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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기독교 편>

5화. 예수의 생일을 멋대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1. 디오클레티니아누스 : 전통신과 이단신의 처절한 싸움

기원 후 3세기, 로마 제국은 새로운 체제 변환을 겪어야만 했다. 로마가 작은 도시 국가 단계였을 때엔 귀족 공화정으로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고, 제국이 되어가면서 절대권을 가진 황제에 의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라는 정복국가가 더 이상 정복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내부적인 갈등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공화정 말기부터 등장한 군부세력은 로마 사회의 확고한 지배층으로 자리잡았고, 황제권이 약해졌을 때마다 국가를 한바탕 뒤흔들곤 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권은 무력에 의존하였다. 기존 로마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로마인들은 전통적인 상무정신을 잃었고, 황제 자리는 무력을 가진 군인들에 의해 50년간 27번이나 바뀌게 되었다.

로마 제국의 혼란기에 그나마 민중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은 교회 뿐이었다. 지배층이 콜로세움에서 피튀기는 검투사들의 죽음을 보며 만취해있는 동안, 기독교인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천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284년 황제 자리에 오른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강력한 제국을 위해 선택을 해야만 했다. 군대를 이용해서 기존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독교적 사상 체계를 받아들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황제만의 고민이 아니였다. 로마 사회 전반에 로마 전통 풍습과 기독교적 풍습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크리스트교인들은 로마 행정구역과 일치하는 종교 교구를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각지에서 로마 전통신을 믿는 보수적 성향의 로마인들과 충돌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결단을 내렸다. 위로는 로마 교회와 5교구, 아래로는 각 도시 교구의 주교들까지 모두 탄압하기로... 그는 기독교적 행정 체계를 완전 말살하고, 제국을 2명의 황제가 각각의 부황제로 구성된 4명이 통치하는 체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최고권을 가진 제 1의 황제가 되었다. 황제 위로 이단신은 없었다.

속주에서 크리스트교의 권한은 말살되었다. 도시 주교가 참여하는 도시 행정은 사라지고, 엄청난 수의 황제 관리들이 내려와 도시 행정을 맡았다. 사랑과 평등을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는 크리스찬들은 반역죄로 처형하였다. 모든 로마 제국의 백성은 현역이든, 상비군이든, 예비군이든 간에 세습적으로 군역을 맡아야 했다.

이것은 고대 유태인들이 오리엔트 국가의 전제 군주에게 겪었던 시련과 비슷했다. 강력한 무력 군주 앞에 종교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러나, 이미 로마 제국 각 지역마다 깊게 뿌리내린 크리스트교의 인맥을 한번에 자를 수 있을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세기 로마의 위기를 <크리스트교라는 이단아>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였다. 실제 그런지가 관심이 아니라, 황제가 철저하게 그런 관점에서만 종교를 보았던 것이다. 황제권이 약해진 것은 주피터(제우스) 등을 포함한 고대 신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로마에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네로 황제가 크리스트교인들을 몰살시킨 것처럼, 디오클레티니아누스도 크리스트교인들을 <이단신>을 모시는 부랑아로 파악한 것이다.

결국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크리스트교 탄압에 관련된 칙령을 내린다. 전통신과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국가전복죄과 내란죄를 적용하여 즉결 재판으로 처형하는 법령을 만든 것이다. 우리 나라로 따지면, 간첩죄는 일단 끌고가서 고문하고 본다는 과거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까?

디오클레티아누스에게 종교란, 국가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신에 대한 예의였다. 천국이니 내세니 하는 것은 다 거짓이었다. 종교는 높은 산에 올라가 제단에 연기를 피워 신의 관심을 돌린 뒤 짐승을 죽여 그 피를 바치는 행위였다. 제국에 물건을 하늘에 바침으로서 제국은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이고, 국왕의 권위는 올라간다. 종교는 그 이상의 역할이 필요없다.

로마 황제는 지상에서의 신이다. 전통신은 황제가 지상을 다스리는데 도움을 주는 인격체이자 동반자이다. 내세의 신은 로마 황제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황제의 크리스트교 탄압은, 터질 듯 터질 듯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전통신과 이단신(하나님)에 대한 격렬한 대립을 표면에 드러내고 말았다.

2. 이단신을 인정한 콘스탄티누스

디오클레티니아누스가 철저하게 크리스트교를 탄압하면서 제국의 영광을 찾으려 했다면, 콘스탄티누스는 크리스트교를 제국의 테두리로 껴안으면서 제국의 영광을 찾으려 한 인물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체제변환을 위해 크리스트교를 끌어안았다. 교회의 교구를 탄압하지 않았고, 교회의 역할을 존중하였다. 즉, 더 이상 로마에서 크리스트교는 이단 종교가 아니였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크리스트교와 교회의 교구제도는 법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황제의 인정으로 교회 세력은 급격하게 팽창하였다. 그동안 받은 교회의 박해를 보상받았는데, 그 비용은 곳곳에 화려한 교회를 짓기에 충분하였다. 로마,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등 대교구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재현하듯 화려해졌으며, 교회의 주교들은 당당하게 사회의 지도층 인사가 되었다.

