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  전체글  |  모바일  |  이메일

< H I S T O R I A > 고대 이전 동북아시아의 전투 형태

(1) 청동기, 철기 우리 민족과 동아시아의 전쟁 양식에 대하여

우리 민족, 그 기원에 대한 논쟁

자,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고대 동아시아의 전투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동아시아라고 하면 지금의 중국을 포함하고 있는 동북아시아부터 한반도, 일본열도까지를 다루어야 하지만, 일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기록이 일단 없고, 야마토 호족 연합 정권 이전의 일본에는 전쟁다운 전쟁에 대한 기사가 없기 때문이죠. 그럼 시작해 볼까요?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 일단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원시시대 만주와 요령지방, 그리고 한반도에는 어떤 계통의 민족이 살고 있었는지 일 것입니다.

일단,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신석기 때 내려온 고아시아계통의 민족에서 찾곤 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지금은 달리 주장할 학설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일단 인정하는 편이죠.

이 고아시아 족은 시베리아의 동남부의 바이칼 호수 주변에 살던 족속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바로 우리가 흔히 들어온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한 인류였죠. 그러나, 이러한 고아시아족을 우리 민족의 기원이라고 단정하기에도 무리가 많습니다.

다음은 한국사 특강(서울대학출판부)의 신석기 시대 분류 방식입니다. 너무 많은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이 책의 내용도 이제는 그냥 참고 자료 수준일 뿐이 되었네요.  일단, 신석기 시대의 인류를 빗살무늬 토기를 어떻게 사용하였는가, 어떤 토기를 가지고 있었는가로 구분합니다.

 신석기 1기 : 이른 민무의 토기, 고아시아족(시베리아계통)이 내려온 문화

 신석기 2기 : 전형적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한 시기로  또 다른 고아시아족이 내려온 시기

 신석기 3기 : 빗살무늬토기를  변형한 파상문무늬, 뇌문무늬, 평저무늬 등이 보이며, 중국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 내려온 시기.

 이 3차례 이주는 선주민의 말살없이 전통을 계승함으로서 민족의 기원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신석기 3기의 퉁구스 계열의 민족이 민무늬 토기인으로 변함으로서 신석기인과 청동기인은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죠.

그러나 반면, 다른 학자들은 신석기인이라고 말하는 고아시아계통의 시베리아족들이 어떤 인종인지 확실한 자료도 없이 추정으로 민족의 기원을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석기인들과 청동기인들은 살아간 생활 양식도 다르고, 그들이 연속된 계통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기원을 고아시아 계통에서 찾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신석기인들을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청동기인들이 우리 민족의 기원인가, 혹은 극단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구석기인들까지 우리 민족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가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이 어떤 계통의 부류로 출발하였든간에 그 영역은 어디서부터였을까 하는 점이죠.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 왜곡 앞에서 이 문제가 한층 더 부각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청동기인들이 도대체 누구야?

우리가 흔히 민족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청동기인>의 실체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청동기인들이 모두 같은 계통이라고 이해하기도 하고, 청동기인들이 처음부터 동이족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고조선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청동기인이라는 개념은 어떤 하나의 부류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청동기인들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보통 청동기인 하면, 기존에 있던 신석기 후기인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으며, 청동기를 수용하여 민족의 주류를 형성하고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청동기인들의 문화는 너무나 다양했습니다. 저마다 독특한 석기를 사용하였고, 청동제 무기도 지역에 따라 달랐습니다. 예로,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의 유역이 있었던 북방계통에서 많이 사용하였다면, 남부 진국이 위치했던 곳에서는 마제석검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결론을 내린 사람이 없습니다.

일단 청동기 문화의 기원을 만주 요녕성으로 보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그러나, 시베리아 동남부, 발해연안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을 가진 청동기를 사용했던 민족들이 철기 시대로 들어서면서 하나의 큰 틀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은 철기시대로 넘어와서 공통적으로 세형동검이라는 독자적인 청동검을 사용하였고, 예맥족, 한족이라는 명칭으로 공통된 범주를 형성하게 됩니다.

어찌보면 자료가 없는 고대사는 소설을 적는 기분과 같을 수 있겠네요. 하나 하나 자료를 찾아서 추리를 해야 하니까요. 자, 이 글이 우리 민족의 기원을 적는 글이 아닌 만큼, 이 정도에서 끝내고 이제 동아시아 초기의 전쟁 양식으로 본격적으로 돌어가보죠.

