5월제 같은 수확제였죠.

이 날은 농경신인 새턴(Saturn)에게 제물을 바치고 풍년을 감사하며, 모두가 술을 먹고 즐기곤 했습니다. 이 축제는 12월 17일에 시작되어 24일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 주간은 모두에게 축복받은 주간이었죠.

이 축제가 12월 24일 끝나는 이유는 다음날인 25일이 <동짓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음력달력과 다른 로마의 태양력에 따르면 12월 25이 가장 낮이 짧은 날이죠.

그런데, 페르시아교에서도 12월 25일은 태양신 미트라의 생일입니다. 다신교인 로마에서 미트라신도 믿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동잣날 미트라신이 태양빛의 축복을 준다는 메시지를 반포합니다.

<새로 시작되는 한 해동안에 미트라신은 너희에게 축복을 내릴 것이다.>

이것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예수의 생일에 합쳐 버린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농경신, 페르시아의 미트라신, 그리고 예수라는 새로운 신을 통합하여 통일된 사상체계를 마련한 것이죠. 12월 25일은 이들 신들이 모두 합쳐진 날입니다. 특히 콘스탄티누스의 정적인 막센티우스가 제우스교를 신봉한 만큼, 그를 이기기 위한 종교적 연합이 필요하였죠. 물론, 합쳐진 종교의 기본 뿌리는 <크리스트교>였고, 모든 종교가 크리스트교의 12월 25로 통합된 것이지요.

가톨릭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치적 목적을 대변하는 용어...

유명한 일화를 하나 볼까요? 콘스탄티누스가 전쟁에 나갔을 때, 불타는 십자가와 함께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 계시를 장병들의 방패에 새겨 전쟁에 임하게 하였습니다. 그 계시의 내용은 <이 표적으로 승리를 얻으리라>라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승을 거둡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왕관에 예수가 십자가 처형에서 나온 못을 붙이고, 자신을 위대한 왕이라 칭하죠. 그러나, 당시 진보적인 종교인들은 콘스탄티누스의 독선은 종교적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고 말하였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공의회>를 열어 반대파들을 모두 이단으로 몰아 추방하였습니다.

당시 다수파인 아리우스파가 추방된 이유는 <예수를 신이 아닌 인간 선지자>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이슬람이 주장하는 <예수는 선지자>라는 부분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의 생일을 <태양신>의 생일로 정한만큼, 예수의 신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부분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예수가 신성해야 예수의 후원자인 황제가 신성한 존재가 되거든요. 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의 신성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으로서의 예수 부분>의 기록은 모두 말살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와서 <새로운 성경>이 있다던가, <프리메이슨>이 가진 문서가 있다던가하는 주장들은 모두 예수의 인간 기록이 말살되었기 때문에 더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을 기독교의 후원자라고 말하고 황제를 <신성한 자>로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목적이 원래 <황제권 강화>였으니까요. 그는 동방의 다양한 종교와 조로아스터의 신, 로마의 신들, 그리고 예수를 모두 합하여 새로운 종교 이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곧 <카톨릭>입니다. 카톨릭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보편적인 것>이라는 뜻인데, 모든 종교를 융합하여 보편적인 하나의 종교를 완성했다는 뜻으로 씌는 말입니다.

또, 황제 자신이 태양신 미트라를 신봉한 이유로 기존 안식일도 바꿔 버립니다. 원래 유대교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이것은 로마에서 농경신 새턴의 날이지요. 그러나, 황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날은 12월 25일, 즉 태양신 미트라의 날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일요일(Sunday)로 바꾸게 됩니다. 쉬는 날이 일요일이 된 것이지요. 미트라 신과 연관이 깊은 기독교의 원류 조로아스터교(배화교)에서도 일요일을 신성한 날로 여긴답니다. 조로아스타교는 아예 불과 태양 자체를 신으로 여기기 때문에 <화교>라고도 합니다.

사실, 불교, 배화교, 마니교, 정교회, 가톨릭,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들이 서로 서로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서로간 교리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이 부분을 다루면 종교인들에게 뭇매를 맞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부분을 포스트하는 역사학자나 종교학자는 없는 듯 하네요. 그리고, 종교는 종교로서 가치와 목적이 있기 때문에 굳이 다룰 필요도 없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주저리... 이야기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산타크로스입니다. 신타크로스의 어원은 보통 <성 니콜라스>에서 비롯되어졌다고 합니다.

3세기 경 살았던 니콜라스는 실존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고대 그리스와 페리시아의 접경지역인 소아시아의 미라라는 곳의 대주교였다고 합니다. 그는 남몰래 어린아이들을 도왔다고 전해지며, 그 선행이 알려져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는 <어린이를 보호하는 성자>라는 칭호를 내립니다.

이후 네덜란드인들이 신대륙인 미국의 뉴암스테르담(뉴욕)으로 건너갔을 때, 니콜라스 상을 가지고, 그의 교회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네덜란드인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신트 클라우스라는 사람을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이야기와 신트 클라우스라는 이야기는 훗날 미국을 정복한 영국인들에 의해 영국식 발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신트 클라우스가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죠. 물론, 이 이야기는 가설입니다.

여기에 19세기 미국의 문학가들은 산타클로스에게 사슴이 끄는 썰매라는 선물을 줍니다. 아예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컨셉으로 하늘을 날게 하기도 하죠.

또, 1931년 미국의 선드블롬이라는 사람은 산타크로스에게 빨간 옷을 입혀놓습니다. 그런데, 산타크로스의 빨간 옷은 당시 코카콜라의 이미지를 고려하여 색깔을 강조한 것이고, 산타크로스의 흰 수염은 콜라에서 나오는 거품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약간 상업적인 컨셉과 맞아 떨어져 산타크로스의 이미지로 굳어져 버렸네요.

루돌프는? 루돌프는 원래 1939년 미국 백화점에서 홍보를 위해 만든 빨간코의 순록입니다. 순록은 원래 빨간 코가 아니지만, 코에 염증이 생기면 코가 빨갛게 된다고 하는 군요. 루돌프는 지병을 앓고 있네요.

크리스마스 캐롤은 원래 영국 고전주의 학파의 음악 형식입니다. 캐롤이란, 동일한 후렴을 반복하면서 즐기는 노래 형식인데, 크리스찬 국가인 영국에서 이 형식으로 크리스마스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냥 모두들 캐롤이라고 부른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유명한 인종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아름다운 전나무 모습을 보고 장식을 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트리의 꼭대기에는 별을 장식하는데,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찾을 때 빛나던 별을 상징합니다.

크리스마스 자선냄비는 난파선과 관련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해안에 표류하던 난파선이 한척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너무 춥고 배가 고팠죠. 이 때 한 사람이 커다란 냄비를 길 한가운데 놓고 말하기를, <이 냄비가 끓게 합시다>라고 했답니다. 사람들은 그 냄비에 돈과 먹을 것을 담아주여 난파선에서 내린 사람들을 도왔다고 하네요. 그 때부터 구세군 모금 활동은 냄비로 하고 있답니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19세기 중반에 콜 경이라는 사람이 일일이 편지를 쓰지 않고 그림이 인쇄된 대량의 카드에 장식과 인사를 적어 넣어 한번에 보낸 것에서 유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