이제, 각 도시의 주교는 더욱 깊게 자치행정에 관여하게 되었다. 도시내 세금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의회의 역할도 하였다. 주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도시 내의 재판을 담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의를 실현하였다. 조세권과 재판권의 확보는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트교가 대세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교회는 이제 로마 각각의 도시에서 로마인을 대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콘스탄티누스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크리스트교를 인정한 것일까? 여기에는 정치적인 내막이 깔려있다.

사실 콘스탄티누스도 그리스식 제우스교와 오리엔트식 미트라교 등의 전통신에 대한 의식을 행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황제는 크리스트교를 무시한 채 로마 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가 크리스트교를 인정한 후 열었던 <니케아 공의회>는 황제가 어떤 의도로 크리스트교를 공인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단신을 믿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처음 크리스트교에 관심을 가졌던 사건은 <밀비아 전투>에서부라고 한다. 그의 전기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힘든 전투를 계속하던 콘스탄티누스에게 하늘에서 계시를 내린다. 불타는 십자가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십자가와 함께 전투하라는 목소리를 들었다. 황제는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장병들의 방패에 새기고, 십자가로 군기를 대신하여 전투에 나섰다.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의 말씀은, <이 표적으로 승리를 얻으리라> 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황제는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실제 이 계시 때문에 그가 바로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 그것보다 이런 계시가 있다는 것을 권위있는 황제가 직접 보임으로서 크리스트교를 인정하는 분위기를 만들려 했던 것 같다.

전투에 승리한 콘스탄티누스는 전통신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고, 이단신(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황제의 왕관에 예수를 못박은 십자가의 못을 붙여 이렇게 말하였다.

<위대한 왕이 돌아왔다. 이제 크리스트교 역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모든 전통신과 크리스트교의 신도 위대한 황제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3. 니케아 공의회가 열리다.

325년 열린 니케아 공의회는 크리스트교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된 공의회이다. 이 공의회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기독교의 교리가 첨예하게 대립할 때, 대주교들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의회 방식>이 시작되었다. 반면, 콘스탄티누스가 공의회의 결정에 개입함으로서 <공의회> 역시 황제의 지배를 받는다는 로마의 원칙을 황제가 은연중에 보여준 공의회이기도 하다.

보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이론을 <기독론>이라고 하는데, 초기에 이 기독론을 정립한 공의회가 니케아, 칼케타, 콘스탄티노플의 공의회이다. 이 초기 공의회에서의 결정은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 받아들이고 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의 핵심 논쟁은, 예수의 신성논쟁이었다.

예수가 살다 떠난 당대 국가인 로마는 예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떻게든 예수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 예수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형상이 되어 말씀으로 내려온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인격을 가지고 내려온 것인가? -

이 문제에 대해 당시 크리스트교를 대변했던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아리우스 대주교는 <예수는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생각하였다. 구약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은 <메시아>를 보낸다고 하셨고, 메시아는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주 예수가 메시아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그 말씀(logos)으로 지상에 하늘의 뜻을 전달하였으며, 그 말씀의 확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분이 예수다. 따라서 하나님과 말씀과 예수는 하나로 이어진 것이나, 하나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당시 다수 신학자들의 의견이었다.

또, 예수가 지상의 대리자라는 것은 로마 사회의 위계질서와도 같은 맥락이었다. 로마에 황제가 있지만 모든 속주와 도시를 홀로 총괄할 수 없다. 따라서 각 지역에 파견된 총독이 황제의 말씀을 전달한다. 즉, 황제의 말씀과 총독의 행동이 일치하나, 그들이 하나는 아니지 않는가? 하나님도 같다는 것이다.

이라우스의 이러한 의견에 대해 <아타나시우스>는 조목 조목 반박하였다.

하나님은 본질이 선이고, 선은 곧 사랑이다. 그것을 하나님은 말씀으로 알리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본질은 어떤 형체가 아니라 그 분의 말씀인 것이다. 따라서 신과 성령(말씀)은 하나이다. 그 하나님이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 직접 형체로 우리 앞에 서 계시니, 그가 예수였던 것이다. 즉, 신과 성령과 예수는 하나의 본질인 것이다. (삼위일체설)

하나님은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밎은 신이기에 이 3가지는 셋이면서 하나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섬김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진리까지 동시에 섬기는 것이다. 이 셋이 분리된다면 <유일신 사상과 우상숭배 문제>도 복잡해진다. 특히 요한 복음(1장 14절)에는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문구가 직접 나오며,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직접 내려오신 것이다.

이 예수의 신성논쟁은, 종교 자체의 근원까지 뒤흔들 수 있는 논쟁이었다. 문제는 여기에 개입한 콘스탄티누스의 입장이었다.

4. 예수의 생일(성탄절)을 맘대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누스는, 당시 다수파인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아타나시우스파의 손을 들어준다. 무슨 이유였을까?

아리우스파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인간 선지자로서 예수를 강조하였다. 훗날, 이슬람교가 <예수는 위대한 선지자일 뿐...>이라고 말한 부분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는 <예수>가 평벙해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예수가 신성해야 예수의 후원자이자 공인자인 자신의 입지도 강화될 것이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가 인간이라는 부분의 기록을 삭제한다.

