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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골의 역사
  몽골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칭기스 칸이 등장하기 이전인 12세기 무렵의 내륙아시아 지역과 그 인근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여러 나라들의 관계를 통해 시대상을 고려해야하지만, 개설적인 내용으로 몽골지역에 있었던 역사에 대해서만 서술하도록 한다. 몽골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몽골비사』에서는 몽골인들의 조상, 잿빛 푸른 이리 '부르테 치노'와 아름다운 하얀 암사슴 '코아이 마랄'로부터 그들의 조상이 태어났다고 한다. 간혹 칭기스 칸의 용맹스러움을 빗대어 표현할 때 ‘잿빛 푸른 이리’라고 하는데, 이는 그들의 용맹한 부족의 선조인 부르테 치노를 비유하는 것이다. 칭기스 칸이 몽골을 통일하기 전에는 몽골 부, 타타르 부. 나이만 부, 메르키트 부部, 케레이트 부 등이 통일되지 않은 채 부족部族의 형태로 산재해있었다. 당시 테무친이었던 칭기스 칸은 당시 의형제(안다安答)였던 자모카의 배신과 케레이트부의 옹 칸의 배신 등으로 잠시 어려움을 겪었다가 이를 극복하고 서부의 강자였던 나이만과 동부의 강자였던 케레이트를 굴복시켜 대칸大汗인 ‘칭기스 칸’으로 등극하였다.

  몽골을 평정한 칭기스 칸은 실크로드에 위치했던 서하西夏를 공략하기 시작하여 밑으로는 여진女眞의 금을 위협하고, 서쪽으로는 사마르칸트에 있는 태양의 왕국 호레즘 샤 등을 멸망시켰다. 칭기스 칸의 이러한 업적은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칭기스 칸은 신속한 용병으로 광활한 영토를 손에 넣었다. 그는 1227년 숨을 거뒀는데, 그는 죽기 전에 그의 형제들과 아들들에게 여러 차례 분봉分封한 바가 있다. 칭기스 칸이 사망한 뒤 그의 자리는 셋째 아들인 우구데이가 이었다. 그의 등극은 1229년인데, 칭기스 칸의 사망 후에 곧바로 대칸 위에 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의 동생이었던, 칭기스 칸의 넷제 아들 톨루이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이후 이어질 수많은 칸위汗位 쟁탈전의 서곡이었다. 우구데이의 뒤를 이은 뭉케 역시 칭기스칸의 첫 째 아들인 조치의 아들로, 바투와의 갈등을으로 인해 5년 동안이나 대칸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원 세조世祖 쿠빌라이 역시 그의 동생이었던 아릭 부케와의 즉위 전에 있던 내전을 피할 수 없었다.

  대원大元 울루스Ulus를 만든 쿠빌라이는 라마승이었던 팍파(혹은 파스파八思巴)를 중용하였다. 팍파는 쿠빌라이의 명령을 받들어 문자를 만들었으며(네모문자), 제사帝師의 위치를 누리며 개인적인 자리에선 쿠빌라이가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경배할 정도였다고 한다. 라마교가 본격적으로 수입되는 것은 북원北元 때의 알탄 칸과 라마승 소남 갸초의 회담(1578)에 의한 것이었다지만, 쿠빌라이와 팍파의 회담이 훗날 이들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알탄 칸과 소남 갸초는 각자 쿠빌라이와 팍파의 환생還生임을 강조하였다.

  원대元代는 동서교역이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때 교역로 곳곳에 새워진 역참驛站은 여행자나 상인을 위해 숙식과 말 등을 제공하는 제도였는데, 이를 통해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교역을 할 수 있었다. 역참 등과 같은 몽골인들의 배려는 상업뿐만 아니라, 문화 교역에도 큰 몫을 하였다. 루브룩, 카르피니와 같은 여행가들을 비롯하여,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서술하고 있는 환상적인 도시 역시 원제국의 수도인 대도大都의 모습이었다.

  원말元末 이상기온 현상으로 초원에서는 가축 떼가 집단 폐사하고, 중국 내부에서는 노역에 징발되었던 농민들이 각기 봉기를 일으켜 원조元朝를 당황케 했다. 원은 이러한 외부적인 어려움과 동시에 내부에서는 칸위 계승을 비롯하여, 끊임없는 권력의 암투가 행해짐으로써 결국 중국을 지배하던 몽골인들은 그들의 초원으로 북상하였다. 북상한 원나라를 북원北元이라고 하여 원나라의 중흥을 도모하였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이후 몽골은 여러 세력으로 분열하였는데 크게는 오이라트부部와 타타르부部의 대립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명 영락제永樂帝는 이러한 틈을 타서 몽골초원을 향해 수차례의 친정親征을 행하였으나, 끝내 몽골초원을 평정하지는 못했다. 영락제 사후에도 명은 크든 작든 여러 차례 몽골인들에게 위협을 받지 않은 적이 없으며, 몽골의 잔존세력을 막는 것이야 말로 명의 명운命運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여진족은 후금後金을 명과 조선을 압박하면서 청淸으로 이름을 고치고 끝내 중국을 점령하였다. 청淸은 중국의 숙원이었던 북방 유목민족들의 완전한 제압에 성공했다. 강희제康熙帝는 대포를 통해 유목민들의 군사적인 우위를 빼앗아 무력화시켰으며, 1758년 건륭제乾隆帝에 의해 초원은 완전히 중국이 장악하게 되었다. 몽골을 장악한 청은 정략적인 의도로 몽골인들에게 라마승들에게 특권을 주면서 라마교를 전파하였다. 라마승에게 과세를 하지 않고, 역을 면해주는 특권을 주었는데, 이로 인해 가문을 이을 장남 이외의 대부분의 몽골 남자들은 라마승이 되었다. 라마승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이를 이용해 청은 몽골인들을 억압하였다.