청동기와 동아시아 초기의 전쟁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청동기 때라고 합니다. 인류 초기의 전쟁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생산력이 쌓이고, 생산물이 남을 때 그것을 보다 많이 확보하기 위한 무력 투쟁이였습니다. 따라서 청동제 무기를 가지고, 일정량의 생산물과 전쟁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시기부터 인류는 본격적으로 전쟁과 약탈을 시작합니다.

인류 최초의 전쟁 양식은 수레전이었습니다. 전쟁을 위해서는 일정량의 무기와 식량을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는 수레가 필요하였기 때문에 수레의 확보와 탈환이 전쟁에서 상당히 중요했다고 합니다. 원시 인류는 당나귀나 노새 등을 이용하여 수레를 끌게 하였는데, 기원전 10세기 정도에 인도의 아리아 계통 사람들이 말을 이용하여 수레를 끌게 하였습니다. 수레전에 기동성을 확보한 것이었죠.

그리고 이 수레전의 양상은 이란계 계통인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아시아 각지에 전파되었습니다. 스키타이 인들이 각지에 전파한 말을 이용한 수레전은 두가지 형식으로 분화되었습니다. 하나는 수레를 버리고 기동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형식의 전투인 <기마전>입니다. 기마전은 특히 유목민들에게는 가장 좋은 전투 방식이었습니다. 일정한 영토를 확보하지 않고, 영역 중심으로 이동하는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는 기마전이 가장 좋은 전투였습니다.

반면, 중국 등 농경생활과 정착생활을 했던 지역에서는 수레전을 발전시킨 <전차전>의 방식을 선호하였습니다. 전차전이란 중국 춘추시대까지 보편적으로 볼 수 있었던 전쟁 방식으로, 넓은 들에서 두 나라의 군대가 진을 친 다음 전차를 이용하여 치고 받는 방식의 전쟁이었습니다.

청동기를 전파한 스키타이인들.

우리 민족이 처음 청동기를 사용한 것은 언제인가를 논할 때, 꼭 나오는 민족도 <스키타이인>들입니다. 얼마전에 <히스토리에>라는 그리스쪽 이야기를 담은 역사만화를 읽었는데, 거기에도 북방 민족인 무시무시한 스키타이인이 나오더군요. 이란계 스키타이인이 기마전술을 이용하여 동서로 모두 진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리쪽 이야기만 해야겠군요.

스키타이인이 우리 민족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청동기를 전파해준 민족으로 기마전을 주로 구사했던 스키타이인을 지목하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만주와 한반도의 청동기는 중국의 은, 주나라와 너무 다르고, 몽골계와도 다르다는 점, 그리고 스키타이계로 칭할 수 있는 계통과 유사하는 점 때문이지요. 고대사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그나마 가장 유사한 상황근거를 다수설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누가 청동기를 전파해주었는가가 아니라, 청동기를 사용한 자들이 누구인가 하는 점입니다. 일단, 우리 고대사 유물 중에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전쟁에 말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조선과 한반도 내 있었던 전쟁의 형태에 관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알 수는 없습니다. 단, 우리 민족을 가르키는 용어로 예맥족이라는 말이 중국 문헌에 많이 나오며, 그 예맥족의 실체를 추론할 수 있는 기사들이 종종 나옵니다.

예족은 부여족, 맥족은 고구려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많이 쓰이고, 한반도 남부의 민족은 한족으로 칭하는 기사들이 있죠. 또 동이족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동이족의 실체는 학자들에 따라 너무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동이족을 우리 민족의 전체 개념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동이족 자체가 중국과 대립했던 모든 민족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이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문헌들이 중국문헌이라는 점을 추론해 볼 때, 동이족은 중국 동쪽에 분포했던 민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이족은 요하강 동쪽과 송화강 남쪽을 기준으로 할 때, 고조선의 영역과 한반도, 그리고 산둥반도 등 중국 동해안과 발해만, 만주 등을 포괄하는 민족을 지칭하는 듯 합니다.

