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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종교 이야기 <기독교 편>

6화. 전통종교, 전통철학을 살해한 크리스트교의 승리

1. 최후의 배교자 율리아누스(361-363)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공인된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뒤 한차례 큰 파란을 겪게 된다.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과 로마라는 2개의 수도에 2명의 황제체제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 후손들 역시 2명의 황제 체제로 국가를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2명의 황제 체제는 큰 종교적 갈등을 불러왔다. 일단,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체가 또 다른 황제인 막시미누스와 대립관계를 형성했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와 달리 막시미누스는 제우스교를 신봉하였다.

기독교 입장에서 우상숭배로 볼 수 있는 <이단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하면서, 막시미누스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을 비웃는 행동을 하였다. 결국 콘스탄티누스는 이단신을 믿는 막시미누스를 제거해 버린다.

마지막으로, 이단신의 부활을 꿈꾸었던 최후의 황제가 바로 <율리아누스>이다. 그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복동생인 콘스탄티우스의 2번째 부인의 2번째 아들이었다. 하지만,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누스를 증오했다. 정복국가인 로마를 이끌었던 로마의 군대는 콘스탄티누스의 직계 아들들만을 후계자로 인정하기 위해 다른 왕족들을 모조리 살해했기 때문이다.

율리아누스 역시 부모를 잃고 방랑의 세월을 겪는다. 왕족과 떨어져 방랑하는 동안, 율리아누스는 그리스 전통의 철학과 문학에 흠뻑 빠져들었다. 기독교와는 다른 플라톤 사상을 접하면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 체계가 말하는 구원은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신은 이데아의 하나일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데아를 기독교인들이 <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것은 미트라신(태양신 : sun)일 것이다. 태양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며,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막강한 힘의 원천이니까...

율리아누스는 왕족으로서 기독교식 영세를 받고, 기독교 교육을 받았지만 마음은 딴 곳에 있었다. 그가 기독교를 믿는 척 하는 것은, 공인된 기독교 사회를 정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로마에서는 기독교인들도 전통 그리스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기독교 주교들이 사회지도층인 이상, 전통 로마의 문화와 율법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율리아누스는 기독교인이면서도, 전통문화와 전통신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진 친구들을 많이 사귀려고 노력했다.

어린시절, 그리스에서 유배와 같은 시골생활을 하던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우스의 부름을 받았다. 콘스탄티누스는 친척들이 모두 죽어서 부황제로 임명할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를 발탁한 것이다. 그러나, 부황제가 된 율리나누스는 강력한 로마 군대를 조직하여 황제를 위협하였다. 마침, 콘스탄티우스가 죽자 그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통합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율리아누스는 교묘하게 기독교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모든 종교를 인정한다고 칙령을 내리고 기독교를 우대하는 듯한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일에 사사건건 개입하면서 자신이 교회의 최고 <수장>임을 주장하였다. 로마 교황을 무시하고, <교황>의 역할까지 한 율리아누스는 교회 지배층을 전통신을 믿는 자들로 채워 버렸다.

율리나누스의 주변에서 기독교인은 사라지고, 그리스인들이 중심에 나타났다. 교회의 제단은 사라지고, 제우스 신에게 바치는 피의 의식이 예배를 대신하게 되었다. 율리아누스는 이집트의 파라오와 맞먹는 <태양신의 숭배자>이자, 그리스 플라톤주의를 숭배하는 자들의 <희망처>가 되었다.

율리아누스는 다방면에 재주가 많은 천재였지만, 그 재주를 모두 크리스찬 탄압에 쓰고 말았다. 예루살렘의 교회를 무시하고, 유대교 성전을 만들어 교회를 조롱하기도 했다. 크리스찬은 로마인이 아니라며 군에서 모두 쫒아내기도 했다. 그의 여러 저서들은 고대 그리스의 합리적인 철학과는 거리가 먼 크리스트교의 허무맹랑함을 크게 비판하고 있다. 안티오크의 대성당을 파괴하고, 순교자들의 유골을 부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의 분노 때문일까.... 황제가 된지 2년도 되지 않았던 율리아누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어디선가 날아오던 눈먼 무기에 맞아 죽고 말았다.

그리고, 전통신의 시대는 끝났다. 율리아누스가 죽음으로서 더 이상 크리스트교를 탄압하는 이들은 사라졌고, 그리스 문화가 기독교 사상보다 우수하다고 여겨지는 시대도 끝나고 난다.

그리고 그리스 최후의 철학자들 역시 역사 속으로 조용히 사라지거나, 크리스트교 교리와 타협을 하게 된다.

율리아누스 조각상(프랑스 파리)

 

2. 마지막 전통철학자의 비참한 죽음 : 히파티아(371-415)

최후의 전통 철학자라고 불리는 여성 철학자 히파티아는 기독교가 국교로 지정된 테오도시우스 황제 무렵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녀의 시대는 크리스트교 최고의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살았던 시기와도 같은 시기이다.

그녀가 살았던 5세기 초반은, 이미 전통 플라톤 철학은 기울고, 크리스트교가 대세가 되어 버린 시기였다. 어느 날 부터, 진리는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되어 버렸다.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고 이데아의 세계를 엿보던 그리스 철학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 버렸다. 이제 민중을 계몽하고, 민중을 바른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은 <전통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이 시기에 태어났다면 이단으로 분류되었을지도 모른다. 우주의 진리를 외치던 길거리 철학자들은 이제 과격하고 절대적 믿음을 가진 크리스찬들에 의해 역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이렇게 철학의 시대가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찬들의 영역을 뛰어넘는 얼짱 여성 철학자가 있었다. 그녀가 바로, 5세기 신플라톤 철학의 맥을 이었던 <히파티아>였다.

