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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국권 피탈
과정 : 조약의 순서, 내용 등을 알아두자.


1) 한일 의정서(1904)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군용지 조차를 요구하였고, 정부는 이에 응하면서 일본의 합법적인 토지 약탈을 허용하게 된다. 

2) 제 1차 한일 협약(1904)
 
  일본은 이 협약을 통해 우리나라의 내정에 고문을 파견하여 관여를 하기 시작하였다. 외교고문으로는 친일 미국인 스티븐슨과 경제고문인 메가타가 이 때 파견되었다. 

3)
을사조약(1905)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의 영향을 미칠만한 서구 열강(영, 미 등)과 사전에 협약을 마치고, 포츠머스 조약에서 러시아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이후 한반도에 대한 침략 야욕을 노골화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을사조약이라 하겠다. 을사조약의 주된 내용은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에 대한 간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제 1조 
  일본국 정부는 동경 외무성을 경유하여 금후에 조선의 외국에 대하는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할 것이요, 일본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있어서 한국의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할 것임. 

제 2조 
 (전략) 한국 정부는 금후에 일본국 정부의 중개에 경유치 않고서 국제적 성격을 가진 하등의 조약이나 또는 약속을  않기를 서로 약속함. 

제 3조
 
 (전략) 일본국 정부는.... 한국 황제 폐하의 궐하(闕下)에 한 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경성에 주재하고..... (후략)

  이에 우리 민족은
의병활동(을사의병)을 통해 저항하였고,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夜訪聲大哭)」을 황성신문에 발표하였으며, 고종은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였다. 민영환 또한 「동포에게 남기는 글」을 써놓고 자결하였다.
 

4) 한일 신협약(1907)
 
  헤이그 특사 사건을 밀비로 일본은 한일 신협약 체결을 강요하였다. 그로 인해 조선에 있던 일본의 통감부의 기능이 입법, 사법, 행정 전반을 전담할 수 있게 되었다. 고문제를 폐지시키고, 조선의 중요직 등은 통감부가 일본인들을 추천하여 등용시켰다. 그리하여 각 부의 차관들이 대한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는데, 이를 '차관정치'라 한다. 그리고 군대 마저 해산시킨 것도 이 조약의 핵심 중 하나이다. 

제1조 대한 제국은 시설 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받을 것
 
제2조 대한 제국의 법령 제정 및 주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것 
제4조 대한제국의 고등 관리 임명은 통감의 동의로써 이를 행할 것 
제5조 대한 제국은 통감이 추천한 일본인을 대한제국 관리에 임명할 것 

 이후 일본은 기유각서(1909, 사법권 박탈), 6월 각서(1910, 경찰권 박탈) 등을 통해
1910년 8월 29일 국권이 피탈되었다.
 

5) 당시의 국제 정세
   
  가쓰라-테프트 밀약(미-일, 1905.7)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미국 또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한다.

                 ↓

  제2차 영일동맹(영-일, 1905.8)

  일본에 대한 조선의 지배, 감독 인정

                 ↓

  포츠머스 조약(러-일, 1905.8)

  일본에 대한 조선의 지배, 감독 인정. 조선 내의 러시아 이권을 전부 일본에게 양도

  (러일 전쟁 이후, 제2차 영일동맹 이후)

                 ↓

  제2차 한일 협약(을사조약, 조-일, 1905. 11)

  조선의 외교권 박탈, 통감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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