최근에는 동이족을 은주 교체기 때 이동한 민족으로 파악하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일어날 때 은나라 계통과 손을 잡고 있던 동이족 일파가 주나라와 대립하였는데, 주나라에게 패하여 만주, 산둥반도, 한반도 등으로 흩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동이족의 일파 중 요하강 동쪽부터 한반도까지 밀려온 일파를 예맥족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즉, 예맥족은 동이족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동이족의 일파인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시작된 기마전과 보병전의 전개

청동기 시대에 전차전을 위주로 했던 동아시아의 전쟁 양상은 철기를 사용하면서 급격하게 변합니다. 보통 역사 발전 단계상 청동기 국가 성립 초기의 전쟁은 보통 귀족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서양의 그리스, 로마에서도 초기 귀족공화정 시기에는 귀족들 위주의 전차, 기마부대가 주를 이루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평민들이 성장하면서 보병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중국 역시 전차전이 철기 시대 다른 전쟁 양상으로 전환됩니다. 그 이유는 철기의 보급과 함께 철제 무기가 많아지고, 농업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전쟁을 담당할 수 있는 계층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또 철기의 사용으로 전쟁 양상이 격렬해지고, 전쟁 범위가 늘어나자 더 이상 전차를 이용한 국지적인 전투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전국시대 후기의 중국은 전차전 대신, 빠른 말을 이용하는 기마전, 많은 수를 확보할 수 있는 보병전으로 전쟁 방식을 전환하게 됩니다.

중국에서 새롭게 도입한 기마전과 보병전은 각각 그 쓰임새가 달랐습니다. <전국책>을 보면, 기원전 307년 전국시대 7웅 중 하나인 조나라 무령왕이 그 때까지의 전차전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하여 기마전을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나라는 엄청난 강국이 되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기마전은 유목민족의 기마전술을 도입하여 빠른 기동성을 활용하는 전투에 이용되었습니다. 빠른 기동성을 이용한다는 것은 순간 순간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유격전술>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 상대적으로 빠른 유목민족과의 전투에서도 기마전술은 필수였습니다. 기마전의 핵심은 빠른 이동속도와 함께 말 위에서 화살을 날리는 기병술이었기 때문에, 기마전의 도입으로 수많은 무기가 개발되기도 합니다. 철제 창, 철제 칼, 가벼운 화살, 말을 타기 위한 소매가 좁은 옷 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반면, 보병전은 하나의 거점을 확보한 뒤, 거점을 위주로 싸우는 방식입니다. 전국시대는 단순히 하나의 전투를 승리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거점을 확보하고 지켜나가면서 전역을 통일하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에는 수십만에 이르는 보병들을 투입하여 거점을 빼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따라서 전국시대의 전쟁은 기마전과 보병전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고, 보병부대로 하여금 적극적인 전쟁 참여를 유도한 방식이었습니다. 이 보병부대를 유지하기 위해 징집이라는 방식의 병사 모집이 있었고, 이 병사를 통제하기 위해 국가는 <변법>이라는 방법으로 지방과 향촌을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즉, 기존의 귀족 위주의 전쟁과 국가 운영 방식을 버리고, <제민통제>이라는 방식으로 변환시키려는 시도가 바로 중국의 유명한 <변법논쟁>이였죠.

또, 이렇게 확보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지키고, 각국간 민감한 정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국은 타국과의 외교를 통한 교섭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는데, 이 때 등장한 외교전술이 바로 소진의 6합책, 장의의 연횡책 등입니다. 즉, 군사력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국가들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적절한 외교술이 필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확실한 외교책으로 중국 최초의 황제 국가를 건설한 나라가 바로 <진>국이며, 진시황제입니다.

고조선과 고대 무역로 확보를 위한 전쟁

고조선의 전쟁 방식에 대한 자료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고조선이 기록을 남긴 부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없으면 상상이라도 해봐야겠죠? 어짜피 있었을 법한 일을 글이지 논문 쓰는게 아니니까요.

고조선 역시, 청동기로 출발한 국가입니다. 그러나 요하강 동쪽의 만주와 한반도는 중국과 달리 평야지대 보다 산지가 많은 지역입니다. 청동기를 전파한 스키타이인들의 기마술 역시 고조선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보다 훨씬 먼저 <보병전>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이후 고구려에서는 벽화나 유물 중에 말에 대한 것들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광개토왕이나 장수왕의 전쟁 영역 및 이동 거리 등을 볼 때 이전의 고조선 역시 상당한 <기마술>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고조선에서 철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이 위만조선 때 부터인 것을 감안하였을 때, 중국식 병법은 이 때 이미 고조선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고조선이 흉노를 제압한 한과 1년여 가까운 싸움을 했다는 것에서도 당시 고조선이 중국에 밀리지 않은 병법과 전술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점 중 하나는 고조선과 중국 한나라의 전쟁 양상은 공성전과 해상전을 위주로 했다는 점입니다. 그럼 전쟁을 추론해 볼까요?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을 침공한 이유는 고조선이 위만 때부터 중계무역으로 이득을 남기고, 철제 무기를 사용하여 스스로 <왕을 칭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중국이 고조선을 침략한 이유는 <무역권>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중국 한무제는 수차례 흉노 토벌로 경제력이 바닥나면서 균수, 평준법 및 전매 제도 등으로 국가 재정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고조선은 남부의 진국(한반도)와 중국을 잇는 <해상교통로>를 장악하여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부의 금강, 한강을 통해 대동강까지 이어지는 고대 해상 상업로는 고조선을 통해 중국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한무제는 대동강 무역권을 장악하여 중국 동해안과 한반도를 직접 잇는 루트를 만들어 국가 재정을 튼실히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실제 대동강에서 남해안을 돌아가는 루트는 삼국시대 한강을 중심으로 하는 해상 무역 중심루트였고,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활용했던 무역루트였습니다. 이 무역로는 중국 산둥반도와 이어지는 핵심 무역로였습니다.