  청나라가 붕괴하고, 쑨원孫文의 중화민국中華民國이 들어서자 외몽골에서는 중국의 혼란한 틈새를 노려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된 외몽골의 통치권은, 외몽골의 독립을 위해 왕공들을 끌어들이고, 정신적인 통일을 이룩하였던, 티벳으로부터 온 라마승인 몽골의 생불生佛 8대 젭춘담바가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젭춘담바의 노력에도,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몽골에 영향을 끼쳐 결국 공산화하기에 이르렀다. 8대 젭춘담바는 1924년 성불하였는데, 그 이후 그의 뒤를 이은 생불들에겐 몽골의 통치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몽골은 소련의 위성국가에 불과하였으나, 몽골인들에 의해 꾸려졌으며 몽골인들을 위한 국가였다. 중국은 1946년 몽골인민공화국을 승인하였고, 몽골인민공화국은 1961년 UN에 가입이 인정되면서 국제적인 승인을 받게 되었다. 비록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칭기스 칸과 그의 업적은 공식적으로 부정되고 있으나, 여전히 몽골에선 유목적인 유풍이 살아 숨쉬고 있으며, 몽골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그 당시 알려진 세상의 거의 모든 곳의 지배자였던 때를 완전히 잊지 못하는 것 같다.

  현재 몽골은 1990년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수입함으로써 새로운 활력의 시대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치하에서 철저하게 부정되었던 칭기스 칸에 대한 숭배와 유목에 대한 전통이 다시금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금 부활하는 유목에 대해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현재 부활하는 유목은 과거처럼 부계 중심적이지도 않은, 보다 새로운 형태의 유목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근대국가라는 태두리 안에서 유목이 자유로울지는 여러모로 의심이 드는 부분이 많다. 그 때문일까? 몽골 정부는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동부에서도 농경을 장려하는데 열성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세기는 유목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또한 근대국가 내에서 유목이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2. 역사인식 문제 : 정통성 vs. 과학적 논거
  몽골의 역사는 현재 여러 가지 정략적政略的인 문제로 인해 몽골 역사의 시작에 대해 분분하다. 몽골문화원의 소개에 따르면, 몽골은 50만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몽골과 몽골 주위에 있는 문명들을 아울러 그들의 역사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들이 최초의 고대국가로 인식하는 것은 흉노제국匈奴帝國이다. 여기서 몽골은 흉노제국, 돌궐제국突厥帝國, 위구르제국回紇帝國등을 거쳐 칭기스 칸 때에 이르러 대몽골제국Yeke Mongol Ulus로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사전에서도 볼 수 있는데, 몽골제국 이전의 역사를 서술할 때 몽골문화원의 설명과 같이 흉노Xiongnu부터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는 몽골과 미국의 각각의 이해관계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데, 몽골의 입장에서는 몽골초원을 영토로 삼기 위한 정통성 문제이며, 미국의 경우는 몽골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반면 일본 사전의 경우, 몽고蒙古와 유사한 표현을 찾을 수 있는 7세기부터가 몽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와는 똑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일본의 몽골 역사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스기야마 마사아키衫山正明의 논문집『몽골세계제국』에서도 역시 몽골의 역사를 칭기스 칸의 작은 부족에 대해서부터 서술하고 있다. 박원길 선생의 서술 역시, 『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에서 8세기 이후에 몽골이 출현하였으며, 12, 13세기의 칭기스 칸의 출현과 몽골제국을 시작으로 하여 내외몽골의 성립 초반까지 서술하고 있는데, 외몽골은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의 성립과 1992년 몽골國으로 개칭한 것까지, 내몽골은 1947년 자치구로 지정된 것에 이른다.

- 참고문헌
박원길 저, 『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 민속원, 1999.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 김장구 외 역, 『몽골세계제국』, 신서원, 2004.
고마츠 히사오 외 저, 이평래 역,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2002.
르네 그루쎄 저, 김호동 외 역,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1999.
David Morgan 저, 『The Mongols』, Blackwell Publishing, 2007.
유원수 역주, 『몽골비사』, 사계절, 2004.
김호동 저, 『황하에서 천산까지』, 사게절, 1999.

- 참고 사이트
위키피디아(국문, 영문, 일문)
울란바타르 몽골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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