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  전체글  |  모바일  |  이메일

  우리는 이러한 화장지 없는 삶을 하루도 상상할 수가 없으며, 요즘은 많이들 비데로 교체하고 있지만, 여전히 화장지의 수요는 폭발적이다. 그만큼 화장지는 우리 생활에 필수품이며 사람들은 화장지의 유용함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숱한 종이의 역사를 서술한 많은 연구 자료에서는 이 귀중하고 또 귀중한 화장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성과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 화장지는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아마 적어도 중국에선 6세기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종이로 뒤를 해결(?!)한다는 것에 대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육조시대六朝時代[각주:1]의 지식인 안지추顔之推(531 ~ 591)[각주:2]였다.

“종이에는 오경五經이나 선현先賢들의 문장, 혹은 각주가 씌어있기 마련인데, 나는 감히 그것을 뒤를 닦는데 사용할 수 없다."
“Paper on which there are quotations or commentaries from Five Classics or the names of sages, I dare not use for toilet purposes.”
 

  안지추의 말을 들어보면 아마 뒤를 닦는데 사용한 종이는 이면지이거나 재활용 종이였던 모양이다. 종이가 발명된 이래, 중국에서 종이는 글을 기록하는데 아주 중요한 수단이었다.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책이 널리 팔리는 것은 지역경제가 발달한 송대宋代[각주:3] 이후지만, 이 시절에도 여러 용도(?)를 위해 이래저래 종이를 구한 모양이다. 

  그 외에도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화장지는 그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명 홍무제洪武帝 시대(1368 ~ 1398)에까지 이르게 된다. 1393년 홍무제는 황궁 전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값싼 벼의 깔대로 화장지를 만들도록 하였는데, 그 수가 720000 장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 15000장은 오로지 황제의 가족들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옅은 노란색에 향기가 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뒤만을 닦기 위한 화장지 그 자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띠는 것은 황실皇室만의 독특하고 구별된 화장지의 사용이다. 노란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향 등을 첨부하여 궁궐에서 흔히 사용되는 여타 화장지들과 차별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장지는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써왔을 것으로 보인다. 종이를 최초로 발명해낸 국가답게 정말 여러모로 종이를 활용하고 있었다. 화장지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우스울지도 모르겠으나, 그만큼 중국에선 종이를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친숙한 것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참고문헌>
- 영문 위키피디아 검색 "Paper"

  1. 양자강 이남에 있던 강남정권이 들어선 시대를 말한다. 강남정권이란 삼국시대의 오吳와 사마씨에 의해 통일되었다가 이민족의 침입으로 남하한 동진東晉, 그리고 그 뒤를 있는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이다. [본문으로]
  2. 육조시대의 지식인. 노장사상을 배척하고 불교에 호의를 나타내며, 유불의 조화를 중시하였다. 당대의 경험과 지식을 두루 갖춘 최고의 지식인으로 손꼽는다. 그는 가족과 가정도덕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대표적인 저서로는 『안씨가훈顔氏家訓』이 있다. [본문으로]
  3. 이는 앞서 언급한 육조시대의 송과는 다른 별개의 왕조다. 조광윤이 5대 10국의 혼란을 평정하고 960년에 건국하였다. [본문으로]
블로그 이미지

비회원

데이터분석 및 교육 전문기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