한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한 루트역시 요동을 통해 좌장군을 보는 공격로 외에 누선 장군을 통해 대동강으로 침략하도록 한 루트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 이전, 수상전과 공성전에 대한 작전과 병법이 있을 법 하지만 그것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누선 장군은 수상 공격전에 체포되었다고 기록이 나오고, 고조선은 내분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조선의 우거왕은 신하인 이계상에게 죽었고, 우거왕의 아들 성이는 한나라의 좌장군의 계략에 의해 백성들에 의해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당시 고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은 한라나의 외교와 전략에 의한 부분이 크다고 볼 수 있겠네요.

북방 유목민족의 전술 - 극강의 기마술

중국은 수천년 중화민족으로서 자부심을 지켜왔다고 말하지만, 중국의 한족이 자신의 땅을 다스린 기간은 전체 역사의 절반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미 북방 민족들이 내려와 중국 내지에 깊게 뿌리를 내렸고, 전통 중국 왕조라는 수, 당 제국 역시 북방 민족 계통의 역사가 깊이 혼재해 있음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10세기 이후 금, 요, 원, 청 등 이민족 국가들이 중국을 잠식해 들어가 이민족 왕조를 세웠죠. 중국은 이러한 역사적 아이러니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중국에 들어온 모든 민족을 중국 소수 민족으로 편재하고, 중국사의 한 부분으로 귀속시켜 버렸습니다.

즉, 중국의 역사는 한족의 역사와 북방 민족의 역사가 섞여 있는 역사입니다. 중국의 전통적 조공, 책봉 사상으로 볼 때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양사를 중국사가 아닌 동아시아 문화권과 북방문화권이라는 2개의 문화권 관점에서 보면 북방 민족 역시 스스로의 문화권을 가진 각각의 민족 집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는 동아사아사를 중국사 뿐만이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 적는다고 합니다. 아시아사는 중국사라고 배워온 우리에게는 지금이라도 다행이 아닐까 하네요.