히파티아는 철학자이자 과학자로서 큰 명성을 날렸다. 그녀의 미모와 깊은 학식은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녀의 사회적 위신은 대단하였다. 그녀는 유명한 철학자인 테온의 딸로서 <알렉산드리아>의 플라톤 철학을 이끌어갔으며, 수많은 제자들이 그녀를 떠받들고 따라다녔다.

그녀가 크리스찬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은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전통 그리스-로마 철학의 기본 바탕은 <웅변술>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함께 세상에 초연한 듯한 품위가 있었으며, 말로서 그녀를 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달변이었다. 그녀의 집에는 당대 부자와 정치인들이 자문을 구하기 위해 찾아들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아닌 우주의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자의 집으로....

크리스찬들이 그녀를 공격한 표면적 이유는 <이교신앙>이었다. 그녀는 고대 철학을 꼼꼼히 파악하여, 간략한 문구와 기호로 남기곤 했다. 특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이라던가, <피타고라스>의 수학 공식 등의 기호를 해석하면서 크리스찬과는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곤 했다.

크리스트교 교리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고대 철학자는 더 이상 로마 제국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철학자와 교회의 역할은 중복되었다. 사람들은 기쁘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교회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철학자가 인생을 상담하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구성원 역할을 한다면 철학과 신학은 같은 길을 갈수가 없다. 어느 하나가 죽어야 하나가 산다. 그렇지 않다면, 둘을 같은 것으로 묶어야만 한다.

어느 하나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히타피아를 살해했으며, 둘을 같은 것으로 묶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교부 철학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사실 이들의 생각은 같은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철학은 단독으로 남아서는 안된다는 것....

또,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독 오레스테스와 가깝게 지내면서, 실제로 알렉산드리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교회세력과는 반대편 입장에 서 있었다.

당시 크리스찬들은 몇십년 전에 율리아누스가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해 유대교에게 잘 해준 것을 비판하고 있었다. 더구나, 크리스찬 자체가 예수를 모함한 유대인들을 경멸하였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유대인들을 보호하려고 하였다. 히파티아는 유대인을 보호하려는 총독과 친구였다.

이러한 이유들이 합쳐서 광분한 크리스찬들이 히타피아를 무참히 살해해 버린 것이다.

히파티아를 찬양한 이들 중에는 유명한 기독교 철학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당시 사회는 전통 철학자와 기독교 주의자들이 공존하는 시기였다.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키릴루스는 철학자가 교회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당시 교회의 지배층은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이단에 대한 정화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마차를 타고 가는 히파티아를 납치한 뒤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교회로 끌고 갔다. 히파티아는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살을 찢기는 고문을 당한 후, 숨이 남아있을 때 화형에 처해졌다.

히파티아의 최후(1885년작)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히파티아와 친한 인물들이 당시 과학자나 지식인들이었다는 점이다. 철학과 과학의 지식을 갖춘 이들은 보통 <네스토리우스파> 교인들이었다. 네스토리우스파 교인들은 예수가 신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가 육체를 가지고 지상에 온 이상, 예수 역시 인성이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다. 네스토리우스파는 훗날, 451년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인정받는다.

그러나, 히파티아를 죽인 키릴루스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페수스 공의회)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모두 이단이라고...

즉, 히파티아의 죽음은 단순히 한 여성 철학자의 죽음이 아니라, 철학과 과학의 이념을 가진 자들, 예수를 인간으로 보는 자들을 모두 불태워 죽이겠다는 교회의 극단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히파티아의 죽음과 네스토리우스파에 대한 탄압으로 수많은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은 동쪽으로 도망가게 되었다. 시리아 등 서아시아에 정착한 네스토리우스파는 <경교>라고 불리며, 아시아 크리스트교의 일파로서 자리잡게 된다. 이것은 크리스트교 교리가 하나로 일원화 되는 과정인 동시에, 주류 교리와 반대되는 자들은 추출되는 과정과도 연결되는 것이었다.

히파티아는 불에 타 죽었다. 이제 전통 플라톤 철학은 죽었다. 기존 교리와 대치되는 네스토리우스파도 사라졌다.

그녀가 죽음으로서 고대 철학은 사라졌다. 플라톤 철학은 크리스트교 교리에 종속되어 교부철학으로 다시 탄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보고인 알렉산드리아는 로마가 망한 뒤 몇백년간 서유럽인들의 머릿 속에서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초기 교회에서는 이교도와 이단을 정화하고 정통적 교리를 지키기 위한 <초기 교회>의 움직임이 있었다. 히타피아가 죽을 무렵, 기독교 교부 철학의 아버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저술하여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제 이데아의 세계는 죽었고, 원죄에 대한 구원의 시대가 왔다. 철학은 사라졌고, 철학은 신학에 종속되어 간다. 철학자의 시대는 가고, 신학자의 시대가 왔다. 바야흐로, 카톨릭에 의해 통일될 중세가 다가오는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서유럽 전체를 장악하게 되는지 세 인물을 통해서 알아보겠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 테오도시우스 1세, 갈라 플라타키아 이다.

                                                           역사블로그 <히스토리아> : http://histor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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