콘스탄티누스가 삭제한 부분들은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성경들이 어딘가에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나, 프리메이슨이 고대 예수의 인간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갈수록 우리의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럼 니케아 공의회 전후로 콘스탄티누스가 구상한 예수의 모습과 황제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일단,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의 생일을 멋대로 정하였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정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니케아 공의회 직후부터 그리스도의 탄생 미사(Chrismas)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는 공식 기념일이 되었으며, 354년 최초로 성탄 축하 의식이 시작되었다.

원래 크리스마스는, 북유럽의 앵글로-섹슨 계열의 언어인 Christes-Masses란 단어에서 시작된다. 그 뜻은 <크리스찬의-미사>란 뜻이다. 즉, 크리스마스는 생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공의회가 끝난 뒤,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모임>였던 것이다. 경건한 뒷풀이라고나 할까? 이 크리스마스를 예수 생일로 번역할 때 불어로 <노엘>이라고 한다. 반면, 크리스마스를 헬라어의 약자로 쓰면, X-mas가 된다.

문제는 예수의 생일을 멋대로 정한 사람이 콘스탄티누스란 사실이다. 따라서 로마 이래 12월 25일을 축하하는 의식은 전통적 <카톨릭>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실제 근대 개신교에서는 <성탄절>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또, 정교회에서의 성탄절은 1월 6일이다. 이슬람은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존경하긴 하지만, 성탄 기록 자체에 관심이 없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예수의 부활일이 아닌 <탄생>에 초점을 맞춘 것인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관심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예수의 <부활>이었다. 부활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자, 구원의 징표였다. 그러나 황제에게 내세의 징표는 필요없다. 예수는 황제의 위대함을 선전할 수 있어야 했다. 위대한 황제가 지상에서 <크리스트교>를 공인하였고, 그것을 알아줄 축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럼 왜 하필 12월 25일이라는 날짜를 정한 것일까? 그것은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와 오리엔트의 전통신 사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서 추수감사제는 <Saturnalia>이다. 토성(토요일 : saturn)을 뜻하는 고대어이다. <토>는 흙을 뜻하기 때문에 농경을 뜻한다. 또 토요일은 유대교의 안식일 이기도 하다. 이 날은 농경신인 <새턴>에게 제물을 바치고 풍년을 감사하는 전통적인 축제일이었다. 이 축제는 12월 17일부터 12월 24일까지 계속된다. 로마의 12월 25일은 동짓날이기 때문에 축제는 24일까지만 한다.

반면, 페르시아의 위대한 태양신 미트라의 생일은 12월 25일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미트라신이 한해의 농사를 끝내고 새로운 시간을 가져다 줄 것이며, 빛과 축복을 내린다고 믿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는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이면서도, 기존의 전통신 사상을 모두 교묘하게 섞어놓은 것이다. 즉, 로마의 농경신, 태양신 미트라, 유대교의 안식일 등등을 섞어놓은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군사정권인 콘스탄티누스의 정적이 제우스교를 믿는 막센티우스라는 점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여러 종교들을 차별하지 않고 통합하다는 의미로 예수의 생일을 12월 25로 정하였고, 종교적 통합이 정적을 누르는 데 한 몫하였다. 그리고 통일된 종교는 모든 종교를 통합한 보편적 종교라는 뜻에서 <카톨릭>이라고 이름지었다.

카톨릭이란, 라틴어 어원으로 <보편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황제가 예수의 생일을 바꾸고, 각 종교를 입맛에 맞게 재편하면서 크리스트교의 안식일도 바뀌어 버린다. 원래 기존의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정한 <토요일>이었다. 이것은 농경신 세턴의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제가 여러 신 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신은 태양신(sun) 미트라였다. 따라서 안식일이자 한 주의 첫날은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태양신의 날이 되었다.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신이 일요일을 중요하게 여기 듯, 로마도 이제 <일요일>을 새 안식일로 정한 것이다.

5. 끝없이 계속되는 전통신과의 대결

콘스탄티누스라는 강력한 황제가 크리스트교를 인정했지만, 그가 죽자 상황은 또 달라진다. 황제의 정적들은 정치적 이유로 다시 전통신 부활을 주장했으며, 크리스트교인들도 니케아 공의회에 결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수많은 배교자들이 전통신 부활을 위해 반기를 들었다. 또, 크리스트교인들은 예수가 인성을 가졌는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특히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하다 할지라도 그의 삶은 인간으로서의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큰 파문을 일으켰고, 결국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로마 교황은 네스토리우스의 의견을 일부 인정하여 <그리스도는 신성, 인성을 모두 가진 하나님이다>라고 결론을 내렸고, 이것이 정통 교리가 되었다. 반면, 그리스도는 인간이 아닌 신성만을 가졌다라고 주장하는 주교들은 훗날 반로마 운동을 벌이게 된다.

다음장에서도 전통신과 새롭게 등장한 하나님은 끊임없이 싸우게 된다. 그 싸움은 로마가 망해야 끝이 날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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