북방민족의 기마술과 전술은 다음 장으로 넘겨 적겠습니다. 너무 두서없이 막 적다보니, 다음 장은 차분히 생각하면서 적어야겠네요.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을 참조하세요... - 참고서적들 -
한국사 편지 SET(사진과 그림으로보는)( 전5권) 상세보기
박은봉 지음 | 웅진닷컴 펴냄
어린이부터 학부모까지 우리 역사를 재미나게 읽고, 서로 이야기해 줄 수 있도록 친근한 편지 형식으로 꾸민 우리 역사 이야기책 시리즈 『한국사 편지』전5권을 함께 담은 세트. 한국사의 전체 흐름 속에서 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 혹은 인물, 에피소드를 선택하여 그 역사적 함의를 충실하게 짚어 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한국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갖게 하고, 한국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기르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 (개정판) 상세보기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청소년들이 과거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역사 속의 인물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제1권.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현하고자 하는 역사교사들의 모임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주도 하에 만들어진 새로운 역사책이며 대안 교과서이다. 1권에서는 민족의 형성과 민족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학생들이 과거의 역사를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와 편집을 통해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 상세보기
서의식 외 지음 | 펴냄
쟁점과 사료로 새로 쓴 21세기 한국사 이야기. 시기별로 주요 항목을 설정하고 해설을 덧붙이는 형식을 취했다. 이는 일상생활에 바쁜 현대인들이 한 항목씩 정리해 나가는 방편으로도 적합하다고 하겠다.또한 고대 기점을 고조선 건국에 두었고 신라,고구려,백제 삼국의 성립과정을 한국 고대사회의 재편성으로 보았다. 국가중심이 아닌 민족중심 역사인식적 접근의 역사서이다.
우리 고대사(사료로 보는)(겨레의 뿌리를 밝히는 책 4) 상세보기
윤내현 지음 | 지식산업사 펴냄
사료를 통해 우리의 고대사를 살펴보는 책. 저자가 대학에서 '사료강독'으로 사용했던 문헌자료 가운데 일부를 수록하였다. 여러 자료에서 고조선 및 우리 고대사 체계와 관련된 것을 골라 이해하기 쉽게 엮고 풀어내었다. 이를 통해 동북공정 논란을 둘러싼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우리고대사:상상에서 현실로 상세보기
윤내현 지음 | 지식산업사 펴냄
우리가 왜 지금 고대사를 말해야 하는 지에 대한 화두를 꺼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책. 고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 사회, 우리 의식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과거를 올바르게 인식하면서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수단으로서의 역사 공부의 필요성에 대해 논했다. ♧ 저자 소개 윤내현 1939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으며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동 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하버드
이야기 한국고대사 상세보기
조법종 지음 | 청아출판사 펴냄
고조선에서 발해까지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는 <이야기 한국고대사>. 좀 더 쉽고 간단하게 한국고대사의 여러 분야를 한눈에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각 분야사별로 해당 전공자가 집필하였으며, 우리 역사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들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문체로 서술하였다. 또한 편의를 위해 학술적인 주를 따로 붙이지 않고, 각종 삽화와 주제별 에피소드를 실어 한국고대사에 대한 흥미를
한국고대사입문 1:한국문화의기원과국가형성 상세보기
김정배 지음 | 신서원 펴냄
고대사와 고고학의 만남을 시도한 <한국고대사입문> 제1권. 고대사와 고고학을 전공한 여러 학자들이 뜻을 모아, 과거를 편향되지 않고 생생하게 묘사한 고대사 안내서이다. 각 분야의 기본적인 연구사와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하면서,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제1권에서는 한국 문화의 기원과 국가형성을 연구하였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어
중국고대사상사론(한길그레이트북스70) 상세보기
리쩌허우 지음 | 한길사 펴냄
중국의 계몽철학자 리쩌허우의 <중국고대사상사론>을 번역한 책. <중국고대사상사론>은 저자가『미의 역정』을 저술하면서 구상한 침적설을 고대사상사에 적용해 중국인의 전체적 주체성으로서의 독특한 문화, 심리구조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탐색한 책이다. 문화심리 구조, 실용이성, 인학모체 구조라는 독특한 관점을 통해 중국의 고대사상사를 종횡으로 분석한다. 이 책은 공자와 묵자, 맹자와 순자, 노자와 한비자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 상세보기
최용범 지음 | 페이퍼로드 펴냄
10만 독자가 선택한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의 개정증보판 현재 한국사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5천년을 이어온 방대한 역사의 무게에 지레 겁먹고 역사서를 멀리한다. 이미 10만 독자가 선택한『하룻밤에 읽는 한국사』개정증보판은, 이렇게 한국사를 알고는 싶으나 방대한 역사에 읽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유쾌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한국사
아틀라스 중국사(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03) 상세보기
박한제 지음 | 사계절 펴냄
지도와 함께 읽는 중국사 개설서 입체적인 역사 체험을 제공하는『아틀라스 역사』시리즈. 시간 중심적인 역사 서술을 탈피하고, 시간과 공간을 대등하게 아우르며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역사책이다. 상세한 텍스트와 생생한 지도가 함께 어우어져 있어 역사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지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음영기복도를 사용하였으며, 풍부한 도판 자료와 시각화된 통계 자료를 곳곳에 배
강좌 중국사 1 상세보기
서울대학교동양과학연구회 편 지음 | 지식산업사 펴냄
중국사 전반에 걸친 주요 문제를 선정하여 연구사적 으로 정리한 이론서. 고대문명과 제국의 성립, 문벌 사회와 호.한의 세계, 사대부사회와 몽고제국, 신질 서의 모색 등으로 나누어 36편의 글을 묶었다.
한국고대사연구 40집 상세보기
한국고대사학회 지음 | 서경문화사 펴냄
한국고대사학회가 발행하는 <한국고대사연구> 제40집. 한국 고대사 관련 연구논문 9편을 만나볼 수 있다.
블로그 이미지

한국빅데이터교육협회

데이터분석 및 교육 전문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